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우에스기 포위망 (3)
우에스기 수군은 전멸했다.
소조선은 전부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그래봐야 원양으로 가기는 불가능한 일. 내 함대는 우에스기 가문령 내의 항구를 돌아다니며, 정박해 있는 배란 배는 모조리 박살내고 다녔다.
나는 함대를 둘로 나누어 나오에츠와 니가타 양면을 모두 공략했다. 북쪽의 항구를 불태우고 돌아온 쿄타로가 내게 다음 행보를 물어보았다.
“이제 반격은커녕 초계도 불가능할 겁니다. 어디를 공격하시겠습니까?”
“포로들을 심문해보니, 나오에츠는 빈껍데기더군. 니가타를 우선 친다.”
지난번 싸움에서 잡은 포로들의 말에 의하면, 우에스기 가문의 거성과 가까운 나오에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기껏해야 각 성을 지키는 수비대 정도가 흩어져 있었고, 아예 비우다시피하며 전선으로 끌고 나갔다는 듯했다.
내 구상을 들은 스즈키가 반론을 제기했다.
“차라리 카스가 산성을 우려 빼면 어떨까?”
나오에츠는 우에스기 령의 중심지인 조에츠의 외항. 그리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문의 거성인 카스가산성(春日山城춘일산성)이 위치하고 있었다.
다이묘를 비롯한 무사는 위신이 곧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위신을 세우고 깎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거성을 지키고 빼앗기는 일은 그중에서도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거성을 빼앗아버린다면 우에스기 가문의 위신도 추락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틀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스즈키에게 그 말이 무의미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가독을 이었다곤 해도, 사실상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상태야. 실세는 아마도 동북면의 무사들 중 하나가 쥐고 있겠지.”
그리고 카게카츠 본인도 가문의 거성이 아니라, 시나노의 한 산성에 유폐당한 상태라고 했다.
“이미 우에스기 가문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도 좋을 거야. 밖으로는 조적으로 낙인찍혔고, 안으로도 가문 외부의 무사에게 휘둘리는 신세니까.
그런 가문을 굳이 힘들여 무너뜨려야 할 이유는 없어.”
내 말을 들은 스즈키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게카츠라고 했나······. 그 친구도 꽤나 불쌍하네.”
“자기 양부가 선택을 잘못 했지. 아무튼 알맹이는 니가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감자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스즈키는 내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니가타에 병참이 몰려 있을 테니까 말이지?”
“맞아.”
동북면의 무사들은 모두 우에스기 령을 거쳐서 보급을 보내고 있었다. 상인을 이용하기 어려울 터였다.
이미 에치고의 해로는 이쪽이 전부 장악한 상황. 게다가 항구를 불태워 버렸기 때문에 이 지역의 상인들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나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동북면에서 온 수레들은 시나노 강을 따라 이동한다고 했어. 해안가에 가장 가까운 집적소는 바로 여기야.”
시나노 강은 산지 한가운데 계곡을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와나카지마를 넘어서, 카이까지 가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우리가 산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그러니까 여기가 가장 손쉬운 표적인 셈이야.”
나는 니가타 서쪽의 한 성을 손으로 짚었다.
시바타 성. 그곳이 공략목표였다.
* * *
지금 후방에 남아있는 우에스기 군의 규모는 약 일만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었고, 나는 함대를 모아서 어디든 강습할 수 있었다.
“세작이 돌아왔습니다.”
초계가 사라진 이상, 에치고의 해안가는 내 영역이나 다름없었고, 세작의 출입도 자유롭게 된 지 오래였다.
이전에 보내 놓았던 이가닌자들은 착실하게 정보를 모아서 보내 왔다.
“니가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바타 성이 있는데, 거기에 동북면에서 온 수레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병력의 배치 상황은 어떻지?”
“우에스기 가문의 군대 오천은 모두 각지의 산성에 흩어져 있었고, 그중 시바타 성에는 약 오백 정도가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북면의 무사들 휘하의 오천은 수레를 나르는 병참부대라고 했다.
