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종교 전쟁 (11)
“쑥과 오줌을 섞어서 염초밭을 만든다라······.”
켄뇨는 자신의 밑천을 탈탈 털어서 내놓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혼간지의 비법으로 감춰져 있던 화약의 제조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 아니오이까. 정말 이렇게 해서 염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저깟 땡중 정도는 한번쯤 풀어줘도 좋을 듯싶소.”
이 시기의 염초는 대부분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도에서 퍼온 것들. 공급처가 거의 독점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비싸게 들여와야만 했다.
그러던 것을 의외로 간단한 방법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하니, 마츠나가 히사히데마저 혹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간단한 이야기는 아닐 터였다.
화장실 흙을 무지막지하게 긁어모아도, 거기에서 추출되는 염초는 쥐꼬리만큼이라고 했던가. 그런 조선의 사례를 고려해 보면, 켄뇨가 내놓은 방법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혼간지의 법주를 봐야겠다.”
내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뇌옥에서 켄뇨를 끌고 왔다.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상당히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네가 적어올린 내용은 잘 보았다.”
“그, 그럼 살려 주시는 겁니까?”
과연 누가 이자를 잇코슈의 우두머리라 할까. 지금 여기에는 일개 교단의 법주가 아니라, 비굴한 포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내용이 진짜인지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슬쩍 희망을 보여 주자,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네 녀석은 어떻게 만드는가만 적어 놓았지, 구체적인 내용을 쓰지는 않았더군.”
“소, 소승은 그렇게 염초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면적에 얼마만큼의 재료를 넣어야 충분한 양의 염초가 나오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주먹구구식으로 염초를 뽑아내려 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역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터. 나는 그 점을 추궁했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답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염초만 만들면 그만이었던지라, 세심하게 살피지는 않았습니다.”
“하, 이런 게 신통력이라니. 아니지······. 실증이 되지 않으니 혹세무민하기는 더 편한 셈인가?”
나 역시 염초를 자체 생산하는 걸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내 영지의 인구는 십만을 넘어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좁은 지역에 몰려 사는 만큼, 대소변을 모으기도 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전을 형성하는 문제는 그 외에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두렁길로 돌아가나, 밭을 가로질러 가나, 매한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혼다 마사노부는 이 방법이 무척이나 아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아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좌중의 시선에 갑자기 확 모여들었다. 화약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긴 했다.
“혼간지에서야 신도들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만, 아와지에선 그러기가 어렵지. 노임 문제도 있겠고······.”
아직 자동화 기계 같은 건 없었다. 몇몇 기물로 생산성이 올라가기는 했으나, 아직 대부분의 일은 사람의 손으로 직접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각 가호에서 오물을 퍼다 나르는 것부터 염초밭을 조성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은 당연히 인력을 필요로 할 터였다.
게다가 부지와 관련해서도, 큼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와지는 그리 넓지 않은 섬. 비록 일국에 해당하는 큰 섬이라고 해도, 십만 명 이상이 복닥거리는 판이다. 염초밭을 만들 만한 장소를 구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이 방법은 혼간지 정도나 쓸 만한 계륵에 불과했다.
실상을 모르는 자들에게, 켄뇨의 방법은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따보면, 결국은 비약을 만들어 불노불사한다는 도교의 신비와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켄뇨를 죽인다면, 그 후계가 될 만한 자가 일족 중에 있겠나?”
“둘째 아들로 켄손이 있는데, 카가국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켄뇨를 조리돌림한 다음, 처형하도록 하지.”
잇코슈의 구심점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면, 지츠고의 위세가 커질 터였다. 새로운 켄뇨의 등장은 반길 일이 아니었다.
사카이에서 교토까지 켄뇨는 처참한 몰골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백성들은 처음에 이 조리돌림을 불길하게 여겼지만, 점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힘을 얻은 듯했다. 급기야는 침을 뱉는 자도 나올 지경이었다.
“감히 폐하를 속여 문적을 받아내고, 백성들을 혹세무민한 자의 최후다. 똑똑히 보아 두도록 하라!”
그같은 포고와 함께, 켄뇨의 삶에도 종지부가 찍혔다. 그것으로 기나이는 잠시 평화를 되찾았다.
* * *
“이보게, 매제. 혹시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믿고 있다면, 그만두게나.”
성 아래에서 손윗처남인 오다 노부나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자이 나가마사는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 오다 노부나가는 혼간지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고 했다. 혼간지의 법주는 아사쿠라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서 동맹 상태. 정작 그 아사쿠라 가문은 혼간지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나가마사가 굳이 오다군의 길목을 끊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정작 통행을 허락하자, 노부나가는 곧바로 아자이 가문의 거성, 오다니(小谷 소곡) 성을 포위해 버렸다.
그리고 저렇게 항복을 권해 왔다.
난세를 살아가는 무사에게, 언제고 선택을 해야 할 때는 오는 법. 아자이 나가마사는 그게 머나먼 훗날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지금, 그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요시카게는 기댈 만한 거목이 아니었군.’
