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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70화 (70/225)

70화 회천 回天 (3)

“부처의 거짓말은 방편이라 전하고, 무사의 거짓말은 지략이라 일컬어지니, 사민백성이 가련할 뿐이로고.”

아케치 미츠히데는 교토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탄했다.

방금 기요하라 시게카타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자는 에이로쿠의 변(전대 쇼군을 살해한 사건)에도 참여했던 괘씸한 자였지만, 지금은 쇼군의 계획에서 큰 줄기를 맡고 있기도 했다.

변을 일으킨 주인공인 미요시 요시츠구조차 용서를 받고, 쇼군의 측근이 된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미츠히데는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보나마나 그의 주군은 어쩔 도리 없이 분노하고만 있을 터였고, 동료들은 복잡한 감정으로 주군을 달래고 있으리라.

쇼군 휘하의 하타모토(旗本 기본, 석고 1만석 미만의 직속 무사)들 역시 낭인들의 불만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상태였다.

그는 요시아키의 명을 받아 문묘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낭인들이 사납다고 해도, 그가 이끄는 오백 가량의 병력을 뚫을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도 부하들의 불만을 다독이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아케치 공, 저자들을 구태여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 쇼군의 명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들은 쓸모가 없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일본에 도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동료들이 어떤 상황을 두려워하는지도 잘 알았다.

그는 오직 쇼군에 대한 충성을 내세워 부하들을 억눌렀다. 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날이 여론은 악화일로였다. 무사들의 불만은 간단했다.

자신들은 충분한 봉록은커녕 땅뙈기 하나도 얻기 힘든데, 유생이란 자들은 무엇을 했다고 우대를 받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의 사족은 명예를 내세운다. 하지만 결국은 자기 한 몸, 나아가 자기 가문의 영달을 꾀하는 자들이 아니던가.

문제는 토지가 그들 모두에게 주어질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문득 한 다이묘를 떠올렸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자기 토지를 버려가면서 쿠보를 따르겠다 했지. 게다가 그 휘하의 무사들은······.’

미요시 가문의 숙장은 몰라도, 그 부하들까지 탐욕스럽지 않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의 무사도 이탈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대체 사카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한참 상념에 잠겨 있는데, 무사 하나가 달려와서 소식을 전했다.

“쿠보께서 문묘로 오신다고 합니다.”

“쿠보가?”

“네, 조선 귀인을 뵙겠다고 하셨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아케치 미츠히데는 문득 윤두수 대감에게 들었던 조선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       *       *

이치로가 주변을 말끔히 청소한 뒤, 안전을 장담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알았다.”

나는 직속 닌자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누가 오는지 경계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 고집 센 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찻물이 다 끓자, 이 자리의 주인 격인 윤두수가 차를 냈다. 그도 이제는 다도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예의상 한 모금을 삼키고, 조선에서 온 선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귀국하지 않으시려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나는 문성공의 뒤를 따르려 하는 걸세.”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문성공이 어디 한둘이던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율곡 이이의 시호도 문성공이었다.

자고로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질문했다.

“어느 문성공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눈썹을 꿈틀하던 그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낯빛을 바꾸었다.

“안향이라는 분일세. 전조 시절에, 주자의 도리를 들여오셨지.”

이름이라면 나도 알았다. 물론 고니시 유키나가는 몰라야 정상이겠지만. 주자의 도리를 고려로 들여왔다고 했으니, 거기에 말을 맞추면 될 듯했다.

“한 나라에서 도학의 뿌리가 된다는 건 다시 없을 대업이겠지요. 제가 대감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솔선수범하는 그 태도는 뭇 선비의 귀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역시 자네는 이해하는군.”

“하지만 대감어른께서 객사하신다면, 상국에 누가 될 겁니다. 대간들은 역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교역을 끊으라 하겠지요.”

내 말을 들은 윤두수는 충격에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선의 국왕에게 어떤 여파가 들이닥칠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침음을 흘렸다. 다시 두 선택 사이의 저울추를 가늠하는 모양새였다.

“흐음······.”

“그 같은 일은 제게도 최악이기 때문에, 독단으로라도 상국의 조정에 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명이 내려온 다음에 억지로 움직일지, 스스로 현명하게 처신할지 선택하라.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거였다.

개인의 명예 때문에 대사를 그르친다면, 그 또한 선비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 터. 과연 윤두수는 어느 쪽을 택할까.

“알겠네. 행장을 꾸리도록 하지.”

그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       *       *

나날이 교토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윤두수가 조선으로 돌아간 이후, 쇼군은 유생들의 대우를 한층 높였다.

자신의 의지가 강고함을 표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문묘의 설립자가 귀국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무사들은, 다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천의 낭인이 교토 안팎을 떠돈다고?”

“그렇사옵니다. 하타모토(旗本 기본, 석고 1만석 미만의 직속 무사)만으로는 그들을 통제하기 어려울 듯하옵니다.

쇼군은 방문을 내걸어 귀향을 종용했지만, 그에 따르는 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나날이 숫자가 늘어가는 추세였다.

