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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16화 (116/225)

116화 대항해시대의 한 조각(3)

히젠(肥前 비전, 큐슈 북서부.)국으로부터 두 통의 서찰이 왔다. 류조지 다카노부, 그리고 그 밑에 묻어 놓았던 감시역. 이 둘은 모두 한 가지 내용을 증언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명나라에서 염초를 들여올 생각이 없다는 것.

구하기 어려운 만큼, 단 한 번의 상행으로 가져오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을 만났다는 소식도 없었고, 자기네 배에 염초를 실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없었다.

이치로는 이 서찰들을 전달한 뒤,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지켜보라고 할까요?”

“아니, 되었다. 정말로 가져올 생각이 있었다면, 이번에 가면서 그쪽 상인들에게 언질이라도 했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건, 결국 둘 중 하나다.”

염초를 아예 거래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이미 따로 준비를 해 놓았거나. 그리고 저들이 배후에 있다고 전제를 한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륙에는 내 눈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굳이 현지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조선과의 교역은 내가 직접 관리하고 있었지만, 명나라 쪽은 류조지 가문에 맡겨 놓은 상태. 그리고 류조지 다카노부는 여전히 협조적이었다.

정말로 구할 방법이 없어서 손을 놔 버린 거라면, 나 역시도 어찌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의심한 대로였다면, 과연 염초를 어디에 집적해 놓았을까가 관건일 터였다.

류큐는 우리 쪽 사람들도 자주 다녀가는 데다가, 지금 스즈키 시게히데가 가 있는 상태니 제외. 대만, 지금 포모사라 불리는 섬도 가능성은 있지만, 명나라 해적이 들끓는 곳일 테니 역시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 내 집무실의 해로도에서도 그려지지 않은 저 남쪽, 루손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다.

“혹시 루손에다가 사람을 심어 놓을 수 있겠나?”

내 질문을 받은 이치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립니다. 오와리에서처럼 적극적으로 방해가 들어오진 않겠지만, 타향에서는 외모 때문에라도 눈에 띄는지라…….”

“적어도 당장 유의미한 정보를 알아낼 순 없겠군.”

“원래 외지인이란 사건 사고가 생겼을 때, 최우선으로 의심받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특수부대의 가치는 일당백이 아니라, 원하는 걸 골라 먹는 능력에 있다던가. 지금의 닌자들이 그런 위치였다.

전투력이야 일반인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역시 기문둔갑이나 축지, 비행술 따위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닌자의 미덕이었고, 루손은 그 미덕이 발휘되기 어려운 장소라고 했다.

게다가 상인으로 위장해서 보낸다고 해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걸 좋아할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물증이라도 최대한 많이 잡아내야겠군.”

어차피 교역을 허락하느냐 마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고, 적당한 방증만으로도 밀어붙이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렇잖아도 요즘 포르투갈 외에도 다른 유럽 국가 출신들이 눈에 띄고 있는 요즘, 그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일단 일본 내에 들어온 남만인들을 모두 예의주시하도록.”

*       *       *

루손에 숨어 있던 헨드릭 판 슈트라센은 기다리던 소문을 접했다. 류큐에 왔던 고니시 수군이 마침내 돌아갔다는 것. 그리고 다시 염초 섬에 선단이 드나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기다리던 소식을 들은 네덜란드인은 그대로 자신의 배를 출격시켰다. 류큐는 이제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그는 곧바로 염초 섬으로 향하는 항로 위에서 염초 수송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전처럼 세 척의 일본식 선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탄을 잘 달궈 놔라. 다시 말하지만, 포로는 없다. 우리는 저것들을 가라앉히는 것만으로도 돈을 번다. 알겠냐?”

“네, 선장님!”

슈트라센의 후원자들은 격침 전과만으로 돈을 지급했다. 그렇기에 해적으로 전업한 이 선장은 굳이 나포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것이 생존자를 나오지 않은 이유였다.

그리고 후세에 ‘핫 샷’이라 전해진 포격법. 그것이 염초를 가득 실은 수송선을 손쉽게 박살 낸 수단이었다.

염초와 목탄, 유황을 섞으면 이 시대에 흔히 쓰이는 흑색 화약이 만들어진다. 목탄은 연료 역할을 하고, 유황은 발화점을 낮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화, 그러니까 일차적인 폭발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염초의 역할. 다시 말해서, 가득 실린 염초에 불이 붙으면 대폭발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아주 뜨겁게 달군 쇳덩이는 목재와 접촉하는 순간 화재를 일으킨다. 그리고 선창에 가득 실린 염초에 불이 붙으면 뻥! 마지막으로 산산조각 난 수송선에서 뛰어내린 자들에게 접근해서, 살려 주는 척하다가 처치한다. 그것이 이 헨드릭 판 슈트라센의 습격법이었다.

이번에도 이 네덜란드인은 그렇게 염초 수송선을 박살 내려 했다.

“목표 중 둘이 뱃머리를 돌립니다!”

“항상 똑같군. 상관없다. 하던 대로 가자!”

만약 헨드릭 판 슈트라센이 나포를 우선시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행동일 터였다. 하지만 미끼 역할도 시간을 끌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일격에 가라앉을 미끼는 미끼가 아니라 폭죽에 불과했다.

