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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12화 (112/225)

112화 2차 노부나가 포위망(3)

고작해야 1리도 되지 못하는 좁은 분지. 그러나 아케치-아사쿠라 연합군은 그조차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의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고니시 유키나가가 화포까지 보내왔지만, 결국 지루한 대치가 한계였다.

“조금만 더 앞에 놓지.”

“여기도 아슬아슬합니다. 말씀하신 곳에 화포를 배치하면, 역으로 얻어맞을 겁니다.”

비슷한 성능의 화기라 해도, 놓인 위치에 따라서 사거리는 달라지는 법. 세키가하라 분지는 좁았지만, 서쪽 언덕에서 동쪽 언덕까지 파탄이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대열을 넓혀라! 포탄도 흩어져 있으면 별거 아니다!”

오다군의 목적은 최대한의 적을 살상해 진격을 막는 것. 그리고 화약과 포탄은 소모품인 만큼,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는 게 원칙이었다. 화포의 명중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고, 최대한의 효과를 얻으려면 큼직한 표적을 노려야 했다.

흩어져 있는 병사들은 그다지 가치가 높은 표적이 아니었고, 오다군의 화포도 그들을 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다군의 화포만이 아케치군의 문제는 아니었다.

“붉은 기마대가 온다!”

“적비대가 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승마무사 부대.

붉은 전포를 차려입은 그들은 개개인의 무예도 뛰어난 편이었고, 널찍하게 흩어진 아케치-아사쿠라 연합군의 병사들은 개개인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람의 발이 날래다 해도, 말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 승마와 하마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지만, 그 신속함은 그 모든 걸 벌충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언덕 위에서 전장의 상황을 지켜보았고, 결국 진격을 중지시켰다.

“차라리 여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군막으로 돌아온 아사쿠라 요시카게 역시 뚫은 자신이 없다는 투였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보기에, 아무리 전황이 나빠도 그건 하책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진격한단 말입니까.”

북쪽의 히다 산맥을 넘는 건, 논의할 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남쪽으로 내려가 롯카쿠 가문의 군대와 합류하는 게 유일한 방법일 터. 하지만 그럴 경우, 오다 노부나가 역시 남쪽의 전선에 전념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쪽의 군대는 멀고 험한 산길을 돌아가느라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 느슨한 연합의 특성상 전황이 지지부진할수록 와해될 수도 있었다. 하물며 이미 이세국의 대부분을 차지한 롯카쿠 요시하루가 딴 생각을 품을 가능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터였다.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여기서 힘을 꺾이면 오히려 위험할 걸세.”

비록 무능하다는 평을 받는 요시카게였지만, 썩어도 도미라는 것인지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군의 유리함이 뭔가. 숫자가 많다는 것 아니겠나?”

“그렇지요.”

“그러니 여기에는 반을 남겨서 오다 노부나가를 묶어놓고, 나머지 반을 이세국으로 보내자는 것일세.”

요시카게의 제안을 들은 미츠히데는 턱을 쓰다듬었다.

약간의 손실은 있었지만, 이쪽은 여전히 이만을 상회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이끄는 병력은 많아야 오천, 역으로 적의 발을 묶어놓고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기에 남을지 정해야겠군요.”

미츠히데가 가는 것도, 요시카게가 가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었다. 결국 제비뽑기로 정한 끝에,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남기로 했다.

*       *       *

아케치-아사쿠라 연합군이 공세를 중단하자, 오다 노부나가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군대란 숨만 쉬어도 전비를 소모하는 존재. 전장에 나온 적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적이 어리석은 자거나 혹은 뒤로 다른 술수를 부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적진에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했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직접 이부키산 능선에 올랐다.

“깃발은 무성한데, 사람이 좀 적은 것 같지 않나?”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노부나가와 동행한 가토 기요마사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적의 규모는 이만이라 했는데, 지금 적진에는 그 반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병력이 보일 뿐이었다.

“이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적정은 모두 확인하셨고, 여기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괜찮다. 그보다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노부나가는 지금 보이는 것으로 적의 규모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뼈다귀로 명성과 세력을 얻은 무능한 자였지만, 아케치 미츠히데는 만만치 않은 무사. 역으로 노부나가를 꾀기 위해 책략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윽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갈 무렵, 군영 곳곳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노부나가는 마침내 발걸음을 돌렸다.

본진으로 돌아온 뒤, 그는 다시 가신의 가신을 불러다가 질문을 던졌다.

“적의 수효가 얼마나 되어 보이더냐?”

“약 천에서 이천쯤 되어보였습니다.”

기요마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그 답을 들은 노부나가는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본 바를 이야기했다.

“분명 겉으로 보이는 적병의 숫자는 그쯤 되었지. 하지만 실제로는 일만 정도가 있었다.”

