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종교 전쟁 (3)
내가 우라가미 무네카게를 받아들이고 비젠을 칠 준비를 갖추는 동안, 우키타 나오이에 역시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은 듯했다.
“코가닌자 몇이 오카야마 성을 드나들었습니다. 그 직후에 대장장이들을 모으고 철포를 만들게 한다는데, 그 형태와 기능이 아군이 사용하는 나팔총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이치로가 가져온 첩보였다. 닌자들을 시켜, 미리 나오이에를 감시하게 한 보람이 있었다.
코가닌자라면 거의 대부분이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고 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 산하 수군중(水軍衆)인 구키 수군을 상대했을 때, 그들은 이미 나팔총과 흡사한 무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신무기의 우위를 가져다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듯했다.
“아무래도 아군의 손실이 커질 것 같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쿄타로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특히 그 위력을 정면에서 맛본 적이 있는, 시마 사콘이 가장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모리군을 앞세우면 좀 낫지 않을까?”
스즈키 시게히데는 규슈에 다녀올 적의 일을 떠올린 듯했다. 당시 아군으로 붙었던 류조지 가문의 병력을 총알받이 겸 앞세운 적이 있으니, 그때처럼 하자는 이야기였다.
병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모리 가문에게 신세를 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힘든 역할을 떠넘길 수는 없어.”
오다 노부나가를 협공할 때, 모리 테루모토는 단바를 넘어서 교토로 진격해주었다.
그리고 하필 기다리고 있던 게 하시바 히데요시였기 때문에, 모리 가문의 피해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만약 하시바 히데요시가 자신의 병력을 예비대로 휘두를 수 있었다면, 오다 노부나가를 축출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모리 가문은 신의를 충실히 지켜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인명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겠군요.”
“원래 전쟁이 피보는 일이 아닌가.”
야규 무네요시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전황에 관한 예측을 하나씩 보탰다.
물론 적절한 수단이 없다면 창 대 창의 대결인 셈이니 피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비 측은 성이든 목책이든 여타 엄폐물에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군의 피해는 더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나팔총을 이미 사용했는데, 아무 대책도 없이 하던 대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팔총에 얻어맞는 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궤짝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내용물을 꺼내보이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언뜻 보면 도우(胴 동, 일본식 갑옷에서 배와 가슴을 가리는 부분)처럼 보이긴 한데, 철이나 나무가 아니구려.”
“면인 것 같습니다.”
“이쪽은 비단이군요.”
모두가 한마디씩 했다. 처음 상자에 들어있던 것의 재질은 면이었고, 그 다음 상자에서는 비단으로 된 것이 나왔다.
비단이 들어 있는 상자를 보았을 때, 무사 출신 장수들은 눈치를 챈 기색이었다.
“음, 비단이 화살도 막기는 합니다마는······.”
옛 속담 중에 ‘강한 화살도 부드러운 비단을 뚫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중국에서 온 것이었지만.
삼국지에서도 비단전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조조가 관우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포상으로 내걸어서 휘하 장수들이 다투는 장면도 있었다.
단순히 화려해서가 아니라, 화살을 막는 수단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최초의 방탄복도 실크를 수십 장 겹쳐서 만들어냈다고 하니, 비단이란 전통적인 투사체 방호수단이었던 것 같았다.
“바로 보셨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모두 총탄을 막을 갑옷들입니다. 전신을 보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입히기에는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더군요.”
면이나 비단이 철에 비해서 가볍다고는 하지만, 여러 장 겹치면 무겁고 둔해지기는 매한가지다. 특히 총알을 막을 정도까지 가려면, 그 정도가 무척이나 심해졌다.
“그래서 배갑 형식에, 이건 투구에 두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산탄총은 면을 때리는 물건이다. 그리고 몸통을 보호한다 해도, 얼굴 역시 급소. 아무리 얼굴을 맞추기가 어렵다지만, 그건 일반적인 철포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었던 면제배갑보다도 안면부 방호에 더욱 신경 쓴 형상이었다.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시마 사콘이었다.
“비단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목면도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물론일세.”
“면이라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갑옷 못지 않게 무겁군요.”
“대신 방호력은 충분하더군. 나팔총의 산탄을 막는 건, 목면 열장 내외로도 가능했지. 하지만 흔히 쓰는 철포는 스무 장을 겹쳐야 했네.”
물론 투구에 걸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은 산탄 방호까지만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가누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야규 무네요시가 손을 들어 발언을 청했다.
“설령 철포를 막는다 해도, 여름에는 상당히 더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물이라도 먹으면······.”
목화는 솜이다. 그리고 그 솜을 풀어서 실로 뽑아낸 게 면사고, 당연히 수분을 머금는 특성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무네요시의 지적은 타당했다. 아주 중요한 것만 빼면.
“비가 올 때라면 굳이 쓸 필요가 있겠나? 그땐 철포도 제대로 쓰기 힘든데.”
“아, 그렇군요.”