세작이 가져온 지도상에는 니가타 인근의 성과 병력 배치가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본 스즈키가 한마디 했다.
“이거 바다에서 침입해 오는 경우는 아예 상정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애초에 여기는 세토 내해는 아니니까. 주로 육로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겠지.”
니가타 일대는 일종의 삼각주지대였다. 그리고 이 인근의 성들은 이 평야를 보호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각개격파하긴 좋겠네.”
* * *
“다시 말하지만, 병사들이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통제해. 우린 어디까지나 여길 건드려놓고 북상할 예정이니까.”
지금 우리는 나오에츠 앞바다에 와 있었다. 적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겠지만, 내가 노리는 바는 다른 방향일 터였다.
“지금 논은 전부 물이 빠진 상태라고 했다. 논밭에 불을 놓고, 마을도 모조리 약탈해라.”
지금까지 일본 내의 전쟁에서 민간인을 건드린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영지를 넓히기 위한 전쟁이 끝나면, 그들 또한 정복자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 위에 있는 산성에서 아주 잘 보이도록 불을 지펴라. 화약을 사용해도 좋다.”
항구를 지키는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역시 그들은 산성에 들어가 있었다.
논밭이 불타고, 마을이 부서졌다. 주민들은 한쪽 구석에 억류되었다.
“저항하는 자들은 죽여도 좋다.”
포로나 노예는 잡지 않았다.
과연 무사들은 주민들이 굶어죽게 내버려둘까, 아니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게 구제를 할까.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때는 추수를 앞둔 가을. 비록 바다를 건너오는 북풍은 건조하지 않았지만, 물이 빠진 논은 아주 잘 탔다.
“다시 말하지만 우에스기 군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다! 적당히 태웠으면, 카스가 산성 앞으로 진격하라.”
이쪽의 군세는 오천. 그리고 첩보에 의하면, 우에스기 가문의 거성, 카스가 산성은 수비대가 일천을 조금 넘지 않는다고 했다.
성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인다면, 저들은 나와서 맞서기보다는 영내에 흩어진 병사들을 모으려 할 터. 그때 빠질 생각이었다.
* * *
“저, 저 미친 자들이······.”
카스가 산성은 조에츠 전역을 살피기 좋은 곳에 위치했다. 당연히 고니시 수군이 벌이는 짓을 관망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전임 간토 간레이였던 우에스기 노리마사는 지금 카스가 산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에치고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겨우 자신의 몸만 빼낸 상태였다.
“저 자들은 도리도 없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양자도 비슷한 짓을 한 적이 많았다는 건 잊어버린 채, 망연자실하게 산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벼가 타는 냄새가 산 위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비록 감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올해의 작황은 망한 게 확실했다.
원정을 나간 가문의 병력을 먹일 방법도, 지금 저 농지와 함께 불타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노리마사에게 초병 하나가 다가갔다.
“적이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서 명령을!”
조에츠의 마을과 농지을 불태운 적이 이제는 우에스기 가문의 본성으로 접근한다는 보고였다.
재촉을 들은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우에스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노리마사 역시 일족으로서 가문이 살아남을 길을 도모할 의무가 있었다.
“각 성에 전령을 보내도록. 놈들이 우에스기 가문의 거성을 노리고 있다고. 그리고 아직 영내에 남아 있는 동맹군에게도 도움을 청하라.”
비록 억지로 가주를 세우고, 또 그 가주를 억류하는 자들도 일단 동맹이기는 했다.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지금은 귀중한 영지를 초토화시키는 적을 몰아내야 할 때였다.
그의 명에 따라, 조에츠 주변에 위치한 성에 전령이 파견되었다.
노리마사는 자신의 선택이 상대가 바라는 것인 줄도 모르고,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내렸다.
* * *
의외로 적의 반응은 신속했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가스카 산 어귀에 꾸려놓은 숙영지가 포위되어 있었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야. 항구로 가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어.”
