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회천 回天 (4)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원병을 요청했다.
“소집에 응하라······? 알겠네. 채비를 갖춰서 올라가도록 하지.”
나는 사자에게 긍정의 답을 주었다.
서신에는 소집에 응하라는 그럴싸한 글만이 적혀 있었지만, 지금 쇼군은 그다지 유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가닌자로 수집한 바에 의하면, 호소카와군은 약 이만을 조금 넘긴다고 했다. 반면 쇼군의 군대는 오천가량.
질적인 면에서야 후자가 앞서겠지만, 네 배 차이쯤 되고 보면 제법 까다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돌아가려던 사자를 붙잡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혹시 적에게 가세한 다이묘가 있나?”
“없습니다. 호소카와군은 대부분이 낭인이었습니다.”
사자는 자신 있게 답을 내놓았다. 이미 입수한 정보와도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과연 낭인 뿐일까 싶은 의문이 생겼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다이묘 중에서도 간레이를 자처한 호소카와 후지카타에게 가담할 자가 없지 않을 터였다.
특히 윤두수가 습격 받은 사건의 배후로 추정되는 두 가문. 그들에게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혹시 하타케야마 가문이나 롯카쿠 가문의 움직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사자는 내 말을 잘 알아들은 듯했다.
“쇼군께서도 두 가문을 경계하고 계십니다만, 아직까지 그들은 자중하고 있습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경계하고 있다면, 굳이 말 한마디를 더할 필요는 없을 터. 사자를 배웅한 뒤, 병력을 소집했다.
* * *
내가 이끄는 철포수 이천,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오천. 두 갈래의 병력은 시테이 성에서 합류했다.
양측의 규모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호소카와 가문의 거성은 교토에서도 상당히 가까웠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사카이에서 육전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원래 적은 숫자이기도 했지만, 오다 노부나가 역시 기요스 성에 원래 있던 병력을 끌고 왔다고 했다.
오다 노부나가와는 물밑에서 서로 견제하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같이 논의할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간토간레이는 지도를 손으로 짚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먼저 밝혔다.
“호소카와군은 가문 직속 무사들을 제외하면 잡졸에 불과할 거요. 여기서 니조성까지는 하루 거리니, 내일 일찍 출격하여 단번에 몰아치는 게 어떻겠소?”
가문 직속의 무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낭인이라는 게 호소카와군의 약점이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단기 결전을 주장했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낭인들은 개개인의 무예가 뛰어날지 모르지만, 조직적인 움직임은 내기 어려울 터. 게다가 무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계책은 자신의 정예를 이끌고 왔다는 자신감의 발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우선 그를 만류하고 안정적인 계책을 꺼냈다.
“호소카와 후지카타는 공성을 준비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먼저 도착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직 니조성은 안전했다. 그 내용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알려 주었다.
“비록 네 배의 적에게 포위된 상태지만, 니조성은 굳건한 듯해 보였습니다. 급하게 구하려 하기보다는, 압박을 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성을 지키고 있는 수비대와 연계해서 호소카와군을 밀어낼 것을 주장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병력은 이쪽의 두 배. 만약 제멋대로 하겠다고 나선다면, 나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거기에 대응하려면, 니조성의 수비대까지 세 갈래 군세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전공 욕심과 안정성, 이 두 가지를 저울질하는 듯했다.
“좋소이다. 쿠보의 계책이 나은 듯하구려.”
결국은 눈치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쇼군을 구하는 일에서는 실익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노부나가 역시 가능하다면 손해를 피하는 방향을 고른 셈이다.
“그렇다면 내일 히가시야마에 올라 우리가 왔음을 알리고, 적의 신경을 분산시키지요.”
다음 날, 아군은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청수사)에 올랐다. 교토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적정을 살피기에도 아주 적절했다.
“연기가 나도록 불을 지펴라.”
여기서 니조성까지는 걸어서도 한 시진이면 닿고도 남을 거리였다.
이걸로 구원군의 존재가 알려질 터였다. 과연 호소카와 후지카타는 어떻게 움직일까.
반응은 제법 빨랐다. 산 아래의 움직임을 관망하던 병사가, 적의 움직임을 알려왔다.
“니조성을 포위하던 호소카와군 일부가 이쪽으로 향합니다!”
깃발의 숫자로 가늠해보니, 대강 일만에서 일만 이천 정도가 갈라져 나온 듯했다. 나머지는 포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합류하는 걸 막겠다는 모양새였다. 숫자로는 여전히 적이 우세했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옆을 돌아보니 노부나가도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였다.
“적이 숫자를 나눠 주니, 오히려 일이 쉬워지겠습니다.”
“나 역시 동감이오.”
아군 역시 적의 접근에 발맞춰 거리를 좁혔다. 양측은 가모 강을 두고 대치했다.
* * *
호소카와 후지카타는 나날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낭인들의 의기는 높았으나, 그런 심리적 요인만으로 성을 함락시킬 수는 없었다.
“포위를 유지하도록. 쇼군은 말라 죽던가, 아니면 순순히 이쪽의 요구대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간레이를 자처한 자의 지시대로, 이만의 군세가 물 샐 틈 없이 니조성을 봉쇄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자신의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지카타는 하타케야마와 롯카쿠에 사자를 보냈다. 그들이 동참하기를 바란다는 서신과 같이.