“안되겠군. 문묘는 잠시 폐쇄하고, 유생들은 니조성으로 들인다.”

특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교토의 치안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리고 기어이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낭인과 하타모토 간의 시비가 두 부류의 패싸움으로 번졌다. 양측 모두 갑주를 갖춘 상태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인명피해가 상당했다.

그렇잖아도 그간 아시카가 가문이 부침을 겪으면서, 쇼군의 권위는 빈말로라도 높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상한 일이군.”

“무엇이 말입니까?”

사태를 수습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이번 일이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낭인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그야 가문의 존속과 봉록이 아니겠습니까.”

미츠히데의 부하는 당연한 이야기를 묻는다는 투로 답을 내놓았다.

“맞아.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게 원하는 걸 얻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당히 많은 숫자가 죽어나갔다. 하타모토야 교토의 치안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끝까지 싸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낭인들은 불만이 많다고 해도, 이토록 악착같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

쇼군의 가신은 자신이 느낀 점을 고하기 위해, 알현을 청했다.

“불순한 무리가 낭인들을 부추기는 듯하옵니다. 하루빨리 떠돌이 무사들을 흩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보고에, 쇼군 요시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그 역시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불만치고는 너무나도 집요했다.

아무리 쇼군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지금 낭인들은 감히 니조성까지 범할 기세였다.

“역시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겠지.”

계속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쇼군은 무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하타모토는 모두 무구를 갖추어 집결하라! 무뢰배들을 모조리 소탕하겠다.”

“교토 내에서 내가 허락한 자들을 제외하고, 패도를 엄히 금한다. 어기는 자는 역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요시아키는 직접 칼을 빼들고 하타모토들을 이끌었다.

작게나마 자신의 영지를 지닌 하타모토에 비해서, 낭인들의 무장 수준은 보잘 것 없었다. 게다가 조직력 면에서는 그 격차가 훨씬 더 심했다.

혼자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낭인과 쇼군 직속 무사단. 이 둘 중 어느 쪽이 집단 행동에 익숙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교토의 치안을 어지럽히던 자들은 감히 저항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낭인들에게는 권위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쇼군에게 불만은 있을망정, 대놓고 하극상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 교토의 치안을 어지럽히던 낭인들은 쇼군의 군대를 슬금슬금 피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내게 칼을 빼든 자는 모두 역적이다!”

“무사를 하찮게 여기는 자가 어찌 무가의 동량인가!”

단신으로 달려드는 낭인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용기만 앞세운 자들은 모두 다진 고깃덩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쇼군의 군대는 검을 패용한 사람을 보면, 일단 붙잡고 신원을 확인했다.

만약 낭인이면 즉결처분, 아니라 해도 까다로운 심문을 거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제 무사들은 더 이상 없는 듯하옵니다.”

“흠, 한 번 더 포고령을 내리겠다. 지금이라도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나온다면, 추방으로 끝내겠다고 알려라.”

하타모토들은 도성 내를 이 잡듯 뒤졌다.

낭인 토벌이 시작되면서, 교토의 치안은 다시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       *       *

“부디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간레이가 되어, 쇼군을 보필하셔야 합니다!”

교토에서 쫓겨난 낭인들은 호소카와 후지카타를 찾아갔다.

간토간레이와는 별개로, 쇼군을 보좌하는 간레이직이 따로 있었다. 호소카와 가문이 대대로 이 역직을 맡아 왔다. 그러나 전임 간레이였던 우지츠나가 사망한 이후, 쇼군은 간레이를 공석으로 비워 놓았다.

하지만 지금 낭인들은 우지츠나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후지카타를 간레이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현재 호소카와 당주인 후지카타는 조용히 지내고 싶어 했다.

굳이 쇼군에게 자신의 형이 맡았던 간레이직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저 한 몸 조용히 살며 가문을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라 여겼다.

하지만 낭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강권하자, 조금씩 생각을 달리 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문의 성세를 되찾을 기회가 아닐까······.’

그의 거성인 가메야마 성에는 수천의 낭인들이 모여든 상태였다. 그리고 꾸준히 그 숫자는 늘어났다.

후지카타가 보기에도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인망을 잃었다. 이제 호소카와 가문의 것이었던 간레이직을 되찾고, 천하를 안정시킬 때가 된 듯했다.

낭인들이 모여들수록, 천하가 그에게 기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후지카타는 인근에 머무르던 낭인들을 모두 가메야마 성으로 불러들였다.

성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지만, 몰려든 인파를 감당하기에는 장소가 부족했다. 극히 일부만이 혼마루(本丸 본환, 가장 깊숙한 내성)의 안뜰에 들어올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외성에서 후지카타의 결정을 기다렸다.

성의 주인은 높이 솟은 천수각에 올라, 족히 수천은 되는 낭인들을 쭉 훑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이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호소카와 가문이 전성기였을 때에도 과연 이러했을까. 그때를 기억하려 애썼지만, 당시의 그는 너무 어렸다.

이내 마음을 굳힌 듯 깊은 숨을 내뱉은 후지카타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뜻을 받아들이겠다. 여기 모인 자들은 모두 나를 따라, 교토로 상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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