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두 개의 태양(6)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 했던가. 이 말은 ‘말 위에서’를 ‘칼을 들고’로 바꿔도 통용되는 진리였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는 집단은, 그 카리스마가 끝나는 순간 무너지기 쉬운 법. 지금의 오다 노부나가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다이묘의 저택 안에서는 누구도 칼을 소지할 수 없었다. 설령 일족이라 해도, 거주하는 이가 아니면 패용은 허락받지 못했다.
그러나 와키자시(脇指 협지)라 부르는 단도는 예외였고, 시바타 카츠이에의 무술 솜씨는 짧은 칼 한 자루로도 노부카츠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노부카츠 님. 나는 오다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간토 간레이는 이제 가문을 이끌어갈 자격을 잃었다 생각합니다.”
정작 제 할 일을 내팽개치고, 술독에 빠져 지냈던 자는 누구였는가. 그 와중에 가문의 미래를 걱정한 가신은 또 누구였는가.
그는 오다 노부나가가 취중몽생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가문의 안정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군의 질책뿐이었다.
과거 노부나가 대신 그 동생인 노부유키를 옹립하려 했던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 제멋대로인 노부나가를 묵묵히 섬기는 것은, 가문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그렇다면 형님이 있지 않소이까.”
아무리 원망이 쌓여 있다 해도, 이는 하극상 중의 하극상. 방금 전까지 불만을 터트리던 노부카츠의 기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 세력의 지배자를 갈아치운다는 것에는 그만 한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이묘일지라도 감당키 어려운 실책을 저지르면, 간혹 가신들이 강제로 은거시키는 경우가 있긴 했다. 이럴 때에도 다른 이를 새로운 다이묘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후계자를 세우는게 상도였다.
그리고 지금 노부나가의 후계자라고 한다면, 차남인 노부카츠보다는 장남 노부타다가 더욱 유력한 후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바타 카츠이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부타다가 잡음 없이 승계한다는 것은, 그 부친인 노부나가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할 터였다.
그 말인즉, 오다 가문을 대대로 섬겨온 시바타 카츠이에가, 근본도 알 수 없는 하시바 히데요시보다 낮은 배분에 머무르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첫째 도련님이 오다 가문의 주인이 된들,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과단성 있는 노부카츠 님을 가주로 세우려는 겁니다.”
노부카츠는 칼날을 목에 두고 협박받는 와중에도, 자신을 높이 평가해 주는 말에 솔깃해했다.
“시바타 공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외다.”
“이 사람의 지위와 병력으로 기회를 잘 노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들어, 오다 노부나가는 자주 세이슈지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를 방문하는 동안, 가신들은 그 시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게다가 하시바 히데요시는 주군의 명을 받고 어디론가 떠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 기요스 성 안에서 니와 나가히데를 제외하면, 가신들 중에서 카츠이에보다 높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바타 카츠이에의 설명을 들은 노부카츠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바타 카츠이에가 세이슈지를 습격하는 동안, 자신은 맏형 노부타다를 붙잡아 놓는다. 그러면 차기 가주 자리는 그의 것이 될 터였다.
머릿 속에서 희망을 그린 노부카츠는 카츠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바타 공의 마음은 잘 알겠소. 그렇다면 결행일은 언제로 할 것이오?”
“오늘입니다.”
“그렇구려, 그럼 나는……. 잠깐, 오늘이라 하였소?”
하극상을 벌이는 대형사고를 당장 치르겠다는 말에, 노부카츠는 기겁했다. 하지만 시바타 카츠이에는 태연하게 그 이유를 입에 올렸다.
“이런 일은 시간을 끌어선 곤란합니다. 출기불의로 단숨에 끝내야 하지요. 간토 간레이를 잡는 건 제가 할 것이니, 노부카츠 님께서는 타키가와 공과 기요스 성을 장악해 주시면 됩니다.”
“타키가와 공도 함께 하는 것이오?”
“이미 대부분의 가신들과는 말을 맞춰 두었습니다.”
* * *
세이슈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언을 올리고 할복한 히라테 마사히데를 기리며 세운 절이었다. 마사히데의 아들은 이미 병으로 죽었고, 이제 이 절과 관련이 있는 자는 오직 노부나가 그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단지 분풀이를 오락거리 삼아 방문했지만, 지금은 그가 명상하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노부나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히데요시 정도였지만, 그 부분은 노부나가 본인이 묵인한 바였다.
그리고 오늘 그 예외가 또 깨졌다.
“웬 소란이냐?”
오다 노부나가가 쇠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본당 밖으로 나왔을 때, 중무장을 한 시바타 카츠이에가 그를 맞이했다.
“여긴 어쩐 일이지? 갑옷까지 차려입고 온 걸 보니, 기요스 성이 습격이라도 당한 것인가?”
그 정도가 노부나가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테두리가 지금 부서져나갔다.
“이제 간레이께서는 은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은거라니, 아직 내가 멀쩡하거늘…….”
“평소에도 인생 50년이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으니, 이제 은거하실 때도 되었지요.”
가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차렸다. 시바타 카츠이에가 이끌고 온 병사들은 그에게 창칼을 겨누었고, 이미 사방에 피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인적이 없다는 것은 절에 속한 승려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는 걸 의미할 터. 증인을 남겨 놓지 않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시바타 카츠이에의 말을 따른다 해도, 노부나가를 기다리는 건 은거가 아니라 죽음일 터였다.
