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종교 전쟁 (4)
야규 무네요시는 선봉장으로서, 무너진 산노마루의 내부에 앞장서서 들어갔다.
“역시······.”
우라가미 가문을 섬기던 가신들의 저택이 즐비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키타군의 병력이 언뜻언뜻 눈에 띄었다.
“이게 시가전이라는 것인가.”
그는 병사들의 진입을 중단시키고, 교두보만 지키도록 했다.
아마 주군에게 미리 전해 듣지 못했더라면, 아무리 무구를 잘 갖추었다 해도 피해가 컸을 것 같았다.
자신의 역할은 구멍이 뚫린 성벽에서 버티는 것. 다행히 적은 가옥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 아군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피해를 강요할 의도인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철포가 아니라 화포에서 뿜어지는 조란환을 상대해야 할 터였다.
“화포를 배치하라.”
오카야마 성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에 속했다. 따라서 성 외부에서 혼마루를 타격하기란 제법 까다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성에서 내성까지의 거리가 화포의 사거리에 비등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산노마루 인근의 교두보에서 조란환으로 내부에 지어진 저택을 때려부수고, 정리가 끝나면 그대로 혼마루를 공략할 예정이었다.
병사들이 산노마루 밖에서 화포를 끌어오는 동안, 무네요시는 잠시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그쪽에는 자신에게 검술을 배워 간 제자, 카츠타케가 있었다.
“제자가 무훈을 세울 수 있게 판을 만들어주는 것도 스승의 역할이겠지.”
오카야마 성은 아사히 강을 등진 구조였다. 천연의 해자가 놓여 있었기에, 그쪽은 성벽이 한 겹으로만 지어져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 한 겹의 성벽과 해자를 무력화시키기만 하면, 방어력이 급감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고니시 군에는 그럴 만한 수단이 충분했다.
아사히 강이 넓다 해도, 화포의 사거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모리 가문은 자기네 수군에서 작은 배들을 대량으로 끌어왔다.
그러니까, 그쪽을 공략하는 사람이 제일의 수훈을 세우기도 쉬울 터였다.
역시 공성을 시작하기 전, 열렸던 군의(軍議)에서도 아사히강 서안에 배치된 부대는 조공 역할을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동안의 부대가 결정타를 먹이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무네요시 스스로는 카츠타케가 주공을 맡도록 추천했다. 제자는 자신이 감히 맡을 수 없다며 사양했지만, 결국 그대로 정해졌다.
자신이 산노마루에 들어왔으니, 이제 주공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터였다.
과연 예상대로 동쪽에서 은은하게 포성이 들려왔다.
* * *
“철저하게 부숴라. 쿠보께서도 화약을 아낌없이 써도 좋다고 하셨다. 적이 숨지 못하도록 평지로 만들어 버려라!”
쾅! 콰쾅! 쾅!
시마 카츠타케의 지시에 따라,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굳건해 보이던 성벽은 허망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고, 천수각 아래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장애물이 사라진 뒤, 모리군 측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찾아왔다.
“사콘, 이제 강을 건너도 될 듯싶소이다.”
“좋습니다. 가시지요.”
카츠타케는 가장 먼저 배에 올랐다.
고니시-모리 연합군이 일제히 강을 건너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는 계속해서 포성이 들렸다. 적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엄호하기 위함이었다.
아군 화포의 엄호에 힘입어, 카츠타케가 이끄는 병력은 무사히 혼마루에 닿았다.
타탕! 탕! 탕!
적군은 성벽에 의지할 수 없게 되자, 잔해에 숨어 반격을 시도했다.
병사들은 습관적으로 엄폐물을 찾아 숨어들었고, 그럴 때마다 우키타군은 더더욱 기세를 올리며 철포를 쏘아 댔다.
그 모습을 본 카츠타케는 호통을 쳤다.
“우리가 입고 있는 갑옷은 철포가 뚫지 못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서 싸워라!”
그렇게 잘 보이는 곳에서 위축된 병사들을 질타했다.
전장에서 표적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지만, 카츠타케는 철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공공연하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과연 적진에서 탄이 비 오듯, 그물로 덮듯 쏟아졌다. 병사들을 독려하던 장수는 그 한복판에서 몽땅 얻어맞았다.
“자, 장군!”
부장 중 몇 명이 달려왔다. 중상을 입었을 상관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카츠타케는 씩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보아라! 멀쩡하지 않느냐?”
과연 병사들이 보기에도, 그의 모습은 허장성세가 아니라 정말로 온전한 상태였다.
휘하 부대의 사기가 오르는 것을 본, 카츠타케는 자신의 칼을 지휘봉삼아 휘둘렀다.
“나를 따르라!”
병졸들은 함성으로 화답하며 그의 뒤를 쫓았다.
* * *
우키타 나오이에는 허깨비를 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오니의 조화라도 되는 것인지, 철포에 수십 번을 얻어맞고도 적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사람이 철포를 맞고도 무사할 수가 있어!”
아군이 쏘는 철포는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이 쏘는 철포도 그렇지는 않았다.
저쪽에서 폭음이 들릴 때마다, 부하들이 쓰러지곤 했다.
탕! 탕! 탕!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모두 칼을 뽑아라! 병졸들은 철포를 버리고, 창을 들어라!”
