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회천 回天 (7)
거병을 준비하는 동안, 노부나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상행세를 대폭 인상해서 내 기반을 흔들려 했고, 사카이 주변의 삼개국(셋츠, 이즈미, 카와치)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불러 앞날을 의논했다.
“이 문제는, 아케치 공이 기슈에서 군을 일으키는 걸로 해결될 문제입니다. 다만······.”
“그가 패배한다면 정말 우리는 사카이를 버려야 할 거요.”
내가 말을 잇기도 전에, 히사히데가 내 우려를 정확하게 짚었다.
노부나가는 기존의 영지인 오와리와 미노, 시나노, 그리고 에치고의 절반. 거기에 야마시로(교토 인근)와 사카이 주변의 삼개국을 차지했다. 그가 요시츠구를 죽이고 얻은 땅은 하나같이 알짜배기인 만큼, 동원력도 크게 늘어나 있었다.
아마 그의 순수한 세력만 해도, 족히 육만은 족히 넘길 터였다.
거기다가 그의 동맹도 만만치 않았다. 우키타 나오이에는 중립을 약속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전히 그의 편이었다.
“아마 오다 노부나가가 작정하고 온 힘을 쏟아낸다면, 족히 십만대병이 가능할 겁니다.”
“십만, 십만이라······.”
항상 대담한 모습을 보이던 마츠나가도 이번에는 살짝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막대한 힘이 한 곳에 모이지 않게 훼방하는 것. 그게 이번 전쟁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츠나가의 잔에 차를 따라주며, 그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마츠나가 공은 아케치 미츠히데의 군영으로 가주셨으면 합니다. 공의 군재와 이름값이면, 그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명성만 놓고 본다면,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일개 무사 따위로 취급해 버릴 수 있는 거물이었다.
다른 무사들이라면 벌컥 성을 냈을 만한 부탁이었지만,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다녀오겠소이다.”
남쪽은 아케치 미츠히데가 규합한 토벌군.
북쪽은 아사쿠라 가문.
동쪽은 호조 가문과 다케다 잔당.
서쪽은 모리 가문.
이번 포위망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가 바로 남쪽의 아케치 미츠히데였다.
비록 다른 이들이 참여를 약속했지만, 모리 테루모토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씩 웃으며 내 그림을 정확히 알아맞혔다.
“최대한 요란하고 화려하게 이겨야겠구려.”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시오. 오다 노부나가가 다른 곳에 눈도 못 돌리게 만들어 놓으리다.”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지도에서 오와리에 송곳을 꽂으며 계획을 밝혔다.
“수군을 동원해서 오와리를 칠 겁니다. 아무리 교토가 천하의 중심이라 해도, 자기 본거지를 잃고는 버티기 어렵겠지요.”
* * *
아케치 미츠히데는 키슈에서 군을 일으켰다. 사이카슈까지 고용한 결과, 도합 이만 삼천의 군세가 만들어졌다.
그들이 북상하면서, 사카이 인근의 오다군 또한 맞서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걸 확인한 나는 야규 무네요시와 시마 사콘에게 사카이의 수비를 맡긴 뒤, 직접 수군을 이끌고 출격했다.
이번에는 최대한의 전과를 얻기 위해, 사도 섬에서 쿄타로를 데려왔다. 물론 관료로 파견할 인재풀은 넉넉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회선 30척에, 관선 50척, 그리고 척후 겸 보조로 돌릴 소조선 100척. 이정도면 빈집털이를 하러 가기엔 넉넉한 규모였다.
처음 며칠은 평온한 항해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시마(志摩 지마, 이세 만 초입)국에 가까워지자, 적이 나타났다.
“전방에 다수의 군선이 보입니다.”
“어디 소속이지?”
“깃발에 일곱 개의 별, 구키 수군입니다!”
나는 지휘봉을 손바닥에 소리 나게 두드렸다. 제법 거물이 나왔다.
지금의 구키 수군이라면, 지휘관은 틀림없이 구키 요시타카일 터였다.
