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회천 回天 (6)
호소카와 토벌이 끝난 뒤, 오다 노부나가는 본색을 드러냈다.
모리 테루모토를 제외하면 교토 내에 들어와 있는 병력은 전부 그의 편이었다. 심지어 쇼군 휘하의 하타모토들 중 일부도 가담한 상태였다.
쇼군은 무사들을 버리려 한다. 이 주장은 호소카와 후지카타의 명분과 다를 게 없었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힘이 있었다.
미처 논공행상을 진행하기도 전에, 그는 쇼군의 최측근인 미요시 요시츠구부터 잡아 죽여 버렸다.
이 과정에서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의중은 의미가 없었다.
“간토간레이, 이게 무슨 짓인가? 감히 내 앞에서 칼을 빼든 것도 모자라, 사쿄타이부를 멋대로 죽이다니!”
요시아키는 마지막으로 위엄을 끌어모아 상대를 꾸짖으려 했지만, 상대는 무표정하게 무가의 동량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노부나가는 미요시 요시츠구의 시체를 칼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누군가는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옵니다. 이자가 쇼군의 곁에서 요언을 흘려 벌어진 일이오니, 마땅히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감히 쇼군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국학의 설치를 추진한 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게 요시츠구가 죽은 이유였다.
이미 니조성 안팎은 온통 노부나가의 뜻에 찬성하는 자들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 속하지 않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대세를 이기지 못한 채, 제압당하고 말았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칼에서 피를 털어낸 다음, 다시 겉으로나마 예를 갖추어 쇼군을 압박했다.
“무사의 동량으로서,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이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 통촉하시옵소서!
니조성의 알현실에 들어온 모든 자가 그의 말에 따라 큰 소리로 외쳤다.
쇼군은 이 자리에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교토에서 누구도 오다 노부나가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쇼군의 정책을 모조리 뒤집어 엎어버렸다.
“동산성당(東山聖堂)의 문묘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겠다. 하사된 토지 또한 회수할 것이며, 유생들은 해산한다.”
교토에 세워졌던 국학은 다시 사찰로 역할과 모습을 바꾸었다.
“대관(代官)의 파견은 취소하며, 이번 토벌전에서 공훈을 세운 자들에게 그 토지를 나눠줄 것이다.”
어떤 식으로 분배될지는 당연히 노부나가의 뜻에 따라 정해졌다. 알짜 영지는 대부분 그의 가신이나 동맹들에게 분배되었다.
모리 테루모토에게는 척박한 산지 약간이 생색내듯 주어졌고, 오다 노부나가가 토벌 막바지에 끌어들인 우키타 나오이에는 오히려 막대한 영지를 하사받았다.
불만이 있는 자들도 감히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자신의 위상을 드높인 노부나가는 그대로 교토에 눌러앉겠다고 선언했다.
“관동은 이제 안정되었으나, 천하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로다. 이제 내가 교토에 남아서 쇼군을 보필하겠다.”
* * *
모리 테루모토는 자신의 영지를 경유해서 뱃길로 사카이를 방문했다.
그렇잖아도 나 역시 그에게 물어볼 게 많았기 때문에, 흔쾌히 방문을 받아들였다.
“간토간레이가 제멋대로 국사를 농단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주고 받자마자, 손님은 다짜고짜 분노를 쏟아냈다.
사카이에서도 몇 가지 소식은 들을 수 있었기에, 그가 이러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참전한 시기로나, 전공으로나 제가 이렇게 홀대받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모리 테루모토는 속에 따로 감춘 뜻이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만약 그의 조부라면 조금 더 진중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가 보이는 모습을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나는 일단 그를 달랬다.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일단 호소카와 토벌전에 모리 가문을 끌어들인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물론 동맹의 세를 키워주자는 취지였지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이런 결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모리 가문에게 전공을 세우도록 주선한 것이었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이토록 막무가내로 나왔을 줄이야.