대충 필요한 것들은 모두 설명했다. 하지만 정말로 방탄 효과가 있느냐에 관해서는 모두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스즈키 시게히데가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쉽게 믿기진 않는데.”
“그렇잖아도 직접 보여줄 참이었어.”
그들에게 실제 효용을 보여주기 위해서, 훈련장으로 나갔다.
처음은 면제배갑에 대한 시험이었다. 먼저 허수아비에 걸치고, 종래부터 쓰던 철포를 쏘았다.
“호오······. 멍은 좀 들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겠습니다.”
야규 무네요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고, 모두들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안면부를 보호해주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숙련된 사수조차 정확히 머리를 맞추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이야기하자, 모두가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나팔총은 막겠구려.”
“그렇습니다.”
히사히데의 말대로, 다음 시험은 나팔총에 대한 방호능력이었다.
면으로 덮이지 않은 부위에는 크고 작은 탄흔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이미 포기한 영역이었고, 기대했던 방호능력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과연 이만하면 충분할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비단으로 만든 걸 따로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성능은 그 쪽이 훨씬 더 좋을 걸세.”
비단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마침 류조지를 통해서 중국의 생사가 많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 전부에게 입힐 정도는 아니더라도, 소부대 지휘관급이나 특수한 역할을 맡길 부대에게 지급할 정도로는 생산이 가능했다.
“소부대 이상을 이끄는 지휘관이나 선봉을 맡을 부대는 모두 금제배갑을 지급할 겁니다.”
* * *
나와 모리 테루모토는 우키타 나오이에가 있는 오카야마 성 밖에 진을 쳤다.
이쪽에는 원래 주인인 우라가미 무네카게도 있었고, 우월한 수군 전력을 적극 활용해서 최소한의 전투로 끝내려 했다.
“우키타 나오이에는 기어이 항복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우리는 무네카게를 앞세워서 투항을 권고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나오이에 본인이 백기를 들고 나오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분조차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역시 성 내부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그렇다면 성벽을 우선 때려 부수고 시작하지요.”
내가 쓰는 화포는 조선의 양식을 상당부분 따라한 것이었다. 구조가 단순하고, 무엇보다도 아직 남만인들이 화포에 관한 기술을 잘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조금 더 구슬리면 줄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쪽의 돈과 노력으로 얻을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총통으로도 충분했다.
화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성벽이 하나둘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성문이 박살났을 때, 모리 테루모토가 총공격을 제안했다.
“이제 병사들을 밀어 넣읍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그를 말렸다.
“지금 밀고 들어가도 피해가 클 것이외다. 아예 성벽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버립시다.”
“하지만 화약이 꽤 비싸지 않습니까.”
모리 가문의 영지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이와미 은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화약은 비싼 물건이었고, 폭음이 들릴 때마다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왕 선심을 쓰는 김에 아주 확실하게 써주자면, 아예 성을 철거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은광만 해도, 쓰시마에, 사도 섬이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했다. 그리고 조선과의 교역도 상당한 돈줄이었기에 가능한 사치라고 할 수 있었다.
성벽이 깨져나갈 때마다 옆에서 같이 보고 있는 무네카게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어차피 성은 여기 말고도 많았다. 게다가 모리 가문에 귀순하기로 한 자가 꼴에 자기 성을 아끼는 것도 우스워보였다.
물론 오카야마 성은 나름대로 걸작이라 할만했다.
아사히 강을 끼고 삼중으로 둘러쳐진 구조는 제법 견고하게 보였다. 아마 이정도면 난공불락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화포에서 불이 뿜어질 때마다, 성벽은 무력하게 깨지고 부서졌다.
모리 테루모토조차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치려면 꽤 품이 많이 들겠습니다.”
“굳이 고칠 필요야 있겠소이까.”
“그도 그렇군요.”
우라가미 무네카게가 딴 생각을 품지 않으려면, 테루모토 입장에서도 아주 철저히 박살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아마 자신의 성에도 비쳐볼 터. 굳건한 동맹은 적절한 호의와 압력이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산노마루(三の丸 삼환 가장 바깥쪽의 성곽)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박살난 뒤에, 총공격을 명했다.
모리군은 북쪽에서, 내 휘하 병력은 남쪽에서 치고 들어갔다.
보통 성문이 뚫리고 성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수비측은 항복을 생각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키타군 역시 나팔총을 확보하고 있었고, 지금 무너진 성벽도 엄폐물로서는 기능하는 듯했다.
화살과 종래의 철포로 저항하던 적진에서 약간 더 큰 폭음이 들려왔다.
“이것이 나팔총이라는 것입니까?”
“아마 그런 듯하오.”
모리 테루모토에게도 미리 언질을 준 상태였다. 그리고 모리군 전부는 아니더라도, 선봉대에게는 방탄복을 입혀놓았다.
수뇌부는 모두 본영에 누대를 지어서 전투가 벌어지는 양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군은 나팔총에 얻어맞고도 반격이 가능했지만, 적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단 한 번의 차이가 전황을 굳혀갔다.
“아군은 산노마루를 넘어섰습니다.”
전령이 외성을 점령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