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회천 回天 (10)
이이모리 산성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쇼군이 죽어 버렸으니, 아케치군으로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주장인 미츠히데부터가 눈이 뒤집힌 채로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
“역적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라!”
창칼이 맞부딪치고, 콩 볶는 듯한 철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당황한 마츠나가 히사히데조차도 겨우 자기가 이끌고 온 철포대를 진정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이, 이런······. 자리를 지켜라!
저마다의 속셈을 품고 참가했던 다이묘들 역시, 이 순간만큼은 한뜻으로 노부나가의 군대를 공격했다.
- 와아아아!!
하타모토들 중에서도 일부가 돌아서려 했지만, 일부는 난전 중에 어느 귀신이 잡아갔는지도 모르게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이이모리 산성은 한때 미요시 나가요시가 거성으로 삼았을 정도로 방어에 유리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의미가 없었다.
특히 기나이에서 미요시 가문을 섬겼던 무사들은 어디가 공격하기 쉽고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야말로 미츠히데만큼이나 복수심을 불태웠다.
“사쿄다이부의 원수를 갚아라!”
“성문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쇼군의 자결로 노부나가군의 사기는 다소 위축된 상태. 거기에 옛 미요시 휘하의 무사들이 죽기로 성벽을 기어오르자, 금방 성문이 열렸다.
“어쩔 수 없군. 화약고에 불을 붙여라. 혼란을 틈타 빠져나간다.”
노부나가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최후의 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내성까지 침입을 허용할 터. 그땐 정말로 도망치기조차 힘들어질 게 뻔했다.
콰아앙!!! 쾅! 콰쾅! 쾅!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 요란함에는 눈이 뒤집힌 자들조차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가 달아날 마지막 기회였다.
아케치 군은 노부나가가 도망치는 줄도 모르고, 천수각으로 몰려들었다.
“노부나가를 잡아라!”
하지만 도망친 자를 끄집어 낼 수는 없는 노릇. 찾다 지친 아케치군은 천수각에 불을 놓았다.
오다 노부나가는 불타는 이이모리 산성을 뒤로 하고, 가까스로 몸을 빼냈다. 그의 곁에 있는 자들은 오다 가문의 가신들과 일백의 노병이 전부였다.
“일단 저기에 숨도록 하자.”
노부나가가 가리킨 곳은 이이모리 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이와후네 신사였다.
말단 병졸에서부터 측근 중 필두라 할 수 있는 시바타 카츠이에까지, 모두가 머뭇거렸지만, 노부나가는 앞장서서 말을 몰았다.
“뭘 망설이고들 있나. 어서 따라오란 말이다.”
시바타 카츠이에가 모두를 대신해서 주군을 말리려 했다.
“저, 저기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안전할 게 아니더냐. 신벌이 내려도 내가 받을 것이니 안심하고 따라오도록.”
하지만 노부나가는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사를 밀어붙였고, 수하들은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사람들이 성지로 여긴다고는 하나, 이와후네 신사는 인세에 영향력을 잃은 지 오래. 늙고 무기력한 신관 하나만이 남은 상태였다.
“폐는 끼치지 않겠다. 잠시 숨었다 떠날 것이니,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군.”
신사를 지키던 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노부나가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본 뒤,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은 변복을 하고 나가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도록 해라.”
일부는 상인이나 유랑민으로 위장하여 신사 밖을 나갔고, 나머지는 모두 암굴에 숨어들어갔다. 남아 있는 수십 명이 지내기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
몸이 편해지자, 노부나가는 아까 전의 일을 회상했다. 그는 자신이 요시아키를 잘못 보았다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가의 동량이라고, 결기를 보인 것인가······.”
하필 그 자리에서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스스로를 찔러 버릴 줄이야. 노부나가 역시 얼마 전의 일을 곱씹을수록 기가 차기만 했다.
결국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간만에 희소식을 들었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이천의 병력를 이끌고 그를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몸을 빼냈나?”
“주군께서 이이모리 성에 갇히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회군했습니다.”
물론 히데요시가 이끄는 부대도 강행군을 하느라, 상당히 많은 병사들이 낙오된 상태였다.
여전히 아케치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 노부나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쯤 이 주변은 겹겹이 봉쇄된 상태겠지.”
“저어, 주군. 실은 말입니다······.”
히데요시는 반가운 소식도 같이 가져왔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깃발 아래 모인 연합군은 거의 와해되었다. 그 덕에 자신도 무사히 주군을 찾을 수 있었다. 대강 그런 이야기였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자기 영지로 돌아가 버렸고, 지금 아케치 미츠히데 곁에는 도합 칠천의 군세만이 남아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노부나가는 기습으로 결판을 내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단념했다.
패잔병을 그럭저럭 모으면, 그래도 이천오백에서 삼천까지는 회복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일만을 깨부순다 해도,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다.
생각을 정리한 노부나가는 가신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일단 오와리로 돌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었다.
이대로 오미(近江)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그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오와리의 다이묘, 노부나가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은 동쪽이 아니라 그보다는 약간 남쪽으로 기울어진 방향.
“우리는 이세(伊勢 이세)국으로 간다.”
