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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04화 (104/225)

104화 시코쿠 평정(5)

소수로 다수를 친다. 그렇게 승리를 얻는 것은 무사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명예였다. 그러나 군을 움직임에 있어, 명예는 항상 낮은 순위에 있어야 하는 법. 당연히 다수로 소수를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병법의 상도에 가까웠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상황이군.”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고니시군의 움직임이라면, 사소한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고니시군은 전군을 나누어 산지의 계곡 곳곳에 배치 중이었다.

“이건 마치……. 거대한 공성전 같군요.”

합류해서 같이 보고를 받았던 도토야 조세이의 평가였다. 그리고 거기에 모토치카도 동의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성이라는 인위적인 환경과 산이라는 자연환경의 차이를 제외하면, 전쟁의 양상은 마치 전통적인 공성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직접적인 공격이 어려운 만큼, 공격 측은 길목을 통제하여 말려죽이기에 들어갔고, 방어 측은 물자가 떨어질 때까지 버티기를 하는 형국. 이 싸움의 승자는 결국 마지막까지 전장에 서 있는 쪽이 될 터였다.

그렇다면 수비 측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신경 쓰고 있던 조세이가 동맹에게 질문을 던졌다.

“군량은 얼마나 있습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족히 삼년은 버틸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모토치카는 순순히 군량 장부를 건넸다. 거기에는 삼만 명이 약 이년 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 나열되어 있었다.

“거기에 감자까지 더하면 이년이 아니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죽을 때까지도 버틸 수 있을 걸세.”

감자의 도입으로, 산지에서도 식량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점이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장부를 확인한 조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충분하겠군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란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동맹을 안심시킨 모토치카는 한 가지 계책을 꺼내놓았다.

“이제 유키나가에게 협상을 타진해 볼까 하네.”

말은 그랬지만, 정말로 그가 정말로 전쟁의 끝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호오……. 상대를 도발하시려는 겁니까?”

“도발이라니. 서로 무익한 싸움을 그치자는 거지.”

내용은 사뭇 진지했지만, 농담조인 것이 정말로 협상을 기대하는 모양새라고 보기 어려웠다.

조세이는 자신이 끌고 온 이만의 병력을 모조리 소진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협상이라는 말에 긴장했지만, 이내 안심했다.

“나쁘지는 않겠군요.”

설령 상대가 거부한다 해도, 지금 입장에서 협상 타진은 반쯤 도발이나 마찬가지. 어떤 식으로든 이 산중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반만 들어맞았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협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군대를 몰아 공세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쵸소카베와 조세이가 이끄는 군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       *       *

“공격, 공격하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숫자다! 겁먹지 말고 싸워라!”

협상이 결렬로 끝난 뒤, 쵸소카베군은 각지에 흩어진 고니시군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익숙한 지역이라고는 해도, 허공을 떠다닐 수는 없는 법. 결국 목 줄기 같은 지형을 지키는 고니시군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쵸소카베군이 훨씬 유리했다. 적어도 반격에 나선 자들의 생각은 그런 편이었다.

“보라! 고작 저만한 숫자로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쳐라!”

고니시군의 한 덩이는 많아야 수천에, 보통 수백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쵸소카베군은 일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런 양상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모토치카는 본진을 꾸린 산 정상에서, 승전보를 기대하며 아래쪽을 지켜보았다.

자세한 숫자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으리라. 조세이도 그런 판단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쵸소카베군은 마치 봇물이 터지는 듯한 기세로 산 아래를 향해 치고 내려갔다. 위에서 보기에는, 그들의 적이 가련할 지경이었다.

확실히 고니시군의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콩볶는 소리가 산을 울릴 때마다, 다가가던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공세측은 끊임없이 몰아쳤고, 봉쇄하던 쪽은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터였다.

“아주 좋군.”

그런 와중에 갑자기 낯선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펑! 휘유우우우…….

“화포를 쓰기 시작한 건가?”

“그래봐야 소용없을 텐데 말입니다.”

모토치카와 조세이는 서로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디에도 화포가 사용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허장성세를 부린 것인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모토치카가 그렇게 상대를 비웃는데, 방금 전과 비슷한 소리가 또 산을 울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병사 하나가 하늘을 가리켜 말했다.

“저, 저길 보십시오!”

허공에는 지금 하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록색 불꽃이 떠올라 있었다.

“서, 설마……!”

도토야 조세이는 저것이 무슨 역할을 할지 눈치챈 태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모토치카는 의아한 눈으로 불꽃이 사라진 자리만 보고 있었다.

“도토야 공은 저게 뭔지 아는가?”

“아마 불꽃이라는 것일 겁니다.”

아와지국의 마츠리는 이미 유명했다. 그곳에서 밤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토치카도 들은 바 있었다.

“저게 불꽃이라는 거로군. 하지만 보기만 그럴듯하지, 아군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듯한데…….”

조세이가 보기에도 전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저것은 적을 살상하는 용도가 아닐 터였다.

“조만간 적의 본대가 대응해 올 겁니다.”

저 불꽃은 후방의 본대에게 원군을 청하는 신호인 듯하다. 조세이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동맹에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퇴각신호를 보내야겠군.”

