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두 개의 태양(8)
사네히토의 깃발 아래 모인 무사들이, 도합 오만을 넘겼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동국의 전력이 전부 모인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제법 모았군.”
이치로가 취합해 온 자료에 의하면, 온갖 세력의 잡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사쿠라 가문을 제외하면 교토의 승병들이 가장 먼저 저쪽에 가담했고, 그들은 사네히토의 친위대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노부나가의 차남이었던 노부카츠였고, 호조 우지마사와 롯카쿠 요시하루가 그 뒤를 따라 저쪽에 합류한 상태였다. 거기에 동북면의 무가들 중에서도 몇몇이 끼어들어 있었다.
“다테에 아시나……. 우에스기 토벌 당시에도 역당의 주축을 이루었던 자들 같은데.”
“바로 보셨습니다. 그들이 어린 우에스기 가주를 좌지우지하곤, 세가 불리해지니 내빼 버렸지요.”
내가 목록을 확인하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아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간교한 자들이라면 이번에도 균열을 내 봄직하겠군.”
“하지만 동북면에서 온 자들은 중앙으로 진출하려는 욕구도 상당할 겁니다.”
아직은 저쪽의 단합이 견고한 편이니, 당장 계책을 쓰긴 어렵다. 그게 혼다 마사노부의 견해였다.
“역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막대한 피해를 입히거나 지루하게 만들어야겠지.”
당장의 병력수는 이쪽이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여기에서 버티다 보면 모리와 미요시가 도우러 올 터였다.
“이미 주코쿠(中國 중국, 오늘날의 혼슈 서부)의 모리 공과 시코쿠의 미요시 공은 각자의 영지에서 소집령을 내렸다 했네. 원래는 사카이에서 농성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그랬다간 기나이 전역이 쑥대밭이 될 게 아니겠나.”
사카이의 성벽은 단단하고, 해안가에서의 전투는 이쪽이 절대적 우위를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려면, 아예 기나이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는 편이 나았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자신의 영지가 보전된다는 것에 안도했지만, 동시에 대국적 관점에서의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쿠보, 만약 주코쿠와 시코쿠를 비웠다가 오토모 소린이 후방을 어지럽히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닙니까.”
“아, 그건 걱정 말게.”
애초에 아케치 미츠히데는 동맹이었고, 이쪽의 사정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의 우려는 타당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책은 모두 완성된 상태였다.
“오토모는 함부로 큐슈를 벗어나지 못할 걸세.”
물론 주코쿠(中國 중국, 오늘날의 혼슈 서부.)와 시코쿠에 빈틈이 보이면 오토모 가문이 준동할 가능성은 높았다.
하지만 고사에도 이르기를 당랑포선황작재후(螳瑯捕蟬黃雀在後)라 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하나, 그 뒤에는 또 참새가 사마귀를 노리고 있는 법. 졸지에 이쪽이 매미에 비유되긴 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말도 없을 터였다.
저쪽이 동맹의 빈집털이를 노린다면, 이쪽에서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이끄는 군단이 다시 오토모 소린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었다.
게다가 큐슈를 넘어 시코쿠와 주코쿠를 노린다는 이야기는, 세토 내해의 항로를 위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쯤이면 오토모는 물론이고, 시마즈까지 동양 무역회사 함대의 무력시위에 짓눌려 있을 터. 서쪽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의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이야기지. 이제 나가서 지형을 좀 살펴보고 오려는데, 같이 가겠나?”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군막 밖으로 나가니, 탁 트인 호수가 곧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아군이 군영을 차린 자리는 비와호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세타 강의 서안. 그 이름도 유명한 ‘세타의 다리’를 앞에 두고, 강안을 따라 방어 태세를 굳히는 중이었다.
단순히 소수의 병력으로 진격을 틀어막으려면, 여기에서 약간 뒤쪽에 있는 오사카관(逢坂関 봉판관)이 더 유리할 터였다.
하지만 언제나 산악지대보다 강이 대군을 막기에 유리한 법. 하물며 화력전을 주요 전법으로 삼는 아군은 세타의 다리를 끼고 싸우는 편이 더 나았다.
“이름만 들어선 그저 호수인 줄 알았는데, 실로 바다에 비할 만하지 않은가.”
물론 정말로 그렇게 광대한 느낌을 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호숫가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오직 수평선이 보이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호수로서는 보통 크기는 아닐 터였다.
“그렇지요. 이 비와호 연안에서도 세토 해에서처럼 상업 활동이 제법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입니다.”
“원래 배가 우마나 도보보다 나으니 말이지.”
나를 따라 나왔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내 감상에, 현실의 설명을 보탰다.
“가만……. 그럼 여기에서도 선박의 왕래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 북쪽에 가타다(堅田 견전)라는 지역의 무사들이 이 일대의 수운을 움켜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케치 미츠히데는 이 지역의 사정에 제법 밝은 눈치였다.
“그들을 만나 보고 싶군. 혹시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나?”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만, 무슨 일로 가타다 사람들을 찾으시는지요?”
“이왕 호숫가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이 광대한 영역을 단지 장애물로만 쓰기 아깝지 않은가.”
* * *
사네히토의 군대도 세타 강에 도착했다. 이미 고니시군은 다리와 강가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준비해 둔 상태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왕자에게 자신이 본 바를 알렸다.
