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종교 전쟁 (8)
혼간지 겐뇨. 잇코슈로 통하는 정토진종의 개조(開祖) 신란의 후예. 그가 11대 법주에 오른 뒤, 혼간지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다른 무가는 백성을 쥐어짜고, 그들의 충성과 원망을 동시에 받는 몸이다. 하지만 혼간지 일족만은 사농공상 모두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마음을 얻어왔다.
그러나 아케치 미츠히데가 중얼거렸듯, 그의 방편이라는 것은 세상을 속이는 수단에 불과했다.
독자적으로 화약을 제조하고, 잇코슈에 속한 사찰 인근을 자신들의 영지처럼 휘두르는 또 하나의 다이묘. 그게 혼간지 일족의 진상이었다.
그러나 잇코슈는 어디까지나 신흥 교단에 지나지 않았다. 교토에는 유서깊은 명찰이 다수 존재했고, 그들의 콧대에 비하면 잇코슈의 위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겐뇨가 덴노에게 문적(門跡, 사찰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는 문서)을 받아낸 뒤, 잇코슈는 명실상부한 거대 교단으로 성장해왔다.
법주인 겐뇨의 위세 역시 마찬가지, 다이묘 중에서도 혼간지 일족에 필적할 자는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위세도 지금 큰 위기를 맞이했다.
“뭐라 했나? 지츠고 그자가 독립을 선언해?”
“그, 그렇습니다, 법주.”
겐뇨는 바다 건너에서 들려온 소식에 뒷목을 잡았다.
민심을 휘어잡는 건 오직 잇코슈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남만의 종교라는 키리시탄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다이묘와 유착하고, 몇몇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사카이 쿠보의 지원 아래, 선교사들이 공격적으로 포교에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이 현상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겐뇨는 아와지국 내의 잇코슈 신도들을 규합하도록 지시했다.
자신의 주군과 가문을 배신하며 잇키에 참여했던, 혼다 마사노부라면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 예상은 아주 빗나가다 못해, 역풍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자신이야말로 대스승 신란 법사의 가르침을 잇고 있다고?”
잇코슈는 개파시조 신란의 혈통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겐뇨는 그 자신도 문적을 받아낼 정도로 유능했지만, 그의 후예가 아니었더라면 법주자리는 얻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지츠고 역시 신란의 혈통을 이은 자. 비록 방계라고는 하지만, 이 어지러운 시기에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리를 차지하는 자가 곧 직계요, 밀려나면 방계가 되는 법. 그런 점에서 지금 지츠고의 행동은 겐뇨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당장 히데요시, 그자를 불러라!”
* * *
“쿠, 쿠보! 이건 제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지츠고의 이름을 빌려, 천하의 잇코슈에 격문을 돌렸다.
단순히 독자 노선을 선언하는 정도가 아니라, 혼간지 교단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서 말이다.
“어차피 선사가 독자 노선을 선언했으면, 겐뇨와 적이 되기는 매한가지가 아니겠소. 이왕이면 최대한 요란하게 천하에 알리는 편이 낫지.”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차 한 모금을 삼켰다.
하지만 지츠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잡지도 못하고, 그저 불안해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걱정 마시오. 이미 선사를 비롯해서, 아와지국의 잇코슈는 철저히 보호하고 있으니.”
안전을 다시 한번 보장하자, 지츠고는 비로소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혼간지 일족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금 아사쿠라 가문은 그들과 손을 잡은 뒤에야, 카가국을 자신들의 영향권 내로 편입할 수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다이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거센 반란과 마주해야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직 양측이 맞붙은 적은 없지만, 원래 역사에서는 가장 강렬한 적수였다. 전국 다이묘 중에는 쟁쟁한 인물이 많았지만, 결국 최대의 걸림돌이 바로 겐뇨라는 견해도 존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단독으로는 상워권 다이묘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같이 손잡고 노부나가 포위망을 형성했던 모리 가문은 나의 확고한 동맹이었고, 기나이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케치 미츠히데도 마찬가지.
아마 관동에서 그의 편에 설 자가 많이 나오긴 하겠지만, 이에야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오월동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츠고를 달래고 있는데, 밖에서 닌자 하나가 들어와 서신을 전했다.
“혼간지에서 쿠보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전포고를 날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쪽에서 말하는 불적이 ‘제 6천 마왕’을 의미하는 건 아닐 터였다.
불적을 무찌르려 하니, 모두 군을 일으켜 혼간지로 모이라. 이건 명백히 전쟁을 준비하는 지령이었다.
“역시 그런가.”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지츠고는 다시 떨기 시작했다.
“쿠, 쿠보. 혼간지 교단은 결코 경시할 대상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선사의 책임이 막중하외다.”
겐뇨가 내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 겁쟁이 승려에게 달려 있었다.
그가 아와지국 내의 잇코슈 신도를 제대로 장악하기만 한다면, 혼간지 교단은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물론 내부의 반란은 우려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한 가지. 아와지의 주민들 사이에 불신이 퍼지는 것이었다.
“나는 잇코슈가 두렵지 않소. 다만 선사가 신도들을 안심시키지 못해, 불의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땐 정말 잇코슈를 한 패거리로 몰아 처단할 수밖에 없다.
