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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31화 (131/225)

131화 뒷정리(1)

사네히토(誠仁 성인) 왕자는 다시 고요제이(後陽成 후양위) 왕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무사들은 나니와쿄로 오거나 혹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테 마사미치는 전자에 속했다.

즉위식은 간략하게 치러졌다.

덴노가 아닌 왕으로서. 내막을 아는 이들은 비웃거나 혹은 안타까워했지만, 아예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부터가 조정과 관련된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조정의 몇몇 신관들에 불과했다. 심지어 사네히토의 깃발 아래 모였던 무사들조차 불참한 상태였다. 그들에게 떡고물을 안겨줄 사람은 따로 있었기에.

신궁의 한 구석에는 사카이 쿠보에게 배정된 공간이 따로 존재했다.

정전(正殿)에서는 초라한 즉위식이 진행되는 동안, 쿠보의 집무실은 북적이고 있었다. 지금 고요제이 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법도 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가와 무가의 거리는 멀어진 지 오래였고, 일본국의 지존은 무사들을 직접 통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즉위식의 주인공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에 즐거워할지, 아니면 실권을 잃었음에 슬퍼하고 있을지는 본인만이 알 일. 단지 그는 자신의 역할을 내팽개쳤던 조상들의 업보를 감당할 뿐이었다.

“그대들은 오늘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의 말에는 뼈가 들어있었다. 적어도 다테 마사미치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표면적으로야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잘했다는 어투였다.

하지만 즉위식과 동시에 전후처리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고, 그에 반대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자격이 되는 무사들 하나하나가 협정서에 도장을 찍고, 쿠보에게 보호를 약속받았다.

누구의 위거나 아래거나 관계없이 일만 석의 석고를 거느린 무사는 모두 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그게 아니면 곧 사카이 쿠보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자면 독자적인 세력의 주인인 다테 마사미치나, 여러 무사를 거느린 오다 노부카츠가 같았다. 그리고 오다 노부카츠를 섬기는 하시바 히데나가 역시 앞서 두 사람과 같은 조건으로 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마사미치는 옆에 있는 아시나 모리우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우리로서는 그리 나쁠 게 없을지도 모르지.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숙?

- 자네 밑에서 가장 많은 봉록을 받는 무사는 몇 석을 거느렸나?

- 한, 오천 석쯤 되지요.

- 그렇다면 쿠보의 제안과는 무관하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저 아사쿠라나 오다 같은 가문들 말이네.

당장은 그 세력이 유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상하관계보다는, 느슨한 연합체 정도의 모습이 되어갈 터였다.

가문의 존속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들이 거세될 운명. 하지만 콧대 높은 대세력의 주인들도 같이 끌어내려진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절경일지도 모른다. 마사미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차례가 왔을 때, 서명과 직인을 확인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관심을 보였다.

“다테 가문의 마사미치 공이라……. 죽은 마사무네 공의 동생인가?”

“그렇습니다, 쿠보.”

“마사무네 공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네만, 전쟁 중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지.”

“가형(家兄)은 선봉의 영광을 누렸으니, 그걸로 만족할 겁니다.”

하지만 쿠보의 관심은 잠깐에 불과했다.

아직 많은 무사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사미치는 자리를 비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집무실 밖으로 나갔을 때, 안내인 하나가 그를 따라왔다.

“다테 공이 맞으십니까?”

“그렇네.”

“쿠보께서 저택 부지를 안내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신궁 밖으로 나왔을 때, 대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올 때는 쿠보의 군대가 대동하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명료하게 마사미치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이제 내 가족들이 살 도시로군.”

거대한 성벽 안에 몇몇 시설을 제외하면, 사카이 신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내인은 손가락으로 공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보게, 아무것도 없잖나.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그렇게 보이실 수 있겠습니다만, 가족분들께서 옮겨 오실 때쯤이면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겠지요.”

“그런가…….”

마사미치는 속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여기는 거대한 감옥에 불과했다. 이런 곳에 가족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입에서 쓴 맛이 가시지 않았다.

*       *       *

“이제야 끝났군.”

수백 명의 서명을 받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는 일은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쿠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혼다 마사노부는 내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린 눈치였다.

“말하게.”

“오는 길에 동향 사람을 만났는데, 상당히 불안해하더군요.”

서명하고 나간 무사 중에 마사노부의 지인이 있다고 했다. 신궁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나니와에 가족들을 보내는 게 걱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전하께서 성급히 움직이신 덕에 나도 일을 조금 당겨야 했으니.”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덧붙였다.

“그래도 저택이 다 지어질 때쯤에는 꽤 살만한 도시가 될 걸세.”

“저도 그리 말했습니다만, 영 믿지 못하는 눈치더군요.”

“하긴……. 어렸을 적의 내게, 사카이가 이렇게 황량한 수도가 된다고 하면 역시 못 믿었겠지. 근데 막상 해 보니까 쉽더군.”

도시 하나를 통째로 옮기고 만드는 사업은 상당히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필요가 있다면 아주 못할 일은 또 아니기도 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거주민을 강제로 옮기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도시를, 그것도 거주민이 일정 이상 확보된 상태로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기반만 갖추면 될 터였다.