“폐하, 이미 적은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모양이옵니다.”
“그래 봐야 조무래기 잡병들에 불과하다. 그대들, 동국의 무사야말로 황실을 지키는 기둥이 아닌가. 짐은 그대들을 믿노라.”
비록 사카이 신궁에서는 사네히토의 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고요제이 덴노였다.
그가 천하에 포고문을 돌리자 많은 이들이 가세했고, 그럴수록 젊은 덴노는 자신감을 얻어갔다.
“누가 짐을 위해 역적 고니시 유키나가의 목을 가져오겠는가?”
“소장이 나서겠나이다!”
“경은……. 외눈이로군?”
고요제이 덴노 앞에 나선 장수는 한쪽 눈이 없는 자였다.
“신체가 온전하지 않은데,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는가.”
“다테 데루무네의 아들, 마사무네이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선봉을 맡지 못한다면, 차라리 할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패배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할복이란 말인가. 경이 말하는 것은 의기가 아니라 한낱 어린 아이에 치기에 불과하니라.”
비록 외눈박이라고는 하나, 역시 덴노를 따르겠다며 투신한 무사였다. 단지 거슬린다고 처벌할 수는 없었기에, 사네히토는 적당히 달래어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나 다테 마사무네는 의외로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폐하, 소장에게 선봉을 맡지 못함은 곧 패배나 다름없사옵니다! 부디 폐하의 첫 번째 창이 되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젊은 무사가 저리 말하는데,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져 가는 가운데,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나서서 다테 마사무네를 도왔다. 사실 이 또한 요키가게가 나름대로 계산을 한 결과였다.
고니시군의 후방에서는 계속해서 증원이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국에서 덴노의 편을 드는 자들은 움직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결국 고요제이 덴노의 군대는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고, 촌구석에서 온 외눈박이 무사라면 희생양으로 쓰기에도 적당할 터였다.
“흠…….”
요시카게의 진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네히토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런 덴노에게 요시카게가 속삭였다.
“고작해야 외눈박이가 아니옵니까. 저렇게 큰 소리를 쳤으니, 함부로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장렬하게 죽어 주면, 오히려 우리 병사들의 사기가 오를 것이니, 허락해주시옵소서.”
“경의 계책이 참으로 묘안이로고.”
덴노는 요시카게의 말을 받아들였다.
“좋다. 단, 조건이 있느니. 패배하고 돌아오면, 할복이 아니라 목을 매어야 할 것인즉. 그래도 선봉에 서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다테 마사무네는 이번 전쟁야말로 자신을 천하에 드러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족의 사람들까지도 그를 두고 외눈박이라 무시하지만, 덴노 앞에서 전공을 세운다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터. 이번이 그를 둘러싼 편견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였다.
덴노의 허락을 받은 마사무네는 자신의 무구를 갖춰서 세타의 다리에 올라섰다.
“나는 오슈의 독안룡, 다테 마사무…….”
그러나 현실은 그가 꿈꾸던 것 같지 않았다.
적진 앞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고하고(名乗り 나노리), 대거리하러 나온 적장의 목을 취한다. 다테 마사무네의 계획은 대강 이러했다.
그러나 그가 자기소개를 끝내기도 전에, 고니시군의 진영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놀란 마사무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온갖 쇳조각들이 그의 몸에 뚫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 * *
일제 포격이 끝난 뒤, 시마 카츠타케는 귀가 밝은 부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라 하던가?”
“듣기로는 다테 마사 어쩌고라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난 또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고……. 다테 일족의 애송이가 겉멋만 든 모양이군. 전장에서는 잘 죽이기만 하면 그만인 것을.”
고니시군에게 나노리란, 개개인의 무예가 전장의 판도를 결정짓던 시절에나 먹히던 것에 불과했다.
관위명 역시 나노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고, 카츠타케 역시 자신의 이름보다는 사콘이라는 관위명으로 통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야규류의 진전을 이은 자였다. 효율적이지 않은 것은 전장에서 거추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뭐, 촌구석에서 있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체 언제적 관습을 들이민단 말인가. 전장에선 모른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없네.”
* * *
대치 상태가 꼬박 보름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콘의 보고에 의하면, 사네히토 측은 최초의 도발을 제외하면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가닌자가 잠입해서 알아 왔는데,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시신조차 건지지 못하는 죽음은 맞기가 싫다고? 정말 그게 저쪽이 잠잠한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쿠보.”
저절로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 했다.
사네히토 측 병력의 절반가량은 낭인들이거나 혹은 동북면의 작은 무가 출신이었다.
그들에게 이번 전쟁은 필사적으로 싸워야 할 무언가라기보다는, 적당히 명예나 얻어 갈 만한 큰 판에 가까웠다.
이번에 죽은 자가 다테 마사무네라 했던가. 그 처참한 죽음을 보고는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사실상 절반이 퍼진 상황이었으니, 나머지 절반으로는 공세를 취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쪽에서 공격을 가할 차례로군.”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말을 받았다.
“좋다. 육지의 무사들에게 수전이 어떻게 벌어지는 것인지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마침 달이 밝아 야습을 가하기 적당한 밤이었다. 내 지시에 따라 수백 척의 작은 배들이 한결같은 움직임으로 호수를 미끄러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