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시코쿠 평정(4)
임무를 모두 마친 조세이는 그대로 히데요시를 찾아갔다.
“훌륭하게 잘해 주었더군.”
이미 편지를 통해 전달된 내용이었지만, 그의 주군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칭찬을 내렸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차갑기 그지없다.
“노고가 많았으니 쉬라고 하고 싶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좀 있어.”
“말씀하십시오.”
“자네, 누군가?”
히데요시의 질문에, 조세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히데요시에게 임관한 몸. 주군의 질문에는 답을 해야 했다.
“비젠의 도토야 일족 고에몬의 아들이며…….”
“그건 이미 나와 자네,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도토야에 입적하기 전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조세이는 왜 자신이 이런 질문을 받았는지를 깨달았다.
지금 그가 속한 하시바 일족은 오다 가문의 가신. 그리고 그 오다 가문은 누군가와 줄곧 대립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옛날의 조세이와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저는 옛 사카이촌에서 약종상을 하던 고니시 가문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어조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고요함에 오히려 히데요시가 머뭇거릴 정도였다.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토야 조세이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간토 간레이께서 가장 경계하시는 적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제 동생이었습니다.”
기나이에서 고니시라는 성 자체는 흔했다. 그 사실에 기대서 변명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도토야 조세이는 정면으로 자신의 내력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그가 설명한 내용은 과거형이었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그의 과거보다는 지금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그랬군.”
“딱히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자네처럼 생각하지 않겠지. 적어도 내게는 이야기를 해 줘도 되지 않았나.”
사실 히데요시는 처음 핫토리의 말을 들었을 때, 혐의를 의심하기보다는 조세이를 믿고 싶었다. 그만큼 유능한 자도 보기 드물었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첩자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 그 사카이 쿠보의 동생이, 쉬운 길을 버리고 사카이 쿠보의 적쪽에 투신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히데요시로서는 조세이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도 피붙이가 아닌가. 사카이 쿠보쯤 되면, 자기 형제에게 괜찮은 자리 하나는 주었을 듯도 한데…….”
사카이 쿠보라는 자리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자리였다면, 형제라는 존재는 가장 큰 경쟁자인 법. 하지만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의 손으로 그 자리를 일구었다. 당연히 경쟁자라기보다는 믿을 만한 피붙이가 될 터였다.
하지만 오히려 조세이의 말은 듣는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원래 도토야 성을 쓸 사람은 제가 아니라 동생 쪽이었습니다.”
이 첫 마디는 이상하지 않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장남에게 가독을 승계시키게 마련인 법. 다른 집에서 입적을 원할 때, 보통 차남 이하가 가는 편이었다.
“입적할 때까지만 해도, 제가 가장 출세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생들을 차례차례 끌어올려 주자. 그렇게 생각했지요.”
가신의 말을 듣던 히데요시는 자신의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있을 법한 이야기. 자신도 동생인 히데나가를 부장으로 두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뜻밖이었다.
“하지만 제가 무가의 일원이 된 것에 즐거워하고 있을 때, 동생은 어느새 저 멀리 날고 있더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고니시 유키나가는 상인으로 활동하면서, 내막이야 어떻든 미요시 요시오키의 양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쇼군 요시아키를 옹립하는 일에 한 손을 거들기도 했다.
“도토야 일족에 양자로 들어간 것은 제 선택입니다.”
그 말을 들은 히데요시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 역시 자신의 지위를 올리기 위해 필사적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고개를 숙일 수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치기어린 말에 불과해 보였다. 마치 어린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듣고 있던 사람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으하하하하. 참으로 재밌는 녀석이로군.”
조세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는 병풍 뒤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 더 빨랐다.
“가, 간레이를 뵙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다 노부나가가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핫토리와 히데요시가 그들의 주군을 찾아갔을 때, 노부나가는 당장 목을 베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자신의 가신이니 기회를 한번만 달라고 했고, 역시 노부나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한참을 껄껄 웃던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법 지독한 가신을 두었구나. 하지만 지독한 사내야말로 큰일을 하는 법이지. 조세이의 처분은 네게 맡기겠다.”
이야기의 전말을 모두 확인한 노부나가는 휘적휘적 나가 버렸다.
“대, 대체 어찌된 일인지…….”
“만약 네가 첩자라면,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지.”
도토야 조세이는 우키타 가문의 가신이라는 입장으로 의탁해 왔다. 그리고 히데요시에게 배속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오다 노부나가 본인이었으니, 아무리 주군된 입장이라고 해도 히데요시가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리 정한 대로, 원군으로 보낼 이만은 네게 맡기겠다. 가서 공을 세워 와라.”
