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두 개의 태양(4)
“쿠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류조지 토벌 선언을 들은 혼다 마사노부가 급히 만류하고 나섰다.
“류조지 다카노부는 분명 쿠보께 등을 돌린 배신자입니다. 하지만 그 솜씨만큼은 결코 만만치 않은 걸로 압니다. 아무리 우리의 수군이 강대하다 해도, 뭍에서 싸울 병력이 고작 일만이어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어렵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류조지 다카노부 본인을 압송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진짜로 노리는 바를 밝혔다.
“류조지 가문은 고작해야 히젠 일국을 차지한 세력에 불과하네. 그가 어느 편에 서느냐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그렇다면 뜻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흑백을 가려낼 때가 되지 않았나. 사네히토는 명의 개입을 회심의 한 수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러기 위해 류조지를 끌어들인 결과는 혹독하게 돌아갈 걸세.”
류조지 다카노부는 음흉하고도 책략에 능한 자였고, 이런 성향의 인간은 결코 혼자서 망하지 않을 터였다. 틀림없이 자신을 끌어들인 사네히토와 그 친위 세력에 도움을 청할 것이고, 그걸로 적과 아군은 가려지게 되어 있었다.
“등 뒤의 비수는 몰라도, 전면전이라면 결코 저들은 이기지 못할 것이네.”
“과연……. 쿠보의 뜻이 그러시다면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류조지 다카노부의 토벌이 결정되었다.
* * *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배 위에서 큐슈 북부에 펼쳐진 산을 바라보며, 수군 지휘관 쿄타로에게 말을 걸었다.
“무라나카 성이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그럴 겁니다. 지도상으로는 채 10리(일본의 리를 기준으로 약 40km 정도.)가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습니다만…….”
쿄타로는 자신이 아는 대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히사히데는 히젠 출신이라는 수부 하나를 불러다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저거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라.”
“네, 군봉행 나으리. 나으리께서 가리키신 산은 텐잔(天山 천산)이라 합니다요. 이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고, 큐슈 북부 산지의 조종이라 불립지요.”
“꽤 험하단 말이로군. 혹시 군대가 움직일 만한 샛길을 알고 있나?”
“저기 가라쓰(唐津 당진)성 옆으로 강이 흐르는데, 그 계곡을 타고 넘어가는 길이 있긴 합니다요.”
히사히데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쿄타로가 그 의도를 짐작하고는, 만류하려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 짐작은 갑니다만, 쿠보의 말씀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뿐이니 걱정하지 말게. 나도 뒷방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고, 이제 슬슬 은퇴를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야. 살 날이 많지 않은 게 무척이나 안타까운데, 쓸데없이 도박을 해서 뭐하겠나.”
이번 싸움은 공을 세우기가 상당히 까다로울 터였다.
병력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공이 될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휘하 장수들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군문에 몸을 담은 무사가 고만고만한 일로 만족할 리 없었다.
결국 젊은 편에 속하는 이들은 눈치를 보며, 류조지 토벌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직접 나섰던 것이다.
“진심으로 곰을 잡으려 했으면, 정말 가라쓰에 상륙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는데 말이야.”
그가 말하는 곰이란 ‘히젠의 곰’이라는 별명을 지닌 류조지 다카노부였다. 아무리 일국의 효웅으로 이름 높은 다이묘일지라도, 천하인을 섬겼던 자의 눈에는 그저 그런 세력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손실이 막대할 겁니다.”
“기습은 어디에서라도 받을 수 있는 거고, 전장에 나간 무사는 언제 창칼을 맞아도 이상한 게 아닌 걸세.”
이런 식으로 잡담이라도 나눠야 할 정도로,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주제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라 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화제를 앞으로의 뱃길로 돌렸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겠나?”
“곧 있으면 이키 섬에 도달할 겁니다. 거기에서 이틀간 병사들을 쉬게 했다가 출항하면, 꼬박 사나흘은 걸리겠군요.”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
대개는 배가 육상 수단보다 빠른 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같은 거리일 때나 들어맞는 이야기였고, 지금 고니시 수군의 이동 경로는 그렇지 않았다.
쿄타로는 히사히데에게 그런 사정을 설명했다.
“큐슈 서쪽의 해안가는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류조지 가문의 본거지인 무라나카 성은 시마바라 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말입니다.”
“아주 빙 돌아가는 길이로군. 류조지 다카노부가 대비할 시간이 넉넉하겠어.”
비록 선전포고를 날리지도 않고, 소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군대의 움직임은 언제나 눈에 띄는 법. 류조지 다카노부가 명성대로 눈치가 있는 자라면,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쿠보는 그걸 바란다고 했지만, 히사히데의 마음 한구석에는 역시 아쉬움이 살짝 드리워져 있었다.
* * *
“쿠보의 깃발을 내건 대규모 선단이 히라도 섬을 지났다고?”
“그렇습니다.”
