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회천 回天 (9)
아케치 미츠히데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에 일이 무척이나 수월하게 풀렸다.
첫 싸움에서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도움을 받아 시바타 카츠이에를 이기고, 지금 고니시 수군은 역도들의 본거지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문무 양면을 비교하자면, 무가 다소 부족했다. 히사히데는 이 부분을 보완해 주며 그를 도왔다.
“모리군이 단바(丹波国 단파국, 교토시 서쪽에 해당하는 지역)를 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대로만 가면 노부나가는 교토를 버리고 달아나야 할 거요.”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지도를 보며, 그렇게 장담했다.
롯카쿠와 아자이가 돌아서면서, 기나이와 오와리에 나누어진 오다군은 각자도생 외에 다른 길을 갈 수 없었다.
“아사쿠라 가문이 적극적으로 나와 주었다면, 아예 뿌리를 뽑는 것도 가능할 텐데······. 아쉽군요.”
에치젠의 주인, 요시카게는 적극적으로 토벌에 나서지 않았다. 교토로 내려와 압박하는 대신, 에치고(옛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로 가 버렸기 때문이다.
미츠히데는 그 부분이 못내 아쉬웠지만, 아사쿠라 가문이 이쪽에 가담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는 눈앞의 이이모리 산성을 노려보았다. 거기에 오다 노부나가가 와 있었다.
한때는 기나이 미요시 가문의 거성이었던 저 산성은 공략하기가 까다로운 편이었다.
“대국적인 면에서 보자면, 차라리 우회해서 교토에 입성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히사히데는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지만, 강권하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의 핵심은 쇼군을 구해 내는 것이었고, 그 쇼군도 노부나가에게 끌려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츠히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기에 쇼군께서 계십니다.”
“그건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아케치 공은 한 가지는 정해 두어야 할 거요.”
사카이에서 아케치군으로 파견 나온 히사히데는 만약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만약 노부나가가 쇼군을 인질로 잡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순순히 군대를 물릴지, 아니면 인질의 안위보다는 토벌을 우선시할지.
이 시대의 무사라면, 쇼군이 인질로 잡힌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히사히데는 사카이 쿠보, 유키나가 옆에서 많은 걸 보아 왔다.
전통 따위에 의지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던가. 게다가 상대 역시 자신의 동서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인 자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히사히데가 지적한 부분을 미츠히데 역시 부정하긴 어려웠다. 하필이면 쇼군부터가 그 전통의 일부를 손수 무너뜨린 적도 있었다.
미츠히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노부나가는 얼마든지 쇼군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인질로 내밀 수 있는 자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기나이에서 몰아내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소이까······.”
히사히데는 차라리 그렇게 될 경우, 노부나가를 몰아서 쇼군을 죽게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노부나가는 확실하게 천하의 공적이 될 터였다.
“불경한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그러고 보니, 에이로쿠의 변을 일으킨 자의 주구가 여기 있었군.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맹주 격인 아케치 미츠히데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기회라는 듯이 한 다이묘가 나서서 성토했다.
롯카쿠 요시하루. 부친 요시카타에게서 가독(家督)을 물려받은 현 가주였다.
정작 에이로쿠의 변과는 무관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분위기에 따라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금 아케치군에는 미츠히데와 히사히데, 두 사람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직접 오지 않았지만 대로(大老 다이로, 가장 우대받는 가신) 하나를 보냈고, 아자이 나가마사도 사돈을 치는 게 껄끄럽다며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금 입을 열었던 롯카쿠 요시하루, 용병으로 참가한 사이카 마고이치, 그 외에도 많은 무사들이 참여한 상태였다.
각자가 자신의 구상에 잠겨 있는 동안, 토벌군의 참가자 한 사람이 군막으로 돌아왔다.
“오다 노부나가가 성문을 열고 나왔소. 아케치 공과 대화를 해야겠다고 하는데, 어쩌시겠소?”
츠츠이 준케이. 그는 아케치 미츠히데가 거병한 이후, 눈치를 보다가 이쪽으로 가담해 있었다.
“쇼군의 신변에 관한 내용은 없었소이까?”
“그저 대화를 원한다고만 했소.”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았지만, 준케이는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비록 두 사람 간에는 악연이 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깃발 아래 있는 신세. 게다가 준케이는 자신이 야마토국을 양보받았다고 생각했기에, 히사히데에게 악감정을 품지 않았다.
이 사실은 당사자 모두가 이미 이야기를 끝낸 뒤였기에, 둘 사이에는 계략이 오갈 이유가 없었다.
“대화를 청했으니, 일단 응해 봅시다.”
세 사람 모두 군영의 문가로 나갔다.
과연 오다 노부나가가 소수의 호위병만 이끌고 성밖에 나와 있었다.
실세가 따로 있다고는 해도, 노부나가 토벌군의 우두머리는 아케치 미츠히데. 그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역적 오다 노부나가는 무슨 일로 나를 찾는가?”
“나야말로 쇼군의 교서를 받들어,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온 몸이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 한다. 순순히 군대를 물리고 돌아간다면, 더 이상 쫓지 않겠다.”
서로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쇼군을 거스르는 행위는 무사들의 금기였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만했다.
문제는 아케치 미츠히데가 쇼군의 칼을 신물로 가져왔다고는 해도, 상대는 교토에서 나온 군대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지방에서 군을 일으킨 쪽이 명분에서 불리했다.
