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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19화 (119/225)

119화 대항해시대의 한 조각(6)

내정을 살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 동향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가장 크게 신경 쓰는 물목은 당연히 쌀과 콩, 감자를 비롯한 각종 식량이었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석탄과 장작 따위의 연료였다.

그리고 요즘의 아와지 사람들은 그 이상의 영역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 사이에 네 배로 올랐습니다.”

시정봉행인 베드로가 물가 보고 중에 설탕을 끼워 넣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싶었다.

물론 설탕도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명개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는 했지만, 그게 지금의 아와지국에서 중요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정을 확인할수록, 다행히 늦지 않게 잡아냈다는 것만 되새길 수 있었다.

카스테라로 시작해서 온갖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남만과자, 그리고 거기에 자극을 받아 나타나고 있는 각종 사탕들. 마츠리 이후에 생겨난 변화 중 하나였다.

나 역시 군것질거리를 집무실에 자주 놔두는 편이긴 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 단맛은 고가 사치품이 아닌 일상이 된 상태였다.

“문명이 따로 없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말게.”

분명 사람들은 설탕이 없어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쌀을 이용해서 대체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통치에 불만을 품을 만한 일이었다.

“수요는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공급이 줄어버렸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추방된 자들 중 상당수가 설탕 무역에도 관여하고 있었다보니…….”

사탕수수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였다. 인도에 비하면 가까운 편이었지만, 역시 거기까지 손을 뻗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 마닐라 총독과 맺은 협약이 있었다.

“이번 참에 아예 무역회사를 하나 차리는 편이 낫겠군.”

한 척뿐인 마닐라 갤리온을 뺄 수는 없었지만, 곧 있으면 스모토에서 건조 중인 레이스 빌트 갤리온이 나올 터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 해적들이 준동하고 있어서, 군선을 늘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시정봉행의 역할은 내정이었지만, 내정과 외정이 언제나 딱 떨어지는 영역은 아니었다. 베드로 역시 군무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아는 눈치였다.

염초 수송선 습격에 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면서, 해적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주로 왜구로 활동하던 무리에 명나라 출신과 남만인이 섞이는 추세였다.

“당분간은 기본만 유지해야겠지. 마침 루손에서 대흑선을 보내오지 않았나. 다른 상인들은 가급적이면 수군 직속 선단에 붙어다니라 하게.”

대흑선은 마닐라 갤리온에 붙은 별명이었다.

먼 훗날의 증기선만을 흑선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이 시기의 남만선도 흑선이라고 했다.

보통 일본에까지 들어오는 남만선은 카락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덩치가 큰 마닐라 갤리온은 그냥 흑선이 아닌 대흑선이라는 별명을 얻은 상태였다.

“그리고 투자를 좀 받아보면 사정도 나아지겠지. 거상들은 물론이고, 남만인들에게도 무역회사 설립에 관해 이야기해보게.”

“남만인들에게까지 말씀이십니까?”

“물론이네. 돈은 많이 쥐고 있을수록 좋은 법이잖나.”

결국 배도 돈이 들어가는 물건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빠르게 많이 뽑아낼 수 있을 터였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염초 습격에 가담했던 것도 결국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규모를 키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해관계로 엮어버리는 거야말로 적을 친구로 만드는 길이 아니던가.

*       *       *

무역회사에 관한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이익금을 나눈다고?”

“친구들끼리도 동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야 믿을만한 사람끼리니까 가능한 일이지. 대체 쿠보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겐가!”

일본 출신의 거상들은 아직 합자회사라는 개념을 생소하게 여기고 있었다.

상인에게 돈이 곧 목숨줄이라는 건 국적을 초월한 진리였다. 하지만 특히 다이묘를 비롯해 무사들의 존재감이 강한 일본에서는, 함부로 내돌릴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쿠보께서 보증해주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겠네만…….”

투자를 결심한 사람들도 나타났지만, 대부분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만에서 온 사람들은 역시 포르투갈에서 온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각자 반응이 달랐다.

“혹시 투자를 빌미로 돈을 내놓게 한 다음, 몽땅 내쫓으려는 게 아닐까.”

포르투갈 상인들은 대부분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은 이번 투자 제안을 기회로 잡기도 했다.

“쿠보께 잘 좀 말씀드려주게. 이 문제가 빨리 마무리될수록 그분께도 좋은 일이 아니겠나.”

포르투갈 상관장은 죄를 짓고 추방된 상인들의 자산과 배상금 책임을 모두 떠안았다.

이미 현금화할 만한 것들은 몽땅 팔아치웠지만, 모든 것들이 전부 환금성이 높은 건 아니었다. 일본에 쌓아둔 재고는 유럽에서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고, 현지에서는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배상의 책임자는 자신의 재산을 탈탈 털어서 막대한 투자금을 만들었고, 현물도 투자금의 일부로 받아달라고 제안을 넣었다.

시정봉행이 받은 지시는 최대한 돈을 크게 만들라는 것이었고, 이런 제안은 약간의 검토를 거쳐서 받아들여졌다.