* * *
“쏴라!”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목표는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있을 핫츠이시 성. 산길을 뚫어낸 끝에 무사히 성을 화포의 사정권 내에 넣었고, 지금 그 성과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레 같은 폭발음과 함께 포탄이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나며, 성문이 부서졌다.
하지만 고니시군의 교리는 문을 부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다른 성벽을 마저 깨뜨린 다음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망함만 남겨 놓고 있었다.
병사들이 적의 수괴를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들어 갔지만, 그 안에는 늙고 힘없는 병사만이 자리를 지키는 상태였다.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어디로 갔나?”
“이미 성을 떠나신 지 오랩니다. 산중으로 들어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남아서 모닥불을 지피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시마 사콘은 혀를 찼다.
어쩐지 어느 시점부터 적의 습격이 뚝 끊겼더라니. 그조차도 계략의 일부라고 생각한 나머지, 서두름 없이 길을 뚫기만 한 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일단 쿠보께 알려야겠군.”
* * *
나쁜 소식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들어맞는 말이었다.
“사이카슈가 선단을 몰고 나와서 토사국에 상륙했다고?”
혹시 모를 외부 세력의 개입에 대비해서, 토사와 이요의 해안을 봉쇄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사이카슈가 이런 식으로 개입할 줄이야.
해전을 벌이려고도 하지 않았고, 단지 수백 척의 선단이 우르르 몰려나와 병력을 실어 날랐다고 했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경비함대로서도 중과부적일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함선의 숫자를 늘렸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핫츠이시 성 역시 마찬가지. 모토치카는 진작에 성을 비운 상태였다.
“난감하게 되었군.”
단기간에 끝낼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지루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유가 없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고 시코쿠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 일이 골치 아픈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역시 군막에 있던 혼다 마사노부가 지도 위에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이끌던 일만. 거기에 남쪽에 새로 이만 가량의 증원이 붙었다.
실황을 모두 표시한 마사노부가 잠시 생각하더니, 계책을 내놓았다.
“쿠보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오래 걸리지도 않을 듯합니다만…….”
“그게 무슨 말인가?”
적은 산중으로 숨어 버렸고, 그 숫자마저 크게 불어나 있는 상태. 군량도 넉넉하다 했으니, 버티면 버티는 대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야 할 입장이었다. 하지만 마사노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산이 아무리 크다 해도, 대군이 머무를 장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갈수기를 앞두고 있으니, 수원(水源)을 중심으로 공략해 보시지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먹지 않고도 어떻게든 보름은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사흘도 못 간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서 그 물이 나오는 자리는 극히 한정적이었다.
“마속의 고사로군.”
“바로 그겁니다.”
일본인들은 삼국지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조조를 노부나가에게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던가. 아무튼 이 시기에도 삼국지 연의는 나름 무사층에 알려진 작품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현지 주민을 불러다가 물이 흐를 만한 장소를 탐문했다. 그렇잖아도 산중에서 군대가 움직이기 좋은 몇 안 되는 지형이 바로 강가였으니, 적을 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대군이 머무를 만한 곳은 크게 세 군데였다.
남쪽으로 곧장 흐르는 나하라 강 상류, 동쪽으로 흐르는 나카 강과 카츠우라 강 유역, 그리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이야 계곡.
“적의 숫자가 많으니, 모두 제압하기는 어렵겠군.”
“여기가 적에게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험악한 요해처를 지키는 일은 아군에게 훨씬 유리합니다.”
마사노부는 목줄기 같은 장소를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험지에서는 전령이 오가기도 어렵습니다.”
시마 사콘이 이 계책에 우려를 표했다. 자고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포위망은 쉽게 허물어지는 법. 그런 점에서 사콘의 반론은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이미 아군이 대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각개격파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걸세. 산중에서 신호를 보낼 수단은 충분하니 말이야.”
“역시 그걸 쓰실 생각이시군요.”
마사노부는 그 스스로도 떠올린 방법이었는지, 곧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사콘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나는 병사들을 시켜, 수레 하나를 군막 앞으로 끌어오게 했다.
“이건……?”
“조명탄이네. 마츠리에서 선보였던 불꽃을 군용으로 바꾼 것이지.”
그렇게 말하며, 시범으로 하나를 들어서 허공에 쏘아올렸다. 아직 허공에 오래 머무르며 타오를 정도로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신호용으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사콘이 무골이라고는 해도, 역시 군학을 익힌 장수. 여기까지 보고도 모를 둔재는 아니었다.
“만약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만나면, 곧바로 쏘아올려 도움을 청할 수 있겠군요.”
“바로 그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