직접 정찰을 다녀온 스즈키의 말이었다.
“규모는 얼마나 돼?”
“언뜻 봤을 때, 오천 정도로 보였어. 그리고 더 몰려드는 모양이야.”
그의 말에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곁에 있던 닌자에게 알고 있던 정보를 재확인했다.
“원래 이 근처에는 한 삼천 정도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에스기 군이 동맹까지 불러들였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쨌거나 무사의 명예는 싸움터에서 만들어지는 법. 병참 운송 임무는 그들에게 상당히 지루했을 터였다.
“공을 세울 기회라면서 달려온 건가? 뭐, 좋아. 그렇다면 오늘은 물러가자.”
그 이후로도 약 열흘 가량을 조에츠 앞바다에서 상륙하기를 반복하며 카스가 산성을 위협했다.
몇 차례 상륙을 반복하는 동안, 조에츠 일대는 확실하게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에치고가 제법 넓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에스기 가주의 직할령은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에치고 전역의 병사를 소집했습니다. 지금 니가타 방면의 수비대도 일부가 차출되어 남하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오네.”
사흘 가량을 더 기다리면서 계속 위협을 가했다. 마침내 칠천 가량의 병력이 해안가에 포진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모처럼 우리를 위해서 마중 나온 녀석들이니 예포라도 몇 발 쏴 주고 북상한다.”
관선으로 구성된 함대는 화력이 빈약한 편에 속했다. 첨저 구조의 선박은 포를 많이 올리기가 어려웠다.
고작해야 충돌 직전에 산탄을 한두번 쏟아 붓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화력이라도, 폭음만큼은 적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할 터였다.
- - -
쾅···! 쾅···!
“성문이 부서졌습니다.”
“치고 들어가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한데. 일단 항복을 권해도 괜찮을 것 같고······.”
내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입을 모았다. 공성측이 훨씬 많은 숫자로 고함을 지르자, 적도 기가 질린 모양새였다.
시바타성은 매우 작은 규모였다. 특기할 만한 건, 주변의 강을 해자로 쓰고 있다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화포 열 문을 끌고 와서 가한 포격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시간은 오래 못 준다고 일러라. 딱 일 다경만 기다려보도록 하지.”
“정말 문을 열까?”
병참이 모이는 중간 거점이라는 점에서, 저 성의 가치는 매우 높을 터였다. 이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스즈키 역시 항복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었다.
“안 열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도보로 구원을 오려면, 사나흘은 또 걸릴걸?”
적에게는 배가 없었고, 우리는 배가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기동성은 당연히 해로가 훨씬 우월했다.
“항복하면 곱게 풀어주고, 아니면 죽이거나 노예로 잡아 가겠다고 전해.”
망설이던 시바타 성의 수비대는, 그 말이 나온 다음에야 백기를 내걸었다.
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앞장서서 성문 밖을 나왔다.
“항복하겠습니다. 부디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기를 버린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겠다.”
어차피 저들이 생각을 바꾼다고 해도, 맨몸으로는 싸울 수 없는 법. 그리고 야전에서라면 이쪽이 훨씬 우세했다.
수비대가 머리를 감싸 쥐고 달아나는 걸 확인한 뒤, 시바타 성으로 들어갔다.
“이거, 설마 다 감자 가루일까?”
“아마도.”
성 안의 창고에는 감자 전분만이 가득했다. 미두와 된장, 소금도 약간은 있었지만, 역시 가장 많은 건 감자였다.
대충 계산해봤을 땐, 우에스기와 동북면 무사들의 연합군이 두 달까지도 족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이건 조금 질리는걸. 너 설마 이걸 노리고······.”
“거기까지.”
듣는 귀가 많았다. 나는 스즈키가 더 말을 잇기 전에 끊었다.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그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했다.
“아, 그러네. 주의할게.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할 셈이야?”
“가져가기도 마땅치 않으니, 싹 다 태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