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64화 (64/225)

64화 왜구 토벌 (7)

“호피, 그리고 인삼을 본격적으로 거래하고 싶습니다.”

“흠, 인삼은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야. 하지만 호피는 조금 곤란한데······.”

그동안 내가 철과 도자기, 생사를 주로 들여오긴 했지만, 기존에 오가던 상품도 조금씩 거래해왔다.

원래 조선의 주요 수출품은 인삼이었으니, 그 물량을 늘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호피를 언급하자 하성군은 난색을 표했다.

단순히 협상용으로 곤란한 척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하성군의 말은 진심으로 보였다.

“호랑이는 아국에서 산군이라고도 하지. 그런 맹수를 잡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는가?”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야 풍문에 불과하니 용맹의 상징으로만 쓰이지만, 조선에서 호랑이는 현실일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사냥하지 못할 신수 같은 존재도 아니다. 나는 그 점을 강조하며 하성군을 설득했다.

“일전에 제가 상국을 방문했을 때, 호환이 잦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지요. 하지만 지금 백성들을 괴롭히는 건, 그 호랑이일 겁니다.”

실제로 다이묘들의 7공3민 같은 세율을 보면, 조선의 정치는 선녀나 다름없었다. 그런 식으로 기분 좋은 말을 섞어가며 운을 떼자, 하성군은 물론이고 나머지 두 사람까지 흥미를 보였다.

“제법 잘 보았소. 호환은 조정에서도 큰 근심거리로 여기고 있으니······.”

“호피 값은 잘 쳐드리겠습니다. 돈도 벌고, 백성들도 살리는 길이 아닙니까.”

“호피도 남만인들에게 팔려는가?”

내가 열의를 보이자, 하성군의 생각도 거기까지 닿은 듯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번에는 좀 감추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적당히 답변을 내놓았다.

“그보다는 일본에서 잘 팔릴 듯합니다. 호랑이야 천축에서도 많이 보인다고 하니, 남만인들에겐 그리 흥미로운 상품은 아닐 겁니다.”

벵갈호랑이와 시베리아호랑이의 차이는 상당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것까지 알 리는 없었다.

“알겠네. 돌아가거든 전하께 말씀을 올리도록 하지.”

*       *       *

사신들도 조선으로 가기 위해 쓰시마로 향하고, 나도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항로를 잡았다.

섬의 대관은 소 요시시게에게 부탁해서 그의 가신인 유즈야 야스히로에게 맡겼다.

일부 병력만 남기고 이키 섬을 떠나려고 하는데, 류조지 다카노부가 죄수 하나를 보내왔다.

- 행동거지가 수상하여 붙잡았는데, 코가류의 표식이 있는 듯하여 쿠보께 보냅니다.

“눈치는 천하제일이군.”

여기서 시일을 오래 끌면 곤란했기에, 배 위에서 심문하기로 했다.

“스즈키. 너에게 맡기지.”

“기꺼이.”

한동안 옛 사이카슈는 철저히 상하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초심을 잃을 것 같아, 예전처럼 행동하도록 달랬다.

지금은 전처럼 아주 편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친우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오다 노부나가의 간자였어. 마츠라 가문의 배후에서 충동질했던 모양이야.”

위축에서 벗어난 그는 자기 능력을 백배 발휘했다.

불과 며칠 만에 잡혀온 코가닌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빼낸 걸 보면, 역시 그의 능력은 수군 지휘보다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었어? 설마 내가 조선과 교역하고 있는 것까지 꿰고 있었나?”

내 질문에 스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마츠라 가문의 폭주였다고 털어놓았어. 원래 목표는 하카타에서 사카이를 오가는 항로였다고 하던데.”

“씁······. 너무 빨리 움직였던 건가.”

내가 손해를 입기도 전에 수군을 출격시켰으니, 저들로서는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목표야 달성했겠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그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미 지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지.”

상대가 이렇게 발밑에서 함정을 팠다면, 나도 그를 겨냥한 책략을 마련하는 게 맞을 터. 사카이로 돌아온 뒤, 곧바로 이치로를 불렀다.

“관동의 상태는 어떻지?”

“옛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에서 국인(國人, 호족)들의 잇키(一揆 일규, 민란)가 빈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건 함부로 끼어들기는 어렵겠군.”

에치고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호족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쪽은 함부로 뛰어들기 어려운 판이었다.

어쨌든 오다 노부나가는 간토 간레이였다. 방해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꽤나 골치아픈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동북면의 무사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남하 시도는 불발로 끝났지만, 아직 야망은 여전할 터. 그들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려면 호조 가문과도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군.”

지금 관동의 거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다와 호조 모두 영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었다. 동북면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건드리려면, 호조 가문의 땅을 지나야 했다.

“지금의 당주가 호조 우지마사였던가?”

“그렇습니다. 전임 당주인 우지야스는 노환으로 죽은 지 오랩니다.”

이건 또 까다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지야스는 다케다, 이마가와와 삼국 동맹을 체결할 정도로 안목이 출중한 자였다. 하지만 우지마사는 부친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일단 다른 판도 좀 봐야겠군.”

지금의 천하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상태였다.

*       *       *

내가 사카이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쇼군이 사람을 보내서 교토로 호출했다.

이미 대강의 전말을 알고 있었기에, 쇼군의 질문에 그대로 답해주었다.