“이번에 스모토로 돌아가면, 시정봉행을 시켜서 나니와에 들어올 상인들을 모집할 걸세.”

내 답을 들은 마사노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번 전쟁으로 쿠보의 패권이 확립된 거나 다름없습니다만, 아직까지 제멋대로 구는 자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찌 하시렵니까?”

“일단 큐슈가 당면한 문제니, 그쪽부터 해결해야지.”

고요제이는 이제 사카이 신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류조지 다카노부는 잡히지 않았고, 오토모와 시마즈는 군대를 소집해 둔 상태였다.

“그러고 나면,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세력들을 마저 정리해야지.”

이번 전쟁에 잠잠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내 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도 여전히 사태를 관망 중인 호조 우지히데. 이 둘 역시 경시하면 안 될 자들이었다.

그리고 도토야 조세이와 가토 기요마사가 북쪽으로 향하다 종적을 감추었다던가.

이래저래 아직 할 일은 많았다.

“모리 공과 시코쿠 간레이에게 서신을 보내두었네. 그들의 군대는 지금쯤 큐슈로 가고 있을 걸세.”

“그러셨습니까?”

“오쓰에서의 전투가 너무 일찍 끝났잖나. 이왕 소집한 군대로 뒤늦게 와서 허탕 치는 것보다는 필요한 전선에 가는 게 낫지.”

싸울 일이 없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군대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상비군이 아니라 영지를 지닌 무사들의 집합체였기에, 소집하는 입장에서도 다소간의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어떤 왕이 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울려댔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내 제후들이 소집에 응하지 않아서 나라가 망했다던가.

물론 동맹의 호출이 그렇게 하찮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껏 소집했더니 아무 일도 없이 해산이더라는 건, 다이묘의 위신에도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어쨌든 멀리 있는 일은 이미 안배가 끝났으니, 기다림만 남은 셈이군. 그보다도 자네 옛 친구는 어떻던가?”

지금 나니와에는 특별한 손님이 하나 와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쟁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그는 고요제이의 즉위식에 참여하겠다며, 성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이었다. 사실상 종속된 것에 더 가까웠지만.

그러나 노부나가가 죽은 이후로, 그는 노부카츠와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찾아왔던 것이다.

“온 김에 쿠보를 뵙겠다고 합니다만…….”

“사실 그게 본 목적이겠지.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말이야. 자네는 어떻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나?”

아직까지 이에야스는 천하에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기록을 통해 대강이나마 알았고, 혼다 마사노부는 그의 친구로서 어느 정도 진면목을 보았다. 그러니 당장 목을 치는 것보다는, 이에야스를 잘 아는 사람의 말을 참고하는 게 나을 터였다.

마사노부는 내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하다가, 두 가지 안을 내놓았다.

“상책과 하책이 있습니다.”

“호오, 계책이 두 가지나 있군. 말해 보게.”

“상책은 이대로 이에야스를 받아들이시는 것이고, 하책은 돌려보낸 다음, 군대로 쳐서 없애는 겁니다.”

물론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이야 그 둘이 전부일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걸로 끝날 거라면, 일부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구체적인 방법을 질문했다.

“하지만 굳이 두 방법을 상책과 하책으로 나눠서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바로 보셨습니다. 상책은 까다로우나 확실한 방법이 되겠지요. 하지만 하책은 단순하나 쿠보의 힘을 까먹게 됩니다.”

마사노부는 그렇게 운을 뗀 다음,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받아들이신다면, 그걸로 끝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

역시 내가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훌륭하군. 그대로 하지.”

*       *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후대에 동상이나 초상화가 많이 남은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은 그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난세도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하오. 하지만 아직 장애물이 많구려.”

“제가 비록 미약하지만, 쿠보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패배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푸셨다 들었는데, 제게도 은혜를 드리워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역시 다른 자들과 같은 조건으로 협정을 체결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고개를 숙여 왔으니, 보통의 경우라면 받아들이는 게 당연했다.

다만 하필이면 천하의 너구리라는 게 문제였을 뿐.

나는 웃으며 상대의 말에 화답했다.

“싸우지 않고도 이리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이야기라 생각하외다.”

내 말을 듣자, 이에야스는 자신의 의도가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금세 굳은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도쿠가와 공은 나와 창칼을 맞댄 적도 제법 있는 걸로 알고 있소. 죽은 노부나가의 동맹으로서 말이오.”

그가 보였던 행동은 동맹에 대한 배신으로 비칠 소지가 아주 많았다. 그걸 꼬집으니 반응이 볼만했다.

“뭐, 그게 도쿠가와 공의 본심이었겠소이까. 노부나가의 야심이 빚어낸 비극일 것이오. 노부카츠가 자신의 가친을 죽이기도 했고…….”

“하하, 그리 생각해 주시니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병 주고 약 주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쨌든 도쿠가와 공은 패배자도 아닌데, 관용이 가당키나 하겠소.”

“하, 하오면…….”

“밍숭맹숭한 상호방위조약 말고, 동맹이 되는 건 어떻겠소이까.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맹 말이오.”

오다 노부나가는 살아생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차게도 부려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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