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회천 回天 (1)
“승려가 많이 보이는군.”
“무사들은 유학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지요. 그나마 학문을 쌓는 자들은 대체로 승려들인지라,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윤두수는 과거시험장에 모인 응시자들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불교를 억누르고 있는데, 바다 건너에서는 일이 참으로 기괴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한 전임 대사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본국의 사정이 이런 줄 알았다면, 차라리 율곡을 어떻게든 끌고 오는 건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유학자로 살아온 그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까다롭게 느껴졌다.
아마 한번 출가했다가 환속한 이이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학을 익혔다는 승려들을 바라보았다.
“일본국에는 여태껏 성인의 도가 제대로 전해진 적이 없습니다. 이 기회에 도학을 익힌 자들이 늘어나겠지요.”
미요시 요시츠구가 그를 달래려 했다. 근래 들어, 윤두수와 가까이 지내면서 지금 그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는 조선의 말에도 능숙해져서 역관을 따로 두지 않고, 직접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예전에는 절이라고 했던가.”
“일단 형식은 그러합니다. 옛 이름은 자조사라고 하지요. 하지만 실상은 전대 정이대장군의 별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화제가 이 장소로 옮겨 가자, 이번에는 미요시 요시츠구가 불편함을 느꼈다.
여기 자조사(慈照寺), 원래 이름보다는 은각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 절은 그의 가문과도 연이 있었다.
이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미요시 나가요시는 당시의 쇼군과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교토의 몇몇 사찰이 전속되었다. 자조사는 그중 하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음전 하나만 덜렁 남아 있던 이 절은, 개수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절이 아니라 문묘를 모신 성당(聖堂)이 될 겁니다.”
윤두수는 그 사실 하나만큼은 괜찮게 여겼다.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일본에 세워지는 최초의 문묘였다. 선비 중 하나로서, 뿌듯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
당장 관료를 선발하기에는 도학을 익힌 자가 드물었다. 그래서 조선에서 온 선비와 쇼군은 의논 끝에 조선의 성균관과 비슷한 체계부터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오늘 응시한 자들 중에서 일백 명이 유생으로 선발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험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응시생들이 하나둘 답안을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마침내 종료를 알리는 징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들 둘을 비롯해, 전부터 유학을 익혀 왔던 몇몇 사람들이 시험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나카하라 가문과 기요하라 가문은 전부터 유학을 익혀 왔다. 비록 윤두수의 눈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른 자를 찾기 힘들어 그대로 채점을 맡겼다.
“어쩔 수 없나······.”
“마음에 차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네.”
일단 인원을 채우는 걸 우선시하기로 했기 때문에, 윤두수는 마음에 차지 않는 답 중에서도 일부를 부득이하게 골라내야 했다.
오전 중에 시험이 끝났다. 그리고 오후부터 시작한 채점은 해가 다 기울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이대로 내일 방문을 붙여 공표하시게.”
기요하라 가문의 사람이 공손하게 합격 답안 묶음을 받아들었다.
윤두수는 미요시 가문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돌아가는 길도 같이 움직였다.
“나야 여기 사람이 아니니 곧 떠나겠지마는, 자네의 갈 길이 멀겠더군.”
“멀어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일세.”
자조사가 있는 히가시야마(東山 동산)에서 미요시 저택이 있는 니조(二条)대로까지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가모 강을 건너, 덴노가 머무른다는 고쇼 근처를 지날 무렵, 그들은 느닷없이 습격을 받았다.
“웬 놈들이냐? 사쿄다이부와 조선 귀인의 행차시다. 썩 비켜라!”
호위 무사가 칼을 빼들고 막아섰지만, 상대는 이쪽의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런, 제 뒤에 서십시오.”
요시츠구도 칼을 빼들고 괴한들에게 맞섰다. 그도 명색이 무사였고, 여러 전장을 거쳐 왔다. 자기 한 몸 지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조선에서 온 선비였다.
“누가 보냈느냐?”
“우리는 쇼군을 받드는 자들일 뿐이다.”
국학의 설립부터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뜻이었다. 당연히 거짓말일 터. 미요시 요시츠구가 보기에는, 일본에 유학이 전파되는 걸 꺼리는 자들의 소행인 듯했다.
“조금만 버티면 원군이 올 것이다!”
숫자는 비슷했지만, 배후에 누가 있는지 캐려면 생포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보호해야 할 대상도 있었으니, 섣불리 맞붙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어차피 교토 내에서 일어난 일, 소란을 알아차린 쇼군이 응원군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요시츠구는 거기에 의지하기로 했다.
스무 명의 무사들이 벽을 등지고 겹겹이 호위대상을 에워쌌다.
괴한들도 약 스무 명을 살짝 넘기는 숫자였다. 이대로는 수세를 취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검술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저들은 버림패일 겁니다. 무위는 이쪽이 앞서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보통 뒤를 생각하지 않고 습격하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사자가 자포자기하여 최후의 발악을 할 때고, 나머지 하나는 애초부터 꼬리자르기로 투입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명백히 후자였다.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버티면서 야금야금 갉아나간다면, 원군은 필요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괴한들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더욱 매섭게 달려들었다. 목숨조차도 도외시하면서 착실하게 인의 장막을 벗기려 했다.
