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우에스기 포위망 (4)
동북면 일대는 텅 비어있었다. 이 일대의 무사들은 역시 남쪽에 모든 걸 걸었던 듯했다.
“여기가 난부 가문의 영지라고 했나?”
“그렇다고 합니다. 주민이 말하길, 여기서 더 넘어가서 남쪽으로 가면 남쪽 바다라고 합니다마는······.”
“그렇게까지 갈 필요는 없지.”
쿄타로가 전한 포로의 말은 매우 쉽게 들렸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단하고 짧은 여정은 아닐 터였다.
“이 정도로 건드려놨으면, 나머진 알아서 움직이겠지.”
사도 섬이 있는 에치고 앞바다에서부터 태평양의 입구인 쓰가루 해협까지.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은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제 사도 섬으로 귀항한다.”
이번 전역의 거점으로 돌아가니, 손님이 와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 쇼군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가신을 보냈다.
“쿠보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그는 좋게 말하면 강직했고,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자면 고지식한 성품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품 때문에 오히려 쇼군이 중용하는 자였다.
특히 지금처럼 먼 곳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을 경우라면, 이런 자야말로 적임일 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북쪽 바다의 사정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듯했다.
그는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쓴 서신을 내게 건넸다.
“쇼군께서는 쿠보가 세운 공훈에 아주 만족하고 계십니다.”
다행히도 견제의 의미는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신뢰를 보이기 위해 아케치 미츠히데를 보낸 모양이었다.
“마침 잘 오셨소.”
나는 그에게 노획한 깃발과 포로를 보여주었다.
“안도 가문에, 난부 가문······. 많군요.”
“모두 역당들이니 본보기를 보였소.”
“쿠보께서 후방을 교란해주신 덕에 반란군도 나날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동북면의 무사들은 지형에 의지해 버티기는 해도, 금방 무너질 상태라고 했다.
나는 구체적인 전황을 물어보았다. 이쪽에서는 포로를 심문해도, 전선의 상태가 어떤지는 알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전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기가 힘들어서 말이외다. 좀 좋은 소식이 있소이까?”
내 질문을 받은 아케치 미츠히데는 가장 반가운 소식을 이야기했다.
“역당들 중에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자중지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배는 고프고, 본거지도 언제 습격당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으니, 불안해하는 게 당연했다.
하나둘 자신의 영지로 도주하거나, 혹은 내응을 약속하거나, 항복해왔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다 공이 코후(甲後갑후, 오늘날의 코후 시)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요가이 산성에 갇힌 신세라고 했다. 그를 잡을 수 있으면 이 전쟁은 끝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과연 그걸로 정말 마무리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반란군의 실세는 우에스기 가문이 아니라, 동북면의 무사들 중 하나일 터였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이 추운 북쪽까지 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설까. 그럼 결국 불씨는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얻을 게 없었고, 토벌이 끝나봐야 결국 오다 노부나가의 지위가 올라가는 결과만이 남은 상태. 슬슬 돌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할 일은 이제 끝난 셈이겠소이다.”
내 말을 들은 아케치 미츠히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쇼군께서도 쿠보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여기서 더 공을 세우게 되면, 수훈갑을 오다 노부나가와 다투게 될 상황이었다. 그건 쇼군도 바라지 않는 그림일 터였다.
“그렇소이까.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구려. 이번에 사도 섬을 얻었으니, 이곳의 일이 정리되는 대로 내려가리다.”
이 섬의 광산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기에, 나는 쇼군의 사자를 먼저 돌려보냈다.
사도 섬에서 제련소가 지어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이끌고 온 함대의 절반과 쿄타로를 남기고 사카이로 복귀했다.
* * *
정작 쇼군은 내가 사카이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는 이번 전쟁에만 온 신경을 쏟는 모양새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할 일이 상당히 많이 쌓인 상태였다.
“다행히도 일전에 언급하셨던 ‘불타는 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어디에서 나온다고 합니까?”