그는 원래의 역사 속에서도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서 수군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자. 아직은 그가 명성을 얻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섣불리 맞붙었다가는 승산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나는 거리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회선은 해안으로부터 이천 보 이내를 유지하고, 절대 가까이 붙는 일에 없도록 유의하라.”
회선은 바닥이 평평하기 때문에, 당황해서 달아나다가 자칫 대양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도 회선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오와리로 가는 항로는 바로 남쪽의 대양과 통했기 때문에, 주의해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 점을 우려한 나는 일부러 회선의 항해조건을 먼저 지시했다.
아군이 싸울 준비를 갖추는 동안, 족히 수백은 되는 배들이 곶 너머에서 바글바글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군의 관선이나 회선에 비할 만한 대형 선박은 아니었지만, 저 정도의 숫자는 주의해 마땅했다.
견시를 보던 병사가 새로운 거리를 보고했다.
“적 선단, 천오백 보까지 접근했습니다!”
구키 수군은 대부분 작고 경쾌한 소조선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쪽은 대열의 흐트러짐 없이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덕분에 에워싸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천 보!”
“구백 보!”
“팔백 보!”
거리는 시시각각 좁혀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까이 끌어들이는 대신, 최대 사거리에서 포격을 가하기로 했다.
나는 포격을 지시하는 깃발을 올렸다.
옆에서는 쿄타로가 포격을 지시하고 있었다.
“쏴라!”
콰쾅! 쾅! 쾅!
30척의 회선에서 일제히 포격을 개시했다.
한 척에서 불꽃이 열 개씩 뿜어졌고, 도합 삼백 개의 별똥별이 때 아닌 백주대낮의 하늘을 수놓았다.
대부분은 물기둥을 일으켰지만, 삼분의 일 가량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 물기둥마저도 구키 수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조선보다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상대는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접근해 왔다.
아군의 회선들은 함종의 명칭 그대로, 반 바퀴 회전해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여전히 앞쪽에는 구키 수군의 군선이 가득차 있었다. 그중 별동대로 보이는 일부는 속도를 살려 우회하는 게 보였다.
뒤를 차단한 다음, 화공이든 육박전이든 벌이면 아군의 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함대가 포위되는 걸 막기 위해, 관선을 내보냈다.
“관선은 대양으로 나가서 함대가 포위되는 걸 막는다.”
“소조선을 앞으로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잠시 발을 묶은 다음, 다시 포격을 가해야 합니다.”
내 지시를 듣던 쿄타로가 조금 더 적극적인 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초장부터 피해를 키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소조선은 대기, 회선은 조란환을 장전하라.”
이제는 조란환을 쓰기에도 충분히 가까운 거리였다. 이 작은 쇠구슬조차도 제대로 맞으면 소조선은 버티지 못할 터. 한 차례 정도는 포격을 가할 여유가 있었다.
“포격이 끝나면 바로 소조선이 나가서 발을 묶는다.”
전황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아군의 회선은 두 차례의 포격 후, 전속력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앞에서는 소조선이 좌충우돌하며 접근을 막았다.
이제는 무거운 포성이 아니라, 요란하게 콩 볶는 소리가 바다에 울려퍼졌다.
그런데 적의 철포가 제법 위력적이었다.
“저건······!”
구키 수군도 나팔총으로 보이는 철포를 쓰는 듯했다. 아니, 총구가 벌어져 있었고, 한 번에 여럿이 쓰러지는 걸 보면 나팔총이 맞았다.
다행히 한번 겪은 아군은 난간에 의지해 몸을 숨겼다.
나팔총의 위력은 삼나무도 뚫어버리기에도 충분했지만, 참나무에는 박히기만 했다. 게다가 적이 보유한 철포의 숫자는 다소 적은 편이었다.
덕분에 교환비는 여전히 아군의 우세였다.
“아군이 불리하진 않지만,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합니다.”
쿄타로의 말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키 수군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너무 악착같이 달려드는 것 같지 않나?”
보통은 피해가 지나치게 클 경우, 물러서기 마련이다. 특히 이 시대의 수군은 해적에 가까운 존재. 육박전을 벌여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후퇴한 다음 기습을 노리는 게 일반적인 전술이었다.