“그게 어찌 쿠보께서 제게 사과하실 일입니까. 오다 노부나가, 그자야말로 우에스기보다, 호소카와보다도 훨씬 더 큰 역적일 것입니다!”
테루모토는 분노에 몸을 맡기면서도, 사리분별은 하는 태도를 보였다. 위로의 말을 들어서인지, 이제는 그의 화기가 다소 가라앉은 듯했다.
한바탕 성토가 끝난 뒤에는, 나나 테루모토나 말없이 찻잔만 비웠다.
오다 노부나가가 야심을 드러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일 터였다.
당장 노부나가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는 교토에서 쇼군까지 손아귀에 넣고 있는 상태. 함부로 군을 일으켰다가는 명분마저 잃은 싸움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았다.
다만 요시아키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자도 아니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노부나가 포위망을 주도한 자가 바로 그였다.
과연 다이묘들이 지금의 쇼군을 따를지는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잘나가는 세력 하나를 협공하는 건 일본의 민속놀이가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시마 사콘이 찾아왔다.
“쿠보, 급한 일입니다.”
어떤 용무인지 알 수 없었기에, 테루모토는 다실에 두고 나와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상당히 당황한 기색으로 보도 하나를 내밀며 전말을 고했다.
“병사들이 수상한 자를 하나 잡았는데, 자신을 쇼군의 하타모토인 아케치 미츠히데라고 했습니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신물이라며 맡긴 이 칼은 진짜라 쿠보께서 직접 처결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
시마 사콘은 아케치 미츠히데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인지는 내가 직접 만나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손님을 맞이하는 중. 길게 자리를 비우기는 곤란했다.
나는 우선 건네받은 칼을 뽑아보았다.
검신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보통의 태도(太刀)였다. 하지만 서늘한 예기가 느껴지는 것이, 제법 사연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걸 보아도, 어떤 의미가 있는 칼인지는 몰랐다. 일단 칼집에 도로 넣은 뒤, 이걸 알아본 시마 사콘에게 질문했다.
“제법 이름 있는 칼인 것은 알겠는데, 무엇이기에 그의 신원까지 입증한단 말인가?”
“천하오검 중의 하나인 오오텐타입니다.”
그는 아예 천하오검 자체에 대해 줄줄이 설명할 기세였다.
“알겠네. 일단 그가 편히 쉴 수 있게 방을 내어주고, 손님이 돌아간 다음에 보자고 전해 주게.”
“알겠습니다.”
사콘은 못내 아쉬운 기색으로 내 지시를 이행하러 돌아갔다. 설명이 중간에 끊긴 게 섭섭했던 듯했다.
나는 다시 다실로 돌아가 손님맞이를 이어나갔다.
이제 화제는 그간 있었던 일 따위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다시 시마 사콘이 아케치 미츠히데의 말을 전했다.
“우마노카미께도 해야 할 이야기라며, 그가 쿠보를 뵙기를 청합니다.”
“알겠네. 그럼 여기로 들여보내게.”
그가 무슨 일로 사카이를 찾아왔는지는 짐작이 갔다. 나와 모리 테루모토, 모두에게 용건이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일 터였다.
잠시 후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실로 들어왔다. 손에는 두 자루 보도가 들려 있었다.
먼저 내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쇼군께서 보내셨나?”
“그렇습니다.”
미츠히데는 자기가 들고 온 것들을 나와 모리 테루모토에게 받쳐 올리며 용건을 이야기했다.
“쇼군께서는 그간 가지고 계셨던 이 명검을 신물로 내리신다 하셨습니다. 부디 역적 오다 노부나가 토벌에 참여해 주십시오.”
내가 받아든 건 아까 보았던 오오텐타라는 태도였고, 나머지 한 자루는 모리 테루모토에게 갔다.
그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보도를 살펴보다가, 주인인 내게 뽑아 봐도 될지 허락을 구했다.