사카이를 떠나기 전, 나는 이마이 소큐와 이치로에게 ‘불타는 돌’을 찾으라고 지시를 해두었다.
사카이와 아와지 섬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귀한 목재를 연료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사도 섬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섬의 나무만으로 금과 은을 녹이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석탄이 필요했다.
마침 이 시기를 전후로 ‘불타는 돌’을 장작 대신 썼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걸 찾아보도록 했던 것이다.
“하카타에서 소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인근의 농촌이 연료 대신 사용한다더군요.”
다행스럽게도 오다 노부나가의 영지는 아닌 듯했다.
하카타라고 하면 오토모 소린의 영지 한복판이었다. 그는 여전히 문호를 개방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석탄의 수급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쪽의 상인들과 연계해서 가져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봅시다. 저쪽도 우리에게 수출할 만한 물건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그 외에도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아와지 섬의 수로 공사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완성되었고, 인구도 좀 더 늘어 있었다.
또 한 차례의 장마가 지났을 때, 동쪽의 전쟁도 거의 끝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된 다음에야, 쇼군은 나를 교토로 불러들였다.
* * *
“미안하게 되었네. 많이 섭섭했겠군.”
적어도 그 표정은 빈말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쇼군은 진짜로 내게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간 일이 밀려서······. 소인도 바쁘게 지낸지라 먼저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실은, 아무래도 균형이 필요해서 말이야.”
아무리 쿠보직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고는 해도, 명색이 쇼군의 지위에 준하는 자리라는 전통이 있었다. 내게 그런 직책을 내렸다는 건, 요시아키 본인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는 걸 보니, 최소한 팽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사실 쿠보의 공이 결코 다른 이들에 못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네. 사도 섬의 카미(사도노카미) 직은 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지.”
사도 섬에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쇼군이든, 오다 노부나가든, 그 외의 어떤 다이묘도, 그 작고 궁벽한 섬에서 금은이 쏟아지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조용히 쇼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자네 품계는 너무 보잘것없지 않은가. 쿠보는 조정의 품계가 있는 자리도 아니고······. 해서 우쿄다이부(종4위하 右京大夫우경대부)를 내릴 생각일세.”
그는 그렇게나마 보상을 할 생각인 듯했다.
만약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사도 섬과 약간 높은 품계로 만족한다면, 누군가는 의심할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을 마친 나는 한발짝 더 나가기로 했다.
“쇼군의 뜻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제가 세운 공이라면, 몇 가지 부탁쯤은 들어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무엇을 원하는가?”
“앞으로 이십 년간, 사카이의 상납금을 면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장막을 둘러쳐버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카이에서 교토로 올리는 상납금은 그리 많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쇼군 역시, 그 문제를 탓하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명목상으로 사카이는 쇼군의 직할령이었고, 쿠보는 쇼군의 대관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직 사도 섬의 카미직은 별개라 해도, 지금 아와지의 카미직은 사카이와 엮여 있는 상태. 만약 쇼군이 도시의 사정을 캐려고 한다면, 막을 명분이 없었다.
만약 오다 노부나가가 또 다른 수를 쓴다면, 이런 방향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선수를 쳐버리면, 쇼군은 자신의 위신 때문에라도 말을 번복하기 어려울 터. 사카이의 내정을 강압적으로 간섭하기는 어렵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로 되겠나?”
역시 요시아키의 질문은 진심인 듯했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 짓는 걸로 참아냈다.
“물론입니다. 소인은 정치적인 권력보다는 돈이 더 좋사오니, 그리 해주신다면 아주 만족스럽겠나이다.”
쇼군은 내 대답을 듣고 더더욱 좋아했다. 권력을 탐하다보면 언젠가는 그와 경쟁자가 되겠지만, 부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좋네. 내가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군.”
그 자리에서 요시아키는 문건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쇼군의 권위를 인증하는 붉은 도장을 쾅 찍어서 내게 주었다.