“마츠라 가문을 토벌하고, 류조지 다카노부에게 그 땅을 맡겼다고 했나?”

“그렇사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마도 내가 사전(私戰)을 벌였다는 걸로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둘의 내력은 어찌 되지?”

대체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긴장하고 있는데, 쇼군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 뜻밖이긴 했지만, 그의 성향을 생각하면 나올 법하기도 했다.

“마츠라는 사가 겐지(嵯峨 源氏 차아원씨, 사가현의 겐지 일파)의 후예고, 류조지는 일개 국인(國人, 호족)이었나이다.”

“나쁘지 않군. 그런데 말일세. 마츠라를 토벌한 이유가 뭔가?”

“쓰시마의 사누키노카미(쓰시마 도주 소 요시시게)와 연이 있었는데, 마츠라 다카노부가 겁박하여 도움을 청해왔사옵니다.”

나는 사세가 급하여 빠르게 출병했노라고 덧붙였다. 설명을 들은 쇼군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사누키노카미라······. 그는 상하를 분별할 줄 아는 자였지.”

“그를 아십니까?”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적에, 사누키노카미가 편휘를 받아갔다고 들었다.”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다행히 불리할 구석은 없는 듯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 그대로 쇼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간토 간레이가 우려를 표하더군. 쿠보가 명분도 없이 죄 없는 마츠라 가문을 토벌하는 것 같다고 말이야.”

“심려를 끼쳤사옵니다.”

“아닐세. 이 몸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말이야.”

관동을 맡은 자가 어찌하여 관서의 일을 신경 쓰는 것인가. 그것이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의문인 듯했다.

“그 나름대로 쇼군의 치세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겠사옵니까.”

“흠······. 그보다는 간토 간레이가 쿠보에게 열등감이 있는 게 아닌가 싶군.”

비록 요시아키를 보호하고 상락을 준비했던 건 오다 노부나가였지만, 교토 복귀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나였다.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다며 쇼군이 껄껄 웃었다.

“그도 제법 재미있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염려 말게. 이 몸은 쿠보를 믿네.”

다행히 쇼군의 추궁 아닌 추궁은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만약 오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나올까.

일단 나는 사카이로 돌아와서 다시 천하의 저울추를 가늠해보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오와리와 미노, 그리고 시나노에 에치고의 알짜배기까지 가져갔으니, 석고로 치면 이백만 석을 헤아릴 터였다.

거기에 종속적으로 동맹 중인 도쿠가와는 스루가와 카이를 병탄했으니 백만 석.

둘이 합치면 족히 삼백만 석을 자랑하는 규모였다.

내 밑의 백성은 이제 십오만 가량. 석고가 곧 숫자와 비슷하니, 머릿수만 놓고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나는 돈으로 후려쳐서 5만 수군을 가분수로 유지하는 중이지만.

거기에 동맹 중인 백오십만 석의 모리 가문의 존재를 더하면 균형은 대강 맞을 것 같았다.

“이치로.”

“네, 주인님.”

“이 서신을 호조 가문으로 보내라. 그리고 동북면의 다이묘들과 접촉하도록.”

*       *       *

“어떻게 이 분을 데려오실 수 있었습니까?”

“운이 좋았소.”

나는 학교의 증설과 추가 설립을 논하기 위해 루이스 프로이스를 찾아갔다. 마침 그는 동명의 의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본론을 꺼내자, 신부는 학생 명부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입학을 원하는 학생이 적음을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적구려.”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아직 가톨릭을 꺼림칙하게 여기다 보니······.”

사카이의 가톨릭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한 상태였다.

무사라고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따라온 장수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승려가 가톨릭으로 귀의할 리는 없었다.

사실상 거상들이 신자의 대부분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들만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알메이다. 그대의 역할이 막중하오.”

“기꺼이 돕겠습니다.”

사카이의 하층민 사이에서는 일향종이 강세였다. 그들은 가톨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했고, 당연히 성당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루이스 의사가 그들과 친숙해진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숫자도 늘어날 거라 기대할 만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새로 세울 학교는 다소 세속적인 방향으로 꾸려나갔으면 좋겠소.”

내 말에 프로이스 신부는 약간 불편한 듯했지만, 알메이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입니다. 천주께서도 구원을 값없이 베푸셨으니, 저 또한 그리 할 것입니다.”

그렇게 루이스 데 알메이다가 경영하는 병원 겸 학교가 사카이에 들어섰다.

구상대로 학생들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하층민들은 알메이다의 학교로 학생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후 2년 동안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도시 바깥에서는 여전히 다이묘들이 투닥거리고 있었고, 나는 거상들의 활동을 보장하며, 조용히 세입을 늘렸다.

심지어 오다 노부나가조차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내실을 기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아와지 섬의 스모토에 대화재가 일어나는 참사가 벌어졌다. 미리 수로를 조성해둔 덕에 불은 금방 끌 수 있었다.

“설마 닌자의 소행은 아니겠지?”

“징후도 없었고, 어떤 의미가 있는 시설도 아닙니다.”

츠다 가문이 경영하는 칠기 공장. 그곳이 처음 화재가 일어난 장소였다. 이치로의 보고대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밤중에 실수로 불을 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츠다 가문이 피해를 변상하는 걸로 끝내면 되겠군.”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걸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드러났다.

“쿠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새로 설립했던 학교의 교장이 울먹이는 학생 하나를 데리고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