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종교 전쟁 (9)
일단의 무리들이 혼간지의 문을 두드렸다.
약 오십 명가량일까. 그리 많지는 않은 숫자였다.
“우리는 에이쇼지에서 온 자들이오. 법주의 소집에 응하러 왔으니, 성문을 여시오.”
“에이쇼지라니, 어디에 있는 에이쇼지를 말하는 것인가?”
문루에서 파수를 보던 병사들은 이 방문객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물론 양측이 매우 인접한 상태였다는 점 역시 한 몫 했지만.
미처 세력을 끌어 모으기도 전에, 이미 혼간지와 주변의 마을은 전부 포위당했다.
육로며, 해로며 모두 차단당한 상태인데, 무슨 수로 외부의 잇코슈가 성문까지 들어온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수문장은 곧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미나기의 만쇼지요. 적에게 들킬지 모르니 어서 열어주시오.”
“기다려라. 너희가 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
“허, 참. 그럼 빨리 확인하시오. 곧 날이 밝는단 말이외다.”
외부에서 온 자들은 막힘없이 자신들의 내력을 밝혔다.
하지만 수문장은 고작 한 번의 문답으로 의심을 풀지 않았다.
워낙 잇코슈에 속한 절이 많으니, 적당히 꾸며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떻게 포위망을 뚫었나?”
“적진에 소카이라는 무사님이 우리와 동도(同徒)였소. 그분이 길을 열어주신 것이니, 들키기 전에 어서 들여보내주시오.”
“소카이?”
수문장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은 말단이라 누가 이쪽과 내응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좀 더 높은 분들이라면 알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기다리도록.”
“신원이 밝혀질 때까지 구금을 해도 좋소이다. 여기서 적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오!”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지금 저들이 적이라서 수작질을 부리려 한다 해도, 손발이 묶인 상태라면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혼간지 내부에서는 병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포위하고 있는 적은 족히 삼만에서 사만을 헤아리는데, 성 내의 병력은 채 일만을 넘기지 못했다.
다행히 아직 본격적인 공세는 시작되지 않았고, 줄곧 봉쇄만 유지되는 상황.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아군이라면, 허망하게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저울질을 끝낸 수문장은 입을 열었다.
“무기를 문가에 놓고, 삼십 보 뒤로 물러서라.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벌집을 만들어버리겠다.”
“좋소이다. 서둘러 주시오.”
저들은 수문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소리가 날까 조심스러운 태도로, 모두 병장기를 문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문장이 요구한 삼십 보 거리를 유지했다.
혼간지의 병사들은 먼저 병장기를 성문 안으로 들이고, 다음으로 방문객들을 포박해서 역시 안으로 들였다.
“잠시 기다리도록.”
그렇게 말한 뒤, 수문장은 부하 하나를 안으로 보내, 상황을 전달하게 했다.
* * *
“포위를 뚫고 온 자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수문장이 하회를 여쭈라 했습니다.”
겐뇨는 곤히 자는 중, 그리고 그를 대신해서 맏아들인 코뇨가 깨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쇼지에서 왔다는 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포박해 둔 상태 그대로 여기에 데려와라. 지금 법주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니, 내가 직접 저들을 확인해 봐야겠다.”
성문의 경계는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것. 코뇨는 본당 내를 지키고 있던 병사 몇을 붙여 주었다.
잠시 후, 그가 보낸 병사들이 의심스러운 방문객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그래, 법주님의 소집령에 응해 온 자들이라고?”
“그렇습니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수로 포위망을 지나왔느냐?”
이들은 아까 수문장에게 했던 답을 그대로 반복했다.
이들이 왔다는 미나기는 분명 교세가 큰 편이었다. 그리고 만쇼지라는 이름 역시, 그의 기억 속에 있었다.
그리고 소카이. 그는 아케치군에 있지만, 이쪽과 내응을 약속한 자였다.
워낙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판이라, 구체적인 방법을 약속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혼간지 측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할 터였다.
“그렇군.”
코뇨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박된 자들의 말을 긍정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호통을 쳤다.
“네 이놈! 감히 누굴 속이려 하는 게냐? 내 신통력으로 보아하니, 큰 죄를 지은 자들이로구나.”
“아, 아닙니다. 저희는 분명 법주님의 명에 응해 온 겁니다.”
“어허!”
묶인 채로 끌려온 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억울합니다!”
“부디 법주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울부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법주님의 뒤를 이을 분다우십니다. 저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느닷없이 살면서 지은 죄들을 털어놓았다.
절의 곳간에 있는 미곡을 슬쩍한 일이며, 법회 중에 불손한 마음을 품었던 일 등등. 때와 장소에 전혀 맞지 않는 고백이었다.
꽁꽁 묶인 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데려온 혼간지 병사들마저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 코뇨만이 흡족하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참으로 갸륵하군. 네 이름이 무엇이냐?”
“시, 신스케라 합니다.”
법주의 아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원래는 너희들을 모조리 참하려 했으나, 이 선량한 자의 낯을 보아 살려 주겠다. 단,”
그렇게 말한 코뇨는 자신이 들고 있던 석장으로 바닥을 쿵 소리 나게 찍었다.
