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회천 回天 (2)
습격 사건 자체는 금방 종결되었다.
범행의 배후로 지목된 무사들은 누명을 써서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해버렸다. 그들을 거느리고 있던 두 다이묘는 모르는 일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말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죄를 감추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진상을 캐낼 수 없게 된 상태였다.
모든 게 일단락된 뒤, 요시아키는 미요시 저택을 방문했다. 명색이 일본을 다스린다는 무가의 동량이, 윤두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면목이 없소이다. 깊이 사죄드리는 바요.”
“배후는 끝내 찾아내지 못하신 모양이구려.”
윤두수는 굳이 쇼군을 책망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습격당한 이유는 알고 싶어 했다.
“일본국의 무사란 자들은 한갓 선비를 두려워하는 모양이구려.”
“면목 없습니다. 속히 귀국하실 수 있게 해 드리겠으니, 남은 기간이나마 편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쇼군의 말을 들은 귀빈은 가만히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도 목숨을 잃는 건 두려웠다.
왕에게 간하다가 죽는다면 몰라도, 타지에서 객사하는 건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이 오랑캐의 나라에 문묘를 세우고, 기틀을 닦는 중이기도 했다. 선비된 자로서, 문성공(안향, 주자학으로서 성리학을 고려에 도입한 인물)의 뒤를 쫓는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조선으로 돌아가진 않을 생각이외다.”
“하오면······?”
“끝을 보아야겠소.”
쇼군과 사쿄다이부는 윤두수의 결정을 만류했다.
한번 일어난 일이 두 번이라고 벌어지지 않겠는가. 아직 진상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일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위험합니다. 부디 존체를 보전하시지요.”
“아니올시다.”
사실, 요시아키는 감히 청하기는 힘들어도 그가 남았으면 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본인이 직접 문묘 설립의 끝을 보겠다고 했으니, 내심 반기면서도 걱정하는 빛을 띄웠다.
“그러시다면 제가 믿고 맡기는 부하에게 대감의 신변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겹겹이 호위를 두른다 해도, 언제 습격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선의 선비는 아예 처소를 자조사, 아니 이제는 문묘가 된 동산성당(東山聖堂)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이끄는 병사들이 철통같이 그와 문묘를 지켰다. 이제 윤두수를 해하려는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후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생이 떠돌이 낭인에게 습격을 받는 사건이 늘어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쇼군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사란 족속이 원래 그러했으니. 가려 뽑은 국학의 유생이 죽어나가는 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될 법한 시대였다.
하지만 그 사례가 열 명, 스무 명이 넘어간 시점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무사끼리도 전쟁 중이 아니면 칼부림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수십 건의 결투가 벌어졌다면, 그건 명백한 고의였다.
낭인들은 특이할 것도 없는 일에 시비를 건 다음, 결투를 신청하곤 했다.
-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다니! 어디의 출신의 누구냐? 미천한 평민이라고?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무가나 공가 출신의 유생도 더러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칼을 쓸 줄 알면 목숨을 건지기 쉽다는 것 정도였으리라.
쇼군은 교토 내에 결투 금지령을 내리고, 병력을 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생들이 공격받는 일이 줄어들진 않았다. 오히려 음지에서 더욱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범인 중 몇몇은 현장에서 바로 추포되었다. 요시아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동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뭣 때문에 유생들을 죽이고 다녔다고 하더냐?”
“좀처럼 입을 열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극악무도한 술수를 동원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바른 말을 토하게 만들어!”
쇼군의 거처인 니조성 한구석의 뇌옥은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잡혀온 자들은 하나같이 단순한 시비였으며, 정당한 결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이미 도를 넘은 상태. 쇼군이 곧이곧대로 들을 리 없었다.
그러다가 한 죄수가 죽기 직전에 저주를 토했다.
“닭모가지 비틀 힘도 없는 자들을 우대하는 게 무슨 무가의 동량이란 말인가! 요시아키, 그자는 요시테루처럼 명예롭게 죽지 못할 것이다. 비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 유언이 단서가 되었다. 무사들, 특히 변변한 봉록도 없이 떠도는 낭인들은 유생을 질투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직 살아있는 자들에게 그 결론을 들이밀자, 대체로 순순히 입을 열었다.
- 글줄이나 읽는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쇼군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유약한 선비가 아니라, 강건한 무사를 우대해야 할 것이다.
취조 내용을 전해들은 쇼군은 혀를 찼다.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
“어찌하시겠사옵니까?”
“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무사들인데, 셋푸쿠(할복)은 허락하지. 단, 가이샤쿠(할복하는 자의 목을 쳐주는 행위)는 금한다.”
쇼군의 가신들은 그 조치에 모두가 아연실색했지만, 명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스스로의 배를 가르는 행위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그 고통을 끝내 주는 게 관례였다.
쇼군의 조치는 삽시간에 일본 전역으로 소문을 타고 알려졌다. 전해 듣는 이마다 요시아키의 잔인함을 개탄하곤 했다.
* * *
“대감께서 그대로 교토에 남겠노라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내가 윤두수에게 보낸 사자는,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가져왔다.
자세한 내용은 거기 있을 터. 심부름꾼을 돌려보내고, 조용히 편지를 읽었다.
“문묘를 지키겠다고? 허, 참······.”