그런데 적은 교환비조차 나오지 않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 가며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가 있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후퇴를 알리는 깃발을 올리게 했다.
이미 전투를 벌이는 중인 소조선들은 쉽게 빼기 어려웠지만, 관선이 별동대를 차단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체급 차이로 견제를 가한다면, 소조선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아군이 물러나려고 하자, 적도 미련 없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마 반도 너머로는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흘 뒤에 알 수 있었다.
아군 함대는 정비를 마친 뒤, 다시 출격했다. 그리고 앞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선박이 스무 척가량 있었다.
회선이나 관선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족히 이천 석 내지는 삼천 석짜리는 되어 보였다.
적어도 기존의 전술대로 싸우기는 어려운 상대인 듯했다. 쿄타로도 그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위에는 삼층 누각이 솟아 있었고, 옆에는 아예 철갑이 둘러진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의 수군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부나가가 시대를 조금 앞으로 당긴 듯했다.
아니, 원래 지금쯤이면 슬슬 철갑선이 나올 시기였던가. 그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크고 단단하다는 건, 곧 신속함과 같이 갈 수 없는 미덕일 터. 오히려 아군의 회선이 민첩하게 보였다.
결론을 내린 나는 함대의 방침을 정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화포로 부수지.”
마침 적도 거대한 철갑선을 앞세울 생각인지, 작은 배들은 앞으로 돌출하지 않고, 측면과 후면을 호위하는 모양새였다.
“사백 보까지 접근하라!”
이번에는 낭비없이, 철저히 부술 수 있는 거리를 맞추기로 했다.
지시에 따라 함대가 서서히 진형을 펼쳤다. 적도, 아군도 모두 일자진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 갔다.
그런데 저쪽의 배들이 먼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콰쾅!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고, 여태껏 포격을 처음 당해 본 병사들도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의외로 적이 날린 포탄은 사방으로 튀었다.
초탄에 명중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화포라면 일정한 탄착군을 형성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정확히 아군의 앞에 물기둥을 일으키는가 하면, 또 다른 탄은 아예 방향 자체가 완전히 틀어져서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저런 특성의 무기를 노부나가가 사용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저건 아무래도 구포인 모양이군.”
“그게 무엇입니까?”
“절구통 모양으로 만든 간단한 형태의 화포지. 만들기 쉽지만, 명중률이 떨어진다.”
쿄타로에게 간단하게 설명해 준 다음, 나는 병사들을 다독이기 위해 크게 외쳤다.
“보라! 적의 화포는 별것 아니다. 탄이 사방팔방으로 튀지 않는가!
내 말에 병사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들도 날아오는 걸 보았으니, 내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고작해야 아군의 수법을 모방하려 한 것에 불과하니, 침착하게 싸우라. 그러면 다치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동안, 또 한 차례의 포격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적의 화포는 아군 선박을 맞추지 못했다. 그걸 본 병사들은 완전히 사기를 회복하고 비웃듯이 고함을 질렀다.
- 와아아!!
하지만 눈먼 탄에 맞을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서서히 물러나게 하는 한편, 아군도 포격을 시작하게 했다.
“진정한 포격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어라!”
콰콰쾅! 쾅! 콰쾅!
적 함선의 상부에 날아간 포탄은 철갑을 약간 우그러뜨리고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중 한 척의 배가 정확히 물높이와 맞닿는 위치에 얻어맞았다.
시간은 제법 오래 걸렸지만, 구키 수군이 자신 있게 내놓은 철갑선은 차근차근 부서져나갔다.
마침내 피해를 견디지 못한 구키 수군이 소조선을 앞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결국 지난번 싸움의 재현에 불과했다. 오히려 상대의 사기가 떨어져서인지, 전황이 그때보다 훨씬 유리하게 흘러갔다.
결과적으로는 이쪽의 대승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에서 쓴 맛을 느꼈다.
“오다 노부나가도 제법이군. 이런 술수를 부리다니······.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