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삶과 죽음을 파는 자 (4)
“생기기는 영락없는 선향 그 자체군. 겉에 화약을 둘렀다고?”
“그렇습니다.”
화약은 그 자체로 비싼 물건. 하지만 노부나가가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코가류 닌자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것은 아와지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가류의 감시 때문에 드러내놓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한 정보를 입수하는 건 가능했다.
그 귀하다는 화약을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으로까지 쓸 정도였으니, 견본으로 보일 몇 개쯤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코가류 닌자가 입수한 막대를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그가 들은 사용법대로 불을 붙여보았다.
치치직하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기세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수그러들었다.
“호오, 신기한 물건이군. 어디…….”
선향불꽃 하나가 지속되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금방 끝나 버린 불꽃에 허망함을 느낀 노부나가는 또 하나의 막대에 불을 붙였다. 역시 찬란한 불꽃이 타오르다가, 이내 기세를 잃어갔다.
“이걸 고작 백성들이 장난감처럼 쓰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 화약이 모자라서 곤경을 겪고 있는 입장으로선, 그저 기가 막힌 이야기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이토록 많은 화약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천하를 발아래 놓고 호령했을 것을. 그렇게 생각한 노부나가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크든 작든 화약은 화약인 법. 먼지도 쌓이면 산이 된다 했으니, 이 선향불꽃의 화약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걸 긁어모아서 화약을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겠군.”
노부나가의 말을 들은 닌자는 난색을 표했다.
“실은, 소인들이 시도하지 않은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선향불꽃 하나에서 뽑아낼 수 있는 화약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걸 대량으로 유출하지는 않겠지. 눈에 띄기도 할 거고.”
“간토간레이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것도 겨우 입수해왔지요. 이가류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중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손실이 있었는지는, 노부나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바였다. 대부분의 무사들은 닌자를 경시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또 닌자 같은 수단이 없었다.
순조롭게 잠입시켜 놓은 고정간첩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자산인 법.
이미 그동안 유랑민을 가장해서 많은 닌자들을 들여보냈고, 또 그중 상당수가 발각되어 상당수가 죽어나갔다. 그 어려움을 뚫고 가까스로 확보한 눈과 귀를 잃어야만 했다. 이 선향불꽃을 노부나가의 앞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그래, 고니시 유키나가가 염초를 퍼오고 있다고 했나.”
이미 보고를 올린 내용이었고, 이는 단지 노부나가 본인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내뱉은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그런 혼잣말에도 답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고니시 수군에 잠입시킨 자들의 말에 의하면, 외딴 섬에서 마구 퍼내고 있다고 합니다.”
화약은 귀한 물건. 그중에서도 핵심 재료인 염초는 오직 외국에서 사들이는 것 외에 구할 길이 없었다.
혼간지에서 만들어 낸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 일족은 거의 사멸한 상태. 결국 남만인에게 구입해야만 했다.
노부나가는 흘끗 지도를 보았다.
전황은 아무리 낙관을 섞어도, 좋다는 평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 무능하기만 한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호부견자에 불과한 호조 우지마사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의 적들에게 싼 값으로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부나가 본인의 세력권이 관동 최대라고는 해도,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숫적 우위로 균형을 맞춰 가고는 있었지만, 손실은 끊임없이 누적되는 상황. 도저히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잠시 고민하던 노부나가는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못생긴 가신에게 시선을 두었다.
“히데요시.”
“넷!”
“네 계책을 써 봐야겠다.”
주군의 결단을 확인한 히데요시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부복했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그들의 주군을 보았다.
특히 시바타 카츠이에는 직접 나서서 재고를 청했다.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달리 계책이 있나?”
오다 가문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할 무렵, 히데요시는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센푸(戦夫 전부)를 아시가루로 올리자는 것이었다.
- 다른 물자는 모두 부족하지만, 유일하게 머릿수만큼은 이쪽이 앞섭니다. 그러니 센푸를 모두 아시가루로 징집해야 합니다!
센푸, 무사들의 허드렛일을 보는 일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일반 백성이 부역으로 끌려나온 경우에 속했다. 전쟁에서 싸운다는 것은 사족의 특권. 그 특권을 폭넓게 허용해서 병력을 늘리자는 주장이었다.
당연히 히데요시를 제외한 모든 가신들은 반대했다. 그렇게 무장을 허용하고 전장에 세운다면, 앞으로 다스리기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논지였다.
특히 잇코잇키를 겪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비록 노부나가 본인도 히데요시의 헌책을 꺼림칙하게 여겼지만, 이제 와서 달리 수가 없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질서가 어지럽혀진들, 세력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마음을 정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명을 내렸다.
“모병에 관한 건 전부 맡기겠다. 한 달. 그 안에 네가 장담한 이만 군세를 만들어 내도록.”
