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뒷정리(2)
“이거, 새로운 목줄을 찬 셈이구만.”
쿠보와 상호방위조약도 아닌 동맹을 체결했다는 것은, 언뜻 보면 상당히 우대받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전의 오다 노부나가를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한 구석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무사들을 규합해 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고가 쿠보도 우리 손에 있으니,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겁니다.”
그를 따르던 가신, 혼다 타다카츠가 아직 기회가 남았다며 주군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이미 나는 쿠보와 동맹이다. 게다가 오합지졸은 아무리 모아 봐야 오합지졸일 뿐이야.”
이에야스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접견한 뒤, 성중에 야영지를 꾸렸다.
이제 해는 기울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취사를 맡은 병사는 저녁을 준비했다.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기묘한 냄새가 그 틈새로 끼어들고 있었다.
“흠흠, 이것은……. 덴뿌라 냄새 같구만.”
“저기 고니시군을 따르던 종군상인이 있는 모양입니다.”
병졸 하나가 아직까지도 환한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야스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요란한 호객소리는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지금의 나니와쿄는 좋게 말하면 고즈넉하여 선계 같고, 곧이곧대로 표현하자면 그저 황량한 사막에 지나지 않았다.
돌과 자갈로 구성된 가레산스이 정원도 주변에 푸르름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성벽 내부는 온통 자갈밭이었고, 유일하게 고니시군의 주둔지만이 사람 사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상인들이 꽤 늦은 시간까지 장사하는 모양이군.”
이에야스는 입맛을 다셨다.
그걸 본 타다카츠는 병졸 하나를 시켜 덴뿌라를 사 오게 했다. 그의 주군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덴뿌라를 가져오자, 이에야스는 활짝 웃으며 받았다.
“무엇이든 튀기면 맛있어지지만, 가지는 각별하지.”
그는 가지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덴뿌라 역시 좋아했다. 이 둘이 합쳐진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건 유난히 기묘하구만. 이런 맛은 처음이야.”
단순히 기름에 튀긴 것만으로는 지금 같은 바삭함이 나올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에야스 자신의 기억으로는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먹고 있는 것은 첫 입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하여 오묘한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걸 조리한 상인을 불러오도록.”
무사된 자가 음식의 조리법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지만, 이에야스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무슨 일이신지…….”
“아주 맛있는 걸 먹었으니, 선물이라도 좀 주고 싶어서 말이야. 궁금한 것도 있고.”
평민에게 무사의 관심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선물을 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병졸 하나가 가서 이야기를 전하자, 상인이 이에야스의 야영지를 찾아왔다.
“참으로 맛있는 덴뿌라를 먹었어. 내 힘이 닿는 범위 내에서 소원을 들어줄까 하는데,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 봐라. 돈을 원한다면 은을 한 궤짝 내려줄 것이고, 출세를 원한다면 적당한 명예직을 주겠다.”
“소인은 단지 생업으로 덴뿌라를 파는 사람일 뿐입니다요.”
상인은 이에야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는 사카이 쿠보의 영향권이었고, 호의를 거절당했다고 해서 이에야스가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직 이에야스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는 상인에게 기어이 은화 한 주머니를 안겼다. 그런 다음,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내가 튀김을 좋아하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떻게 조리했기에 바삭함과 촉촉함이 같이 있는 것이냐?”
“그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요. 밀가루로 옷을 입히면 재료의 본질은 크게 상하지 않으면서도 겉은 바삭하게 만들 수가 있습지요. 그리고 기름은 면실유를 써야 단번에 튀겨낼 수 있습니다요.”
“쌀가루와 면실유라……. 꽤 귀한 것들이 아닌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요.”
상인이 돌아간 뒤, 혼다 타다카츠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이에야스는 무척이나 인색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덴뿌라를 맛있게 만드는 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저자의 업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급까지 내리셨습니까?”
“재물은 무턱대고 아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아끼고 아껴서 필요한 곳에 써야 의미가 있는 법이 아니겠나.”
“덴뿌라 장사에게 은전을 주는 것이 필요한 일이었습니까?”
“정보료를 준 것이라네.”
이에야스는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쉬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헤이하치로(平八郎 평팔랑, 혼다 타다카츠의 별칭.), 생각해 보게. 저자는 쌀가루와 면실유를 사용해서 덴뿌라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이 동네에서는 그런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팔아도 장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도쿠가와 가문은 오랫동안 오다 노부나가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비록 가신이 아닌 동맹의 입장이라고는 해도, 노부나가의 방침을 따라야만 했다.
통상금지도 마찬가지였다. 영지의 부와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사카이의 상인들이 출입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이에야스는 지금 그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쌀이라고 했네. 쌀! 밥을 지어야 할 쌀로 덴뿌라를 만들어 팔고 있단 말일세.”
