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2차 노부나가 포위망(4)
“사에몬노카미(종4위하 좌위문독, 아사쿠라 요시카게.)께서 포로로 잡혀?”
아사쿠라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오다군에게 궤멸당했고, 그들을 이끌었던 요시카게는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몇몇은 가까스로 몸을 빼내, 아케치 미츠히데를 찾아갔다.
“일만이 어떻게 오천을 상대로 발을 묶지도 못하고 몰살당한단 말인가?”
미츠히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오다 노부나가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만 해도 충분할 터. 그 사실은 이미 요시카게와 의논할 때, 참가자 모두가 충분히 인지한 바였다.
“저희 주군께서 계책을 내셨는데, 적이 그걸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허어…….”
아사쿠라 가문을 섬기던 무사는 미츠히데에게 세키가하라의 일을 모조리 고했다.
“사에몬노카미의 공명심이 일을 그르쳤군!”
차라리 우직하게 일만으로 밀어붙일 듯한 태세를 취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오히려 곤란에 처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계획은 진작에 불타 버렸고, 이제 적은 이세국의 전선에 신경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세키가하라를 지키고 있는 적은 얼마나 되나?”
“일천 정도인 줄로 압니다.”
“일천이라…….”
패잔병의 말을 들은 미츠히데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우군의 영지라고는 해도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보다는 힘든 법.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엿새가 걸렸지만, 돌아가는 길은 사흘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았다.
“이미 일이 틀어졌으니, 차라리 도박을 걸어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아케치 미츠히데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로 했다.
* * *
오다 노부나가는 이나베 강을 지키던 자신의 차남 노부카츠의 군대와 합류했다.
“고생들 많았다.”
모든 장수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그 치하의 말을 받았지만, 그중 한 사람만은 조급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버님, 이제 적을 몰아내는 것입니까?”
“너는 내 아들이나, 지금은 전장에 나온 장수다. 무슨 말버릇이냐?”
노부나가는 자신의 아들이 보이는 경망한 태도를 윽박질렀다. 부친의 질책을 받은 노부카츠는 마지못해 사죄의 말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간레이.”
노부나가 본인도 동생 노부유키와 경쟁하여 자리를 공고히 굳힌 몸. 자신의 차남이 무슨 생각일지는 대강 알아차리고 있었다.
억눌러 놓지 않으면, 자신의 사후에 오다 가문은 찢어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노부나가는 일부러 노부카츠의 언행을 짓뭉갰다.
그렇게 집안일을 정리한 다음, 곧바로 군막을 나가 전장을 살폈다.
“롯카쿠군이 이만오천이라 했나?”
그가 물어본 쪽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가신의 가신인 도토야 조세이였다. 노부나가의 질문을 받은 조세이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롯카쿠 요시하루가 가산을 털어서 나선 모양입니다.”
롯카쿠 가문의 병력은 잘해야 일만을 조금 상회할 터. 거기에 낭인과 용병들을 고용해서 최대한으로 숫자를 늘린 상태였다.
“이세국을 차지할 꿍꿍이인가보군.”
“아마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이세국은 신주 예순여덟 나라 중에서도 대국에 속하는 대영지. 롯카쿠 가문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판돈을 걸었던 것이다.
“까짓거, 내어줘도 상관없겠지.”
“가, 간레이!”
자신의 영지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에 노부카츠가 반발하고 나섰지만, 노부나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지키기 힘든 땅이다. 차라리 내어주고 적의 내분을 꾀하는 편이 나을 터. 불만이 있다면 네 손으로 승리를 가져와라.”
자기 땅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밀려난 입장이라, 노부카츠는 이번에도 묵살당하고 말았다.
“적진에 사자를 보내라. 지금 차지한 땅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와 손을 끊으라고 말이다.”
* * *
롯카쿠 가문의 당주, 요시하루는 자신이 받은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목적은 사실상 달성한 상황. 게다가 북쪽을 지키고 있어야 할 노부나가가 직접 나왔다는 것은, 아케치-아사쿠라 연합군이 패배했다는 이야기일 터였다.
“이 제안은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듯 하오.”
요시하루의 부친, 요시카타는 출가하여 가주자리를 넘겨주고 소테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아들의 옆에 붙어서 조언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들이 가주인 만큼, 함부로 하대하지는 않았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케치 미츠히데가 원수를 갚고 나면, 다음은 누구겠소이까?”
지금은 오다 노부나가가 워낙 강성한 상태라 잠시 손을 잡은 상태지만, 그가 꺾인 이후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리 가문이겠지요.”
요시아키가 죽은 직후, 롯카쿠 가문은 누구보다 빠르게 반노부나가 연합에서 이탈한 바 있었다. 그러니 미츠히데에게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역시 치가 떨리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기괴할 정도로 잘 싸우며, 행운이 따르는 자입니다. 이 기회에 어떻게든 꺾어놓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요시하루는 오다 노부나가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지금 아케치 미츠히데와 손을 잡은 이유였다.
쇼군 요시아키를 옹립하기 전에도 이미 그 뱀 같은 사이토 도산의 인정을 받은 자였으며, 동국의 최대 세력이었던 이마가와를 꺾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최소한 동쪽에서만큼은 그를 넘어설 세력이 전무했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패퇴한 적은 있으나, 그것이 일생 겪은 패배의 전부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사쿠라 가문과 호조 가문의 협공까지 막아내지 않았던가.
