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삶과 죽음을 파는 자 (1)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했다고?”
“그렇습니다. 호조 가문과 손잡고 동서로 협공 중이라고 합니다.”
기나이가 평안해지니, 이번에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당장 내 쪽에 여파가 미치는 사건은 아니었기에, 약간은 느긋한 마음으로 소식을 받았다.
“아사쿠라 가문이 선공을 취했다니……. 원래 요시카게가 움직일 가능성은 낮지 않았나?”
“아자이 가문이 노부나가에게 종속된 것이 발단이겠지요.”
옆에 있던 혼다 마사노부가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지난번의 혼간지 토벌 이후, 그는 내 곁에 붙어서 참모 노릇을 하게 되었다.
실전 지휘는 아마 야규 무네요시와 비슷하겠지만, 그 계략의 매서움은 정략에 적절할 터. 아예 대국을 보는 자리에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냐는 듯이 돌아보자, 그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요시카게가 천하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한 재료는, 혼간지가 공격받는 중에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잖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원래 일향종과 아사쿠라 가문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자이 가문은 오랜 세월, 신의를 지켜온 맹우의 관계지요. 그런 아자이가 오다 가문으로 기울어 버렸습니다.”
“그 지경이면 본인이 직접 움직였든, 가신들이 나섰든, 둘 중 하나겠군.”
물론 나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다. 하지만 마사노부와 의논을 거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상시 의논이 가능한 상대가 생겼다는 건, 이런 점에서 무척이나 편리했다.
알아서 오다 노부나가가 견제를 받는 상황. 적당히 아사쿠라와 호조를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아사쿠라와 호조 측에 면제배갑을 팔도록 하지. 화약도 여유분이 있으면 적당한 값에 넘겨주고.”
“진심이십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견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사노부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눈짓을 보내자, 그가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화약은 언제 바닥을 보일지 모르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면제배갑은 아군의 보물이나 마찬가진데, 그걸 공개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주장을 받았다. 하지만 마사노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면제배갑을 받고도, 과연 어느 누가 양산할 수 있겠나?”
목면 한 장으로 탄환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새로운 갑옷의 존재를 감추는 게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목면을 겹쳐야 방호효과가 나오는데, 이걸 필요한 만큼 생산해 낼 수 있는 곳은 오직 아와지국 한 곳뿐이었다.
“아마 다른 누군가가 면제배갑을 양산하려고 해도, 목면의 대량생산은 불가능하지. 한 500벌 정도면 넘겨서, 제한적으로 쓰게만 하면 될 걸세.”
“과연……. 소장이 그 부분은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마사노부가 영지 전반의 일을 감독한 적은 없으니, 면제배갑에 관해 우려하는 모습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이제는 목면도 전략물자로 취급해야겠군.”
농담으로 가볍게 정리하려는데, 아직 마사노부는 자신의 말을 끝내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역시 화약의 판매는 재고해주십시오. 아군의 전법 자체가 막대한 소모에 기반을 두는 만큼, 비축할 수 있을 때에 최대한 비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방금 농담으로 전략물자 운운했지만, 화약이야말로 진정한 전략물자였다. 하지만 그걸 값싸게, 그것도 독점으로 들여올 수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뀔까.
내가 그런 취지로 이야기를 꺼내자, 마사노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일전에 혼간지의 염초 굽는 법도 효율이 나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물론 그랬지. 하지만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해결할 생각이네.”
사실 언제고 해결할 수는 있었다. 단지 계속 돌아가는 상황에 치이다보니, 손을 대지 못했을 뿐. 지금 여유 있을 때가 바로 기회였다.
* * *
“내가 사서 고생을 했네…….”
스즈키 시게히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
- 화약과 관련된 일이야.
그 한마디에 혹한 스즈키 시게히데는 오랜 친구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외딴 섬을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류큐 국의 동쪽이라는 이야기가 말이 쉽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친구의 설명은 참으로 간단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류큐국을 기준으로 정동방에 있는 두 개의 섬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목적지는 거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올 것이라 했다.
“새똥이 필요하면 그냥 둥지를 긁어모으면 될 일이지. 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수락해 가지고…….”
류큐국까지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기존의 항로를 이용하기도 했고, 어쨌든 인적이 있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는 선원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약 보름 쯤 걸릴 거라고 했지만, 언제나 말이 쉬운 법이 아니던가. 식수와 식량은 모두 넉넉하게 실었지만, 선원들의 불안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말로 섬이 나오는 게 맞습니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게히데는 그렇다고 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확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노로 저어서 움직이라고 했다면, 진작에 선상반란이 일어나도 할 말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막연한 일을 맡긴 친구 녀석에게도 양심은 있었는지, 지금 그가 타고 있는 배는 특별한 개조를 거친 것이었다.
거대한 기둥 두 개를 세운 뒤, 거기에 범포를 매달아 바람을 타게 만든 것. 마치 남만 상인들이 쓰는 배를 연상케 했다.
그 기둥 위에는 어린 아이가 올라가서 견시를 보고 있었다.
“애야, 오늘은 뭘 찾았느냐?”
“늘 똑같죠. 동쪽은 물론이고,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바다뿐이에요.”
그렇게 이레째 되는 날, 견시를 보던 소년은 처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동쪽에 섬이 있어요!”
“몇 개나 있지?”
“약 2리에서 3리쯤 간격으로 두 개요!”
