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도시 사람 (1)
“이번 화재의 피해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루이스 교장은 다짜고짜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야 당연히 손실을 입은 사람이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생명은 손실로 치지 않는 모양입니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방문객이 말하려는 바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쿠보께서는 그리 생각은 다르십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다. 옆에 있는 소년은 아마도 알메이다 학교의 학생인 모양이었고, 그가 달려온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루이스 교장은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가 끌고 온 학생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이번 화재로 여러 공장이 불탔다.
다나카 가문의 수산물 건조가공장도 그 중 하나였는데, 학생의 누이는 거기서 일하는 고공(雇工, 임노동자) 중 하나라고 했다.
“한밤중에 일어난 사고라, 깨닫는 게 늦었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고, 지금 제 병원에서 치료 중이지요.”
원인이 명백하게 드러난 만큼, 츠다 가문이 전부 배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람은 츠다 공장을 찾아갔다고 했다. 이미 내가 포고문을 내렸으니, 화재의 원인이 된 츠다 가문을 찾아가 배상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츠다 일족은 다나카 가공장에 이미 배상을 끝냈다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다나카 가공장에서는 뭐라고 했기에?”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고 외면했답니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침음을 흘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알아서 잘 하겠거니 했더니, 대체 밑에서 무슨 복마전이 벌어지는 중이란 말인가.
하지만 내 반응을 본 학생은 머리를 땅에 박고 고개를 조아렸다.
“쿠보 님. 잘못했습니다! 부디 잊어주십시오.”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알메이다의 안색을 슬쩍 보니, 그도 상당히 긴장한 모양새였다.
나는 사람을 시켜 학생은 옆방으로 보내놓고, 루이스 데 알메이다는 남아 있도록 했다.
“원래 분쟁이 생기면 보통은 에고슈를 거쳐서 제가 보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어디에 그런 조치가 있느냐는 이야기일 터. 하지만 원래 사카이의 율령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지금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외부의 일에만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루이스 교장에게 같은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도록 부탁했다. 아까 학생의 반응을 보건데, 내가 직접 나서도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도덕 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도시의 근간을 뒤흔들 문제에 더 가까웠다.
거상들의 입김이 닿은 사카이 경비대는 믿을 수가 없으니, 곧바로 스즈키 시게히데와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불렀다.
어쨌든 사카이 경비대의 총책임자는 군 봉행인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그에게 휘하 병력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마츠나가 공. 지금부터 경비대는 제 자리를 유지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스즈키 시게히데.
“너는 수군을 사카이와 스모토에 배치해. 경비대가 움직이거든, 즉시 처결해도 좋아.”
이미 이치로가 거상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지만, 일족이라는 건, 우두머리를 잃어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존재였다.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았다.
“이유를 알아도 되겠소? 쿠보의 말이라면 팥으로 낫토를 만든대도 믿겠지만, 까닭은 알아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쉬울 거요.”
나는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단번에 이해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납득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흠······. 이런 일에 마음을 쓰는 쿠보가 좀 특이한 것 같소만.”
“지금 사카이는 이미 불균형 상태입니다. 패배를 단 한번만 겪어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겠지요.”
나는 평생 군문에 몸을 담은 마츠나가가 이해할 만한 방향으로 설명했다.
“다른 다이묘들은 한번 참패를 겪는다고 해서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대체로 일백 석에 병사 한둘을 동원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석은 곧 인구. 일백 명 중에서 한둘을 차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비대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정작 신뢰하기가 어려우니······.”
대체로 병력의 손실은 사망이 아니라 탈영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경비대에게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사카이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곳에서의 삶에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것일 터였다.
“참으로 먼 길을 가는 것 같소이다. 그럴 바에야 영지를 넓히는 게 낫다고 보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잖소이까.”
무사의 상식은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얼마나 허망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입니다.”
그 한 마디에 그가 수긍했다.
그도 무사였고, 다이묘이기도 했고, 자기 주군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었다.
그의 주군은 한때 마츠나가를 버리다시피 했지만, 이 시대에는 그 반대 사례도 무척이나 많았다.
영토를 넓혀봐야 관리자가 딴 마음을 품으면 말짱 도루묵일 터. 그리고 나는 그런 관리자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사카이의 구조를 뜯어고칠 생각입니다.”
사카이 제일의 숙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듯했다.
“하지만 백성은 역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야 다스리기 편한 법이오.”
히사히데에게서 에도 막부 개창자의 유언을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만큼 얼마나 유능하면서 충실한 자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원래 돈이 많고 잘 쓸 줄 알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문제가 아니던가.
