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72화 (72/225)

72화 회천 回天 (5)

호소카와군은 산산이 흩어져 서쪽으로 달아났다. 나와 노부나가는 곧바로 쇼군과 합류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안면에는 희색이 가득해 보였다.

“참으로 고맙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안심하소서. 이제 소신들이 역적을 몰아내겠나이다.”

인사를 마친 나와 요시아키, 노부나가는 서쪽 방향을 노려보았다. 호소카와군은 아라시야마(嵐山 남산)로 도망쳤다. 제법 많은 낭인들을 잡아 죽일 수 있었지만, 머리는 아직 멀쩡했다.

“심려치 마시옵시소서. 지금 급히 오느라 적은 병력만 대동했을 뿐, 기요스 성에서 삼만이 집결 중이옵니다.”

“삼만? 삼만이라 하였는가? 하하하하······.”

오다 노부나가의 호언장담에 요시아키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 호소카와 후지카타를 끝내 버리고 싶은 듯했다.

“간토간레이의 군세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호소카와군은 그 숫자가 퍽 줄어든 상태가 아니겠나. 지금 기세를 몰아서 들이친다면, 토벌을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걸세.”

쇼군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니조성을 포위하던 병력이 이만, 그리고 패배로 인해 그 숫자는 꽤 줄어 있을 터였다.

아군은 쇼군 직속부대 오천에, 사카이 경비대 이천, 오다군 오천, 합쳐서 도합 일만 이천이 그대로 남았다.

게다가 그 수준의 차이까지 생각하면, 재기할 여지를 남겨 주지 않는 편이 나아 보였다.

어느 쪽을 택해도, 아군이 패배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호소카와로서는 그대로 패사하느냐, 아니면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다 죽느냐의 차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과연 오다 노부나가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대군을 모으려 했을까.

옆을 슬쩍 보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나는 요시아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뜻대로 하소서. 적은 이제 수수깡만도 못할 것이옵니다.”

노부나가도 지금 쇼군의 말에는 동의를 표했다. 그 자리에서 호소카와 가문의 영지인, 가메오카로의 진격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호소카와군은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을 의지해, 악착같이 공세를 버텼다.

교토는 분지였고, 여기서 남쪽을 제외하면 모든 방향이 산으로 막힌 구조였다. 서쪽 방향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군이 움직이려면, 결국 계곡을 따라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지형은 지키기는 쉬워도, 치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상당히 끈질기군.”

쇼군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벌써 엿새가 지났는데도, 아군은 산 어귀의 텐류지(天龍寺 천룡사)를 넘지 못했다.

요시아키는 진격이 번번이 좌절될 때마다 짜증을 부렸다.

“대체 뭘 믿고 저리 뻗댄단 말인가. 손을 들고 와도 가문을 보전할지 모를 일이거늘······.”

“간토간레이의 군대가 곧 올 터인즉, 마음을 편히 하시고 기다리시옵소서.”

한참 쇼군을 달래고 있는데, 직접 척후를 이끌고 정찰나갔던 노부나가가 되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호소카와군이 삼만으로 늘어나 있었사옵니다.”

“삼만?”

나는 노부나가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았다.

“분명 니조성을 포위하던 병력은 이만이었습니다. 설령 패주한 자들이 모두 합류했다 하더라도, 그보다 적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 역시 그리 생각했소이다. 하지만 실제로 호소카와군은 삼만을 헤아리고 있었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앞날을 의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제 방침은 노부나가의 군세를 기다리는 것만이 남았다.

오히려 지금 아군이 산어귀에서 공세를 막아내야 할 판으로 변해 버렸다.

쇼군의 앞에서 물러난 뒤, 나는 조용히 이치로를 불러들였다.

“서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도록. 낌새가 심상치 않다.”

*       *       *

며칠 후, 이치로는 내가 요구한 정보를 가져왔다.

“서쪽의 무사들이 호소카와 편에 섰다고?”

“그렇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교토와 모리 가문의 영지 사이에는 군소 영지를 지닌 무사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쇼군을 적대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긴 했다.

그들에게는 쇼군의 정책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그리고······.”

아직 이치로에게는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거리낌 없이 말하라는 의미로 쳐다보자, 그가 더 심각한 문제를 전달했다.

“하타케야마 타카마사가 군을 일으켰습니다. 호소카와 후지카타에게 가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발적인 줄 알았는데, 후지카타도 꽤나 탄탄하게 준비했던 모양이군.”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치로는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런 듯합니다. 타카마사는 사이카슈까지 고용해서 도합 일만 오천을 결집 중이라고 했습니다.”

“일만 오천이라······.”

하타케야마 타카마사가 여기로 올라오려면, 사카이를 지나야 했다.

물론 도시의 방어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 내가 계속 자리를 비워 놓는 것도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치로는 할 말이 모두 끝났다는 듯, 조용히 부복했다.

“어차피 여기 남아 봐야 노부나가의 들러리가 될 뿐이지. 돌아갈 때가 된 모양이다.”

그길로 나는 쇼군을 찾아가 용건을 이야기했다.

“하타케야마 가문이 역적들을 돕기 위해 군을 일으켰다고 하옵니다. 지금 사카이를 치고 상락할 태세라 하오니, 속히 돌아가기를 청하나이다.”