그 서슬에 모든 사람들이 움찔했다. 그러가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이 신성한 사찰을 지키는 자는 몸과 마음이 더러워서는 안 되는 법. 죄를 고백하고, 가서 목욕재계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도록 해라.”
코뇨는 그렇게 말한 뒤, 본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꽤나 소란스럽더구나.”
이미 동이 터 오고 있었고, 법주인 켄뇨 역시 잠에서 깨어 있었다.
“외부에서 의심스러운 자들이 있어,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나도 안에서 다 들었다. 참으로 잘했다.”
* * *
신스케는 자신의 몸을 씻기 위해, 강물을 길어왔다.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그의 일행들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정말 미친놈들이군.”
“그러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만.”
야규 무네요시. 그는 유명했지만, 아명인 신스케는 그렇지 않은 편이었다.
이번 작전은 믿을 수 있는, 소수 정예의 사람들로 움직여야 했다.
그는 검술도장을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여럿 거느렸고, 오래 지켜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그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주군이 붙여준 닌자 하나가 병력의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씻으며, 혼다 마사노부가 일러준 것들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 무사히 통과할 수도 있지만, 법주 일족은 의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마치 깨달은 자인 것처럼 굴 때가 많지요.
마사노부는 잇코슈 출신으로, 법주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아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애초에 그가 잇코슈에 가담했던 것은 출세를 위해서였기 때문에, 법주 일족에 대한 평가 역시 냉철했다.
- 너무 많은 병력을 들여보내면, 의심을 살 겁니다. 그만한 병력이 포위망을 몰래 지나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 그렇다고 너무 적은 병력을 들여보내면, 아예 간자로 몰아서 참해 버리고 내부 결속에 사용할 겁니다.
-혹시 강하게 추궁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가 원하는 건, 자기 죄를 자복하면서 굽신거리는 겁니다.
과연 모든 일이 혼다 마사노부가 예견한 대로 흘러갔다.
야규 무네요시는 더러운 감정이나 털어내자며 박박 씻었다. 특히 눈과 귀를 신경 써서 닦아냈다.
그렇게 목욕재계를 마친 뒤에, 그들은 남쪽 성벽에 배치되었다.
“이봐, 단조. 여기서 아예 법주의 목을 따버리면 어떨까?”
“그런 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일족 모두를 잡기는 어려울 듯싶군요.”
“역시 어쩔 수 없나······.”
같이 들어온 일행 중에는 이가류에 속한 닌자도 있었다.
단조라는 이름은 일정한 경지에 이른 닌자들에게 주어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작전에 참가하기에 충분한 자라고 했다.
“뭐, 주군의 직속닌자가 추천한 자가 하는 말이니,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야규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단조는 자신이 본 바를 토대로 지도를 그려나갔다.
“마사노부 님께서 말씀하시길, 본당을 기준으로 동편이 화약고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곳이거나, 아니면 여기겠군요.”
닌자는 지도를 완성한 뒤, 손으로 짚어가며 무네요시에게 설명했다.
절간의 건물들은 대체로 외관이 비슷비슷한 편이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화약고인지 단순한 창고에 불과한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단조는 금방 몇몇 후보지를 추려냈다.
“정말 자네가 말한 장소가 화약고가 맞겠나? 혹시 다른 전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야규 무네요시는 닌자라는 존재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까지 까탈스럽게 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여기는 적지 한복판. 그것도 극히 소수의 병력만으로 일을 해치워야 했다.
아무리 자신이 쿠보 밑에서 가장 뛰어난 검호라고 해도, 단조가 기고 나는 닌자라 해도, 성 안의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단조는 역시 무네요시가 자신을 껄끄러워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신중함까지 트집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주변에 물동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우물이 배치되어 있으니, 화재에 대비하기 위함일 겁니다.”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무네요시 스스로도 화약에 관해서는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불에 잘 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본 게 맞겠군.”
내부에서 화약고를 터트리는 동시에, 곳곳에 불을 놓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성문을 장악해 버틴다. 그게 작전의 개요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뒤, 단조는 성벽 아래를 살피는 척하며 횃불을 휘둘렀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자, 멀리 있는 고니시군의 진영에서도 불빛 하나가 춤을 추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 * *
무네요시가 혼간지로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 단조는 계속해서 내부 사정을 염탐했고, 무네요시와 제자들은 바짝 날이 선 상태를 유지했다.
비록 의도는 달랐지만, 칼 같은 모습을 보이는 병사를 싫어할 장수는 없었다. 코뇨는 물론이고, 종단의 다른 간부들마저 그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일을 보내며 기다리는데, 보초를 서고 돌아온 단조가 무네요시에게 새로 정해진 내용을 말해 주었다.
“결행은 오늘입니다.”
무네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군을 움직이는 일은 신속하고도 은밀해야 하는 법. 마음의 준비는 항상 끝냈으니, 갑자기 정해졌다 해서 당황할 까닭은 없었다.
신호는 화약고의 폭발. 결코 그 위력이 작지는 않을 터였으니, 각자 위치에서 행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 무렵, 많은 이들이 경계를 풀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보초를 서며 적정을 살폈지만, 원래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마음이 풀리는 때가 아니던가.
바로 그때, 맹렬한 폭음이 혼간지를 뒤덮었다.
“부, 불이야!”
“화약고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