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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26화 (126/225)

126화 두 개의 태양(7)

하시바 히데요시가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지금, 그의 동생인 하시바 히데나가가 대리인의 자격으로 영지와 저택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시바 저택의 한 구석에서 도토야 조세이와 가토 기요마사가 마주쳤다.

“네 녀석은 무슨 일이냐?”

“히데나가 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바짝 날을 세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었기에, 도토야 조세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답했다.

“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요마사는 그렇게 내뱉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조세이가 열 걸음 정도 뒤에서 따라갔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가운데, 별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이 바로 이들이 가야 할 장소였다.

“기다리고 있었네. 오, 자네도 왔군.”

하시바 히데나가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이미 선객이 또 한 사람 있었다.

“이시다 공까지…….”

“제가 히데나가 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가토 기요마사, 그리고 도토야 조세이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어 버리고 하시바 히데요시는 자리를 비운 지금, 그들의 처지 역시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하물며 기요스 성의 주도권을 쥔 자는 그들의 주군을 싫어하는 시바타 카츠이에. 당장이라도 영지를 몰수하겠다고 나서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터였다.

이시다 미츠나리가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오시게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시다 공에게 묘안이 있을 것 같소만.”

이미 가토 기요마사는 그에게 한번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가토 공의 눈썰미는 예리하시군요.

“아무리 지혜를 짜낸들, 여기 누구도 이시다 공을 따라가지 못할 거요. 그러니 빙빙 돌리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 보시오.”

하시바 히데나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도토야 조세이는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역시 동조하는 눈치였다.

“그 전에, 다른 분들은 정말로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이 질문에 조세이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상석에 있는 하시바 히데나가가 입을 열었다.

“이제 공이 말한 사람들이 전부 모였으니, 어서 계책을 말하게.”

히데나가는 미츠나리를 채근했다. 다른 이들은 따로 준비한 것이 없음을 확인한 미츠나리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선 히데나가 님께서는 간토 간레이와 시바타 카츠이에가 같이 있는 때를 골라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영지에 대한 탐욕을 보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시바타 카츠이에가 오다 노부카츠를 쥐락펴락 한다 해도, 결국은 주군과 가신의 관계에 불과했다.

그러니 시바타 카츠이에가 히데요시를 역당으로 몰아세우기 전에, 선수를 치라는 계책이었다.

“대리인보다는 주인이 되는 편이 훨씬 운신하시기 좋을 겁니다.”

“그야 그렇네만…….”

말은 쉽지만, 외양은 명백히 동생이 형의 부재를 틈타 하극상을 벌이는 모양새였다. 히데나가는 그 부분을 불편해했다.

“형님의 자리를 보전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성주님께서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미츠나리는 그렇게 말한 뒤, 나머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두 분께서는 주군을 찾아가셔야겠습니다.”

히데요시가 떠난 곳은 동북면을 넘어선 머나먼 북방이라고 했다. 지금은 연락도 끊긴 상태라, 어디 있는지 찾는 것조차 상당한 노고를 요하는 일이 될 터였다.

하지만 가토 기요마사나 도토야 조세이 모두 미츠나리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 하지요.”

“히데나가 형님보다는 오히려 속편한 일이 되겠군.”

기요마사는 너스레를 치며, 불편해하는 육촌 형의 마음을 달랬다. 이 자리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버려진 승려들의 도시는 조용했다.

옛 궁궐은 해체하여 새 신궁의 재료로 쓰인 지 오래였고, 사찰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주민들 역시 어디론가 도망쳐서 보이지 않았다.

시마 카츠타케는 거센 저항을 각오하며 교토 시가지에 들어섰지만, 옛 수도는 황량한 모습으로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청야 작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비슷할 것일세. 사콘이 오기 전에 모두 히에이 산으로 빠졌다더군.”

고니시군의 대장이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아는 대로 사정을 이야기했다.

“역시 첩보대로인 모양이군요.”

닌자들이 살핀 바에 의하면, 각 사찰이 보유하고 있던 병력의 상당수는 사네히토 왕자가 머무르는 오미국 오다니(小谷) 성으로 갔다고 했다.

교토에 남아 있는 규모는 고작해야 오천을 넘기지 못한다 했으니, 아케치군 칠천에 고니시군 오천을 합쳐 일만 이천이면 넉넉할 터였다.

시마 카츠타케는 사찰을 버리고 달아난 승려들을 비웃었다.

“제가 부처의 가르침을 조금 알긴 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불자가 있는 곳이 곧 도량이라지요?”

“선종의 가르침이로군.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딱히 부정하진 않는 말이지.”

“그렇다곤 해도 말입니다. 이왕 있는 도량을 모조리 내팽개치고 험한 산에 들어가는 게, 어느 경전에도 있는 내용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케치 미츠히데는 쓴웃음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내 듣기로는, 쿠보께서 저들의 뿌리를 뽑으라 하셨다고 들었네만.”

“그렇습니다.”

“혹시 교토 내의 사원을 몽땅 없애라 하셨는가?”

아케치 미츠히데는 눈앞의 장수가 혹여 그런 명이라도 받지는 않았는지, 상당히 우려하는 태도였다.