그것도 사치품으로서가 아닌, 식사 내지는 잠깐의 군것질거리로서의 상품이었다.
타다카츠는 무골이었지만, 역시 한 영지의 주인이기도 했다. 자신의 주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자도 아니었다. 그 역시 이에야스가 무엇 때문에 절망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 * *
오토모 가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모리군과 미요시군이 각각 동쪽과 남쪽으로 치고 들어갔고, 거기에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하카타를 함락시키는 것으로 쐐기를 박았다.
원래대로라면 오토모 소린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성이 함락되자마자 영지 내의 성당에 숨어들어가 사제들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그 결과 가까스로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마즈 역시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서국 전역에서 그들을 도우려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꽤나 저항이 거세군.”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그 강대하던 오토모 가문이 멸망한 뒤, 시마즈는 그보다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끼요오옷!!”
대태도를 든 무사들이 고니시군을 향해 달려왔다. 처음 그들이 등장했을 때, 모두가 이상한 기합소리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의 칼솜씨는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원숭이 무사들이 달려온다!”
“당황하지 말고 철포를 장전하라!”
칼든 무사들을 상대하는 건, 고니시군에게 무척이나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적은 조금 달랐다.
- 온 힘으로 목을 취해라! 일격에 베지 못하면 전신전령(全身全靈)으로 상대를 죽여라!
가까스로 잡은 포로는 그게 자신들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마즈군은 그 문구가 연상될 정도의 맹렬한 공격을 가해왔다.
“다른 병기도 아니고, 칼이 총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줄이야.”
“저들도 피해가 결코 적지는 않겠습니다마는…….”
미요시 마사야스가 그렇게 말하며 위안거리를 찾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히사히데의 얼굴은 어두웠다.
“단순히 몇 명이 붙어서 얼마나 죽어나갔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아군은 이렇게 피해가 클 수가 없는데, 저쪽은 우리의 출혈을 강요하고 있으니…….”
시마즈의 병력은 강하다기보다는 지독했다. 나름대로 화기도 갖춰놓았지만, 그보다도 무사들이 목숨을 도외시하면서 달려들었다.
단순히 피해규모만 놓고 본다면, 고니시군과 그 동맹이 근소하게 유리했다. 하지만 히사히데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피해를 주고받는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무슨 놈의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는 자들이, 지독하긴 더럽게도 지독하군요.”
모리 테루모토가 그렇게 말하는데, 군막 밖에서 병사가 들어왔다.
“시마즈군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세 사람은 망대로 올라갔다. 병사의 보고대로, 시마즈군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근처에 와 있었다.
“저것들이…….”
미요시 마사야스는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고 달려 나갈 것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히사히데가 그런 마사야스를 막아섰다.
“진정하시지요. 지금 뛰쳐나가는 게 저들이 바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군의 사기가 떨어질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출진한다고 해서, 저들이 바로 앞에서 싸워 주진 않을 겁니다. 화기를 쓰기 어려운 숲으로 들어가 버리겠지요. 그러면 아군은 헛되이 지치기만 할 뿐입니다.”
히사히데는 그렇게 말한 뒤, 화포로 적당히 쫓아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폭발음이 전장에 울려퍼지고 포탄이 날아가자, 시마즈군은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지금 고니시군과 그 동맹이 곤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마즈 가문의 거성인 사도와라 성은 이미 함락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저들은 성에 의존하는 대신, 군대를 이끌고 야전을 강요했다.
“애초에 철포수는 칼 든 무사와 맞붙으라고 육성한 병력이 아닙니다. 저들을 상대하려면 그에 걸맞는 사람들을 불러와야겠지요.”
* * *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서찰을 보내왔다. 그게 승전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증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군봉행이 자네가 와 주길 바란다고 했네.”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가야지요.”
야규 무네요시가 내 말을 선선히 받았다.
“검술로 철포수에게 피해를 강요한다니, 저 역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여기에도 적혀 있네만, 목숨을 도외시해 가면서 달려든다고 하네.”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하지만 철포수만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 제자들을 이끌고 가도록 하지요.”
나도 궁금하긴 했다. 다른 지역 출신의 무사도 아니고, 하필 사츠마의 검객들이라니. 물론 그들이 두각을 드러낸 전투는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였지만, 그 히사히데조차 쩔쩔맨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원숭이 소리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사츠마에서 나온 검술 유파라면 결국 지겐류(示顯流)일 터였다. 시기적으로는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했지만, 역사가 뒤집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듯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군봉행이 지원을 요청한 일일세. 방심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사실 저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아군의 출혈도 크겠지요. 군봉행도 그걸 걱정하여 저를 부르셨을 겁니다.”
야규 무네요시는 호기롭게 답했다.
“무엇을 염려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만 앞세우는 자들에게 야규류가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