이대로는 기세 싸움에서 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주장을 도우러 나왔다.
“정말로 그대가 쇼군의 뜻을 받들고 있다면, 지금 뵙게 해 주기 바란다!”
지금 이이모리 산성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도 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정말로 쇼군의 뜻이 노부나가에게 있다면, 직접 얼굴을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시아키는 억류된 신세였고, 자신을 잡아 가둔 노부나가에게 순순히 협조할 리 만무했다.
그 점을 찌른 히사히데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노부나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쇼군의 병환을 이유로 거부하고 들어가 버렸다.
* * *
다음 날, 노부나가는 쇼군을 데리고 다시 성밖으로 나왔다.
비록 쇼군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칼을 뺏거나 묶어 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겹겹이 자신의 심복 무사들로 둘러싼 상태였다.
“내 요구는 한 가지다. 기나이에서 물러날 테니, 길을 열어라!”
“쇼군을 먼저 해방시켜 드리면 기꺼이 길을 열어 주겠다.”
“당치도 않은 소리. 지금부터 쇼군은 교토가 아니라 기요스 성에 계실 것이다.”
쇼군을 인질로 끌고 가겠다. 누가 봐도 명백한 의도였다.
요시아키는 어리둥절한 채로 나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노부나가, 네 이놈!!”
하지만 당장 그의 신변은 노부나가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상태.
전부터 노부나가를 섬겨 왔던 자들은 숫자가 많았고, 이 하극상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오다군과 행동을 같이 하던 몇몇 하타모토들조차 당혹스러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지 오래였다.
아케치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노성 한마디로 쇼군의 공인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인질을 두고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츠나가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몰아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고작 철포수 일천은 대세에 영향을 주기 힘든 규모였다.
게다가 그런 제안을 하기라도 했다가는, 오히려 자신과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가 천하의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 * *
‘천하의 쇼군이 일개 다이묘에게 인질로 잡혀 가는 신세라니.’
요시아키는 된서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너무나 무력한 존재였고, 심지어 충신들의 약점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외마디 저주.
- 비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리라!
자신이 처형을 명했던 낭인은 요시아키 본인을 형이자 전대 쇼군인 요시테루와 비교하며, 악담을 퍼붓고 죽었다.
검호쇼군이라는 명성을 얻은 요시테루와는 달리, 그는 무사들의 인망마저 잃어버린 상태.
만약 이대로 기요스 성에 끌려간다면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허리춤을 보니, 거기에는 요시테루의 최후를 지켰던 칼이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무가의 동량이라고, 인질로 삼을망정 칼을 빼앗아가지는 않았다. 물론 그 한 몸쯤은 충분히 제압할 만한 무사들이 따라다녔지만.
미카즈키 무네치카. 에이로쿠의 변을 일으켜, 요시테루를 죽였던 미요시 요시츠구가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반납했던 태도(太刀).
요시아키는 천천히 칼을 빼들었다. 그 모습을 본 노부나가의 부하들은 침을 삼켰다.
도신에 새겨진 초승달무늬는 아름다웠지만, 그보다도 요시아키의 행동이 중요했다.
무사 하나가 그를 말리려 들었다.
“저희도 쇼군을 해치고 싶진 않사옵니다. 다시 집어넣으시옵소서.”
쇼군 주변에 있던 자들은 만약의 경우, 상해를 입히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봉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들은 들고 있는 병장기를 치켜들어 탈출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아주 빗나가 버렸고, 그 착각이 요시아키에게 틈을 만들어 주었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던 쇼군은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외로운 죽음은 아니겠군.”
그 말을 들은 자들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미 대처가 늦고 말았다. 요시아키가 들고 있던 칼의 끝은 주인의 심장을 향했다.
* * *
“쇼군께서 자결하셨다고요?”
이세 만의 수군은 교타로에게 맡기고 토벌군에 합류했더니, 날벼락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제정신이 아닌 모습이라,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나는 군막을 나와서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조용히 전말을 물어보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기요스성으로 끌고 가려 했소. 아무래도 그걸 치욕으로 여기셨던 모양이외다.”
“아니, 그게 말이······. 이거야 원.”
이 시대의 무사들은 목숨보다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니, 히사히데의 추측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원래 요시아키는 끝까지 살아남았던 자였다. 그가 살아서 쇼군직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천하를 얻고도 쇼군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상황을 보면, 패배하지는 않은 듯한데······.”
“사실 아군은 상당히 졸전을 치르고 말았소이다.”
히사히데의 설명에 의하면, 분위기에 휩쓸린 아케치군은 성난 짐승처럼 오다군에게 달려들었다고 했다.
비록 숫자에서 이쪽의 우세였지만, 노부나가는 침착하게 군대를 정돈해서 동쪽으로 후퇴했다는 모양이었다.
“그쪽은 롯카쿠 가문이 봉쇄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쪽으로 전군을 몰고 와서, 성에는 최소한의 수비대만 남긴 모양이외다. 아마 노부나가도 그 점을 깨달은 듯싶었소.”
히사히데의 말에 의하면 노부나가는 제법 침착하게 대응한 모양이지만, 역시 당황한 듯했다.
아니, 무사라면 지금 누군들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다이묘들 역시 맥이 풀려 돌아가 버렸다는 모양이었다.
쇼군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건 사실상 내 포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죽음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러니 언제까지고 감상에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는 아닙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히사히데를 채근했다.
“우린 이제 교토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