“하타케야마가 기어이······. 알겠네. 그리하시게.”

요시아키는 흔쾌히 내 요청을 수락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에, 또 도쿠가와가 가세했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한 것처럼 보였다.

굳이 호소카와에게 야마나며 아리마, 잇시키 등등의 서부 무가가 가담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만약 이쪽의 전장도 악화될 위기라고 한다면, 다시 붙잡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는 그 전국 3영걸 중 둘이나 붙을 예정이니, 어지간해선 패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곧바로 사카이로 복귀하는 길에 오른 뒤, 이치로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확인했다.

“자세한 규모가 어떻게 되나?”

“하타케야마 가문의 병력 일만에 사이카슈가 다시 오천입니다.”

“까다롭군.”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자들도 아니고 하필 사이카슈가 끼었다. 스즈키 시게히데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정예 철포수가 오천씩이나 된다는 건 골치가 아팠다.

*       *       *

“역시 우회할 가능성이 높소.”

사카이의 군 봉행인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장수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놓은 결론이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을 받은 마츠나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카이는 부유하기는 하나, 천하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지금의 하타케야마 가문은 이전의 성세를 원하니, 결전을 벌이기 전에는 최대한 소모를 피하려 들 것이다.

장수들 사이에서는 대강 이런 내용이 오간 듯했다.

“만약 하타케야마 타카마사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땐 싸우면 그만입니다. 오히려 공을 세울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같이 들어왔던 시마 사콘이 마츠나가의 말을 거들었다. 장수들의 생각도 내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하나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야규 무네요시는 자신의 의견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쿠보. 만약 타카마사의 상락을 내버려둔다면, 추후에 쇼군의 추궁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도 일리가 있는 말이야. 어쩌면 의심을 살지도 모르지.”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지난번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충동질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시아키가 내 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야규 무네요시에게 생각했던 바를 이야기했다.

“만약 사카이를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로서는 저들의 본거지를 노리면 되겠지.”

굳이 경비대를 또 출격시킬 필요도 없었다. 사이카슈는 와카야마 강 하구에 위치했고, 기슈(紀州 기주) 하타케야마 가문의 영지 역시 해안에 제법 가까웠다.

나는 지도를 손으로 짚으면서 수군을 동원하면 그만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렇군요. 아무리 상락을 꾀한다 해도, 자신의 영지가 초토화되어 있으면 의미가 없겠지요.”

야규 무네요시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제 슬슬 회의가 끝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를 더 할 수 있는데, 빼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흠······.”

가만히 지도를 보고 있자니, 스즈키 시게히데가 모두를 대변해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뭔가를 빼먹은 기분인데······.”

기나이 서쪽의 군소 영주들이 호소카와를 중심으로 뭉친 상태였다. 거기에 뭔가를 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리자, 모리 가문의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지.”

모두들 내 입에 집중했다.

“모리 가문에게 서신을 한 통 보내야겠군.”

“과연······. 그들이 협공을 가한다면, 역도들은 쉽게 토벌될 겁니다.”

시마 사콘이 가장 먼저 입을 열어 동의를 표했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 가문이 움직인다면, 교토와 주코쿠 사이에 있는 무사들은 동서 양면을 모두 막아내야 했다.

서국 제일의 다이묘 역시 단독으로 석고 일백만을 넘기는 거대 세력 중 하나. 아무리 호소카와 후지카타가 무사들의 지지를 받는다 해도, 양쪽에서 가하는 압박을 버틸 리 없었다.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가 단독으로 수훈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그도 자신에게 종속된 거나 마찬가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끌어들였다. 나도 내 동맹을 쇼군에게 눈도장 찍어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자로 누구를 보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스즈키 시게히데가 사이카슈 출신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비록 그의 부친과 의절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 굳이 사이카슈와 싸우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스즈키. 고리 산성(모리 가문의 거성)에 좀 다녀와 줘.”

“기꺼이.”

*       *       *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닌자들을 통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사기가 떨어진 호소카와군을 오다 노부나가가 몽땅 박살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후지카타를 비롯한 경조가(京兆家)계 호소카와 가문은 폐절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용두사미로군.”

“그리고 쇼군은 반역자들의 영지에 대관(代官)을 파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나는 닌자의 보고를 들으며, 지도를 쓱 훑어보았다.

원래 요시아키는 미요시 요시츠구의 영지인 셋츠와 카와치, 이즈미에 지방관을 파견하려 했다. 거기에 몇 군데가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사이카슈야 용병집단이니 처벌을 면했다고는 해도, 호소카와 가문의 편을 든 무사들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아무래도 지방관이 파견될 영역이 제법 넓이질 듯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같이 차를 마시던 하성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윤두수는 곧바로 귀국했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서 도시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감독하고 있었다.

“일본국에 성인의 도가 펼쳐지는 걸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다만 좀 걱정이 되는군.”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십니까?”

“일전에 들으니, 일본 전역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게 아니더군. 그렇다면 여전히 나머지 지방의 호족과 추장은 억누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성군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사족들은 정이대장군의 행보를 경계할 걸세. 특히, 직전신장이라 했던가······. 그자가 훼방을 놓을지도 모르지.”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한 달도 되지 않아, 하성군의 예견은 적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