* * *
그렇게 병력의 배치를 끝낸 다음, 곧바로 직조 공장을 맡은 이마이 소큐와 시정 봉행 베드로를 불러들였다.
“지난 번 스모토에 일어난 화재는 어떻게 처리되었나?”
“츠다 일족이 책임지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했습니다.”
“그런가. 그 과정에 잘못됨은 없었고?”
베드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했다.
“돈이 걸린 일인데 누가 소홀히 하겠습니까?”
“그런데 배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더군.”
“말도 안 됩니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시정 봉행인 베드로가 내놓은 답은 그랬다.
나는 루이스 교장이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그를 추궁했다. 그러자 나온 답변이 아주 걸작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일자리를 제공해줬고, 일할 수 없으면 당연히 공장을 나가야 하는 게 이치 아닙니까.”
맨 몸으로 들어왔으니, 맨 몸으로 나가라.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그 이상 책임질 도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당학교 졸업생의 대부분은 거상들과도 이런저런 연결이 있었던가. 베드로 역시 그 일족 중 하나였다.
시정 봉행은 거상들의 처사를 열렬히 옹호했다.
“각 공장들은 사카이의 행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관리하려면 그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단 말입니다.”
이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공장은 말단 행정기관이나 마찬가지였다. 경비대의 체계부터 주민들의 현황 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그 내부 조직 체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잠시 내가 직접 직조 공장의 운영을 맡았을 때는, 그 구조에서 이상함을 찾지 못했다.
경영자가 곧 도시의 대표이기도 했으니, 그래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상들이 도시 제도의 일부를 맡으면서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옛 무기상인을 돌아보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큐 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배신자들은 아니니······.”
일전에 미요시 삼인중의 편을 들어 뒤통수를 쳤던 자들은 모조리 숙청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인들은 사카이의 울타리 안에서 큰돈을 벌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무사나 상인이나 별 차이가 없군요.”
일부러 그가 자극받을 만한 말을 골라서 내던졌다. 하지만 별 생각이 없는 모양새였다.
이마이 소큐는 이제 도시의 배불뚝이 노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거상과 고공은 얼마나 차이가 나야 합니까?”
* * *
곧바로 에고슈를 소집했다. 다행히 눈치를 보며 빠진 자들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율령안을 내보였다.
“여러분들의 노고가 참으로 많았소. 그간 내가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으나, 이제는 사카이의 내정에 집중하고자 하오.”
새로운 행정 체계를 마련하고, 공장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올리는 방안이었다.
“원래 사람들을 이끄는 일이 골치 아픈 법이 아니겠소이까. 내가 할 일을 대신 해주었으니, 그 점은 감사드리오.”
일단 내가 제시한 명목은 그러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영향력을 거세하고 세금을 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예상대로 그들은 반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총대를 매려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할 말이 없느냐는 듯이 그들을 죽 둘러보았다.
사카이의 거상들은 손에 쥔 게 너무 많았고, 지금 반발해봐야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찍 소리를 내는 사람은 있는 듯했다.
젊은 상인 하나가 나섰다. 옆에서 이치로가 다케노 나카키라는 이름을 속삭였다.
“새로운 율령대로라면, 상당히 많은 관리를 필요로 하리라 생각됩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궁금하군요.”
“이미 필요한 만큼은 준비해두었소.”
수군의 대부분은 노예들이었지만, 함선과 화포를 다뤄야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글과 숫자를 익히게 했다. 당분간 원정을 나갈 일은 없었기에, 그들을 임시로 투입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제 도시의 통치에서 손 떼시오.”
내 선언에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반대하거나 이견을 다는 자는 없는 듯했다.
율령의 내용 중에는 경비대의 재조직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법을 뜯어고치면서 새삼 얼마나 많은 걸 저들에게 쥐어줘 놓고 방치했던가를 깨달았다.
“하아, 골치가 더 아파지겠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배신자가 나오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이 도시가 바깥보다는 살기 좋다는 걸 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어떻게든 일정을 짜봤는데, 너무 빡빡해.”
스즈키가 수군의 현황을 보고해왔다. 빠진 인력만큼 항로의 경비가 비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반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순찰 횟수를 줄이던가 해야 할 것 같아.”
“반년?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알메이다 학교의 졸업생들을 기다리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지만, 아직 많은 기간을 필요로 했다.
대신 빠르게 관료를 수급할 방법이 있었다.
“이 서신을 쓰시마로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