비록 혼간지는 그들 스스로가 쌓아 놓은 화약이 폭발해 버린 경우였지만, 대개 말은 옮겨지면서 부풀려지는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일향종을 뿌리 뽑기 위해, 혼간지를 불태웠다고 생각했다.

정작 그 전장에는 미츠히데 본인도 있었건만, 소문은 역시 사람의 불안을 부채질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고니시군의 장수는 그 소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셨습니다.”

“이보게, 사콘. 내가 쿠보를 뵙고 말씀드릴 것이니, 교토를 평정할 때까지만 보류해 줄 수는 없겠나.”

비록 아케치 미츠히데가 성리학을 접했다고는 하나, 역시 불가가 더 익숙한 몸이었다. 문화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그는 교토 내의 사원이 모조리 불타 없어질까 두려워했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쿠보께서 직접 감독하러 오겠다 하셨으니, 그때 말씀드려 보시지요.”

다행스럽게도 미츠히데의 상상이 현실로 되기 전,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마 카츠타케에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교토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히에이 산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교토에는 일부 병력만 남겨서 지키면 될 겁니다.”

“흐음……. 내가 교토의 수색을 맡겠네. 휘하 병력 중 오천을 붙여 줌세.”

“괜찮으시겠습니까?”

히에이 산 토벌은 전공을 세울 기회였고, 교토의 수색은 크게 얻을 게 없는 일이었다. 카츠타케는 미츠히데의 제안을 의아하게 여겼다.

“쿠보께서 여기로 친히 오신다 했으니, 혹시 모를 매복을 살피는 일 역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네.”

“물론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그런 이유라면 소장이 남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믿을 수 있는 동맹은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 고니시군의 원칙이었다.

*       *       *

교토의 수색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승병의 매복은 나오지 않았고, 모든 사찰의 경내에는 어리친 개새끼 하나 나오지 않았다.

“샅샅이 뒤져라! 사람의 그림자까지 잡아내야 할 것이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자신의 동맹을 설득하기 위해, 참빗으로 훑어내듯 경내를 뒤졌다. 그리고 수색이 끝난 절간은 병사를 남겨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후속 병력을 이끌고 올 때까지,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내가 교토에 도착할 무렵, 시마 사콘 역시 엔랴쿠지 공략에 성공하고 돌아왔다.

“쿠보께서 명하신 대로, 히에이 산의 도적떼를 토벌하고 돌아왔습니다.”

“음, 수고했네.”

나는 시마 사콘의 노고를 치하한 다음, 옆에 있던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남은 까닭은 내게 할 말이 있어서라고 했던가. 전공을 세울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교토에 남은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를 질문하기도 전에, 먼저 미츠히데가 입을 열었다.

“쿠보, 교토의 사찰들을 모두 없애려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소.”

“한 번만 기회를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여기는 일본의 불법이 모두 모인 곳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덕이 높은 고승들에게 맡기려 하니, 부디…….”

무척이나 간절한 요청이었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 될 말이오.”

“어째서입니까?”

“아케치 공은 지금 벌어진 일을 일부 타락한 승려들의 일탈로 여기는 것 같소만, 내 생각은 다르오.”

이제 교토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옛 부귀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여기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겨 둘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츠히데는 납득할 수 없었는지, 아예 흙바닥에 오체투지를 하며 애걸해 왔다.

“쿠보, 도량을 불태우지 말아 주십시오!”

“불태우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물론 교토에서 없애 버리겠지만, 꼭 불에 태워야만 하는 건 아니잖소.”

“그게 무슨…….”

“직접 보시구려.”

이미 의심과 불안이 가득 찬 사람에게는,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는 한 번 보여 주는 게 나을 터였다.

내 손짓 한 번에, 뒤따라온 인부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제 평생에 이런 대사업을 맡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세심하게 살펴주게. 그리고 여기 아케치 공에게 자네가 할 일을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군.”

내 말을 들은 아케치 미츠히데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구면인 듯했다.

“아니, 자네는 곤고구미(金剛組 금강조)의 구미가시라(組頭 조두)가 아닌가!”

기나이 제일의 목수를 꼽으라면 여러 이름이 거론되겠지만, 집단이라면 곤고구미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에 미츠히데는 어리둥절해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 다음에는, 그저 멍하니 사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니까, 불태우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무턱대고 절간을 불태우는 무뢰배는 아닐세.”

물론 그 안에서 보물 같은 게 나오면 좀 챙길 의향은 있지만, 그런 것까지 미츠히데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어쨌거나 내 의도를 들은 그는 잠시 충격에 빠진 상태로 있다가,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쿠보를 의심했습니다.”

중요한 전쟁을 앞둔 지금, 아케치 미츠히데 본인이 참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처음에 그가 교토에 남고 시마 사콘이 히에이 산으로 갔다고 했을 때, 둘 사이에 알력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내심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문제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없애라는 말부터 들었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지. 이제는 전장에 나갈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제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근심을 털어낸 미츠히데의 태도는 시원시원했다. 이제 교토에서의 일은 끝났고, 사네히토를 막으러 오쓰로 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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