요시하루가 보기에는, 여기서 고개를 숙이면 오히려 나중에 흡수당하는 미래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부자간의 생각이 엇갈린 며칠 동안, 오다군의 진문 앞에 포로 하나가 끌려나왔다.
얼마 전, 가토 기요마사가 포로로 잡아서 보내온 아사쿠라 요시카게였다.
“아사쿠라 공도 이미 포로로 잡혔소이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같이 영화를 누리는 게 어떻겠소이까?”
당당한 명가의 후예가 갖추었던 풍모는 간 데 없고, 여기저기가 그슬린 초라한 모습이었다.
만약 롯카쿠 부자가 요시카게와 안면이 없었다면, 계략을 의심했을 정도로 몰골이 처참했다.
이미 노부나가 본인이 직접 온 것은 물론이고, 일국의 다이묘가 포로로 잡힐 정도. 롯카쿠가 손잡은 이들이 패배했다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당주, 저걸 보시오. 이미 형세는 판가름났소이다.”
“음…….”
아무리 롯카쿠 요시하루가 노부나가를 경계한들, 대세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기울어 있었다. 결국 요시하루 역시 마음을 고쳐먹고 노부나가의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 * *
오다 노부나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롯카쿠 부자를 맞이했다.
아케치군이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을 터였다. 직접 거느린 병력도 고작해야 일만에 불과하니, 대세를 뒤집는 건 불가능한 일. 이것으로 노부나가는 또 한 차례의 위기를 넘겼다.
“약조 드린 대로, 이세국은 롯카쿠 가문의 영지로 넘겨드리겠소이다.”
“롯카쿠 가문은 오다 가문을 향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아케치 미츠히데와 손을 끊겠소이다.”
그렇게 롯카쿠 요시하루와 오다 노부나가가 손을 맞잡았다. 아사쿠라 요시카게 역시 적당한 몸값과 적대행위 중단을 약속하는 것으로 풀려날 예정이었다.
언뜻 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거느린 다섯 개국 중에서 두 개나 빼앗긴 모양새였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오다군의 진영에서 열렸다.
“원래 우리끼리 싸울 일이 아니었소. 다 저 간악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간질 때문이 아니겠소이까?”
노부나가는 많은 것을 내주었지만, 동시에 이 전쟁의 승자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다른 다이묘들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며 적당히 맞춰 주고 있었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돌고 있는데, 전령이 군막 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크, 큰일입니다! 세키가하라가 돌파당했고, 아케치군이 기요스 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
화기애애하던 연회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이미 협정을 체결했으니, 롯카쿠군이 도로 적대를 하는 건 곤란할 터였지만, 분명히 롯카쿠 요시하루에게는 어부지리나 마찬가지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시하루는 치솟아오르는 입꼬리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한껏 관대한 어조로 노부나가에게 말했다.
“간레이께서는 걱정하실 거 없소. 협정은 지킬 것이니.”
“고, 고맙소이다.”
그러나 연회를 계속할 수는 없었고, 노부나가는 신속히 군대를 회군시켜야 했다.
* * *
아케치군에게는 다른 다이묘의 군대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노부나가에 대한 복수심. 아케치 미츠히데 본인은 쇼군을 잃었으며, 같은 시기에 미요시 요시츠구를 섬기던 무사들 역시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의 일생일대의 목표란, 노부나가의 숨통을 끊는 것. 그 한 가지로 그들은 지치는 기색조차 없이, 강행군에 이어 세키가하라를 돌파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오미국 북부에서 세키가하라에 이르기까지 정탐을 깔아 놓았으나, 그 신속함에 변변한 대비조차 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전령을 보내고, 일천의 병력을 기요스 성에 들이는 것이 한계였다.
마침내 오와리에 들어선 아케치 미츠히데는 망설임 없이 밀고 들어갔다. 최초의 목표는 오가키(大垣城) 성. 요새라기보다는 오와리 서부의 치소에 가까웠던 이 작은 성은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곧 노부나가가 돌아올 것이다! 그 전에 모조리 불태워 버려라!”
아케치 미츠히데는 이제 노부나가를 잡는 건 포기한 상태였다. 대신 그의 영지를 초토화시키고,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뜨리기로 마음먹었다.
노부나가의 본거지인 기요스 성까지 함락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으나,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대신 아케치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노부나가의 영지를 유린해 나갔다.
오가키와 마찬가지로 곡창 노릇을 하던 작은 성들은 모조리 불타버렸고, 민가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아케치군의 목적은 오직 하나, 노부나가의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거의 달성했을 무렵, 노부나가의 군대가 기소 강을 건너왔다.
“군대를 집결시켜라.”
아마 다른 다이묘의 군대였다면, 약탈에 정신이 팔려 각개격파당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아케치군은 진정한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제야 노부나가의 목을 가져갈 수 있겠군요.”
아케치 미츠히데를 따르던 무장 하나가 감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작 미츠히데는 고개를 저으며, 퇴각을 지시했다.
“아니, 우리는 이제 돌아간다.”
“말도 안 됩니다! 눈앞에 오다 노부나가가 있는데…….”
“오늘은 그자의 영지를 파괴했으니, 내일은 목을 취할 수 있지 않겠나.”
입을 연 무사를 비롯해 수많은 미요시 요시츠구의 옛 가신들이 피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미츠히데의 뜻에 따라 오가키 성에서 서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기세 좋게 시작된 전쟁은 뚜렷한 승자를 남기지 못한 채, 이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