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도시 사람 (2)
이번에는 내가 사카이에 눌러앉아 철저히 내부를 감시했다. 이미 에고슈 중 일부가 뒤통수를 쳤던 전적도 있었고, 아직 천하가 평화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인들은 총부리 앞에서 침묵했다. 외부에 연줄이 있는 자들조차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매일같이 이치로를 불러다가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했지만, 늘 같은 답을 받고 있었다.
“모두들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얌전히 지낸다고?”
“그렇습니다.”
옆에서 같이 닌자의 보고를 듣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영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유능한 닌자를 투입해도 한계는 있을 거요. 쿠보도 그랬고, 지난 번 배신도 그런 걸로 알고 있소만.”
그의 지적에는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미요시 나가요시가 넘겨짚었다는 걸 몰랐다면, 나 역시 끝까지 그를 속이는 게 가능했을 터였다.
그리고 예전에 삼인중과 내통했던 자들 역시 마찬가지. 상인들은 언제나 자기 거래처와 관계를 유지해야 했고, 그런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물론 군 봉행의 말이 옳습니다. 그래서 감시를 이중삼중으로 걸어놓았지요.”
지금은 그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경비대는 지금 모조리 해체해 버린 상태였다.
지금 거상들의 영향력은 대부분 거세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반기를 들어 봐야 목이 날아갈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움직임을 보인다면, 징후를 감추기 힘든 자들이 조용했다. 나는 그들의 행동거지를 파악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정 봉행과 그 아래 관료들은 어떻지?”
“그들도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지금 사카이의 관료 대부분은 성당학교 출신,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에고슈에 속한 자들과 혈연이 닿은 자들이었다.
그것도 자기네 일족에서는 상당히 촉망받는 인재들이었으니, 미끼로 쓴다거나 꼬리자르기를 해 버리기에는 아까울 터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예전에 만났던 남만 상인 중 하나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친구는 가까이 두되, 적은 더 가까이 두라고.”
“흠······.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은 손에 쥔 걸 놓기 싫을 겁니다.”
이미 거상들은 많은 걸 누리고 있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원래는 중국에서 쓰이던 속담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일본 전역에서 유일하게 사카이에서도 이 말은 통하는 중이었다.
지금의 에고슈 36인 중에도 타지 출신이 제법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상인을 쌈짓돈 주머니 정도로 취급하곤 했다.
그에 비하면 내 행동은 물리력을 동원하긴 했어도, 매우 합리적인 편이었다. 적어도 다짜고짜 목을 날리지는 않았으니.
“감시를 게을리 해선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마음 졸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절차를 밟은 이유는 간단했다. 선을 넘지 마라. 이런 의미를 은연 중 내보인 것이다.
“차라리 목을 싹 날려 버리는 게 낫지 않겠소?”
“그럼 장차 이 도시에 누가 남으려 하겠습니까?”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그를 따라온 무사들은 이미 신분적 특권을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방식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찻잔을 채워 주며,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군무에서 병사들을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예상했던 답을 내놓았다.
“역시 신뢰일 거요. 누군들 죽음을 원하고 삶을 하찮게 여기겠소? 부하들은 사지로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외다. 우두머리가, 장수가, 다이묘가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할 거라 믿기 때문에 죽을 자리를 찾는 것이오.”
“저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뿐입니다.”
이건 신상필벌의 이치와 다를 게 없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만들어 두는 것. 그게 내 방침이었다.
일본인은 언제나 외부에서 좋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이 말은 전쟁 중의 상대를 평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대 서양에서조차 비슷한 말이 하나 존재한다. ‘경제 동물’, 일본인을 두고 나온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에겐 일정한 법도라는 게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하극상을 벌이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게 이들에게는 당연한 이치였다.
문제는 내가 지금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너무 어려서 그러했지만, 지금은 이 땅에 익숙해져서 떠나기가 힘들다. 손에 쥔 것도 많아졌지만, 언제나 타향살이는 힘든 법이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중세 잽랜드의 방식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천수를 누리기가 어렵다. 설령 와석종신(臥席終身)의 꿈을 이룬다 해도, 후손들까지 험한 꼴을 보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일본사에서도 천하인으로 손꼽히던 자 중에 후손까지 멀쩡했던 경우가 몇이나 되던가. 기껏해야 도쿠가와 정도? 그나마도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 현명하게 굴어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물론 모리 가문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결국 조슈 번도 그간 쌓였던 원한을 막부 타도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았던가.
다행히 부라는 건, 꼭 다퉈야만 얻을 수 있는 제로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점에 근거하여 평생을 무사로 살아온 이에게 설명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놓지 못하는 거라고 합니다마는, 다행히도 금력은 그렇지가 않지요. 보시다시피, 사카이의 부는 어딘가에서 빼앗아 온 게 아닙니다.”
“흠······. 알 것 같기도 한데, 명쾌하게 와 닿지는 않는구려. 하지만 쿠보의 뜻은 이해했소.”
* * *
사카이의 통치가 빡빡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드디어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해법을 조선에서 찾았다. 조선이 거부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번에도 유즈야 야스히로가 그 전말을 고하러 왔다.
쓰시마 도주의 심복이니 당연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가 거의 조선 전담 요원 같은 느낌이다.
“협상은 어찌 되었나?”
“조선 측에서는 흔쾌히 쿠보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날짜로 봐도 그렇고, 생각보다 내 부탁이 쉽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시일을 가만히 따져보니, 거의 하루나 이틀 만에 결정이 난 것 같았다.
“너무 이른 듯한데.”