“교토에는 좀 더 머무르게. 토벌도 조만간 끝날 예정이고, 논공행상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나?”
며칠 뒤,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반란군이 항복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할복했네. 그리고 역당의 나머지 무리는 모두 칼을 버렸지.”
결국 이번에도 허수아비가 액막이 인형이 된 모양이었다. 우에스기를 제외한 반란군은 곱게 자기 영지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역시 제일의 공훈자는 오다 노부나가로 내정되어 있었다.
“다음 간토 간레이는 오와리의 슈고가 될 걸세.”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을 듯했다.
에치고는 다시 반으로 쪼개서, 호조와 오다가 양분할 예정이었고, 아사쿠라는 카가의 병탄을 허락받았다.
“역시 오다 노부나가는 배포가 큰 자더군. 자신의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스루가와 카이를 허락해달라고 청했네.”
“쇼군께서는 어찌 하실 생각이시온지······?”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네. 그가 보증하더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업에 큰 보탬이 될 자라고 말이야.”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신이 난 듯했다.
적어도 그의 눈에 오다 노부나가는 욕심부리는 일 없이 자신을 도울 자인 것 같았다.
쇼군의 대업이라는 건 결국 명가들을 끌어내리고, 자신의 독주체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통성이 부족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가 쓰기에 아주 적합한 인선이라고 할 만했다.
하나는 방계의 방계였고, 나머지 하나는 제대로 된 뿌리조차 갖추지 못한 떠돌이 승려를 조상으로 두었다. 명가를 혐오하기 시작한 쇼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인선일 터였다. 그들의 야심만 제외한다면.
* * *
승전보가 도착한 뒤, 열닷새가 지나고, 토벌군이 돌아왔다.
조적 우에스기를 토벌한 이상, 논공행상의 주체는 어쨌든 조정이어야 했다.
덴노는 자기 자리에서 침묵하고 있었고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나선 자리였지만, 어쨌든 조정에서 논공행상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품계를 얼마나 올리느냐의 문제였고, 실질적인 것들은 다시 쇼군의 거처인 니조성에서 판가름났다.
“사에몬노카미(아사쿠라 요시카게). 그대에게는 카가(加賀가하, 오늘날의 이시카와 현)국의 카미직을 수여한다.”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카가국의 병탄을 인정받았다. 아직 일향종이 날뛰는 곳이지만, 아사쿠라 가문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들을 억누를 터였다.
“사쿄다이부(호조 우지야스). 그대에게는 코즈케(上野상야, 오늘날의 군마 현 일부)국의 카미직을 수여하고, 에치고 동부의 영지를 하사한다.”
미요시 요시츠구와 같은 관위를 지닌 호조 우지야스는 자신의 영지와 맞닿은 지역부터 니가타 일대까지를 인정받았다.
“미카와노카미(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대에게는 스루가(駿河준하, 후지산 남쪽), 카이(甲斐갑비, 오늘날의 야마나시 현)의 영지를 하사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얻은 지역의 카미직은 받지 못했지만, 쇼군이 그 영지를 공인해주었다.
“그리고 쿠보. 그대에게는 사도의 카미직을 하사하고, 상납금을 이십년간 면제하겠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공표되었을 때, 주변의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역시 그들은 토지 대신 돈을 고른 내 선택을 탐탁잖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더 놀라운 반응을 보인 건 그 다음의 차례였다.
“가즈사노스케. 그대의 공은 첫 번째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우에스기 가문에게서 박탈한 간토 간레이직을 그대에게 수여한다.”
역시 무사들에게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여태껏 간토 간레이를 비롯한 무가의 역직은 세습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관습을 깨고, 정통성이 매우 빈약한 오다 노부나가에게 그 자리를 수여한 것이다.
하지만 반론은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가 세운 공훈도 컸고, 그와 맞먹는 공을 세운 내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논공행상이 모두 끝난 뒤, 오다 노부나가가 나를 찾아왔다.
“쿠보,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