그 외 유럽 각지에서 온 상인들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여윳돈을 투자했다. 이미 보험을 통해 금융의 개념을 익힌 그들은, 이번이 나름대로 상당한 기회가 되리라 여겼다.

그리고 이 세 부류의 사람들 외에 특별한 투자자가 하나 나타났다.

*       *       *

“조선에서 투자를 희망해왔다고?”

“그렇습니다, 쿠보.”

쓰시마 도주의 가신, 유즈야 야스히로는 조선 측의 입장을 가져왔다.

“조선에는 따로 이야기하진 않았는데……. 그쪽은 해금령 문제가 남아 있지 않나.”

아직 명나라는 건재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가능성과 그들의 국력을 소모할 가능성은 반비례 관계였다.

조선과 명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천조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왜관에서 쿠보의 이야기를 하다가 무역회사에 관한 것까지 나왔는데, 조선 왕실에서 저희 도주의 명의로 넣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나는 쓰시마 도주에게도 투자를 제안하기는 했다. 그는 좋은 협력자였고, 이건 명백히 돈이 될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쓰시마를 통해서 조선 왕실에까지 이야기가 흘러간 모양새였다.

어쨌든 지금 내가 들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지금 조선 왕실은 차명으로 투자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런가. 나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조선과 도주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아두게.”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       *       *

그렇게 자금이 모이고, 마침내 어엿한 투자회사 하나가 출범했다.

명칭은 ‘동양 무역회사’. 여러 후보가 있긴 했지만, 제 1의 주주이자 총책임자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최대한 간소한 명칭을 붙였다.

줄여서 ‘동무’라는, 다소 당분 넘치는 이름이 된 합자회사는 루손을 첫 목적지로 잡았다.

“기후는 어떠한가?”

“쾌청합니다.”

“신경 써서 다시 한 번 살펴보게.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야!”

베드로는 첫 출항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에 나섰다. 원래 시정봉행을 맡았던 그는, 자기 주군의 명을 받아 소속을 옮겨야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세례명을 그대로 가져온 베드로라는 이름이 서양에 익숙하리라는 것부터,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관료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는 것까지.

그도 이제 관직 생활은 지루하다 여기던 차였기에, 순순히 이적을 받아들였다.

전부터 쓰던 관선이 열 척에,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건조 기술을 받아들여 새로 만든 갤리온이 열 척, 그리고 루손의 포르투갈 총독부에서 뇌물로 보낸 마닐라 갤리온이 호위를 맡았다.

이렇게 다국적 외형으로 구성된 선단은 스모토를 떠나, 아무 장애도 겪지 않고 열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체 일본에 온 상인들은 얼마나 도둑놈이었다는 말인가.”

“항해는 원래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 값까지 받은 겁니다.”

교역소에서 가격을 확인한 베드로는 한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와 동행했던 남만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며, 상품 거래에 나섰다.

상품의 가치란 이동거리에 따라서도 정해지는 법. 동양 무역회사의 상선단은 본국에서 거래하던 물건을 비싸게 팔고, 싸게 사들였다.

돌아오는 길 역시 순탄하기 그지없었다. 왜구나 명나라 해적 중 일부가 선단을 기웃거렸지만, 그 규모에 놀라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동양 무역회사의 상선단은 출발한지 꼬박 한 달하고도 보름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분노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       *       *

번영의 그림자 속에서도 불만을 품는 사람은 언제나 나오게 마련이었고, 그 감정은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오오기마치 덴노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했지만, 그의 아들인 사네히토(誠仁 성인)는 덴노가 정치 권력에서 멀어진 현실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쿠보가 마지막으로 입조한 게 언제였나?”

궁인은 사네히토의 질문에 얼른 답하지 못했다. 천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는, 그래도 덴노의 권위가 나름대로 존중받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사카이의 신궁은 세간에서 잊혀져갔다.

- 아마테라스의 제사를 받들고 대가 끊기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덴노는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타일렀다. 하지만 사네히토는 조정이 각국의 슈고를 호령하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런 그에게 신궁의 신관들 중 몇몇이 속닥거렸다.

“다이묘들을 입조케 하시지요. 감히 쿠보도 덴노의 명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고, 그렇게 천하의 영웅들을 불러 모으면 길이 열릴 겁니다.”

“말은 쉽지. 하지만 폐하의 뜻이 저리 완강하신데, 무슨 수로 입조를 명한단 말인가.”

사네히토는 자신의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에게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덴노가 되시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게 무슨……. 설마!”

“소인이 조정에서 분위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덴노의 양위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결과가 이어지고 이어진 끝에 지금의 신세가 된 것이지만, 지금의 사네히토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공교롭게도 오오기마치 덴노는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다. 슬슬 저물어가는 오십대 중반의 나이. 몸살의 빈도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몸이었다.

그런 덴노에게 신관들이 조심스럽게 양위를 거론했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졌기 때문인지, 오오기마치 덴노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애초에 권력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관들은 길일을 골라 올리라.”

그렇게 양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사네히토는 고요제이(後陽成 후양성)라는 이름으로 덴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즉위한 첫 날, 새 덴노는 다이묘들의 입조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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