경호하던 무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그만큼 암살자들도 목숨을 잃었다.
“저기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요시츠구가 기다리던 원군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습격자들이 카타나를 버리고 단도를 빼들었다.
“자결할 생각이다. 막아라!”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자결이 아니라 투척할 의도였던 것이다.
단도 몇 자루가 요시츠구와 윤두수에게 날아들었다. 요시츠구는 칼을 휘둘러 막아냈지만, 그중 일부는 주인이 의도한 사람에게 꽂혔다.
“끄억!”
비명의 주인공은 조선에서 온 손님이었다.
암살자가 던진 도박수는 반절의 성과를 일궈냈다. 그가 투척한 단도가 윤두수의 어깨에 박혔다.
마지막으로 그걸 확인한 암살자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박았다.
“어서 저택으로 뫼셔라. 대감 어른께서 다치셨으니, 의원도 준비하라 이르라!”
요시츠구는 발 빠른 자 하나를 뽑아 먼저 저택으로 보내고, 윤두수의 상처에 응급처치를 했다.
“아프더라도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그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단도를 뽑아낸 뒤, 옷자락을 찢어 환부를 꽉 묶었다.
“으윽! 많이 아프군.”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을 듯합니다. 치료를 준비하도록 했으니, 어서 가시지요.”
* * *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격노했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교토 한복판에서 자신의 귀빈이 습격을 당한 일이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팔았다고도 했다.
눈이 뒤집힌 막부의 주인은 철저히 조사하도록 명을 내렸다.
“틀림없이 배후가 있을 것이다. 샅샅이 밝혀내라!”
시체에서 목을 잘라내 거리에 내걸고, 신원을 아는 자에게는 막대한 상금을 약속했다.
시일이 지나자 제보가 쌓여갔다. 그들이 누구인지 속속들이 드러났다.
“대부분 출신지는 노토국, 기이국, 그리고 오미국이고, 기나이를 떠도는 낭인도 섞여 있었사옵니다.”
조사를 맡은 무사가 조아리며 결과를 보고했다.
“설마······?”
보고에 나온 지역은 공통점이 있었다. 고니시나 오다만큼은 아니더라도, 쇼군이 신뢰하는 다이묘의 영지였다.
쇼군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걸 본 무사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주군이 원치 않는 답을 올렸다.
“낭인이 아닌 자들은 하타케야마와 롯카쿠를 섬기는 가신의 일족으로 밝혀졌사옵니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이름을 들으면서, 요시아키의 분노도 차갑게 변해 갔다.
저 둘은 여느 명가와는 다른 존재였다. 아시카가 가문의 방계로서, 막부의 울타리 노릇을 충실하게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쇼군의 위신에 먹칠을 한 역도들에 불과했다. 차갑게 타오르는 분노가 요시아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그랬군.”
“쇼, 쇼군······.”
눈앞의 무사는 자기 주군의 분노에 납작 엎드렸다.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쇼군은 올바른 대상을 향해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자신의 분기를 이기지 못한 쇼군은 보고서를 내동댕이쳤다.
“방계 주제에 감히 본가의 위신에 먹칠을 해?”
“진정하시옵소서. 정말로 두 가문이 진범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지옵니다.”
동석하고 있던 쇼군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의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요시아키가 교토에서 도망나와, 천하를 떠돌 때부터 섬겨온 충신이었다. 쇼군은 아무리 분노에 몸을 맡겨도, 이 가신의 말만큼은 함부로 흘려듣지 않았다.
주군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미츠히데는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선 그들을 불러서 진상을 밝히시옵소서.”
“그래, 그래야겠지. 관련자들을 교토로 불러올려라. 전부!”
* * *
“사쿄다이부와 윤두수 대감이 습격을 당해?”
“그렇습니다, 주인님.”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치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마 간토간레이(오다 노부나가)의 소행인가?”
“그건 아닙니다. 코가닌자의 움직임은 줄곧 살피고 있었지만,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그들도 전말을 확인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양새였습니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감실감실하게 자라나기 시작한 수염이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지?”
“자세한 내용은 계속 살피는 중입니다만, 하타케야마와 롯카쿠가 개입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알았다.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리도록.”
이치로는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배후로 추정되는 두 가문은 막부의 마지막 방벽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데 그들이 쇼군의 뜻을 거스를 정도의 이유가 있다면, 대체 무엇일까.
차를 연거푸 세 잔을 비워가며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타케야마와 롯카쿠, 두 가문은 요시아키 개인에게 충성한다기보다는 지금의 체제를 옹호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의 쇼군이 꿈꾸는 중앙집권은 그들에게 이로울 리 없었다. 아무리 저 둘이 아시카가 가문의 번병이라 해도, 그들 또한 다이묘였다.
“쇼군이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싹부터 잘라 버리겠다는 건가?”
제대로 개혁에 들어갈 경우, 가장 가까이에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쇼군의 명이 떨어지면,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아무래도 조선에서 온 분들은 돌려보내야겠군.”
이미 윤두수가 칼을 맞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명분이 될 터였다. 기나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손님들은 돌려보낼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