“이번에 정사로 오는 하성군이 힘을 썼다고 합니다.”
유즈야의 말에 의하면, 지난 번 다녀간 왕의 조카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하성군만이 아는 일이니,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라고 했다.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 일부러 빠른 배로 앞질러 왔습니다. 한 달 후에는 사신단이 사카이에 방문할 겁니다.”
“좋군.”
나는 조선에 판관 노릇할 선비를 열 사람 정도 보내 달라 요청했었고, 그 답이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성부에 속한 관료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조선 초, 한양 인구가 10만을 약간 넘겼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 사카이는 그에 비하면 훨씬 복잡한 일이 많겠지만.
그리고 어차피 그들이 맡을 판결은 대부분 하층민 간이나, 하층민과 거상들 사이의 분쟁이 대부분일 터였다. 다시 말해서, 그리 복잡한 쟁송은 그들의 몫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왜 하필 조선인을 불러들이신 겁니까?”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공정한 판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관료들이 자기 일족의 이익에 따라 제멋대로 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족의 이익과는 무관한 사람이 판결을 맡도록 재판 구조를 다시 짜야 했다.
* * *
“그래서 조선인을 판관으로 세우겠다고?”
“그렇습니다.”
“대담한 발상이군.”
이번에도 통신사로 온 하성군은 내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최대한 유연한 인사를 보내 달라고 했던 게로군.”
“그렇습니다.”
너무 유연하면 유력자들과 붙어먹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미 대책도 준비했다. 조선의 언어를 익힌 닌자들이 호위 겸 역관으로 붙을 예정이었다.
“자네는 다른 대명(大名, 다이묘)들의 눈을 조심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네만.”
“그래서 경도(京都, 교토)의 정이대장군에게 따로 도학을 전할 선비를 부탁드렸던 겁니다.”
“허어······. 난세에 산다는 게 그런 것인가. 참으로 복잡하네그려.”
하성군은 내 처지를 동정하며 혀를 찼다.
어쨌든 이 도시에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보는 눈도 많았다.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 역시 주시하고 있을 터. 내가 벌인 일을 언제까지 감추긴 힘들었다.
그래서 조선 측에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판관 외에도 정이대장군에게 성리학을 전파할 학자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쇼군은 중앙집권에 목마른 편인데다, 그 측근인 미요시 요시츠구도 유학에 기운 상태였다.
성리학을 전해 줄 학자가 통신사로 왔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도 조선은 내가 필요로 했던 모든 걸 준비해 주었다.
물론 쇼군 요시아키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느냐는 별개가 되겠지만.
“이분이 정이대장군에게 가르침을 내리실 걸세.”
하성군은 상당히 꼬장꼬장하게 생긴 선비를 내게 소개했다.
“대사간을 지내신 자앙 대감일세.”
“윤두수라 하네. 율곡, 그 친구에게 종종 공방(公方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야기를 들었지.”
실례인 줄은 알지만, 벙찔 수밖에 없었다. 전임 대사간씩이나 되는 사람이 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물며 그 윤두수라면 더더욱.
하지만 대놓고 왜 왔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여러 가지로 알아볼 게 너무나 많아서 하성군과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나와 안면이 있는 종친은 편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자앙 대감이 온 이유 말인가? 사실 유배 대신 오신 걸세.”
생각보다 종계변무 문제가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는 모양이었다. 윤두수도 얼마 전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거의 문전박대를 당하다시피 했다는 것 같았다.
“저분이라고 별수가 있었겠나. 하지만 대간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유배 겸해서 내려오신 거라네.”
조선의 왕권이 강해질수록, 명의 눈치를 볼 필요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그 여파인 듯했다.
“저분도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으니. 경(境, 사카이)의 사정은 함구할 걸세.”
그러고 보니, 아까 그는 이이를 언급했다. 윤두수도 이이, 정철과 같이 서인으로 분류된다. 아무래도 왕이 실리주의 노선을 걷는 이상, 서인이 여당 노릇을 하는 듯했다.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궁금한 게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문제라, 좀 더 은근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상국에서 제 청을 너무 쉬이 들어주신 듯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연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끼친 영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조선의 선비들에게 일본은 오랑캐의 땅일 터였다. 그런데 너무 쉽게 판관들을 보내 주었다.
“물론 내가 힘을 썼지.”
“그거뿐입니까?”
내가 한 번 더 물어보자, 하성군이 자조하는 듯이 웃었다.
“자네가 상세히 적어서 보낸 전례 덕에 내가 살 길을 찾았다네.”
언제나 전례는 중요한 법이다. 백제와 신라의 사적은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하성군의 살 길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자,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때는 내가 대통에 가장 가까운 종친이었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동안 조선의 왕실에는 대군이 한 사람 더 태어났다고 했다. 이제 하성군은 계승 서열에서 더 밀려난 상태였다.
왕의 조카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내가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전하께서는 또 어찌 보실지 모를 일이 아니겠나. 하여 여기로 오겠다고 자청했네.”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 되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성군의 즉위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후세에 명종이라고 불릴 왕은 거의 죽기 직전에 원기를 되찾았으니, 그동안은 하성군을 거의 세자처럼 대했을 터였다.
나와 교역하던 것도 그가 전담하지 않았던가.
아마 신하들 중 일부도 그와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조선 국왕의 입장에 있어도, 그는 당연히 견제해 마땅한 대상이었다.
나는 하성군을 한층 정중한 어조로 대했다.
“여기서는 마음 편히 지내시지요.”
“잘 부탁하네.”
그는 살기 위해서 사카이의 판관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