첩보를 들은 류조지 다카노부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에치젠으로 파천한 덴노는 그에게 암중의 비수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다카노부 본인이 보기에는 이미 발각된 모양새였다.
여기로 오고 있다는 고니시 수군은 족히 수십 척의 대선단. 아무리 자신의 본거지인 무라나카 성이 단단하다 해도, 함락은 시간문제라 여겼다.
생각을 정리한 다카노부는 자신의 동생을 불러다가 수비를 지시했다.
“나가노부.”
“예, 형님.”
“아무래도 내가 폐하와 손잡은 것을, 고니시 유키나가가 알아차린 것 같다. 나는 우리 일족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니, 네가 무라나카와 미즈가에, 두 성을 맡아주어야겠다.”
한마디로 미끼가 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류조지 나가노부는 순순히 그 지시를 따랐다.
“죽음으로 성을 지키겠습니다.”
결의에 찬 각오였지만, 다카노부는 그런 동생을 만류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항복해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의 천하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양쪽에 줄을 대다가 발각된 것이지만.”
만약에 자신이 패사하더라도, 류조지 가문은 이어야 한다. 다카노부는 자신의 동생에게 그런 의미를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히젠 내에서 고니시군에게 홀로 항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류조지 당주의 동생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형에게 앞으로의 일을 물어보았다.
근방에서 고니시 측에 종속되지 않은 세력은 오토모와 시마즈, 이 두 가문이었다. 비록 큐슈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지만, 그나마 고니시 편에 들지 않을 자들이기도 했다.
다카노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목적지를 밝혔다.
“오토모에는 이미 노부치카가 가 있으니, 나는 시마즈로 가야겠다.”
약 10년도 더 전에, 류조지는 오토모와 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패배한 류조지는 다카노부 삼형제의 둘째를 인질로 내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계란은 최대한 나눠 놓아야 피해가 덜한 법. 오토모가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것은, 어쨌거나 보호할 의무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보를 정한 류조지 다카노부는 운젠 산에 몸을 숨기러 떠났다.
* * *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히젠에 상륙했을 무렵, 고요제이 덴노 역시 류조지 토벌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조적을 토벌할 기회로다.”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폐하.”
“싯켄(執權 집정,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받은 벼슬). 그게 무슨 말인가.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지금 군을 일으킴이 당연한 것이거늘…….”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신경이 서쪽에 쏠려 있을 동안, 군을 일으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니시군 중에서 히젠으로 간 군대는 고작해야 일만에 불과하다고 하옵니다. 아직 기나이에는 수많은 병력이 남아 있사오니, 조금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아직 천하의 뭇 다이묘 중에는 행동을 결정하지 않은 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 오다 노부나가조차도, 당장의 전쟁에는 참가할 수 없다고 알려 왔을 정도였다.
명목은 지난 전쟁으로 인해 영지가 초토화되었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가만히 형세를 관망하는 태도에 지나지 않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함부로 전쟁을 벌이지 않은 까닭과 마찬가지로,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보기에도 지금은 섣불리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요제이 덴노에게 지금의 상황은, 그저 양면전선을 강요할 기회로 보이기만 했다. 게다가 류조지 다카노부는 자신의 곤경을 무릅쓰고 충성을 맹세한 충신이었다. 덴노는 그런 충신이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라! 여기 다카노부가 올린 표문이 있노라. 짐을 바라보는 충신을 저버린다면, 어찌 짐이 일본의 덴노라 할 수 있으랴!”
물론 그 표문은 진짜였다. 거기에는 도움을 청하는 류조지 다카노부의 청원이 구구절절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단지 문서가 진짜라고 해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책략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법. 요시카게가 보기에는, 다카노부가 도움을 청하게 만든 것 자체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책략에 가까워 보였다.
“폐하, 류조지 다카노부는 단지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옵니다. 그 하나쯤은 없어도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오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당치도 않은 소리!”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필사적으로 고요제이 덴노를 만류했지만, 그럴수록 덴노의 반발은 거세졌다.
“경이 이토록 비겁한 자인 줄은 몰랐노라.”
“폐, 폐하!”
“경이 군대를 내지 않겠다면, 짐은 교토로 돌아가 천하의 의기지사들을 불러모으겠노라.”
비록 그 스스로가 교토에서조차 겁먹고 에치젠으로 달아났던 것이었지만, 지금의 고요제이는 사뭇 기세등등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비록 덴노가 아사쿠라 가문의 위세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정작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덴노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의 조조라면,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원소에 가까운 자였다. 그는 권위에 의존적인 성향이 강했고, 사람의 배경에 주목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덴노는 명색이 일본 제일의 배경을 지닌 존재. 요시카게는 자신의 힘에도 불구하고, 덴노를 거스른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폐하의 뜻이 그토록 굳건하시니, 소신 또한 군대를 내도록 하겠나이다.”
당사자들이 원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천하는 다시 소용돌이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