노부나가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고, 기요마사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소장, 아직 미숙하여, 간레이께서 무엇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밥 짓는 연기가 단서다. 그걸로 네가 직접 추측해보아라.”

기요마사는 그저 밥때가 되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뿐, 연기가 어땠는지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터였다.

“혹시 연기의 숫자로 적의 머릿수를 가늠하셨는지…….”

“바로 보았다. 적진에서 나는 연기가 이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고, 이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었지.”

“그렇다면…….”

“적은 약 이만 정도였으니, 절반 정도가 어디론가 간 것이겠지.”

정확한 숫자는 파악했지만, 여전히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 만약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오미국 북부에 만족하고 주저앉았다면, 노부나가로서는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시 남쪽으로 증원을 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굳이 숫자를 적게 보이려 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공격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아니면 비슷한 숫자를 남기고 떠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유리한 지형이라 해도, 절대적인 머릿수가 부족하다면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법. 길목을 틀어막기에 오천은 충분한 숫자였지만, 이천은 다소 모자란 감이 있었다.

오천이 이만을 상대하는 것과 이천이 오천을 상대하는 것,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다.

다음 날, 오다 노부나가는 직접 적의 본진 앞으로 나가 아케치 미츠히데를 불렀다.

“이 싸움은 나와 아케치 미츠히데 사이의 일. 무고한 피를 흘릴 것 없이, 당사자끼리 승부를 겨뤄 결판을 내자!”

그러나 이미 뒤로 빠진 미츠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맞이할 리는 없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수하 장수들은 자기 주군의 실패를 보고 모두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돌아온 노부나가의 표정은 밝았다.

“아사쿠라 요사카게가 남았고, 아케치 미츠히데가 여길 떠났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십니까?”

다른 이들은 모두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줄곧 노부나가를 따라다닌 기요마사만이 질문을 던졌다.

적은 노부나가의 요구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남았는지, 아케치 미츠히데가 남았는지, 혹은 두 사람 모두 남았거나 떠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기요마사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만약 아케치 미츠히데가 있었다면, 직접 나오고도 남았겠지. 만약 그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면, 아예 나를 저격했을 수도 있다."

자신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느냐며, 노부나가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적은 아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 그게 요시카게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

대화를 청한 사람을 저격하는 것은 무사의 명예에 어긋나는 행동. 명가의 후예인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할 만한 짓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일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이나베로 간다. 기요마사, 네가 막아보도록 해라.”

“일천으로 적을 막는 건 역부족입니다.”

기요마사의 걱정은 타당했고, 차마 입을 열지 못한 다른 무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계책을 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       *       *

오다군의 움직임은 곧바로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알려졌다. 노부나가는 굳이 병력의 이동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고, 여기 남겨진 숫자는 딱 일천에 불과했다.

“됐다!”

요시카게는 그렇게 쾌재를 부르며, 병사들에게 공격을 준비시켰다. 그가 첩보를 받은지 사흘째 되는 날, 아사쿠라군은 공세에 나섰다.

“적은 고작해야 일천에 불과하다! 여길 뚫고 오와리로 간다!”

계책이 성공한 만큼 병사들의 사기도 드높았고, 적의 숫자는 보잘 것 없었다.

여기를 지나가면 곧바로 오다 노부나가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찌르게 될 터. 요시카게는 자신이 이 전쟁을 끝내고, 수훈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처음에는 오다군도 아사쿠라군을 막아세웠다. 하지만 전장에서 아사쿠라군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마침내 저항을 포기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명백히 예상 외의 사태에 좌절하는 모습이었다.

“으하하하, 노부나가의 지략도 한계에 이르렀구나.”

오다군의 본진은 이제 아사쿠라군이 차지했고, 오와리로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무리해서 추격할 필요는 없다. 오늘은 오다군이 차려준 숙영지에서 푹 쉬고, 내일 오와리로 들어간다.”

적어도 아사쿠라군에 속한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불화살이 날아들기 전까지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 화공이다!”

느닷없이 펼쳐진 지옥도 한가운데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요시카게조차도 불길과 폭발을 피하기에 급급할 뿐, 지금 벌어진 일에 대응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아사쿠라군에게, 이번에는 오다군이 달려들었다.

“요시카게는 목을 내놓아라!”

“너희들은 계책에 빠졌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일만이라는 숫자는 무의미했다. 많은 병사들이 불 속에서 타죽거나, 회생이 어려운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 불지옥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람들 역시 오다군에게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아사쿠라 요시카게 역시 불 속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끝내 오다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역시 간레이의 말씀대로 되었군.”

싸움이 끝난 전장을 둘러보며, 기요마사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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