다른 다이묘라면 몰라도, 그 둘이라면 설득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동쪽에 다녀온 사자가 후지카타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롯카쿠는 쇼군을 돕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말만 그럴듯할 뿐, 실상은 관망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 결국은 이기는 쪽에 붙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되돌아왔다.
“하타케야마는 참전을 약속했습니다.”
후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소카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시카가 가문의 방계였다. 후지카타가 움직였으니, 나름대로 조바심이 난 것 같았다.
서신에 의하면, 한 달 뒤에 상락해서 그를 돕겠다고 했다. 하타케야마는 이번 기회에 다시 중앙 정계로 올라올 것처럼 보였다.
“군대를 모으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겠지. 좋다. 어차피 니조성을 함락시키려 해도, 당장은 곤란하니 기다리겠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호소카와군은 배후에서 적을 맞이해야 했다.
히가시야마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그걸 본 후지카타는 부하들에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오도록 시켰다.
“사카이 쿠보와 간토간레이의 군대가 기요미즈데라에 진을 쳤습니다.”
니조성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자들인 듯 했다. 이 둘은 쇼군 요시아키의 양 날개로 알려졌다. 명백히 후지카타의 적이었다.
“숫자는 얼마나 되나?”
“일만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호소카와의 가주는 산 위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부러 시선을 끌기 위함인가? 쇼군의 직속 부대가 뛰쳐나오는 것만 막으면, 역시 이쪽의 우세로군.’
어떻게 움직일지 정리한 후지카타는 다시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구원군이 왔다고 해도, 여전히 아군이 우세하다. 일부는 남겨서 포위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히가시야마의 적을 친다.”
칠천 가량이 본진에 남고, 나머지는 동쪽으로 출격했다.
* * *
양군은 가모 강을 사이에 두고 탐색전을 벌였다.
노부나가가 먼저 휘하 장수 하나를 불러세웠다.
“다키가와. 네게 좌군 이천을 맡기겠다. 적의 수준을 알아오라.”
다키가와라면 아마 다키가와 카즈마스(瀧川一益 상천일익)인 듯했다. 후세에 ‘오다 사천왕’ 내지는 ‘오다 오대장’ 중 하나로 불릴 자였다.
다른 이들은 어디 있는가 슬쩍 물어보니, 기요스 성에서 후속 부대를 이끌고 올 것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사천왕 중 하나인 아케치 미츠히데는 여전히 쇼군을 섬기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흘러간다면 오다 삼대장 내지는 사천왕으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전초전이 벌어지는 양상을 지켜보았다.
오다군의 선봉장은 깊게 들어가지 않고, 살짝 맞붙은 뒤 물러섰다. 상대도 더 달려들지 않고 박자를 맞추는 모양새였다.
다키가와 카즈마스의 손에는 목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적의 기세가 꺾이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도로 내던져버렸다.
“호소카와에게는 이름난 장수가 없는 모양이외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부하에게 가능하면 일기토를 벌여도 좋다고 한 듯했다. 다키가와는 주군의 명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성과가 보잘 것 없는 것 같았다.
무명소졸의 목을 얻어 봐야, 대세에는 별 영향이 없을 터. 오다 군의 주종이 나란히 실망한 기색이었다.
“적의 수준은 형편없었습니다!”
“나도 보았다. 이런 싸움도 있는 법이지. 수고했다.”
다키가와는 당장이라도 적진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난전이야말로 적이 바라는 싸움일 가능성이 컸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부하를 다독인 뒤, 제 위치로 돌려보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벌떼를 상대하는 기분입니다.”
낭인들에게는 이렇다 할 만한 지휘체계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한 사람의 목으로 끝내려고 한다면, 적진 깊숙이 숨어 있을 호소카와 후지카타만이 가치가 있을 터. 일기토로 사기를 꺾는다는 발상은 여기서 쓸 수가 없었다.
내 말을 들은 노부나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휘하의 병력이 일격이탈로 갉아먹을 테니, 쿠보의 철포대가 후퇴를 엄호해 주시오.”
지금 아군의 배치는 오다군이 두 패로 갈라져서 전위를 맡았고, 내 휘하의 병력이 중앙에서 예비대로 대기하는 상태였다.
당장 전투력은 아군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이상, 불필요한 소모는 피할수록 좋았다.
작전대로 오다군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적당히 싸우다가 둘러싸일 듯하면 물러났다. 그리고 적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내 휘하의 철포대가 총격을 가해 맥을 끊었다.
아군이 꾸준히 득점하는 모양새가 나왔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워낙 많아, 피로가 누적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 슬슬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었소. 채비를 갖추리다.”
내가 후퇴를 이야기하자, 노부나가도 동의했다.
다행히 적도 약간 지친 것처럼 보였다. 우위를 유지하려면, 지금 후퇴하는 게 최선일 터. 그런데 갑자기 적의 움직임이 급격히 어지러워졌다.
“설마 함정일까요?”
“혹시 모를 일이오. 그냥 물러납시다.”
오다 노부나가와 의논한 결과, 굳이 욕심내지 말자는 이야기로 끝났다.
그런데 후방에서 병사들이 나를 찾아왔다. 주변을 관찰하라고 산 위에 남겨 놓은 자들이었다.
“쇼군께서 니조성을 나오셨습니다. 지금 성을 포위중인 적군은 크게 깨졌고, 성을 나온 수비대는 곧장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