* * *
아와지의 불꽃놀이는 기나이와 관서 지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지한 백성들은 입을 모아 오니의 조화라고 수군거렸고, 다이묘들은 화약을 펑펑 써댄 고니시 유키나가의 재력에 기겁했다.
‘천명이 쿠보에게 있다.’
조금 배웠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흔히 오가는 판이었다. 사실 천명이라는 개념은 일본에서 생소한 편에 속했다.
주군이 그릇된 길로 가면,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그 뒤를 따른다. 이것이 일반적인 무사계급의 관념이었고, 이런 환경에서 천명론이 나오기는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아와지국에는 조선의 선비들이 다녀간 바 있었다. 그들은 송사를 보는 중에도, 틈틈이 제자들을 육성했다.
조선은 역성혁명으로 일어난 나라. 그 곳에서 온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배웠다면, 당연히 천명론에 입각해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본인은 처음에 웃어넘겼다. 천명이란 것이 어디 그리 쉬운 물건이던가. 하지만 한때의 웃음거리로 삼았을 뿐, 금하거나 혹은 조장하거나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 신이 감히 논할 바가 아니옵니다.
덴노의 앞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씐 덴노는, 역시 충성스러운 신하라며 더 이상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덴노와 관련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폐하, 부디 헤이안쿄(교토)로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친왕은 어찌하여 짐과 쿠보를 이간질하려는 것인가.”
사네히토 친왕. 덴노의 아들들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고, 유일한 생존자라는 이유로 후계자가 된 자였다.
권력 앞에서는 가족이고 친구고 없다지만, 애초에 권력은커녕 생존조차도 불투명했던 시기.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덴노 부자의 사이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헤이안쿄에 무엇이 남았느냐. 또 돌아가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이곳 나니와쿄야말로 짐이 있을 곳이니라.”
“하, 하오나…….”
아직 조정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친왕은 물론이고, 공가 대신 여럿이 계속해서 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덴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세상에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지만, 덴노의 고니시 유키나가에 대한 신임은 굳건하기만 했다.
* * *
“야시장을 상설로 허가해 달라는 청원이 들어왔습니다.”
“나쁘지 않겠지. 치안 말고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나?”
“제가 검토해본 바로는 딱히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추진하게.”
내가 보기에도 문제가 없었고, 실무진 역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그만인 법. 결재도장을 찍어주었다.
지난 마츠리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다소 밋밋했던 영내에 활력이 돌았고, 많은 시민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직장 단위로 뭉치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아와지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처럼 청원의 형태로, 혹은 기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그러한 경향을 장려하도록 했고, 덕분에 시정봉행의 일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부터 유랑민들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지난 마츠리 이후로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사람들은 소문을 언제나 반신반의한다. 단지 살기 좋다는 것, 그 한 가지 말만으로는 올 만한 동기가 충분치 않은 법이었다.
농민의 이탈을 막으려는 무사들의 감시를 피해야 했고, 오는 길이라고 해서 순탄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뜬소문만 듣고, 정든 고향을 버린다는 선택은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지난 마츠리에서 불꽃은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았고, 그걸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확신이 생긴 듯했다. 그 결과는 배가 넘는 인구 유입으로 입증되고 있었다.
“역시 그렇겠지. 전에 논의했던 대로 하게. 셋츠, 이즈미, 카와치 삼국에 분산해서 수용하고, 그중에서 확실한 자들만 받아들이도록.”
이미 아케치 미츠히데와는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 역시 인구가 늘어나는 걸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의외로 조선에서 다녀간 선비들과 교류가 있어서, 선정을 펼 줄 아는 자이기도 했다.
이제는 인구의 유입을 억제해야 할 시기였고, 다행히 미츠히데의 영지는 훌륭한 배후지 노릇을 할 만한 땅이었다.
대강의 보고가 끝났고 시정봉행인 베드로가 나가려는데, 이치로가 바로 들어왔다. 어차피 다음 순서는 그의 차례였기에, 베드로를 내보냈다.
“무슨 일이지?”
“아사쿠라 가문이 대패했다고 합니다. 지금 밖에 원군을 청하는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사자가 가져온 소식에 의하면, 이만가량의 아사쿠라군이 세 배가 넘는 오다군에게 포위섬멸 당했다고 했다.
“세 배? 오와리에 그만한 전력이 남아 있었나?”
이쪽에서 확인한 노부나가의 동원력은 고작해야 사만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일만은 직속이 아닌 도쿠가와의 병력. 게다가 양면전선을 감당해야 했기에, 그 병력을 온전히 아사쿠라 가문과의 싸움에 투입할 수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급한 일은 내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사쿠라 가문이 밀려나지 않게 해야 했다.
“알았다. 대책을 마련할 것이니, 사에몬노카미(종 4위하 左衛門督 좌위문독, 아사쿠라 요시카게.)께는 방어에 전념하시라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