135화 도시의 공기(1)
오다 가문을 시작으로 기존의 대세력들은 순조롭게 찢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동맹들의 사정은 조금씩 달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기 가문의 병사들을 천지사방에 흩어서 소모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케치 미츠히데는 선선히 자기 휘하의 무사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애초에 그의 세력은 아케치 가문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원한으로 똘똘 뭉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복수의 대상이 죽어 버린 만큼, 구심점도 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그들의 옛 주군은 미요시 가문이었지만, 시코쿠의 주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결국 상호방위조약의 형태로, 내가 맡다시피 했다.
하지만 언제나 협조적이었던 모리, 그리고 반쯤은 내게 종속된 상태인 시코쿠 미요시는 예외였다.
그쪽에서도 휘하 무사들 중 몇몇이 협정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그 명단을 작성해서 테루모토와 마사야스에게 보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우마노카미(종5위상 右馬頭 우마두, 모리 테루모토.)께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모리 테루모토는 자신의 숙부이자 모리 양천(毛利両川)의 한 갈래인 킷카와 모토하루(吉川元春 길천원춘)를 답례의 사자로 보냈다.
“아마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걸세. 요즘 같은 시기라면 차라리 분가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말씀드리긴 하겠습니다마는…….”
내 조언을 받은 모토하루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사사롭게는 우마노카미의 숙부가 되지만, 공적으로는 모리 가문의 가신입니다. 함부로 입에 올리기는 어려운 주제인지라…….”
“아, 그렇군. 실례했네.”
“하지만 쿠보께서 그리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렵지 않지.”
아무리 굳게 결속된 집단이라 해도, 대를 이어 내려가면서 촌수가 멀어지면 결국 남이 되게 마련인 법이다. 게다가 권력은 혈족이라도 나누기 어려운 것.
굳이 오래된 옛 일이나 타국의 경우를 들추지 않더라도, 그런 사례는 무척이나 많았다.
“안타깝게도 우마노카미의 자손과 저나 제 형제들의 자손이 그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달리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피와 땅이 아닌, 사람과 돈에 있다고 보네.”
“피와 땅, 사람과 돈…….”
모토하루는 내 말을 곱씹었다. 그도 무사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학문적 소양을 갖춘 편이었으니, 흐릿하게나마 내 말의 취지를 잡아낸 듯했다.
“뭐, 내가 너무 편하게 말을 한 모양이군. 나중에 모리 공에게도 직접 말할 기회가 있겠지. 이건 내 사의일세.”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온갖 선물을 듬뿍 안겨 보냈다. 아무리 오랜 동맹이라고는 해도, 남의 사람에게 꽤 과격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 마음을 달래려면 그만한 대가를 주는 편이 나을 터였다.
물론 그만큼의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위신을 세우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쿠보의 뜻은 저희 주군에게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모리 가문의 손님은 두 손을 무겁게 한 채로 돌아갔다.
하지만 반가운 손님과 좋은 소식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쿠보, 이케다 군(郡)에 간 상인들이 억류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무사는 누구인데 무슨 일로 그리 했다던가?”
“이나바 일족입니다. 상행을 떠난 상인들이 토지를 이탈한 농민이라며 붙잡았다고 합니다.”
* * *
“이거야 원……. 이런 일로 군대까지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는 혼다 타다카츠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호출을 받고 이케다로 출병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고니시군과 합류하여 내막을 듣고 나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이건 쿠보의 폭거요. 분명 영지의 통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은 스모토 사람이오. 그러니 이나바 일족의 처사는 부당하외다.”
혼다 마사노부가 타다카츠의 말을 반박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상대의 규모에 맞는 병력과 지휘관을 파견할 터였지만, 이번 일은 역시 본보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게 마사노부가 직접 나온 이유였다.
문제는 도쿠가와 측에서 파견한 장수가 바로 그의 혈족이기도 한 타다카츠였다는 점이었다.
타다카츠의 관점에서, 혼다 마사노부는 주군을 배신하고 달아난 반역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입장이 입장이었기에, 꾹 참고 있는 중이었는데 하필 불려나온 사유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다.
농민이 감히 농지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고는 쿠보의 통행증을 내밀면서 버젓이 영지를 활보하고 다닌다.
무사된 자로서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게 타다카츠의 생각이었다.
“원래 자유롭게 살던 자라면 몰라도, 이케다 사람을 이케다의 지배자가 잡아가둔 것에 불과하외다.”
고니시군의 장수와 도쿠가와군의 장수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열세인 혼다 타다카츠가 결국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협정에 따라 주군께서 내게 병력을 딸려 보내긴 하셨으니, 그대의 말대로 움직이기는 할 거요. 하지만 명심하시오. 아무리 쿠보라도 이토록 부당한 짓을 벌일 순 없소이다!”