당장의 전황은 쵸소카베 측에게 유리한 모양새였다. 만약 범속한 자였다면, 반신반의하거나 아예 거부했을 터. 하지만 모토치카는 적어도 동맹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줄 알았다.

산 정상에서 각 부대에 퇴각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모든 부대가 일제히 물러났다. 그리고 약간 뒤늦게 고니시군의 본대가 전장에 가세했다.

산이란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가기는 어려운 법. 조금만 늦었더라면, 추격을 뿌리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네 덕에 대패를 면할 수 있었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보다도, 이제 섣불리 공격을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렇게 전장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       *

일전을 치른 뒤, 한 달가량이 지났다.

“목, 목이 말라…….”

“실컷 물을 마실 수 있으면…….”

개천이 말라붙었다. 사정은 조세이가 이끄는 부대나 쵸소카베군이 진치고 있는 쪽이나 매한가지였다.

물론 그들이 숨어 있는 즈루기 산은 방대했고, 물이 솟아나는 곳은 곳곳에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포위된 상황. 이용할 수 있는 수원도 한정적이었다.

“이봐, 적당히 퍼 가라고!”

“네 녀석 눈에는 이게 많은 양으로 보이나?”

아군끼리 물길을 두고 다투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쵸소카베군 소속이었다면, 그나마 모토치카가 교통정리라도 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조세이가 이끌고 온 병력은 엄연히 동맹군이었고, 그들을 통제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조세이 역시 모토치카의 군대와 갈등을 빚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총대장들의 뜻은 일치했지만, 휘하 병사들에게는 원대한 계획보다 당장의 물이 더 급했다.

“닥쳐! 난 물을 마셔야겠다고!”

물이 솟아나오는 곳이 산이라고 하지만, 작은 물줄기 여럿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는 법. 쵸소카베 측은 좁은 공간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고, 그만큼 물을 많이 필요로 했다.

반면 고니시군이 진치고 있는 쪽은 여전히 물의 양이 여유로웠다. 봉쇄된 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고스란히 고니시군의 차지였고, 당연히 쵸소카베 측에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저, 저기에 물이 있어!”

“기다려라! 저쪽은 적이 지키고 있지 않나.”

마침내 참다 못한 일부 병사들이 돌출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조세이가 이끌고 온 병사들은 낯선 지형에 함부로 나서지 않았지만, 쵸소카베군은 익숙한 만큼 만용을 부렸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물을 구해야겠다. 그런 집념으로 군영을 이탈한 자들 중 일부는 실제로 의도를 이루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시도도 처음에나 먹히는 것. 상황을 파악한 고니시군이 경계를 강화하면서, 뒤늦게 나선 자들은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쵸소카베 공.”

“알고 있네. 이대로는 말라죽을 뿐이지.”

군량은 매우 넉넉했다. 하지만 그조차 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원래 물이라는 것은 꽤 흔한 편이다. 적어도 재배를 필요로 하는 식량보다는 흔했다. 더구나 산이야말로 물이 솟아나오는 장소였기에, 쵸소카베 모토치카와 도토야 조세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패착이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 조세이는 모토치카를 찾아갔다. 그리고 모토치카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적은 어쨌든 아군을 포위하기 위해 병력을 나누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야음을 틈타서 숫자를 속이고, 한 군데를 뚫고 나가면 될 겁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시간을 끌 것도 없이, 오늘밤 바로 결행하도록 하지.”

*       *       *

쵸소카베군에서 일어났던 몇몇 일탈행위는 그 자체로 고니시군에게 신호 역할을 했다.

적이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올 경우, 소부대의 지휘관은 감당키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포위망을 크게 남과 북으로 나누어, 남쪽은 시마 사콘이 직접 맡았다.

- 조만간 적이 포위망을 뚫으려 할 것이다. 적이 보이거든 곧바로 이걸 사용하도록.

사콘은 자신이 받은 명을 되새겼다. 지금까지는 막기 어려운 적을 상대할 경우에만, 조명탄을 쏘아 올리도록 해왔다. 하지만 지금 전군에 내려진 명은 버티지 말고, 보이는 족족이 쏘아 올리라는 것이었다.

“물이야 물 쓰듯 할 수도 있지만, 돈도 물 쓰듯 하게 생겼군.”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화약을 소모하는 행위였다. 다행스럽게도 사콘이 모시는 이는 그걸 감당할 재력이 있었다.

그날 밤, 예상대로 적은 야습을 감행해왔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사콘은 곧바로 조명탄을 사용했다.

신호탄으로 쓰던 녹색 불꽃이 아니라, 은은한 노란 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적이 개미떼처럼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이쪽으로 전부 몰려온 모양이군.”

그렇게 말한 뒤, 원군을 청하는 녹색 조명탄을 마저 쏘아 올렸다. 아마 북쪽을 맡고 있을 그의 주군도 상황은 파악하고 있겠지만, 명확한 전달이야말로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법이었다.

산 너머에서도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역시 조명탄이 밤하늘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저쪽은 허장성세를 꾸미려 했나 보군.”

만약 시야가 가려진 상태라면, 요란한 소리는 충분히 속임수로 기능할 터. 하지만 지금 적의 계책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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