“선원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숨어서 습격할 생각이겠지. 왜구들 대부분이 칼잡이들 아니었나. 아, 저기 노는 움직이는군. 유령선은 아니야.”

부선장이 이상함을 경고했지만, 선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접근은 허용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어정쩡한 하나짜리 돛대가 달린 일본식 선박보다는 그가 탄 카락이 훨씬 민첩했다.

미끼 역을 자처한 선박은 그대로 들이받을 듯이 접근해 왔다. 하지만 슈트라센의 카락은 뱃머리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준비해 놓은 포격을 한 보따리 안겨 주었다.

“쏴라!”

벌겋게 달아오른 쇠공이 염초 수송선의 측면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로가 멀어진 다음 순간, 대폭발이 염초 수송선을 집어삼켰다.

슈트라센의 배마저 흔들릴 정도의 대폭발. 하지만 그간 자주 있었던 일이었고, 습격자들은 익숙한 듯이 도망치는 배들을 향해 배를 몰아갔다.

도망치던 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체념했는지,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최후의 저항을 준비한 듯, 최대한의 속도로 카락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       *       *

대폭발이 가라앉은 뒤, 수면 위로 사람 머리 여럿이 올라왔다.

“휴우…….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했군. 죽은 사람은 말도 못 할 거고, 다친 사람?”

“모두 무사합니다!”

방금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미끼 역에 승선해 있었던 단조와 닌자들, 그리고 수부들은 모두 바다에 뛰어들었다.

역시 예상대로, 저들은 생존자를 남길 생각 자체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닌자나 수부나 구분할 것 없이, 여기 있는 자들은 가장 자맥질에 능숙한 자들이었다. 물 위에서 일어난 폭발은 수중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고, 잠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덕에 다들 멀쩡히 살아남았다.

“그럼 이제 죽을힘을 다해, 저 해적선에 오른다.”

나머지 두 척의 수송선에는 염초가 실려 있지 않으니,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게 아군이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 몰래 적선에 올라타는 것. 그것이 스즈키 시게히데와 단조가 준비한 계획이었다.

- 남만인의 배는 상당히 빠르더군. 아마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지.

- 그렇다면 한 척을 미끼로 써서 보란 듯이 가라앉히고, 나머지 두 척으로 녀석들의 시선을 잡아 놔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해적들을 때려잡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제 잠입조의 손에 달려 있었다.

*       *       *

나머지 두 척의 수송선에서는 유폭이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미끼 역을 맡았던 최초의 수송선에 비하면, 제법 날렵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헨드릭이 가까이에서 보니, 선체의 상당 부분이 물에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흠, 제법 머리를 굴렸군. 하지만 어쨌든 여기가 녀석들의 무덤이 될 거다.”

만약 다른 증원이 있다면 몰라도, 지금 눈앞의 두 척은 얼마든지 때려 부술 수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유폭시킬 수 없다는 건, 헨드릭에게는 아쉽기 그지없는 일. 하지만 사실 염초 수송선 습격이 지나치게 쉬웠을 뿐, 원래 해적질이란 이런 편이었다.

다만 이렇게 술수를 부린다는 것은, 결국 그를 경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 척의 관선, 그리고 한 척의 카락. 전자는 상대를 가라앉히거나 하나라도 도주하면 승리였고, 후자는 무조건 상대를 모조리 격침시켜야만 한다.

언뜻 보면 관선 쪽이 유리해 보이는 조건이었지만, 대양에서는 카락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 슈트라센의 유일한 골칫거리였다.

“정말 오래 해 먹진 못하겠군. 이놈들만 끝장내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겠어.”

카락의 선장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선미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원 중 하나가 뛰어와서 급보를 알렸다.

“서, 선장! 일본인이 배에 올랐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부순 배에, 끄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원의 숨이 먼저 끊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고꾸라진 그의 등에 끈이 달린 마름모 형태의 송곳이 박혀 있었다.

선원을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단조였다. 놀란 선장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헨드릭 판 슈트라센 맞나?”

하지만 그 이름의 주인은 답하는 대신, 자신의 칼을 빼 들었다. 질문한 쪽도 별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항복을 권유했다. 물론 이번에도 일본에서 사용하는 언어였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진 않겠지. 항복해라. 네 행동에 따라선 무사 방면도 가능하다.”

헨드릭은 단조의 기세에 습관적으로 칼을 뽑았지만, 살길이 있다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이가류의 닌자는 경계하는 한편, 입을 열어 설득을 시작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접촉했다지? 그리고 포르투갈 상인들하고도 꽤 친한 모양이더군.”

거기까지 들었을 때, 네덜란드인 선장도 자신의 살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상대는 그의 해적질을 처벌하고 싶겠지만, 그 이상으로 배후를 캐려고 했다.

“뭘 원하는지는 알겠군.”

하지만 이왕이면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쪽이 나을 터. 헨드릭은 순순히 칼을 버리는 대신, 먼저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만약 여건이 된다면, 침입자들 역시 오와리의 영주에게 팔아넘기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주변을 둘러싼 현실은 그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계속해서 선수 쪽으로 밀려나는 상황. 게다가 배를 움직이기도 어려워지면서, 상대측 선박들도 접현을 걸기 시작했다.

어딜 봐도 퇴로가 없음을 확인한 네덜란드인은, 순순히 자신의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좋아. 항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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