아무리 철포가 먹히지 않은들, 칼까지 막지는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우키타 나오이에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적은 전부 철포를 들고 있다. 장전을 마치기 전에 다가가서 모조리 베어 버려라!”
철포의 일제사격이 끝나면,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단병접전이었다. 하마터면 오다 노부나가가 알려 준 신형 철포에 취해서, 그 사실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정신만 제대로 차리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나오이에를 따르는 무사들이 칼을 빼들고 달려나갔다. 철포를 장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여유는 넉넉했다. 가까이 붙었을 때, 철포는 일개 쇠몽둥이에 불과할 터. 그렇다면 창칼의 압승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저, 저게 뭐란 말이냐!”
철포로 무장한 줄 알았던 자들이, 죄다 창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고니시군은 모두가 철포를 들고 있었다.
아니, 저건 철포가 확실했다. 그런데 그 끝에 날붙이가 달린 것 같았다.
“설마 철포에 창날을 꽂은 것인가!”
물론 고니시군 입장에서 그건 맞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총검의 형태는 창날 뒤에 손잡이가 달린 모습이라, 그렇게 착각해도 별 의미가 없을 터였다. 기능도 창의 역할을 맡게끔 설계된 물건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철포 끝에 날을 끼운 고니시군은 무력하게 당해 주지 않았다. 맨 앞열의 병사들이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뒤에서 부지런히 장전을 마쳤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순간, 다시 철포가 불을 뿜었다.
요란한 폭음과 동시에, 우키타군이 우수수 쓰려졌다.
더 이상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곁에 있던 부하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무사 하나가 후퇴를 진언했다.
“주군, 후일을 기약하셔야 합니다!”
“무슨 수로? 빠져나갈 곳이 없지 않느냐?”
“아직 니노마루는 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하인으로 변복하고, 기다렸다 빠져나가시면 됩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게 마련.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잠깐의 수모쯤은 참을 만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다행스럽게도, 그의 부하들은 충직한 편이었다. 모두가 주군의 뒤를 보호하겠다고 남았다. 하지만 우키타 나오이에는 그중 하나를 지목했다.
“너는 나를 따라오도록.”
방금 도주를 진언했던 자였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자신도 나름대로 책모를 부린다 자부하는 편이었는데, 이자 역시 생각이 제법 유연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군된 자로서, 중용할 부하의 이름은 알아야 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소인, 도토야 조세이(魚屋如清 어옥여청)이라 합니다.”
* * *
카츠타케는 달려드는 적병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하지만 그중에 우키타 나오이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스승님께 무예를 가르침 받은 이래, 자신의 칼솜씨만큼은 천하에 손꼽을 정도라 자부해왔다.
하지만 저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달려들고 있었다.
하나가 방어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칼을 휘둘러댔다. 그걸 베어 넘기면, 옆에서 또 다른 자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덤볐다.
마지막 한 사람을 마저 쓰러트렸을 때, 여전히 우키타 나오이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은 나를 상대하지 못한다! 네 녀석들의 대장을 나오라 해라!”
카츠타케는 아직 죽지 않은 무사 하나를 붙잡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는 적장을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크큭······. 주군께서는 이미 성을 떠나셨다. 네 놈들은 결코 그분을 잡지 못할 것이다.”
“쳇.”
우키타 나오이에는 책모로 승승장구한 효웅이었다. 부하들을 버리고 몸을 뺐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아군의 첩보에 의하면, 그는 분명히 오카야마 성 안에 있었다. 지금까지 이가닌자가 가져온 정보가 틀린 적은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터였다.
“나오이에가 도망쳤다! 아직 성 안에 있을 것이니, 샅샅이 뒤져라!”
하지만 혼마루 내에서 우키타 나오이에로 의심되는 포로는 잡힌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신 중에도 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혼마루 밖으로 도망간 모양이군.”
어차피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혼마루는 카츠타케 자신이 이끄는 부대가 장악했고, 니노마루 밖은 다른 아군이 물샐틈없이 포위한 상태. 결국 독안에 든 쥐에 불과했다.
* * *
우키타 나오이에는 자신의 옛 저택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아들도 평민으로 꾸미게 했다.
하지만 일이 쉽게 돌아가지는 않는 모양새였다. 이미 니노마루도 돌파당했는지, 주변에 고니시군의 함성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주군, 서두르셔야 합니다.”
조세이가 그를 독촉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저택의 문이 부서지고, 적병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아무래도 끝인 모양이군.”
* * *
“이자가 하극상을 벌인 나오이에가 맞습니다.”
우라가미 무네카게는 끌려온 자를 손가락질하며 입을 열었다.
그를 끌고 온 시마 사콘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며, 땀을 닦아냈다.
“수고가 많았네.”
“다른 이들이 없었다면, 세우지 못했을 공입니다.”
나는 사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무네카게에게 돌아가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처결은 우라가미 공이 알아서 하시오. 나는 곧바로 회군해야 하니, 여기의 일은 모리 공과 의논하시구려.”
우키타 나오이에를 잡았으니 여기서 내 볼일은 끝났다.
이미 모리 테루모토는 비젠에서 가톨릭 포교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영지에서는 종교와 관련한 잡음이 들리지 않았으니,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아서 느긋하게 영토 확장을 축하해주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였다.
방금 전령이 와서 전하길, 키타바타케 토모노리가 기어이 군을 일으켰다고 했다. 지금 내가 군을 이끌고 나왔으니, 기회를 엿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