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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61화 (61/225)

61화 왜구 토벌 (4)

함대는 단노우라에 정박했다.

여기까지는 모리 가문의 협조를 얻어 기항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토모 가문도 같은 태도를 보여 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카타는 왜 안 된다는 건데?”

“오토모를 자극하게 될 지도 몰라. 그들이 대놓고 칼을 빼들지 않은 이상은, 조심해 줄 필요도 있지.”

스즈키는 마츠라에 좀 더 가까운 하카타를 거점으로 잡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다소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

하카타의 상인들과는 제법 오랫동안 협력해왔지만, 과연 군사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 오토모 소린은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리 가문과 손을 잡은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적의 적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적의 친구는 잠재적인 적이 아니던가. 오토모 가문의 적은 모리였고, 나는 모리의 친구였다. 적어도 지금은 그의 영내로 함대를 몰고 가서,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는 편이 나을 듯했다.

“그럼 곧장 마츠라로 치고 들어갈 셈이야?”

“아니, 먼저 이키노시마부터 장악하려고.”

아마도 이번이 단발성 정벌로 끝낸다면, 다시 왜구가 들끓을 터. 이참에 아예 북큐슈 앞바다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가까이에 쓰시마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멀다. 특히, 이키 섬을 넘어가면 파도가 거세지기 때문에 회선을 쓰기도 힘들어질 터였다.

“거기서부터는 마츠라 가문의 영지니까 명분도 충분하지.”

“너무 섬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와지에, 쓰시마, 사도에다가 이번에는 이키까지. 수군에 들일 공으로 영지를 넓혔으면, 벌써 기나이의 패자가 되었을걸.”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불필요한 힘 낭비일 뿐이야.”

비단 나와 같이 온 스즈키만이 아니라, 몇몇 장수들은 간혹 이 문제에 관한 불만을 이야기하곤 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야 내 뜻에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사들은 가끔 상락을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봉록이야 충분히 받으니까 나쁘진 않은데, 가끔 네 행보를 이해하기가 힘들어. 뭐, 이키까지 차지하면 그래도 이 나라의 반은 차지하는 셈인가?”

옛 사이카슈는 농담으로 그렇게 자신의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의 다른 옛 명칭이 야시마(八嶋팔도)던가. 여덟 개 섬 중에서 쓰시마, 아와지, 사도를 차지했으니, 이키까지 차지하면 반을 먹은 셈이 된다.

섬 자체의 농업 생산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하나같이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방침을 결정하고 다시 배를 띄운 지 이틀째, 함대는 이키 섬 인근에 도착했다.

“군선이 한 척도 보이지 않는데?”

“학습 능력이 있다면 섣불리 덤비지는 않겠지.”

그간 항로를 순찰하던 선단에도 힘을 못 쓰던 자들이었다. 그 몇 배나 되는 함대에 감히 달려들 거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본거지에 숨은 상태에서 돌아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기습을 걸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왜구와 짜고 허위로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가?”

“본전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지켜보시지요.”

아무래도 조선 측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세 명의 사신들 중에서는 정철이 까다로운 시어머니 역을 맡은 듯했다. 그렇다고 하성군이나 이이가 내 편을 들어주는 쪽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군선이 없었을 뿐, 다른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민들을 불러 탐문해 본 결과, 마츠라 가문은 이 섬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사 나리들은 섬 내부의 성으로 들어가신 지 오래입니다요.”

“이렇게 작은 섬에 성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다고······.”

이키 섬의 면적은 아와지 섬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제법 작은 편인 쓰시마나, 사도 섬에 비교해도 역시 작았다. 하지만 이곳과도 이웃으로 지내왔던 유즈야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렇게 쉽게 보실 일이 아닙니다. 소 가문에서도 몇 차례 군사를 보낸 적이 있었지만, 이 섬을 차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어느 정도기에 그런가?”

“성이 높고 단단한 건 문제는 아니었지만,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라, 그렇게 자신 있는 어조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민의 증언이 그 말을 뒷받침했다.

“포구 주변에는 세 개뿐이지만, 남북으로 흩어진 걸 모두 합치면 스무 개는 될 겁니다요.”

“스무 개?”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긴장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만약 그 많은 성에 분산된 상태라면 토막 쳐 버리기도 쉬울 터. 마침 회선에는 공성수단이 충분히 많았다.