지금 건네는 달콤한 말은 결국 그를 적은 피해로 살해하기 위한 것. 그 사실을 눈치 챈 노부나가는 칼을 뽑아들었다.
“네가 감히 날 배신해!”
“배신이라니! 간레이야말로 지금 오다 가문을 망가뜨리고 있소.”
거기까지 말한 카츠이에는 더 다툴 것도 없다는 듯이,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이 여기 있다. 쳐라!”
그러나 노부나가 역시 무사 중의 하나. 일신의 무위는 지위에 걸맞는 실력을 자랑하는 자였다.
병사들이 들이대는 창을 일검에 걷어내고, 뒤로 물러나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공에 눈먼 자들 몇몇이 뒤따라 들어오다가 역시 노부나가의 칼에 죽었다. 그리고 상황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변고가 일었으니, 머잖아 다른 이들이 그를 구하러 올 터. 노부나가는 그때까지 최대한 버텨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건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
병사들 대신 시바타 카츠이에의 목소리가 본당에 들어왔다.
“시간을 끌 생각이시오? 과연 누가 구하러 오겠소이까. 첫째 도련님? 히데요시? 그 누구도 여기에 올 수 없소이다.”
“혓바닥이 길구나! 어서 덤벼라!”
그러나 대답 대신 횃불이 노부나가가 숨은 건물로 날아들었다.
“이런…….”
오다 노부나가는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는 불을 피해 도망간다는 느낌이 싫었고, 자신의 시신을 역도들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죽음만이 기다린다면, 내 운명은 내가 결정지을 것이다.”
그는 세이슈지의 본당에 그대로 서서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 * *
“오다 노부나가가 죽어?”
“그렇습니다. 불에 타서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남인 노부타다는 출가했고, 차남 노부카츠가 그 뒤를 이어 간토 간레이가 되었다고 했다.
“혹시 계략은 아닌가? 만약 죽음을 위장한 거라면…….”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혼다 마사노부가 자신의 추측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을 이익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노부카츠는 그대로 군대를 일으켜, 사네히토에게 합류할 것을 천명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세력보전을 이유로,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자의 술수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있긴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노부나가는 죽은 것인가……. 전말은 어떻게 되지?”
내 질문을 받은 이치로는 노부나가 살해에 가담했거나,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목록을 내놓았다.
“시바타 카츠이에가 노부나가 살해의 실행자였고, 가신들 대부분이 거기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정확한 내막은 아직 입수하지 못했습니다만, 얼마 전에 노부나가가 가신들을 불러다가 질책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시바 히데요시를 다이로에 임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신들이 들고 일어난 것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출세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의 불만은 무시하기 어려울 터. 하물며 자신들을 밀어낸 자가 그 하시바 히데요시라면, 그들의 감정은 한없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달았을 게 뻔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으니, 혼다 마사노부가 채근해왔다.
“쿠보, 지금은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보다, 현실에 주목하셔야 할 때입니다.”
“알고 있네. 다만 일세를 풍미했던 영웅의 죽음이니, 잠시 감상할 가치는 있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며 마사노부를 달랜 뒤, 다시 이치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하시바 히데요시도 죽었나?”
“그게…….”
“행방불명인가?”
“얼마 전에 북쪽으로 떠났다는 이야긴 있었는데, 어디쯤에 무슨 일로 갔는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이번 사건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와리에 제대로 된 첩보망이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런 식으로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해야 했다.
“노부카츠는 대놓고 사네히토에게 가세하겠다 했으니, 당분간 오와리에 잠입한 닌자들은 히데요시의 행방을 찾아내도록.”
“알겠습니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아까 혼다 마사노부가 말한 대로, 사네히토 왕자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행보였다.
그들은 지금 아자이 가문의 옛 거성이었다가, 지금은 아사쿠라 가문이 접수한 오다니(小谷 소곡) 성에서 군세를 끌어 모으는 중이었다.
“교토의 사찰들이 가담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나는 집무실의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교토에는 사네히토 측에 가담했음을 뜻하는 검정 깃발이 여럿 놓여 있었다. 엔랴쿠지며, 다이도쿠지, 혼노지 등 대사찰들이 모두 사네히토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사콘.”
지금 이 자리에는 중임을 맡은 장수들은 모두 있었고, 그중에 시마 사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예, 쿠보.”
“경비대 내의 장병 중에서, 불자가 아닌 사람을 일만 정도 선발해 교토로 가시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불자가 절을 향해 창칼을 겨누기는 어려울 터였다. 다행히 내 휘하의 병력은 종교적인 면에서 골고루 섞여 있었고, 굳이 껄끄러운 일을 피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저들은 부처의 뜻을 받든다 하면서, 실상은 속세에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오. 항복하면 목숨은 붙여두되, 절대로 이 땡중들의 뿌리를 뽑아야 하외다.”
“명을 받듭니다.”
이제 군대의 준비도 거의 끝나 가는 상황, 사네히토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장내려면, 아직 서로 맞붙기 전인 지금이 적기일 터였다.
“다른 사람들도 출격을 준비하시오. 적은 틀림없이 교토로 올 것이나, 그는 결코 입성하지 못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