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천도 遷都 (3)
“사돈의 말을 듣길 잘했구려.”
“제가 고쿠시의 현명함에 기댔을 뿐입니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가 천도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다이묘라면 누구나 불쾌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싫어할 자들은 따로 있었다.
이세 고쿠시(伊勢国司 이세국사, 이세국의 다이묘 겸 귀족)인 토모노리가 바로 그러했다.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教 북전구교). 그는 한 가지로 분류하기 어려운 자였다.
일국을 지배하는 무가이자, 이세 신궁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가. 원래는 노부나가에게 쫓겨나고 암살당할 운명이었으나, 오와리의 다이묘에게 동조하는 최대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기나이에서 도망나왔을 때, 그는 원래 사돈이라도 죄를 엄히 물으려 했다. 하지만 쇼군을 직접 죽인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결했다는 점을 참작해 살려주었다.
- 저를 죽이시면, 천하의 질서를 붙잡을 자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 고니시 유키나가, 그자를 지켜보셔야 합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 그가 있단 말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토모노리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볼수록 사돈의 말이 맞아 들어가는 걸 보았다.
덴노의 위신이 바로 서는 일은 반길 만한 것이었으나, 그 주체는 공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근본도 알 수 없는 상인이 덴노를 끼고 각지의 신관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세 신궁을 맡은 신관에게도 사자가 찾아갔었고, 토모노리는 이세의 고쿠시로서 버릇없는 자의 심부름꾼을 매질해 내쫓았다.
그리고 지금, 기요스 성으로 찾아와 노부나가와 앞날을 의논하려 했다.
“사자를 내쫓으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노부나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세 신궁의 신관은 어차피 고쿠시의 사람이 아닙니까. 차라리 덴노의 곁에서 유키나가, 그자를 훼방하게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을지도. 하지만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 어찌 그런 꼴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나.”
“고쿠시의 뜻도 옳습니다.”
노부나가의 아쉬움은 실리를 향했다. 하지만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귀족과 무사들의 뜻을 모으자면, 토모노리의 방침도 나쁘지는 않게 보였다.
“지금이라도 그 미천한 놈을 토벌할 의군을 모으는 게 낫지 않겠나?”
“하지만 폐하께서 그의 손에 들어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는 야심만만한 자였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사카이 쿠보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도 고노에 사키히사가 찾아왔다.
- 상락해서 그 미천한 상인 놈을 토벌해 주시오!
이미 롯카쿠 요시하루는 고쇼로 향했다가 물러났다고 했다. 그때 노부나가는 자세한 전말을 캐물었다.
- 숫적으로 불리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리 맥없이 물러났던 겁니까?
- 그가 폐하를 홀렸소이다.
양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덴노가 사카이 쿠보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했다. 노부나가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는 함부로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섣불리 건드려서는 더더욱 안 될 터였다.
그는 자신의 사돈에게 그런 취지를 설명했다.
“고쿠시,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자중하시지요.”
하지만 정작 초조해하는 건 그 자신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했건만, 결국 유키나가에게 쫓겨나온 셈이 아니던가.
토모나리가 돌아간 뒤, 그는 명상을 해야겠다면서 세이슈지(政秀寺 정수사)로 향했다.
* * *
“다이조다이진(태정대신)은 사사로이 군사를 움직여 폐하의 안위를 위협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임을 버리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소이다. 그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할 것이오.”
나는 덴노의 앞에 서서 고노에 사키히사의 처벌을 선언했다.
어전 회의에 참석한 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기만 할 뿐, 그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외부의 다이묘와 연계하여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나마 덴노가 위신을 세우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 터였다. 혹은 어떤 생각조차 할 깜냥이 되지 못하는, 무능한 귀족에 불과한 자도 보이는 듯했다.
장내는 여전히 고요한 가운데,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태정관은 지금까지 폐하를 받들어 국무를 도맡아 본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치세를 어지럽히기만 하였소. 이에 따라 태정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바, 폐지하고 신기관을 부활시킬 것이오.”
아주 새로운 통치기구를 만든다고 한다면, 상당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입맛에 맞는 전례가 하나 존재했다.
신기관. 일본의 율령제에 포함된 기구였다. 하지만 조정이 궁핍해짐에 따라, 아예 관리의 임명이 되지 않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먼 훗날, 메이지 덴노 대에 가서나 부활하게 될 터였다. 그것도 일본인의 정신을 세뇌하는 수단으로서.
하지만 태정관의 폐지는 이미 결정 났고, 신기관 단독으로 폭주할 가능성은 극히 미미했다. 게다가 그 고삐를 움켜쥐고 있는 자는 바로 나였다.
내가 태정관의 폐지를 선언하자, 도열해 있는 대신들은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봐야 용기 있게 나서는 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맨 앞에 있던 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태정관에 속했던 신하들은 어찌되는 것이오이까?”
사이온지 킨토모(西園寺公朝 서원사공조)라고 했던가. 그가 서 있던 자리는 사다이진(左大臣 좌대신, 태정관의 이인자)의 반열이었다.
이치로의 조사에 의하면, 그냥 무능한 귀족가의 도련님 그 자체인 자에 불과했다.