고니시-도쿠가와 연합군이 이케다에 도착했을 때, 이나바 일족이 내세운 명분 역시 타다카츠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 내 백성이었소! 달아난 것만으로도 중죄이거늘, 무슨 낯짝으로 내 땅에 들어와 무사하기를 바란단 말이오?”
“지금 이나바 공이 억류한 사람이 정말로 이케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쿠보의 보호를 받는 시민이오.”
잡혀간 사람이 지녔던 통행증은 그대로 압수당한 뒤, 불태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마사노부는 통행증을 발급한 내역과 증언할 사람들을 확보해서 온 상태였다.
- 타무라 야이바는 삼 년 전부터 우리 상회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그 전에는 미쿠모 씨네 공장에서 일했다고도 했지요.
- 아이고, 제 남편이 맞습니다요. 어쩌다가…….
하지만 이케다의 영주인 이나바 사다미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듣자, 그들까지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내 백성의 가족 역시 내 백성이오. 그러니 저들을 내어놓고 돌아가시구려.”
“뭐라?”
결국 이나바 일족의 군대와 고니시-도쿠가와 연합군이 대치한 채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도쿠가와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여러 가지로 일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 마사노부는 자신의 주군에게 전령을 보냈다.
* * *
마사노부의 편지를 받은 나는,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이미 마음은 정했지만, 저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혹여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 모인 관료와 장수들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크게 둘로 나뉜 상태였다.
“저쪽의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언제고 터질 문제였는데, 이번 일로 드러났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케다 출신이 이케다로 찾아간 것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차라리 각 상회에 지침을 내려서…….”
무사 출신들의 견해는 대체로 옛 법도를 따르자는 입장에 가까웠고, 사카이와 스모토 출신 토박이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반론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거셌다.
“말도 안 됩니다!”
베드로의 뒤를 이은 새 시정봉행이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알메이다 학교 출신이고 이름은 사오토메 토오루라고 했던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 시민들 중에 타향 출신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만약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다음에는 자기 영지 출신을 모조리 내어 놓으라 할 겁니다.”
“게다가 이케다의 이나바 일족은 감히 통행증을 불태웠습니다.”
첫 번째 주장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는 장수들을 자극했다.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쿠보의 직인이 찍힌 통행증은 곧 쿠보의 권위와 직결된 문제요. 당장이라도 출병해서 응징해야 합니다!”
결국 이나바 일족을 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의논이 끝난 뒤, 회의실에는 나와 토오루만이 남아 있었다.
“말을 아주 잘하더군.”
“쿠보께서 미리 일러주신 덕입니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미리 토오루를 불러다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의논이 정체될 것 같으면, 아까 전처럼 말하라고 미리 말을 맞춰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꽤 진심이 담겨 있던데.”
“도시의 근간은 시민들이니까요.”
“평소에도 그렇게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으면 좋겠군.”
“그, 그건…….”
내 지적을 받은 토오루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왜 전임 시정봉행의 추천을 내치고 자네를 시정봉행으로 세웠는지 아는가? 다른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이네.”
그의 전임자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정봉행은 유독 예스맨 성향이 강했다.
“이번에는 내가 일부러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하지만 자네가 정말로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태도를 좀 바꾸었으면 좋겠군.”
“명심하겠습니다.”
* * *
이케다 군에는 일만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했다. 역시 영지를 지닌 무사들에게 맡기기는 곤란했고, 모두 경비대로 구성된 부대였다.
그리고 기나이의 무사들은 별도로 조직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도록 했다. 명목은 아시나와 다테에 대한 증원이었지만, 최대한 천천히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를 지날 예정이었다.
지금은 나니와쿄에서도 저택들이 한창 지어지는 상태였다. 허허벌판에 무사들의 가족을 보내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아직 유예기간 중이기도 했다.
만약 사건이 일으키려고 한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완전한 파국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나바 사다미치는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뜻을 같이 하는 무사들을 모아서는 회담을 요청해왔다.
“통행증을 불태운 일은 사죄드리겠소. 하지만 백성에 관한 일은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생각하오.”
사다미치와 그가 결집시킨 무사들의 태도는 여전히 완고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밀실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닥에 이마를 찧어가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일은 제가 할복으로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저희의 사정을 헤아려주십시오.”
이번 일의 발단이었던 사다미치를 필두로, 회담을 요청한 무사들이 애원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뻣뻣하던 목이 지금은 무척이나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쿠보, 이대로는 도저히 영지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해에도 수백 명이 농지를 버리고 달아나는 실정입니다. 넉넉히 삼만 석을 수확할 수 있는 땅이, 경작할 사람이 없어 소출이 겨우 일만 석이 나옵니다.”
“무지렁이들이 말을 듣게 하자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마치 내가 염라대왕이라도 되어서 저들을 심판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저들은 결국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어서 발악하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저들을 쓱 둘러본 뒤,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