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종교 전쟁 (10)
포위가 길어지고, 장병들의 마음도 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연회를 베풀었다.
“내일이 오면, 또 지루한 대치를 계속해야 할 터. 모두들 마음껏 먹고 즐기시오.”
봉쇄를 계속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장수들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전선에 남아서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고, 모두가 교대로 연회를 즐기게 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장수들은 마사노부가 직접 지목한 자들이었다. 모두가 혼간지와 이미 내통 중이거나, 내통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된 상태였다.
만약 아무 근거 없이 이들만 모아 놓았다면, 의심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전에 근무번 순서를 교묘하게 정해 놓았기 때문에,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시작된 연회는 해가 질 무렵, 무르익어 갔다.
술냄새가 군막 안팎으로 가득했고,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술에 떡이 된 상태로 널브러지거나, 혹은 그 직전인 상태.
하지만 미리 이들을 포박하도록 준비시켜둔 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쿠쿵! 쿵! 쿵!
마침내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자들은 자신의 병장기를 바짝 움켜쥐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천둥이라도 쳤나?”
화약이 터지는 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면, 상당히 날카롭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터진다 해도, 멀리서 들으면 천둥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여기는 진영의 가장 깊숙한 곳. 적이 기습을 가해 온다 해도,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차 한 잔을 다 비울 시간이 지났을 때쯤, 밖에서 병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천둥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그 말이 신호였다.
“그럼 대체……. 무, 무슨 짓인가?”
취하지 않은 자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자신의 무기를 뽑았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으니, 화약고가 터진 것은 확정사항. 하지만 만약 내부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들도 곱게 돌려보내야 했다. 이쪽에서 파악하고 있는 내통자는 제법 유용한 패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이들은 그 효용이 모두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술에 취하지 않았어도 중과부적이었겠지만, 이미 몸이 반쯤 풀린 상태로 멀쩡한 자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터. 전부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적과 내통한 자들이다. 모조리 포박해서 가두어 놓도록.”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군막을 나왔다.
이제 해가 거의 다 진 하늘은 검푸른 색이었다. 덕분에 혼간지 쪽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이 아주 잘 보였다.
출진할 준비를 마친 혼다 마사노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서 켄뇨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출격을 허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혼간지의 내부는 그야말로 인세에 구현된 불지옥 그 자체였다.
화약고의 유폭, 그리고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 그 자체로도 이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어서 불을 끄란 말이다!”
켄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해도, 화약은 그리 쉽게 만들 수 없는 물건.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놓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으니, 넋을 잃은 것도 당연했다.
당장 부하들을 혼란에서 끄집어내는 것부터 해야 하건만, 의미 없는 호통으로 시간만 헛되이 보낼 뿐이었다.
다른 수뇌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이 법주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그들이라고 해서 수습할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후계자로서 활동하던 코뇨 정도가 나름대로 부하들을 통솔하려 했다.
마침 순찰 중이던 그는 한 발짝 물러선 시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성 안은 어지러웠지만, 아직 그 혼란이 파수를 보던 병사들에게 번지지는 않은 상태. 법주의 아들은 여기에 의지해서 불을 끄려 했다.
“고작해야 불일 뿐이다! 너희들은 해자로 가서 물을 길어오고, 나머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 진정시켜라!”
그리고 계속해서 승려와 병사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 모았다.
본당 쪽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했지만, 그가 있는 나루터 쪽은 금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런 코뇨의 곁에 한 사람이 접근했다.
“소법주.”
“신스케가 아닌가? 자네는 저쪽으로 가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여기로 데려와라.”
법주의 아들은 가까이 다가온 야규 무네요시에게 경내의 한구석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미 무네요시는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진 지 오래. 이미 뽑아들었던 칼로 번개같이 코뇨의 목을 그었다.
“컥…….”
“무, 무슨!”
주변에 있던 혼간지 병사들이 코뇨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 게다가 무명소졸이 기나이 제일의 검호를 상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무네요시는 맹렬한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반사광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피보라도 한 줄기씩 치솟았다.
그렇게 한순간에 병사 셋이 죽어나가자, 나머지 병사들도 주춤했다.
“코뇨는 이미 죽었다! 너희들도 항복해라!”
하지만 오히려 그 외침이 냉각제로 작용했는지, 병사들은 다시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법주의 원수를 갚자!”
“이런, 역시 광신도들이란…….”
아무리 검호라 해도,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십수 명을 동시에 대적하기란 불가능했다.
옆에 제자가 하나 있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 차라리 기세를 몰아 쉴 틈 없이 베어 나갔다면, 몽땅 처치하는 게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남은 길은 하나였다.
그는 혀를 한번 찬 뒤, 옆에 있던 제자를 돌아보았다.
“뛰어!”
* * *
추격전은 금방 끝났다.
적은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고, 야규 무네요시와 그 제자의 체력은 아주 뛰어난 편이었다.
