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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94화 (94/225)

94화 삶과 죽음을 파는 자 (2)

“정말 이 배갑이 총탄을 막아 준다는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호조 우지마사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상인이 가져온 갑옷을 훑어보았다.

철포라는 것은 일개 아녀자조차도 항우를 상대하게 해 주는 물건. 아무리 사나운 무사라 할지라도 단 한 발에 꼼짝도 못하는 무기였다. 그런데 그 철포를 무력화시킨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분명 전장의 판도를 뒤집을 이야기였다.

어지간한 갑옷보다 비싼 값이었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상인의 소개가 사실이라면.

하지만 방어력이 뛰어난 물건은 그만큼 단단하기 마련인 법. 겉은 확실히 천이었다. 그렇다면 속에 무언가 비법이 있지는 않은가. 그런 의심을 하며, 우지마사는 단도를 꺼냈다.

한 겹을 찢고, 두 겹을 찢고, 그렇게 계속해서 안쪽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재료는 나오지 않았다.

“네, 이놈! 어디 사기를 치려는 것이더냐! 고작해야 목면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감히 철포를 막는다고 속여?”

호조 가문의 다이묘는 당장이라도 상인의 목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덴노와 사카이 쿠보의 통행증을 지닌 자. 아무리 자기 부친만 못하다는 평을 받는 우지마사라고 해도, 마지막 평정심을 유지할 역량쯤은 있었다.

“쿠보가 보냈느냐? 이런 물건으로 등쳐먹는 것이 쿠보의 뜻이냐는 말이다!”

비록 노부나가와 유키나가가 서로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는 하나, 예전에는 요시아키의 양 날개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난세에는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영원한 아군도 없는 법. 어느새 뒤로 손을 잡고 계략을 꾸미고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우지마사는 추방령으로 일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소인이 직접 이걸 걸치고 시연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놈은 진정 쿠보의 첩자로구나! 목숨을 바쳐 가면서 명분을 만들겠다는 것이냐?”

“그게 아닙니다. 어떻게 말씀드려도 의심하신다면, 적어도 제품의 성능을 확인할 기회는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우지마사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제법 오래 거래한 상인이기도 했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상황. 한번쯤 구경이나 해도 좋을 듯했다.

“좋다. 그렇다면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

그리고 우지마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첫 발은 요행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연이어서 이어지는 사격에도, 허수아비는 멀쩡했다.

“흠흠, 미안하게 됐군. 그래, 얼마라고 했나?”

“한 벌당 이백 문씩 주시면 됩니다.”

“이백 문? 생각보다 꽤 비싸군. 좀 깎아 줄 수 없겠나?”

“저희라고 해서 남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쿠보께서 도와드리라고 하셔서 온 것뿐이지요.”

자신이 했던 행동도 있고, 상인이 쿠보의 이름을 들먹였다. 우지마사는 차마 낮은 가격을 요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르는 대로 내어주기도 곤란했다.

철포 하나가 일백이십 문. 그리고 쌀 한 석이 보통 일천 문에 거래된다. 요시카게가 한 해 거둬들이는 세입은 채 일백만 석이 되지 못한다. 당장 노부나가와 전쟁 중이라, 비축해 둔 군량미마저 빠듯해지는 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적절한 핑곗거리가 우지마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보게, 목면 한 탄이 이 문 정도인 걸로 아는데, 이 갑옷에 들어가면 얼마나 들어가겠나. 이백 문은 과하군.”

하지만 상인의 말은 마지막 희망마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마는……. 목면 가격도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요즘은 한 탄에 열한 문 정도 하지요.”

우지마사는 그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내려 했다. 한 탄에 이 문이던 가격이 어떻게 순식간에 다섯 배도 넘게 올라간단 말인가. 그렇게 따졌지만, 상인의 말에는 빈틈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야 그랬겠지만 말입니다. 요즘 면제배갑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목면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지요. 제가 오기 전에 열한 문이었지만, 아마 돌아가면 또 올라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 값이 더 뛴다고?”

“수요가 늘었는데, 값이 그대로일리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다이묘들께서도 면제배갑을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만 날이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다음번에 상인이 온다면, 과연 면제배갑의 값은 얼마가 될 것이며, 또 그 재료인 목면의 값은 얼마가 될 것인가.

속으로 계산을 마친 우지마사는 머리를 싸맸다.

상인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심이라도 쓴다는 것처럼 넌지시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겠습니다마는…….”

“뭔가?”

지금 우지마사는 몸이 달아 있었다.

“영지를 담보로 맡기시면, 그만큼의 돈을 빌려드릴 수 있지요.”

“담보라…….”

“그렇게만 하신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드릴 수도 있지요. 저도 큰맘 먹고 빌려드리는 겁니다.”

전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다이묘 중에서도, 담보로 영지나 세입에 관한 권리를 내고 돈을 빌린 자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의 승패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던가.

만에 하나라도 그의 적이 먼저 면제배갑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래서 아군의 손실이 막대하게 된다면? 영지마저 빼앗기고 만다면? 그때 가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좋네. 자네 말대로 하지. 당장 그 갑옷, 일만 벌을 내놓도록 하게.”

*       *       *

“쿠보의 말씀대로 하기야 했습니다마는……. 정말 자기 영지를 내어놓겠습니까? 또 패배해서 멸족이라도 당한다면…….”