물론 그 길이라고 해서 순탄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먼저 적지인 야마토국을 뚫어야 하고, 험하기로 유명한 이가국의 산지를 넘어야 했다.
하지만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편이 훨씬 더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앞에는 롯카쿠 가문이 봉쇄를 유지하고 있을 터였고, 뒤에서는 추격대가 쫓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노부나가로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었지만, 가신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주군의 사돈이신 아자이 가문도 돌아섰습니다. 고쿠시께서도 혹시······.”
“그렇다면 내 운도 끝이겠지. 하지만 그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돕지는 않았다.”
고쿠시(国司). 이세 지역의 다이묘인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敎 북전구교)를 이르는 말이다.
노부나가의 차남인 노부카츠는 토모노리의 딸과 결혼했고, 장차 키타바타케 가문을 잇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다행히 그는 사돈을 적대하지도 않았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애원한다면, 나쁘게 대하지는 않으리라. 노부나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교토는 텅 비어서 을씨년스러울 뿐이었다.
미요시 가문의 저택은 이미 불타 버린 상태였다. 아마도 노부나가의 소행이었을 터.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받았던 저택은 고스란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군이 니조성에 입성하는 걸 방해하는 자들은 교토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요시아키의 죽음을 애도하며 식음을 전폐한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케치 공은 오늘도 움직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봉행이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조용히 불러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도록 했다.
쇼군 요시아키는 후사조차 남겨지 못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살아 있는 아시카가 가문 중에서 쇼군직을 맡길 만한 대상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다른 권위를 챙길 수밖에.
“우선 고쇼(御所 어소, 덴노의 궁궐)로 가서 덴노의 신변을 확보해 주십시오.”
마츠나가는 내가 덴노를 지목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당장 교토에 눌러 앉아서 천하를 호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쇼군이 죽자, 정신을 차린 다이묘들은 그대로 돌아가 버리지 않았던가. 오히려 지금 그들은 내 행보를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잘나가는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건, 비단 오다 노부나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터였다.
하지만 기나이에서 미요시 가문의 땅은 상당히 풍요로운 요지 중의 요지. 다른 사람이 차지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치로가 조용히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노부나가가 이가(伊賀 이가)국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거기까지 갔다고?”
이이모리 산성의 전투가 끝난 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주변을 수색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교토를 비워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시 병력을 집결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도망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적지를 뚫고 간 셈이었다. 어쩌면 역사에 길이 남을 후퇴가 될 지도 모를 정도로.
머릿속으로 기나이의 지도를 그려 보았다. 이이모리 산성에서 이가국까지 가려면, 중간에 야마토국을 거쳐야 했다.
그곳의 다이묘는 츠츠이 준케이. 반노부나가 연합에 가담했던 자였다.
나는 생각하기 싫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야마토의 다이묘는 지금 어떻지?”
“조용히 자신의 성에 있는 걸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때 츠츠이 가문의 사자라는 이가 나를 찾아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일본에 호랑이는 없지만, 꽤나 절묘한 시점이 아닐 수 없었다.
야마토국에서 온 무사는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기 주군의 서신을 전달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야음을 틈타 동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준케이 님께서는 다시 군을 소집해 막으려 하셨지만, 이미 늦은지라······.”
그 의도가 너무나도 뻔했다. 생색내기. 지금 츠츠이 준케이는 양쪽에서 줄타기를 할 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쪽을 추궁하려 한다면, 역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알았노라고 돌려보내야만 했다.
내가 맡긴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츠나가 히사히데 역시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 노부나가에게도 천운이 따르는 모양이외다.”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보다도, 조정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뭐, 비슷하오. 저마다 꿍꿍이를 품고 주판을 튕기더구려.”
흔히 공가(公家)라고 부르는 귀족 집단. 그들은 무가와는 결이 다른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저마다 지방의 다이묘와 연줄이 있었고, 그중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통하는 자들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다른 다이묘들 역시 기나이에 새로운 패자가 들어서는 걸 반기지는 않을 터였다.
“조적으로 선포하려면, 우선 차기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 정이대장군)을 데려오라고 하더이다.”
사실상 거절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시카가 가문이 아주 단절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대로 쇼군직을 세습하던 분파는 요시아키의 죽음으로 완전히 끊겨 버렸다.
방계에 속하는 호소카와 가문은 역시 토벌당한지 오래. 하타케야마는 그나마 일부가 잔존한 상태지만, 역시 끌어올 만한 촌수는 아니었다.
설명을 마친 히사히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한 가지를 권유했다.
“지금 기나이의 미요시 가문을 섬기던 자들은 복수를 원하고 있소이다. 쿠보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츠츠이쯤은 본보기로 짓밟고 오와리로 진군할 수도 있소.”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토지를 지닌 무사들이 자발적으로 달려든다면, 군비의 소요 정도는 무난히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을 보이고 나면, 그 다음은?
츠츠이 준케이조차 줄타기를 하는 판에, 다른 다이묘들이라고 순순히 내 뜻대로 움직이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오히려 다음은 고니시 포위망이 형성될 터. 나는 고개를 저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쿠보의 뜻이 정 그렇다면······.”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십시오. 내일 더 재밌는 걸 보여 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