다행히 항해는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끝났다.
선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스즈키 시게히데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열 척으로 구성된 선단은 두 패로 나뉘어 두 섬에 상륙했다. 그중에서 시게히데는 조금 더 큰 남섬에 올랐다.
바다 한복판의 작은 섬인 것치고는 물이 많아서, 소수의 인원으로는 자급자족도 가능할 듯한 자연환경이었다.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으니, 자급자족은 매우 중요한 조건일 터였다. 그렇게 섬을 둘러보고 있는데, 선원들이 시게히데를 찾아왔다.
새똥이 쌓인 곳을 찾았다고 했다.
“일단 앞장서 보게.”
과연 보고대로였다. 다만 양이 불만족스러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을 뿐. 새똥이 다소 쌓이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염초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걸 보면, 틀림없이 대체재로 쓸 수야 있을 터. 하지만 몇 번 다녀가면 금방 동날 것처럼 보였다.
‘설마 고작 이만큼을 퍼가자고 그 개고생을 한 건가?’
뱃길의 총책임자로서, 시게히데는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당히 불만스러운 양이었다.
남섬이 더 큰데도 고작 이 정도 양에 불과하다면, 북섬은 말할 것도 없을 듯했다.
‘여기서 더 내려가고 싶지는 않은데…….’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공명심과, 여기서 항해를 끝내고 싶다는 유혹이 마음속에서 팽팽히 맞섰다.
그러고 있는데, 북섬으로 갔던 배 한 척이 왔다.
“그쪽은 어땠나?”
“말씀하신 대로 새똥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직접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장들이며, 그 아래로 있는 선원들은 모두 화약에 관해선 문외한에 불과했다. 그러니 일단 스즈키 시게히데를 찾은 것이었다.
“얼마나 있던가?”
“섬에 가득했습니다!”
일단 남섬에 상륙한 사람들은 쉬게 한 뒤, 시게히데는 자신을 찾아온 선장과 동행했다. 물론 별 기대감은 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똥 특유의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흠…….”
그리고 마침내 섬 위에 오르자, 사방이 온통 인광석 천지였다.
“차, 찾았다! 여기가 우리가 찾던 섬이 맞다고! 으하하하!”
잠깐의 흥분이 지나가고, 시게히데는 선원들을 시켜 인광석을 캐게 했다.
해류를 감안했을 때, 돌아가는 길은 더 짧을 터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레가 걸렸다면, 돌아가는 데는 닷새면 충분할 듯싶었다.
물론 불의의 사태가 없으란 보장은 없는 법. 물을 넉넉하게 싣도록 하고, 그 다음으로 인광석을 가득 채워 넣었다.
정제를 해서 가져간다면 훨씬 더 많은 양을 가져갈 수 있겠지만, 설비까지 싣고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가져가는 양도 무척이나 많았다. 혼간지의 비법이라고 하는 건, 시게히데 본인도 같이 살핀 바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사이카슈 비전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야 어쩔 수 없이 야금야금 만들어야 했지만, 이렇게 퍼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 * *
“이것들이 전부 염초의 재료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꼬박 석 달이 지난 뒤, 나는 저렴하게 화약을 수급할 방법을 선보였다.
“대체 이런 지식은 어디서 알아내셨습니까?”
물론 이 역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섣불리 꺼낼 수 없는 지식이었다. 그래서 미리 생각해둔 대로 얼버무렸다.
“일전에 한 남만인에게 들은 적이 있네. 류큐국 동쪽으로 표류를 했는데, 거기에 새들만 사는 섬이 하나 있었다고 말이야.”
“고작 그것만으로?”
“좀 더 들어보게. 나 역시 혼간지의 비법을 보지 못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삼켰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고 싸는 건 크게 다르지 않겠지. 혼간지의 비법은 고작해야 일 년 동안 만드는 방법에 불과했네.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섬에, 새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겠나.”
“과연, 예나 지금이나 짐승들의 삶은 변함이 없으니…….”
“못해도 수천 년간 쌓였겠지. 그 물량을 생각해보면, 제법 채산성이 좋지 않겠나.”
상당히 얼기설기 엮은 변명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자세한 이치를 따지기에는, 시게히데가 가져온 인광석의 양이 막대한 게 더 크겠지만.
“이렇게 값싸게 화약을 수급할 수 있다면, 이걸로 다른 다이묘들에게 목줄을 채울 수도 있을 겁니다.”
혼다 마사노부는 이제 온전히 내 방침에 동의했다.
“그야 그렇겠지. 이건, 아, 시게히데. 그 섬을 뭐라고 했지?”
아직 구체적으로 발견하지도 않은 섬을 내가 이름붙일 수는 없었기에, 전적으로 실제 발견자에게 맡겼다.
“미나미히비시마(南火島 남화도)라고 지었어. 화약의 재료가 나는 섬이니까.”
무척이나 단순하군. 그렇게 짧은 감상을 뒤로 하고, 말을 이었다.
“미나미히비시마에 매년 오백 명씩 교대로 파견하고, 요새화해 두도록 하지. 그거면 충분할 걸세.”
“아사쿠라 가문에는 화약을 얼마나 보내시겠습니까?”
“한, 일 년치만 남기고 전부 보내도록 하지. 호조 쪽에도 좀 보내고. 그래야 오다 노부나가가 곤경을 겪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