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천도 遷都 (1)
날이 밝자, 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대동하고 고쇼로 향했다.
쇼군이 죽어버린 이상, 내게 명분을 제공할 가장 큰 권위가 거기에 있었다.
고쇼(御所). 이 나라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덴노의 거처다.
하지만 그런 장소라고 보기에는, 니조성은커녕 사카이의 내 저택보다도 볼품없었다. 부지가 넓고 전각 또한 광대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송껍질로 씌워진 지붕은 관리가 되지 않아 거의 벗겨진 상태였고, 궁인들은 비쩍 곯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공가로 보이는 자는 없는 듯했다. 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돌아보며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조정의 신하들은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대부분은 도망간 모양이고, 몇몇 대신들만이 덴노를 받들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다들 대전(大殿)에 있겠군요.”
마츠나가는 입가에 살짝 비웃음을 흘리며 다른 곳을 지목했다.
“대전은 버려진 지도 오래되었소.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오.”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정궁이라는 것인지, 덴노를 알현하려니 제법 오래 걸어야 했다.
원래 생활영역, 그러니까 경복궁으로 치면 강녕전에 해당하는 전각도 제법 컸다. 일체의 의례도 그곳에서 행해진다고 했다.
그래봐야 초라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한 대신이 나와서 막아섰다.
“여기는 폐하께서 계신 곳이다. 예를 갖춰라!”
귀티나는 얼굴에, 깨끗한 관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제법 높은 대신인 듯했다. 옆에서 히사히데가 다이진(大臣 대신, 정1위 태정대신)인 고노에 사키히사라고 귀띔해 주었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가 알현코자 왔소이다. 비키시오.”
“그대는 고작해야 니시이치노스케가 아닌가! 마땅히 정해진 법식에 따라야 할 것이거늘, 어찌 이리도 무례한가?”
사카이 쿠보와 니시이치노스케. 둘 다 내 직함이었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는 명백했다.
일본의 율령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전자는 있을 수조차 없는 임시직이다. 그리고 후자는 열 단계의 정종상하(正從上下) 중에서 무척이나 낮은 품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상대는 관위 중 으뜸.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다이진은 제법 위세를 부리려 했지만, 헛된 발버둥에 불과했다. 나나 히사히데나, 모두 의미 없는 전례 따위를 존중할 의향은 없었다.
이미 고쇼 안팎에는 내가 이끌고 온 철포수들이 깔려 있었고, 여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철컥.
다이진이라는 자는 병사들이 자신에게 철포를 겨누고, 용두를 뒤로 젖힌 다음에야 마지못해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저자도 원래대로라면 노부나가와 친했던가. 게다가 히데요시와도.
이치로에게 감시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덴노와 마주했다.
어좌에 앉은 자는 상당히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오기마치 덴노. 아마 역대 덴노 중에서는 불우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자였다.
그나마 말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비호 아래 권위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리라고 장담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물론 이 사람은 그런 걸 알 수조차 없겠지만.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 현신(現身)이옵니다.”
원래 덴노를 알현할 때에는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지켜야 했다. 등을 보여선 안 되고, 먼저 입을 열어도 안 되고, 그 외 기타 여러 금지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먼저 말을 하고, 눈을 마주쳤다.
덴노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듯한 기색이었다. 그래봐야 매관매직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주제에 위엄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대는 아시카가 일족이 아닌 걸로 알고 있거늘, 어찌하여 쿠보를 자처하는가.”
자기 딴에는 나름대로 기선 제압을 하겠다고 트집을 잡아왔다.
“소신은 죽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인정받은 쿠보이오니, 문제는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쇼군직을 탐내지 않는 것인가. 무엇을 원하기에 짐을 알현하러 온 것인가?”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듯싶었다.
덴노는 내가 힘으로 쇼군 자리를 뺏으려고 한다고 여긴 듯했다.
원래라면 그런 건 상상조차 불가능한 이야기다.
일본은 지금은 물론이고, 나중에 메이지 유신까지 가서도 가격(家格)을 따지는 지독한 사회구조였다.
오섭가(五攝家)에 청화가(清華家), 그리고 그 밑으로 줄줄이 벼슬의 출발점과 한계가 정해진 가문들로 구성된, 신라의 골품제 이상의 엄격하고 틀에 박힌 계급사회.
아무리 내가 미요시 가문을 내세운다 해도, 쇼군직을 차지한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본인도 덴노가 된 지 삼 년이 되도록 즉위식조차 올리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을 터였다. 배가 차야 예의범절을 안다고 했으니, 덴노라고 거기서 크게 다르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뒤따라온 히사히데에게 음식과 의복을 우선 풍족히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다시 덴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오니, 내일 다시 뵙겠나이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고쇼를 찾았다. 이번에는 몇몇 신하들이 되돌아온 듯했으나, 그들 중에서 내 행보를 지적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덴노도 다소 기운을 차린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대의 정성은 잘 받았노라. 허나, 그대가 충심만으로 이리하지는 않았을 터인즉. 무엇을 원하는가?”
“소신은 천도를 원하나이다.”
“천도?”
덴노로서는 무척이나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히사히데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덴노의 옆에 있던 고노에 사키히사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반발에 나섰다.
“쿠보는 대체 무슨 망발을 하는가! 천도라니······.”