켄뇨와는 생판 남인 노부나가도 흐름을 타기 위해 군을 일으켰건만, 사돈지간이라는 명분까지 갖춘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잠잠하기만 했다.
그 모습에는 나가마사도 갈수록 실망하고 있었다. 단지 명분이 필요했을 뿐. 한번 균열이 가기 시작한 믿음은 결국 산산이 깨져버렸고, 그렇게 아사쿠라 가문의 든든한 동맹 하나가 돌아섰다.
* * *
“호오······. 혼간지가 함락되었다고? 그래도 제법 버틸 만한 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니시군이 내부에 거짓 원군을 숨겨 넣었다고 합니다.”
마침 오다 노부나가가 오다니 성으로 입성한 날, 교토에서 한 무리의 승려들이 그를 찾아왔다.
“이런 책략은 유키나가, 그자의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 사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밑에 혼다 마사노부라는 자가 새롭게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혼간지의 함락도 그의 솜씨라고 들었습니다.”
“혼다? 이보게, 미카와노카미(종5위하 三河守 삼하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위). 자네 가문의 가신 중에 혼다 가문이 있지 않던가?”
마침 얼마 전,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혼다 타다카츠라는 자가 인상 깊었는데, 마침 지금 거론된 자도 혼다 일족이라 했다.
질문을 받은 이에야스는 머리를 조아리며 노부나가의 질문에 답을 올렸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잇코잇키 당시에 돌아섰고, 제 휘하에 이렇다 할 만한 자는 타다카츠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도 자기 일족들과 의절한 상태지요.”
그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비록 도쿠가와 가문이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는 해도, 가신 입장은 아닌 동맹 관계였다. 이에야스의 불편함을 느낀 노부나가는 더 캐묻는 대신, 사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희들을 지켜주십시오.”
승려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그 말을 들은 노부나가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상락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혼간지가 멀쩡한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 지금은 아자이 가문을 종속시킨 걸로 만족할 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협력자가 있다면, 다시 이야기가 달라질 터였다.
엔랴쿠지, 혼노지, 다이도쿠지에 도다이지까지. 교토 일대의 유서 깊은 사찰들이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카이쿠보, 그 마라 같은 자가 오랜 세월 일본을 지켜온 불법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간토간레이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이대로 말법 세상이 되고 말 겁니다.”
“말법이라······. 그래서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알았으니 오늘은 쉬는 게 어떻겠나?”
노부나가는 그렇게 축객령을 내렸다. 사자들이 숙소로 돌아간 뒤, 그는 자신의 매제를 돌아보았다.
“비젠노카미(備前守 종5위하 비전수, 아자이 나가마사의 관위). 저들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상락을 하시려 한다면 저들의 손을 잡으셔야 할 것이고, 내실을 기하려 하신다면 당장 내치셔야 할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매제인 아자이 나가마사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을 꺼냈다. 노부나가는 그 말에 흥미를 잃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예전 같으면 시바타 카츠이에나 니와 나가히데, 두 사람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을 터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그 둘 모두 참석한 상태. 하지만 노부나가의 시선은 하시바 히데요시를 향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히데요시는 자신이 가장 먼저 질문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내놓았다.
“분명 이는 간레이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요구대로 움직이시면 안 될 겁니다.”
“어째서 그렇지?”
“교토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향권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의 입김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가 되어야 합니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제 아니겠나?”
“저들에게 아케치 미츠히데를 몰아내라고 하십시오.”
지금 교토의 주인은 죽은 요시아키의 유산 관리인을 자처하는 아케치 미츠히데였다. 그는 당연히 노부나가와 원수지간이었고,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종속된 상태이기도 했다.
“교토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그러니 쇼군의 가신 따위가 맡아 관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그런 명분을 내세워서 문적을 받은 사찰들이 연명으로 나선다면, 폐하께서도 귀담아 들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작 속내를 감추고, 짐짓 떠보듯 반론을 제기했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땐 상락을 취소하시는 편이 낫겠지요. 어차피 혼간지는 이미 함락되었습니다. 저들이 혼간지를 대신해서 협력을 해 줄 수 없다면, 간레이께서 굳이 상락하실 필요야 있겠습니까?”
“네 말이 내 생각과 같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한 뒤, 다음날 사신들을 불러놓고 히데요시가 말한 것들을 요구했다.
교토를 힘의 공백지대로 만들어라. 이 조건은 승려들의 구미에도 맞는 이야기였다.
엔랴쿠지, 혼노지에 다이도쿠지, 그리고 도다이지까지. 쇼군이 교토의 정치적 실권자였다면, 이들은 사회를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교토가 쇠락해 가는 옛 수도의 잔재에 불과하게 되면서, 이들의 불만도 상당히 커진 상태. 거기에 종교적인 면에서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그 불안감은 더해 갔다.
노부나가의 요구를 들은 승려들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좋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도 고니시 유키나가이니, 그 개노릇을 하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교토에서 쫓아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