지츠고도 내 의중을 잘 읽었는지, 두려움으로 떠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쿠보.”
* * *
“원숭아, 아주 잘했다! 으하하하······.”
오다 노부나가는 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원래 혼간지는 쉬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세 고쿠시의 폭주 때문에, 오히려 협력이 난망할 판이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하시바 히데요시를 성주 중 하나로 세운 뒤, 오다 노부나가는 최대한 그의 체통을 존중해 주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을 때는 옛 별명을 불렀다.
히데요시 역시 오히려 자신과 주군의 친근함이 드러나는 것 같아, 오히려 이러한 노부나가의 태도를 포상으로 여겼다.
한참을 웃던 오다 노부나가는 그의 가신과 동행한 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래, 우키타 나오이에의 아들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히데요시는 그렇게 말하며, 꾸깃꾸깃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피로 된 혈서. 우키타 나오이에가 자신의 후사를 부탁하는 내용이 적힌 것이었다.
“꽤나 다급했던 모양이군. 그래, 받아줘야지. 히데요시, 네가 직접 맡도록 해라.”
“옛?”
당황한 히데요시의 표정에 노부나가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성주가 되었으니, 그럴듯한 가신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우키타 가문은 나름대로 명문가로 분류되는 집안이었다. 그런 가문의 마지막 자손을 가신으로 받아들인다면, 히데요시의 입지 역시 올라갈 터였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건, 가신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들의 주군은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를 쌍벽으로 여겼다. 전장에서는 카츠이에, 그리고 내정으로는 나가히데.
그리고 히데요시의 성인 하시바(羽柴 우시)는 시바타(柴田 시전)와 니와(丹羽 단우)에서 한 자씩 가져온 것.
언뜻 보면 카츠이에와 나가히데를 띄워주는 모양새였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이 가신은 너희들과 동격이다. 이런 의도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잇코슈와 손을 잡는 문제는 신중하게 다루셔야 합니다.”
마침 기요스 성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옛 일을 떠올리며, 노부나가에게 조언했다.
“당연한 이야기요. 이제 아쉬운 사람은 겐뇨잖소이까. 이번 싸움은 법주가 군량을 대기로 했으니, 염려 말고 대군을 준비하시오.”
원래 노부나가는 겐뇨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잇코슈에 속한 사찰에 세금 감면, 그리고 약간의 토지를 기부하겠노라 제안한 상태였다. 그리고 몇 해 전, 가신들에게 내렸던 잇코슈 금지령의 철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간지의 법주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지금 급하고 느긋함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서 군을 일으키려면······.”
“일단 괘씸한 아자이를 쳐부수고, 롯카쿠 가문에게 일부를 떼어주기로 했소.”
쇼군 요시아키가 죽은 것도 몇 년 전의 일.
롯카쿠 가문을 비롯한 대다수의 다이묘는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적대를 그만둔 상태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재보가 흘러나가야 했지만, 노부나가는 아까워하는 기색 없이 뇌물을 흩뿌렸다.
마침 키타바타케 토모노리가 사실상의 면죄부를 쥐어주면서, 노부나가의 입지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돈이면서 자신을 완전히 저버린 아자이 나가마사.
그를 징벌하고 오미국의 일부를 차지하면, 비와호의 수로를 쓸 수 있을 터였다.
“좋다. 이번에야말로 천하를 손에 넣고 말겠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시 한번 상락을 선언했다.
* * *
아케치군은 육지에서, 그리고 고니시 수군은 요도 강 하구에서 혼간지를 포위했다.
그저 포위하고만 있어도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공격 측에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동쪽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가 지원을 오는 상황. 느긋하게 시간을 때웠다가는 역으로 협공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오사카 고보(大坂御坊 대판어방). 겐뇨의 거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새. 지금은 혼다 마사노부가 넘어야 할 존재였다.
“이번에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혼간지를 토벌하도록.”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목상의 주장으로 참전했으나, 모든 것을 마사노부에게 일임했다.
판을 깔아줄 테니, 실력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고니시군의 강점은 강력한 화력이었다. 하지만 그 우위를 살리기에는 상대가 나빴다.
마사노부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새 주군에게 이야기했다.
“혼간지에서는 자체적으로 화약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철포의 우위만 믿고 공략을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꽤나 까다로운 상대군.”
쿠보는 마사노부의 말을 들은 뒤, 혀를 찼다.
“화약을 직접 만든다·········. 꽤나 독종이야. 하긴 종교적 신념을 지닌 자는 대체로 그런 편이지.”
마사노부가 듣기에, 지금 쿠보의 말은 화약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렸다.
마사노부는 쿠보의 말을 듣고 갸웃거렸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잊어버렸다.
지금은 저 성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떻게든 주군의 기억에 남을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마사노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굴렸다.
“정 안 되면 정공법으로 가도 좋겠지. 무리할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쿠보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지만, 그대로 따를 수는 없었다.
계책의 큰 틀은 잡았고, 이제 남은 건 세부 사항을 어떻게 짤 것인가만 남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는 자신의 무릎을 쳤다.
공략할 방법. 그것도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손쉽게 공략할 방법이 떠올랐다.
그걸 본 쿠보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법을 찾았나?”
마사노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자신의 주군도 만족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