눈에는 불안감과 탐욕스러움이 번들거리는 것이, 자기 자리에 대한 걱정으로 나선 것처럼 보였다.
“원하는 자는 품계에 따라 신기관에서 적절한 관직으로 옮길 것이오. 허나 그렇지 않은 자는 그대로 사임시킬 수밖에 없소이다.”
어차피 하는 일도 없는 자들이었다. 조정이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다이묘가 난립할 수도 없었을 터. 하지만 직함에 대한 욕심은 있는지, 참석자 대부분이 상당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서로에게 신기관이 뭐냐고 속삭이는 자들도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을 듯했다. 슬쩍 덴노의 눈치를 보니, 역시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시 앞으로 나가서, 신하들에게 마지막 확인을 받았다.
“여기에 이견이 있는 자는 없소이까?”
누군가는 나를 노려보기만 했고, 누군가는 눈을 피했다. 하지만 역시 나서는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들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겠소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폐회를 선언하고 돌아왔다.
* * *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신관들의 소집을 모두 끝마쳤다고 했다.
“몇몇 신사나 신궁에서는 참여를 거부했소이다.”
“제의에 관한 의견이나 받자고 모은 것이니까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덴노는 형식을 갖춰 제사나 지내게 하면 족할 터였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히사히데는 몇몇 신관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세 신궁에서는 아예 사자를 매질해서 내쫓았소이다.”
“자존심이 상했나 보군요.”
“그럴 수도 있겠소만, 이세 고쿠시의 뒷배가 있었다고도 하오.”
히사히데는 이세 고쿠시의 내력에 관해 짤막하게 설명했다. 공가에서 출발한 귀족 가문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만한 자였다.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인척이라면 더더욱 내게 우호적일 수는 없었다.
“모두를 끌고 갈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이렇게 색을 뚜렷하게 나타내 주니, 참으로 솔직한 자가 아닙니까. 주의만 합시다.”
히사히데는 상당히 호방한 편이었지만, 이런 신앙의 영역은 꽤나 조심스러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명쾌히 정리해서, 그의 걱정을 일축하자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신관들의 의견을 취합해 온 문서를 내놓았다.
몇 가지는 미리 윤곽을 정해 놓았고, 세부적인 것들을 법식에 맞게 구성하라고 한 것인데, 꽤나 내용이 방대해서 골칫거리였다.
처음에는 프로이스 신부에게 조언을 구해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바티칸 시국과 16세기의 교황령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지금은 교황조차도 교황령 내에서는 세속 영주인 상태. 오히려 예수회도 적극적으로 세속 지배자를 포섭하는 형식으로 포교 중인만큼, 상담역으로서는 부적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떤 식으로 할지는 온전히 내가 정해야만 했다.
달마다 온갖 의례로 정신없게 만들면서 떠받들어 주고, 현실정치와는 유리시킨다. 이게 내 구상이었다.
비용이라고 해 봐야, 내가 굴리는 예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그 정도를 덴노의 입에 물려주는 건 비용이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히사히데가 신관들에게서 취합해 온 내용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채워져 있었다.
“꼭 사카이 밖을 나가야만 한답니까?”
“성지는 반드시 참배해야 한다고 하더이다.”
기나이 내에 있는 정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아예 이세 신궁이나, 스루가오카하치만 신궁 같은 곳은 너무 멀었다. 게다가 적대세력의 한복판이기도 했고.
나는 혀를 차며, 몇 가지를 첨삭한 뒤 돌려주었다.
“성지라는 건 알겠지만, 그 어디에 영험함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정말로 그들의 말이 옳다면, 어째서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이라고 합니까?”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살짝 웃어넘기고, 그대로 전해 주겠다고 하며 다시 나갔다. 며칠 뒤, 신관들은 내용을 눈치껏 알아서 잘 바꿔왔다.
며칠 후, 완벽하게 만들어진 일정이 만들어졌고, 나는 그걸 덴노에게 가져갔다.
“윤허하노라.”
오오기마치 덴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날로 사카이 신궁에서는 제사를 준비하게 했다.
* * *
천도가 끝난 뒤, 도시는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정말 깔끔하기만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와지 섬으로 옮겨갔지만, 지금은 그 이상이었다.
덴노에게 거슬릴 만한 것들을 몽땅 이전하면서, 도시에서는 활기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좋게 말하면 선계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자면 황량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떠받들 필요가 있었습니까?”
시정 봉행인 베드로는 사카이를 덴노에게 비워 주는 모양새가 불만스러운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모처럼 루이스 데 알메이다와도 일치하는 듯했다.
“물론 쿠보께서 다 생각이 있으셔서 하신 일이겠습니다만, 결국 덴노라는 것도 무당이 아닌지요?”
“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걸세. 그보다도 자네가 베드로와 같이 온 것에 이유가 있는 듯한데······.”
두 사람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시정에 관한 건, 담당 봉행인 베드로가 맡는다. 그 외에도 에고슈 자체를 상인들의 친목회로 묶어 버리면서, 그가 거상들의 입장을 전달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 일 이후로, 하층민에 관한 창구는 주로 알메이다가 담당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두 집단 사이에 분쟁이, 그것도 하성군조차도 판결을 내리지 못할 만한 문젯거리가 생겼을 때에는, 날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