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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95화 (95/225)

95화 삶과 죽음을 파는 자 (3)

사부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던 중, 광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높으신 분들이 공고문을 걸어놓는 장소였다.

대체로 새로운 알림이 나붙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쪽이 바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최대한 빨리 알아내야 했다.

이 인파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안쪽에서 직장 동료인 나리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보게, 나리타.”

“오, 사부로가 아닌가. 자네도 공고문을 보러 왔나?”

“그렇다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서야……. 안에 뭐라고 적혀 있었나?”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굳이 고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자세한 내용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볼 수 있는 것. 마침 나리타가 보고 온 듯하니, 사부로는 그에게 들을 생각이었다.

“보름 뒤에 마츠리를 연다고 하더군.”

“마츠리를?”

사부로는 자신의 옛 고향을 떠올렸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곡식을 수확한 다음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또 제사를 지냈다.

그때 자신은 어려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별 의미는 없었다.

“별 재미는 없겠구만.”

농가에서의 마츠리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절박함이 담긴 의례. 옛날에는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세상이 끝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마을의 토지신이라는 것은 일개 미신에 불과했다.

대처로 나와 보니,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고향 마을에 흉년이 들어도, 기나이 전역의 작황이 좋지 않아도, 큐슈에서 풍년이 들면 미곡가격은 그대로 유지되곤 했다.

이렇게 살기 좋은데, 굳이 마츠리 따위에 신경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사부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고문을 직접 보고 온 나리타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글쎄?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던데.”

“에이, 여기에 토지신 따위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토지신? 마츠리와 토지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리타는 예전부터 사카이에서 살아온 토박이라고 했다. 지금은 쿠보의 명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와지국으로 옮겨왔지만, 풍습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츠리와 토지신의 상관관계를 모르는 눈치였다.

사부로는 자신이 아는 대로, 마츠리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설명을 들은 이는 자신의 배꼽을 움켜잡고 깔깔 웃기만 했다.

“풉, 푸하하핫! 이보게, 사부로. 물론 사카이에서도 전부터 마츠리는 있었지만 말이야. 꼭 토지신 만이 마츠리의 상징인 건 아니라네.”

나리타가 말하길, 사카이의 마츠리는 칠복신에게 장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라고 했다.

“자네도 휴일을 받은 적이 있지 않던가. 그게 사카이의 마츠리였다네.”

장사의 주체가 사환일 리는 없는 법. 도시에서는 당연히 거상들, 그리고 쿠보 나으리가 주도적으로 마츠리를 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동안에 사업장을 돌릴 수는 없으니, 당연히 피고용자에게는 휴일을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는 건, 하나하나가 다 지출로 이어지는 법. 도시 밖으로 나가 봐야 위험하기만 하고, 도박은 보기보다 크게 유행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휴일로 여기고 있었다.

사부로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는 동안, 나리타는 그가 읽은 내용을 풀어놓았다.

“이번에는 쿠보께서 극단도 불러오고, 온갖 볼거리를 제공해 주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싶네.”

*       *       *

“송사리를 건져 가시오! 단 1문전이면 열 번의 기회를 드립니다!”

“막대 폭죽이오! 여기 이쁘게 타오르는 폭죽이 있소! 아, 여기.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쓰거라.”

“맛있는 링고아메 사 가세요! 거기 아가씨께 어울리는 모모아메도 있어요!”

약속된 날짜가 되고, 스모토시를 비롯해 아와지국 곳곳에 장터가 크게 열렸다.

노점상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상품을 외쳐 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부로는 가족들을 데리고 스모토의 야시장으로 나왔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그였지만, 이런 호화로운 풍경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니,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한 곳을 가리켰다.

“아빠, 모모아메 먹고 싶어요.”

“모모아메?”

생긴 것은 복숭아인데, 뭔가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모양에 막대가 꽂힌 것이었다.

“꼬마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구만.”

“이건 뭡니까?”

“막대사탕이라는 거요.”

상인에게 물어보니, 과일에 설탕을 입혀서 먹기 좋게 손잡이를 달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전부 나오셨구려. 원래는 하나가 반 문짜린데, 특별히 네 개 한 문으로 드리겠소.”

한 달 노임이 50문이니, 고작 간식거리에 한 문을 쓰기에는 제법 큰 지출이었다. 하지만 이런 날 정도라면, 한번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축제를 앞두고 상여금도 받았겠다, 사부로는 가족들에게 통 큰 가장의 모습을 보여 주기로 했다.