“화포를 끌어올려서 공략하지.”

이후의 이키 섬 공략은 단순한 노가다의 반복이었다.

배를 지키게 일부를 남겨놓더라도, 원정군의 숫자는 팔천이 넘어갔다.

머릿수만 놓고 보면, 마츠라 측이 감자 빨로 병력을 늘렸을 가능성을 감안해도 근소하게 이쪽의 우위였다.

하물며 각 성에 분산배치된 수비대 정도야.

“포위만 단단히 유지하도록.”

성의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이 초라한 거점들은 화포의 위력 앞에 모조리 깨져나갔다.

다만 적은 순순히 항복하는 대신, 최후의 발악을 하며 달려들긴 했지만. 물론 머릿수로 압도하는 이상, 철포의 위력도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이키 섬 전역을 차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열흘이었다.

“흐음······.”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내내 전투를 지켜보는 이이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렇게 큰 대선이 오십 척인데, 담로도 너머에는 훨씬 많은 숫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혹시 조선에 위협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슬쩍 찔러보았는데, 역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소. 특히 저 화포······. 총통과 매우 흡사하더구려.”

애초에 이 회선이라는 선박은 판옥선과 같은 체급에 같은 평저선이다.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임진왜란의 기록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걱정할 만하긴 했다.

“담로도 너머에는 지금 이끌고 온 선단의 배가 넘는 전선이 있다 들었소.”

대체로 조선 수군의 규모는 약 일백오십 척에서 이백 척 내외. 지금 내가 대선만 오십 척을 끌고 왔으니, 양측의 숫자가 대등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수군 함대는 성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각 수영에 분산된 상태. 기습당하면 속수무책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지금 화약을 펑펑 쓰고 있는 것도 걱정을 더하고 있을 테고.

“이러한 회선은 먼 바다를 넘기 힘듭니다. 그리고 관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선저가 평평하지 않아서 화포를 쓰기 어렵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상국과 교역이 끊기면 곤란합니다. 일부러 문을 걸어 닫으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저는 땅을 탐하는 편은 아니라 말입니다.”

내가 주변의 다이묘를 쳐서 영지를 넓히지 않았다는 건, 그도 대략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아국의 한 장수가 역심을 품고 시 한 수를 쓴 바가 있소. 남아 이십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이런 내용이었지. 공방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소이까?”

아직 남이는 복권되지 않은 상태였나?

훈구파 일당의 과오 중 하나인 만큼, 지적한다면 바로잡을 가능성은 높을 듯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세세한 내용을 알면 안 되는 외국인이니, 적당히 넘겨 버렸다.

“바다 건너 일이라고 과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지요?”

“얼마 전 왜변, 그리고 전조 말기에 왜구가 창궐했던 일을 생각하면, 일본에 질서가 잡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외다.”

사실 이게 상식적인 판단이긴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뭐냐고 한다면, 그자야말로 비상식적 결정을 한 거라고밖에 하기 어렵다.

왜구가 날뛰던 시기는 대체로 일본이 혼란에 빠졌을 때와 일치한다. 물론 나로서는 계속 혼란에 빠져 주는 게 더 좋지만.

어차피 왜구야 토벌하면 그만이 아니던가.

“천하대세가 합치면 나누어지고, 나누어지면 도로 합치게 된다고 합니다마는······. 일본국은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지세가 험하여 합친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지요.”

“공방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몇 대나 가겠습니까? 한 5대나 가면 다행일까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멸문지화를 입을 수도 있을 터. 쓸데없이 체급만 키우는 것도 좋은 방향의 발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는 영토에 대한 야심은 없으니, 상국에서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땅이 많아 봐야 관리가 어려우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일리 있는 말이구려. 헌데, 만약 아국이 공방과의 교역을 중단하면 어찌 할 셈이오?”

“그렇게 되면 조선의 모습이 볼만하겠군요. 명나라는 끊임없이 견제해 오는데, 여진족도 꾸준히 정리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십니까?”

내 지적에 이이는 또 입을 다물었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 위인을 상대로 장난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이거 습관 되면 곤란하겠는데.

어쨌든 지금의 조선에게, 명은 신뢰하기 힘든 대상일 터. 종계변무 문제도 그렇고, 조공으로 말을 요구하는 거나, 물소뿔의 유입을 차단하는 조치까지.

