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두 개의 태양(3)
험한 바다 건너 미개한 오랑캐들이나 사는 섬. 그게 명나라 사람들이 왜국을 인식하는 전부였다.
당연히 천조의 고관대작들은 눈치나 슬슬 볼 뿐, 누구도 사신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벌어진 일은 조선의 잘못이니, 문책사를 보내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여론도 상당했다.
그 와중에 남태부경 석성의 식객이었던 심유경은, 이를 기회로 여겨 사행을 자처하고 나섰다.
절강 출신인 그는 왜인을 자주 접한 편이었고, 나름대로 왜국의 사정에도 밝았다. 그러니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도맡아 해내면, 출세길이 환히 열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권신의 일개 식객을 그대로 사신으로 임명할 수는 없었기에, 심유경은 먼저 유격 벼슬을 받았다. 그리고 일을 잘 성사시킬 경우, 더 높은 벼슬을 노릴 수도 있을 터였다.
기세 좋게 바다를 건너온 심유경은 자신의 위세를 실감했다.
왜국의 대명(大名)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대국을 능멸한 모든 원인이 따로 있다며, 왜국 상왕의 집정이라는 소서행장을 징치해 주기를 청원해 왔다.
원래 조정에서 내린 국서는 조선과의 교역을 이전의 법도로 되돌리라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내용에 몇 자 더 덧붙이는 일은 심유경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소서행장 앞에서 깨끗하게 증발하고 말았다.
“가짜 사신이로군.”
그게 국서를 받아든 소서행장의 첫 마디였다. 심유경은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서 순간 움찔했지만, 어쨌든 대명제국 황제폐하의 명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 위세를 믿고 일단 뻗대 보기로 했다.
“내, 내가 가짜 사신이라고? 일개 왜국의 수괴 따위가 못하는 말이 없구나!”
* * *
“여태껏 명에서 사람이 온 적도 없거니와, 대국이라 하면서 문을 걸어 닫은 세월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신이 왔다는 것이 무슨 말이겠는가?”
심유경이 사기꾼으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은 명나라 조정에서 보낸 사신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단지 그 심유경이라는 자가 중간에 무슨 농간을 쳐놨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지금은 가짜 사신으로 만들어 버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국의 해적들조차 단속하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수로 바다 건너의 일을 이토록 소상하게 안단 말이더냐!”
“그, 그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왔는지, 이런 일을 겪으리라곤 생각도 못한 눈치였다. 그리고 그렇게 당혹스러워 할수록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나는 기세를 몰아서, 심유경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저자를 포박하고 사신단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져라!”
곧바로 주변에 시립하고 있던 경비대 병사들이 심유경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심유경의 품속에서 환약이 담긴 통 두 개를 찾아냈다.
“역시 독약을 품고 온 자객이었군.”
“자, 잠깐! 오해요! 집정, 나는 천조에서 보낸 사신이 맞소이다!”
자객이라는 말에 상대가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그렇다면 이 독약은 무엇인가?”
“나는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몸이오. 몸이 허해지는 걸 막기 위해 챙겨 둔 보약일 뿐이외다.”
“보약이라……?”
야담 하나가 생각났다. 심유경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독살했다는 이야기. 그때도 보약이라고 하면서 건네주고, 자신도 먹으면서 의심을 지웠다고 했던가. 그 약이 즉효성은 아니었고, 심유경 본인은 은밀한 곳에서 해독약을 먹었다고도 했다.
그게 정말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그 심유경이 지금 사신으로 온데다가, 그 품에서 두 종류의 환약이 나왔다면 의심해볼 가치는 있었다.
“보약이라면 몸에 좋은 것이겠군?”
“그, 그렇소.”
“내가 먹어도 몸에 좋을 것이고?”
“물론이오.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시오.”
어차피 지효성이니 당장은 넘길 수 있다는 것일까. 혹은 애초에 나를 독살할 의도로 가져온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바다를 건너오느라 허해진 몸을 보하는 약일까.
그 어떤 것이든 내게는 간단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먹는 것인가?”
“두 약을 같이 먹으면 되오. 따로 먹으면 오히려 몸에 해롭소.”
죽기는 싫다는 것인지, 심유경은 둘을 같이 먹는 거라고 했다.
“그런가. 사실이라면 이 자리에서 입증하도록.”
내 말을 들은 명나라의 사신은 자신이 가져온 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자, 보시오. 독약이 아니란 걸 입증했으니, 이제 나를 사신으로 대우하시오.”
“아직 입증했다고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 독약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중에는 뒤늦게 발현되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다 먹어라. 다 먹고도 무탈하면, 독살의 의도가 없다는 것은 인정해 주겠다.”
심유경은 질색했지만, 그가 거부할 도리는 없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환약을 하나하나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통을 절반쯤 비웠을 때, 비로소 반응이 나타났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표정에는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독이 아니냐. 순순히 죄를 인정한다면, 치료를 받게 해 주겠다.”
“아, 아니오. 나는 대명제국 황제 폐하께서 보낸 사신이고, 집정을 독살하려 하지 않았…….”
거기까지 말한 심유경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기에, 물을 충분히 먹이고 치료를 받게 했다.
* * *
“공방은 이제 어찌할 셈인가? 만약 저자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면…….”
“물론 진짜이긴 할 겁니다.”
“이 보게, 공방!”