“헉헉, 갑자기 도망가자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무작정,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라. 기억해 두거라.”
그렇게 추격자들을 따돌린 뒤, 그는 집결지로 약속한 남문에 도착했다.
쿠보가 붙여 준 닌자, 단조와 그의 제자들은 이미 성문을 장악한 상태였다.
“늦으셨습니다.”
“대신에 싹수 노란 소법주 놈을 처치하고 왔지. 상황은 어떤가?”
단조가 나서서 그에게 답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습니다. 남문 주변의 청소는 끝났고, 여기서 바깥의 아군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겁니다.”
무네요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숨을 골랐다. 이제 어려운 일은 모두 끝났고, 쉬운 일만 남은 듯했다.
이제 경내의 혼란은 스스로 눈덩이 굴러가듯 불어나고 있었다.
* * *
“배신자가 있다!”
“북문이 적의 손에 들어갔다!”
혼란은 갈수록 커져 갔다. 하지만 적이 성안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켄뇨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북문이 넘어갔다고? 대체 무슨 이야기냐?”
하지만 주변에 그 질문을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의 있던 병사들은 켄뇨보다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산발적으로 불을 끄려고 할 뿐, 다른 생각조차 떠올릴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침착함을 되찾은 혼간지의 법주는 곁에 있던 승려 하나를 지목했다.
“너는 가서 북문의 상태를 보고 와라.”
하지만 미처 명령을 받은 승려가 본당 문을 나서기도 전에, 몇 명의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법주의 호위대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그들의 입이 더 빨랐다.
“법주, 소법주께서, 적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뭐라!”
“얼마 전, 성에 들어온 신스케라는 자가 범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켄뇨는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뒤이어 들어온 자가 최악의 이야기를 전했다.
“남, 남문이 뚫렸습니다! 적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어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 곧바로 고니시군이 본당에 들이닥쳤다.
거기에 앞장선 자는 얼마 전, 법주 자신이 서신을 보낸 혼다 마사노부였다.
“너, 너는!”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입니다, 법주.”
켄뇨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다가 금세 기운을 되찾았다. 지금 고니시군을 이끄는 자가 한때 자신의 신도였다고 하는 사실이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이보게, 혼다 공. 나를 구해 주러 온 것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법주가 죽어야, 잇코슈가 살 수 있소.”
* * *
“명하신 대로 생포해 오긴 했습니다만, 굳이 살려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혼다 마사노부의 말은 싸늘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켄뇨는 살려둬 봐야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죽이기 전에 몇 가지는 확인해야 했다.
“그거야 이자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겠지.”
내 말을 들은 포로는 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내게 매달려 왔다.
“쿠, 쿠보.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원하시는 건 뭐든 드리겠습니다!”
이런 자가 일본을 뒤흔든 잇코슈의 수장이라니. 꼬락서니가 참으로 볼만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혼간지의 법주는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부디 살려만 주신다면, 잇코슈의 백만 종도(宗徒)는 쿠보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고, 혼다 마사노부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포로의 목을 베어 버릴 준비를 했지만, 나는 눈짓으로 한 번 더 말렸다.
그리고 켄뇨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듣자하니, 혼간지에서는 화약을 만들어 낸다더군. 소문처럼 법주의 신통력일리는 없고…….”
“소, 소승이 신통력은 없지만, 화약을 만들 줄은 압니다.”
“그렇다면 기회를 주지. 네가 털어놓는 내용이 만족스럽다면, 얼마든지 풀어줄 수 있다.”
나는 그에게 지필묵을 내어준 뒤, 군막 하나를 비우고 거기에 가두었다.
“쿠보, 켄뇨는 간교한 자입니다.”
“물론 나 역시 알고 있네.”
“하면……?”
“혼간지를 보게. 저들이 호락호락하던가?”
내 질문에 마사노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차마 긍정의 답은 내놓지 못했다.
혼란에 빠진 중에도, 순순히 항복하는 자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먼저 복귀해서 휴식을 취하던 무네요시가 말하길, 아주 독종들이라고 했다.
- 우두머리를 죽였는데도, 오히려 원수를 갚겠다고 달려들더군요. 아주 지독한 놈들입니다.
그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것일 터였다. 대상이 잇코슈 종단 자체가 되었건, 아니면 켄뇨 본인이 되었건.
“이대로 켄뇨를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내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하던 마사노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기 법주가 순교자로 삼아서, 아예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겠군요.”
“바로 그걸세. 잇코슈 신도들은 여느 병사들과는 다르지.”
설령 이쪽에 속한 지츠고가 이들을 장악한다고 해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사람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지금은 지츠고가 아무리 소심해도, 나중에 다른 꿍꿍이를 품을 수도 있었다.
“켄뇨는 최대한 추하게 죽어야 하네. 모든 걸 내놓은 채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