“혹시 이 자리에서 날을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내가 받은 칼보다 조금 더 길고 휘어진 형태였다. 그걸 제외하면 역시 예리한 것이, 오오텐타 못지않은 명성을 지닌 것 같았다.
날을 확인한 모리 테루모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아케치 공. 정말로 쇼군께서 내리시는 물건이오?”
“그렇습니다.”
아까 시마 사콘은 오오텐타를 천하오검이라고 했다. 아마 테루모토가 받은 칼도 그중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칼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그렇소만, 설명을 해 주실 수 있겠소이까?”
“이건 천하오검 중 하나인 오니마루 쿠니즈나(鬼丸国綱 귀환국강)이라는 보물입니다.”
모리 테루모토는 내가 검의 내력을 모른다는 것에 개의치 않고 착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초대 정이대장군의 처가가 지니고 있던 것인데, 저절로 오니를 베어 주인을 보호한 내력이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하겠습니다마는, 실로 명검이라 할 만하지요. 전대 쇼군께서 살해당하셨을 때 쓰셨던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럼 혹시 이 칼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시오?”
“이번에는 제가 설명드리지요.”
내 질문에, 여기로 칼을 직접 가져온 아케치 미츠히데가 답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의 이름은 오오텐타 미츠요(大典太光世 대전태광세)라 합니다. 역시 쇼군께서 갖고 계시던 천하오검 중의 하나지요. 전설에 의하면, 영험함이 사람의 몸을 낫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득 전설 하나가 생각났다. 예리한 칼은 흩날리는 수염도 베어 버릴 수 있다던가. 내 수염은 짧고 남의 수염을 가져올 수는 없으니, 대신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서 날 위에 던져 보았다.
과연 오오텐타에 걸린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잘렸다.
“천하오검이라면, 말 그대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귀한 걸 받은 셈이구려.”
내가 신물로 받은 칼의 가치를 인정하자, 아케치 미츠히데가 매달리듯이 쳐다보았다.
“부디······.”
“걱정하지 마시오. 오다 노부나가가 나를 내버려둘 리도 없고. 다만 여기 있는 사람들로는 세력이 부족하지 않겠소이까?”
“지금 다른 다이묘에게도 사자가 갔을 겁니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말에 의하면, 참가가 유력한 세력은 나와 모리, 그리고 아사쿠라, 관동의 호조였다.
자신은 나와 모리 테루모토에게 이야기를 전했으니, 남쪽을 돌며 군소 세력을 모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줄곧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이었으니, 설득이 어렵겠지요. 하지만 우키타 나오이에라면······.”
쇼군의 사자가 전망을 이야기하자, 모리 테루모토가 눈을 빛냈다.
호소카와 토벌전의 논공행상에서 우키타와 비교되었으니, 그가 이를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우키타 나오이에는 내가 치겠소이다.”
하지만 최대한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을 깎고, 아군의 확대를 꾀하는 아케치 미츠히데로서는 곤란한 요청일 터였다.
과연 그는 모리 테루모토에게 난처한 기색을 표하며 눈감아줄 것을 청했다.
“이번만 넘어가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두 사람의 견해는 완강하게 평행선을 달렸다. 초장부터 삐걱거리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당장은 적을 줄이는 게 급선무였으니, 테루모토를 달래야 했다.
“오다 노부나가를 토벌한 뒤에는 내가 우마노카미를 돕겠소.”
어차피 이번 전쟁은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오다 노부나가의 싸움이 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당사자가 아닌 자들끼리 전쟁을 벌여도 상관없는 일이 될 터였다.
나는 쇼군의 사자에게 눈짓으로 확답을 요구했다. 그걸 알아들은 아케치 미츠히데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키타 나오이에도 사세를 따라 움직이는 소인배에 불과합니다. 쇼군께서도 그를 징벌하는 일을 금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알겠소.”
기한은 세 달 뒤로 잡았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직접 키슈에서 군을 일으키면, 나를 비롯한 각 세력이 뒤따라 참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