하지만 그 의기는 별것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지금 고쇼는 내 명령을 듣는 군사들로 가득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의중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형식을 그럭저럭 괜찮게 꾸미기 위해서, 덴노가 혹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소신이 천하를 지켜본 바, 교토는 협소하여 덴노께서 지내실 만한 곳이 아니라 생각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짐을 어디로 옮기려 하는가?”
덴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했다.
“폐하께오서는 16대 덴노이신 닌토쿠 덴노에 대해 아시는지요?”
“모를 리가 있겠는가. 짐도 그분의 뒤를 이은 몸이거늘······.”
내가 말한 자는 지금의 덴노처럼 허수아비가 아닌, 진짜 일본의 지배자였다.
살아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으면서도, 성군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죽어서도 그의 능은 다시 지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다.
오오기마치 덴노로서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대상일 터였다.
“그분의 능침 가까운 곳으로 모시고, 덴노의 위엄을 높이려 하나이다.”
이미 나는 충분한 물자를 공급했다. 그리고 상대를 생각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이자, 덴노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그 자리에서 천도가 결정되었다.
* * *
“참으로 대단하시오. 우리가 여기 눌러앉을 수 없으니, 폐하를 통째로 옮기겠다니. 지난번에 말한 게 그것이었소?”
히사히데는 돌아오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로 조심해야 할 때였다.
“지금은 교토에 힘의 공백이 생겨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소문이 퍼지면 모두가 막으려 할 것이니, 신속하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약간의 천운이 도와주긴 했다. 하필 그 자리에서 노송껍질 조각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준 덕에, 반대의 목소리가 쑥 들어가 버렸다.
궁궐 보수조차 할 수 없는 덴노.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였던가. 물론 덴노를 직접 비웃을 수는 없으니, 그 자리에 참석했던 대신들을 꼬집었던 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그때 이치로가 뛰어들어와서 급보를 알렸다.
“주인님, 지금 롯카쿠 가문이 군세를 이끌고 오는 중이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가문들 역시 군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고노에 사키히사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치로의 보고도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이진이 급하게 서신을 보냈던 모양입니다.”
“여기로 오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롯카쿠는 내일쯤이면 도착할 겁니다.”
규모는 약 일천 정도라고 했다. 그 정도면 지금 교토에 주둔하고 있는 내 병력과 같은 숫자였다.
그리고 다른 가문들도 군대를 소집하고는 있지만,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도 덴노를 끌고 가는 게 어떻겠소?”
“그랬다간 정말로 공적이 되고 맙니다. 적어도 최소한의 형식은 지켜야겠지요.”
다행히 같은 숫자끼리의 교전이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급히 고쇼로 들어가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롯카쿠 가문의 군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 - -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롯카쿠 가문의 주인, 요시하루가 직접 일천의 무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 밤낮없이 달려온 것 같았다.
“역적 고니시는 나오너라!”
“누구를 역적이라 하는가?”
“폐하를 억류하려는 자가 역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나야말로 폐하께 도움을 드렸고, 위신을 되찾게 해드렸다. 오히려 외면한 네놈들이 역적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가려 뽑은 포수에게 요시하루를 저격하도록 눈짓을 보냈다.
타당!
의기도 당당하게 나를 성토하려 들었던 요시하루는 그 자리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목숨은 건진 듯했다.
하지만 기세는 이쪽으로 흘렀고, 상대는 병력을 약간 뒤로 물렸다.
아무래도 태세를 가다듬은 뒤, 다시 공격을 가해 올 것 같았다.
“쿠보, 지금 판세는 유리하지만,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것이외다.”
“물론입니다. 잠시 폐하를 알현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덴노가 궁문으로 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리 소란스러운가?”
나는 전말을 고했다.
롯카쿠 요시하루가 천도를 방해하러 왔고, 거기에 맞서느라 부득이하게 철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덴노가 얼굴을 붉혔다.
“아직 공표도 하지 않은 일이거늘, 어찌하여 짐의 뜻을 알아주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분노라기보다는 체념 섞인 한탄에 가까웠다. 평생을 허수아비로 지내다 못해, 거의 외면당하다시피 했으니, 무사들이 무척이나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덴노에게 부드럽게 제안을 꺼냈다.
“폐하께서 한 마디만 하시면, 저들은 물러갈 것이옵니다.”
내 말을 듣고도 그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과연 자신의 말이 통할지 의심스러워하는 듯했다.
사람이 억눌려 지내면 이렇게까지 위축이 되는가 싶어,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덴노의 손을 붙잡아 궁문 밖으로 나갔다.
“여기 폐하께서 나오셨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저쪽에서도 두 사람이 나왔다. 고노에 사키히사와 롯카쿠 요시하루. 이번 사건의 주동자들이었다.
덴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사키히사가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교토를 떠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그는 군대까지 끌고 왔으니,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덴노도 살짝 당황했는지, 다시 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라나마 상대를 꾸짖었다.
“다이진은 어찌하여 짐을 거스르는가? 천도는 짐의 뜻이었노라. 당장 군대를 물리도록 하라.”
“폐, 폐하······.”
“당장 물러가라!”
비록 위엄은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미 고노에 사키히사와 롯카쿠 요시하루가 무릎을 꿇었고, 덴노는 그들을 내쳤다. 아주 훌륭한 그림이 나왔다.
나는 병사들을 앞으로 전진시켰고, 상대는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아예 달아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