딸에게는 복숭아로 된 사탕을, 아들에게도 자두로 된 사탕을 쥐어주고, 자신과 아내는 각각 사과 사탕과 살구 사탕을 손에 들었다.

송사리를 종이 뜰채로 건지기도 하고,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광장에 앉아서 연극을 구경했다.

“정말 재미있군.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옛날 고향 마을의 마츠리는 어땠던가. 일단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날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기억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옆 마을 출신이라는 아내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부로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그러는데, 술시쯤에 하늘에서 신기한 걸 볼 수 있데요!”

해가 진 지도 조금 지났으니, 곧 있으면 술시였다. 지금 돌아가나, 그걸 보고 가나 매한가지. 그렇게 생각한 사부로는 아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얼마 후, 광장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조용히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오늘 마츠리의 마지막 순서! 불꽃놀이가 시작될 것이외다! 쿠보께서 시민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니,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보시오!”

불꽃놀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부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들이 말하길, 하늘에서 신기한 걸 볼 수 있다는 게 그것일까. 하지만 무슨 수로 사람이 하늘에 불을 놓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사부로는 반신반의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말 그 신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벼운 폭음이 울려 퍼지고, 하늘 위로 불꽃이 곧게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올라간 불꽃이 펑 하고 터지면서, 형형색색의 빛깔로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와!”

“세상에…….”

이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리 약간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순수하게 감탄했고, 뜻밖의 조화를 본 자들은 겁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을 보고 있으면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휘이이이이……. 퍼퍼펑!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같다가도, 이어서 터지는 폭음은 청량함마저 느껴질 듯했다.

같은 소리가 반복해서 사방에 울려 퍼졌고, 그럴 때마다 다른 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비추었다.

초록색이며, 주황색, 비취색까지. 고작해야 화로의 장작불이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이 화려한 색의 향연은 그야말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터였다.

마냥 하늘을 바라보던 사부로는, 문득 자신의 아이들을 보았다. 역시 넋을 놓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군. 이런 것도 다 볼 수 있고……. 아마 갈수록 더 좋아지겠지.’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다음에는, 더 살기 좋아질 것 같다. 그렇게 기대감을 품은 사부로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       *

“저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은 멀리서도 아주 잘 보였다. 특별히 맑은 날을 골라서 쏘아올린 것인 만큼, 아와지국에서 쏘아올린 불꽃은 바다 건너에다가도 자신의 모습을 과시했다.

“귀, 귀신이다!”

“오오, 아마테라스시여…….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아와지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오니가 춤춘다며,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남들보다 약간 더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불꽃이 올라온 곳이 아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에 온 상인들에게 걱정의 말을 건넸다.

“저기는 아와지 쪽이 아니오? 설마…….”

“그리 걱정하실 일은 아니외다. 저건 쿠보께서 하늘을 움직이신 거요.”

하지만 그 걱정을 받은 상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했지만.

상인들은 철저히 고니시 유키나가의 뜻에 따라 적당히 정보를 풀어놓았다.

미신이 팽배한 시대. 천둥조차도 어떤 조짐으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은 점차 부풀려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잘해 줬어.”

“나도 좋은 구경했으니 뭐……. 근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불꽃색이 바뀌는 거?”

이번에도 스즈키 시게히데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것에 푹 빠진 상태였다.

어쨌거나 화약에 관해서 내가 상담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는 이 친구였고, 불꽃색에 관한 지식을 슬쩍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다.

“맞아. 살다살다 저렇게 청명한 초록색의 불꽃은 난생 처음 봤으니 말이야.”

사실 불꽃놀이에 색을 넣는 방법은 간단하다. 타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불꽃색도 달라지니, 그에 맞게만 넣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알루미늄이니, 티타늄이니 하는 것들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재료는 그럭저럭 구하기가 쉬웠다.

구리를 넣으면 청록색이 나오고, 소금을 넣으면 노란색이 나왔다. 아연은 비취색, 칼슘은 주황색 등등.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넣어서 쏘아 올리면, 그에 따라서 알맞은 색깔의 불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귀물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냥, 단야소에서 여러 금속에 불똥이 튀는 걸 보니까, 조금씩 다르게 나오더라. 그거에 착안해 봤지. 그동안 쓸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됐네.”

납은 철포에 쓸 탄의 재료였고, 구리와 아연은 금속활자에 들어갔다. 이것들을 토대로, 몇 가지를 실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하니, 시게히데도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효용 자체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인 듯했다.

“보기에는 참 이뻤는데 말이야. 정작 쓸모가 없지 않아? 비싸기도 하고.”

“그럴 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들였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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