사태의 전말을 전해들은 하성군은 기겁했다. 나는 그런 조선의 종친을 안심시켰다.
“가짜든 진짜든 상관은 없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죽어 줬다면, 오히려 속은 편했겠습니다만…….”
물론 사신이 정말로 죽어 버렸다면, 명나라 조정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터. 하지만 그만큼 온전히 시선은 일본을 향할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 하성군은 숫제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공방…….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제가 신풍(神風)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지는 않습니다만, 명나라 수군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허어…….”
하성군은 허세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지만, 승산은 충분했다. 적어도 대양에서만큼은 갤리온을 갖춘 내 휘하의 수군이 명나라 수군보다 우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유경이 죽어 버렸을 때의 이야기. 지금은 그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책략의 방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었다.
“쿠보, 명나라 사신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알았다. 금방 가도록 하지.”
나는 하성군을 달래 놓고, 다시 심유경이 누워 있는 방을 찾아갔다.
“대체 어찌된 일이오?”
심유경은 내게 그렇게 질문했다. 자신이 쓰러진 까닭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끝까지 나를 속이려 하는가? 그대가 쓰러진 까닭은 독과 해독약을 동시에 많이 먹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내가 심유경에게 유도한 것은 급성 간 부전이었다.
독과 해독약을 같이 먹을 경우, 몸에 해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의 효과를 지닌 두 약이 서로 중화 작용을 일으키는 동안, 간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얼굴이 누렇게 뜬 것은 간장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지. 그게 보약이 아닌, 독약과 해독약이라는 증거다. 이래도 사실을 고하지 않으려는가?”
추궁을 들은 심유경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어찌 왜국의 집정을 속이겠소. 내가 명에서 온 사신은 맞으나, 일이 뜻 같지 않으면 집정을 독살하려 했소이다.”
“나를 죽여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기에?”
“대내씨(大內, 오우치)가 말하길, 공방이 죽어야 명과 왜국의 우호를 되살릴 수 있다 하였소.”
“혹시 그 옆에는 대우씨(大友 오토모)의 추장이 같이 있지 않았나?”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심유경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그걸 어찌…….”
“유격이 속았군. 대내씨는 대우씨가 삼킨 지 오래되었다. 그보다도, 앞으로의 일을 말하고 싶은데.”
“무엇을 말이오?”
“그 칙서는 진짜인가? 나는 명나라 조정을 진지하게 상대하고자 하나, 이렇게 조작된 국서가 오간다면 그럴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제 심유경은 순순히 자신이 국서를 조작했음을 실토했다. 이대로 잡혀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모양새였다.
“실은 내가 공을 세우기 위해, 글자를 가감한 것이오. 집정은 그걸 어찌 아셨소이까?”
“아까도 말했지만, 명나라 조정은 이쪽의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 북원은 몰라도, 일본은 바다 건너 오랑캐의 일에 불과하지 않던가.”
“허어……. 조정의 일을 훤히 꿰고 있다니, 이 섬나라에도 인물은 있는 모양이구려.”
심유경이 그렇게 한탄하는 동안, 나는 본론을 꺼냈다.
“내가 유격이 공을 세울 수 있게 해주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겠나?”
“어떻게 도와준단 말이오?”
“내가 유격이 황제폐하의 눈에 들도록 해줄 수는 있지.”
만력제는 아직 정무를 열심히 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도 조만간 끝날 터였다. 그 예정을 조금 당겨볼 참이었다.
“얼마 전에 명의 내각대학사가 죽지 않았나?”
“그, 그걸 어찌…….”
“대국의 일은 원래 소국에 잘 알려지는 법이 아닌가. 어쨌든 대명제국의 황제폐하께서는 자기 스승의 진면목을 잘 모르시는 것 같더군.”
내 제안을 들은 심유경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 * *
심유경이 돌아간 뒤, 명나라에서는 평지풍파가 일어났다고 했다.
“장거정의 일족이 멸문당하고, 척계광이라는 장수가 삭탈관직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군. 이걸로 대륙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명나라 조정에 몇 가지 사탕을 물려주었다.
물론 그 사탕이라고 해 봐야, 특별히 뭘 쥐어주진 않았다. 덴노를 자칭하던 것을, 왜왕으로 끌어내린 정도에 불과했다. 어차피 변화는 없었고, 명나라 조정은 자신들의 위신이 바로 섰다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심유경을 시켜, 죽은 장거정을 고발하게 했다. 그냥 내버려뒀어도 1년 내로 일어났을 일이었지만, 그에게 선물을 한아름 안겨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심유경 본인도 벼슬이 오르게 되었으니, 당분간 이쪽의 사정이 들키지는 않을 터였다. 만약 그가 입을 연다면, 자신의 출셋길이 막히게 될 테니 말이다.
역시 가장 큰 성과는 척계광을 끌어내린 일이었을까. 그는 왜구를 물리치면서 공을 세운 장수였다. 소위 ‘절강병법’이라고 하는 전술로 명나라 남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했고, 그 능력만큼은 경시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원정군을 이끌고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될 터였다.
거기에 황제가 정무를 내팽개쳤으니, 한동안 이쪽이나 조선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 게 뻔했다.
이제는 일본 내부의 일에 온전히 신경을 쏟을 차례였다.
“류조지 다카노부는 사네히토의 반역을 도와, 명을 끌어들이려 했다. 당장 잡아서 스모토로 압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