내가 기대하는 바도 그거였다. 아마 임진왜란이 터지고 만력제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구도는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키 섬의 요새화까지 마무리된 뒤, 나는 함대의 소선 일부를 갈라서 스즈키에게 맡겼다.

“탐색?”

“그래. 그리고 만약 남만인들과 접하게 된다면, 이 격문도 같이 전달하고.”

마츠라 가문의 본거지인 히라도 역시 남만인이 드나드는 국제 무역항이었다. 섬에 상륙하기는 어렵겠지만, 남만선은 여전히 그 주변을 오가고 있을 터. 그들을 통해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말했다.

정찰대가 떠나고, 나는 사신단과 같이 남쪽의 산으로 올랐다.

“음, 아마 히라도일 겁니다.”

중간에 섬 하나가 시야를 다소 가리긴 했지만, 남만선이 히라도에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로 치면 아마도 한 40km쯤 될까.

아주 잘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현대인이었던 시절보다는 풍경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제법 많군.”

“하성군 대감, 저 배들은 다소 특이하게 생긴 듯합니다.”

하성군과 이이는 남만인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기에, 직접 눈으로 보여주었다.

“자네 덕에 잘 보았네. 헌데, 너무 쉽게 알려 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일본국이 제법 크더군. 하지만 자네의 말대로라면 조선에서 가져가는 막대한 물량을 전부 소화시키긴 어렵겠지.”

역시 왕재는 왕재라는 것일까. 하성군은 단번에 내가 남만인들과도 무역을 벌이고 있음을 간파했다.

“만약 조선이 저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면, 자네는 이문이 줄지 않겠는가?”

“과연. 거기까지 보셨습니까? 물론 그럴 겁니다. 상국에서 그리 하실 수 있다면.”

조선의 역량을 시험하는 듯한 내 말에 모두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특히 정철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분을 터트릴 기세였다.

하지만 이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하성군은 고갯짓으로 만류했다. 그런 다음 다시 사신단의 총책임자가 입을 열었다.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가능하시겠지요. 다만 뒷감당은 어떨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임진왜란이 끝난 뒤, 남만 상인들은 조선으로 배를 띄우려 들었다던가. 하지만 그때는 일본인들이 그들을 돌려세웠다고 했다.

물론 그런 수를 쓴다고 해도, 조선 측에서 가능성을 내비쳤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내가 중개무역을 독점하려면, 조선의 의지를 단념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을 설득할 명분은 충분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남만선이 향하는 서쪽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은 명에도 드나듭니다. 만약 조선을 오간다면 어쨌든 소문은 돌겠지요. 해금령이 깨졌다고.”

명은 조선의 군사력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우회경로가 늘어나는 걸 반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하성군이 침음을 흘렸다.

“그림의 떡이로군.”

“저희야 전부터 오감이 있었으니 크게 탓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남만인과 교통하는 문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명의 입장에서는, 결국 번국이 천조 질서를 이탈하려는 시도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나는 그들을 달랬다.

“어차피 제가 남기는 이익도 생각만큼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아마 남만인들이 상국으로 간다면, 역시 가격을 후려치려고 하겠지요.”

동시에 저들이 교역하는 물품을 읊으며,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했다.

포르투갈 상선은 해금령을 이용해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물론 몇 가지 상품은 예외지만, 그들은 없는 걸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물론 염초나 회회청 따위는 예외에 속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을 조선에 팔기 위해서는 명 아니면 일본에서 가져가야 한다.

특히 구리와 유황은 조선의 필수품이 되어 있을 터. 그걸 남만인들이 구하려면 일본에서 가져가거나, 멀리서 운송해야 했다.

그리고 명도 그렇겠지만, 나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슬쩍 내비치자 하성군도 단념했다.

“알았으니 그만하게. 충분히 이해했네.”

이제 하성군을 비롯한 사신들의 눈은 서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말보다도 명나라의 존재에 더 짜증이 난 듯했다.

다행히도 밑밥은 잘 깔린 것 같았다.

‘조선을 쪼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그들은 외부로 확장하기도 어렵겠지. 하지만 일본과 명은 하나로 합쳐봐야 모두에게 좋을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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