“그 피해는 내가 이렇게 보전해 주고 있지 않은가.”

“소인이야 쿠보의 덕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쿠보께 일말이라도 누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상인을 안심시킨 뒤, 담보문서를 받고 돌려보냈다. 문서함에는 다른 다이묘들이 같은 내용으로 작성한 문서가 가득했다.

상인들은 다른 다이묘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는 상인들에게서 토지 문서를 사들였다. 그것들은 나중에 몇십 배가 넘는 이득으로 되돌아올 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호조 가문의 문서를 갈무리한 뒤, 나는 이치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부나가의 처지는 어떻다고 하던가?”

“교착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사쿠라 가문과 호조 가문이 양면에서 맹공을 퍼붓고 있지만, 한 치 물러섬도 없이 버틴다고 하더군요.”

“오다 가문에 도쿠가와 가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사쿠라와 호조는 이제 물자가 풍부해지지 않았나?”

면제배갑이며, 화약까지 넉넉히 공급해 주고 있는 상황. 그래도 명색이 전국 3영걸이 모두 모인 전장이라는 것인가. 이치로가 전한 관동의 정세는 팽팽했다.

“오다군이 면제배갑을 노획한 이후로, 목면의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합니다. 게다가…….”

“게다가?”

“켄뇨의 아들 중에 켄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노부나가에게 투신했다고 합니다.”

켄손 역시 염초 굽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걸 오다 노부나가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의탁 중이라고 했다.

“흠, 질적인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겠군.”

물론 양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터였다. 아무리 면제배갑이며 화약을 자체 조달한다 해도, 가격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차남을 내세워, 키타바타케 가문이 소유했던 이세국마저 병합한 상황. 그 막대한 세력으로 백중세를 이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혼다 마사노부가 입을 열었다.

“쿠보, 이 기회에서 군을 내서, 노부나가를 공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노부나가를 공격한다.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 거부의 의사를 명백히 드러냈다.

“지금 쿠보의 힘이면, 능히 천하를 일통하고도 남을 겁니다. 어째서 움직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 일통은 거짓이기 때문일세.”

“거짓이라구요?”

“이 아와지국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관료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나?”

천하일통을 논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아와지국의 내정으로 넘어가자, 마사노부는 약간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묻는 질문에는 최대한 답하려고 노력한 듯했다.

“족히 일천은 될 듯합니다.”

“비슷하네. 만약 천하를 다스리려고 한다면, 역시 관료의 숫자도 그에 비례해서 필요해지겠지.”

“장수들에게 분봉하면 되지 않……. 그렇군요. 소장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미 마츠나가 히사히데나 야규 무네요시, 시마 사콘 등의 숙장들과는 끝난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사노부는 나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고, 이런 주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단지 내 명령이 닿는 곳을 넓힌다고 하면, 그건 쉬운 일이겠지. 하지만 제대로 다스리는 일은 어려운 법일세. 그리고 능력이 있는 자는 많지 않고, 설령 있다 해도 능력과 인품이 비례하는 덕목은 아니잖나.”

“그렇습니다.”

“게다가 말이야. 너무 큰 나라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법이라네.”

마사노부는 내 말을 곱씹었다.

노자의 소국과민 같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너무 크면 작은 문제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뻥! 하고 터질 터. 그러니 나라든 뭐든 크기는 적당한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대충 이 정도에서 정리하고, 나는 다음 안건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집무실 밖에는 시정봉행인 베드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보고를 받을 시간이었다.

“마츠리 준비에 관해 결재해 주셔야 할 문서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마츠리(祭り), 그러니까 축제를 의미하는 말이다. 보통 제사와 연계된 경우가 많았고, 아와지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자나기 신궁이 주도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궁의 실권을 크게 약화시키는 과정에서, 마츠리에 관한 것을 아예 아와지국 전체의 축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요구 조건은 단 하나. 종교색을 쫙 뺀, 지역 축제로 하라는 것이었다.

불교의 각 종파와 갈등을 빚은 게 얼마 전의 일이었고, 그 외에도 일단 분쟁에 종교가 걸리면 골치가 아픈 법. 시민들을 최대한 아와지국 자체에 소속감을 갖게 만들라고 했다.

“쿠보, 쿠보의 지시대로 하려고 보니,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떤 즐길 거리를 만들어도, 종교색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시대의 축제란, 결국 종교색을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즐길 거리라는 것 역시, 해당 종교에서 권하는 덕목에 따르는 것이 대부분일 터였다.

차라리 아주 세속화가 된 상태라면 서로 특색을 내세워 조화롭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섣불리 그러긴 어려웠다.

가령 등불축제 같은 걸 하자면, 불교의 연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부키 같은 것 역시 마찬가지. 지금은 불교적 주제가 많이 담겨 있었고, 다른 것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예 서양식으로 하려고 해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경우에는 몽땅 가톨릭의 형식으로 흘러가 버릴 터였다.

“흠…….”

“이대로 하자면 할 수야 있겠지만, 시민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종교색 없는 즐길 거리라……. 하나 있긴 했다. 그것도 아와지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내일 논의하지. 다음에 올 때는 스즈키 시게히데와 같이 오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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