비록 서인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이황의 제자인 건가 싶었다. 그런 인간이 왜 원균과 인척 관계를 맺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뜻은 분명 숭고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객사해 버린다면, 난처해지는 건 바로 나 자신이기도 했다.
곧바로 하성군을 불러들였다.
“기어이 남겠다 했다고?”
“그렇습니다. 대감께서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그가 뻗댄다고 한들, 하성군의 말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게다가 지금 풍문을 들어보면, 무사들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에이로쿠의 변을 능가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쇼군이 생각보다 도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무사들의 반발을 억누르긴 쉽지 않겠지요.”
나는 그가 쇼군의 눈만 가려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초과달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형국에 가까웠다.
하성군도 내 의도를 익히 알고 있는 자들 중 하나였다. 그도 윤두수의 행보가 위태롭다는 데에 공감했다.
“허어. 어깨에 칼침을 맞고 끝난 게 천운이거늘······. 정말로 죽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일이 복잡해질 걸세.”
“그러니 대감께서 서신을 한 통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간곡하게 부탁하자, 하성군도 당연한 이야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그리 함세. 하지만 만약에, 자앙 대감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어찌 하려는가?”
“그땐 강제로라도 모셔와야겠지요. 지금 벌어진 일은 몇몇 무사의 일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습격 사건은 오히려 탐색전에 불과할 터였다. 정말 군대가 맞붙는 사태까지 간다면 오히려 윤두수의 신변은 안전하겠지만, 지금처럼 물밑에서 암투가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 * *
오다 노부나가는 기요스 성에서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쇼테이 선사께서 무슨 일로 이 시골까지 방문하셨소?”
손님의 법명은 쇼테이(承禎 승정)로, 아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한 롯카쿠 요시카타(六角義賢 육각의현)라는 자였다.
“내 서신에 적어 놓지 않았소이까. 간토간레이께서 다도에 능한 분이라 들었소.”
“하하하. 오와리의 촌놈이 귀동냥으로 배운 것에 불과하외다.”
오다 노부나가는 스스로를 촌놈이라 깎아내렸지만, 오히려 그런 언행으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롯카쿠 가문은 상당한 명가였지만, 지금은 쇼군에게 근신 처분을 받은 신세에 불과했다. 물론 그 당사자는 가독을 이어받은 쇼테이의 아들이 되겠지만, 이 손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터였다.
평소에는 쇼테이도 다른 명가들처럼 쇼군의 두 날개를 벼락출세한 애송이 취급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쇼군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토 간레이와 사카이 쿠보.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나마 무사 출신인 쪽이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금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을 방문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손님을 다실로 들이고, 경계를 엄중히 하라고 지시했다.
주객이 자리를 정한 뒤, 쇼테이는 곧바로 용건을 꺼내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이다. 상락해서 쇼군을 보필해 주시오.”
“쇼군께서 실책을 벌이신 적이 없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소이다.”
코가류 닌자들을 풀어서 이미 전말을 파악하고 있던 노부나가는 짐짓 의뭉을 떨었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쇼테이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급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무가의 동량께서 자신의 뿌리를 내팽개치려 하고 계시오. 유약한 자들을 불러 모아 중용할 뜻을 내보이셨으니, 이대로 가면 막부가 흔들릴 수밖에 없소이다.”
손님은 열띤 목소리로 주인을 설득하려 했지만, 주인은 묵묵히 찻잔을 기울이기만 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노부나가는 끝내 거부의 뜻을 밝혔다.
“지금 선사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쇼군께 반기를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걸 모르진 않으시리라 보오.”
“어허, 반기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요. 어디까지나······.”
“그렇다면 딱히 할 말은 없소이다. 선사 역시 쇼군에 대한 충심으로 그리하시는 모양이니, 내 함구하리다.”
원하던 답을 듣지 못한 롯카쿠의 전 가주는 힘없는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를 배웅한 뒤, 가신단의 핵심인 세 사람을 불렀다.
오다 가의 쌍벽으로 통하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 그리고 그 둘의 성에서 한 글자씩 받아 가문명을 정한 하시바 히데요시였다.
“너희들은 교토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생각하지?”
돌격대장격인 시바타 카츠이에가 먼저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쇼군께서 과하게 처결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상락하시겠다면, 소장이 앞장서서 길을 열겠습니다.”
“상락은 성급히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쇼군의 의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군대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에 반해서, 내정을 맡고 있던 니와 나가히데는 신중론을 펼쳤다.
쌍벽의 의견이 갈리자 오다 노부나가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은 시바타의 호쾌함에 기울었지만, 니와의 말도 경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마지막 사람을 돌아보았다.
“원숭이, 네 녀석은 어찌 생각하나?”
지금 하시바 히데요시도 봉지를 지닌 어엿한 성주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를 편하게 불렀고, 그의 가신 역시 주군의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히데요시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생각한 계책을 내놓았다.
“저라면, 미리 준비해 두고 있다가 교토가 어지러워질 때 상락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있나?”
“안 되면 되게 해야지요. 쇼테이가 주군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무사들의 불만이 높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조금만 더 부추겨보면······.”
히데요시가 말한 건 오다 노부나가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울지 않는 새는 베어 버리면 그만이 아니던가.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하기에는 아직 힘이 모자랐다. 그렇다면 새가 울도록 밑작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흠, 나쁘지 않겠군. 교토의 저택 관리를 네게 맡기겠다. 가서 불만을 가진 자들을 잘 구슬려 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