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우에스기 포위망 (2)
탐광자들은 내가 기대하던 것들을 금방 가져왔다.
“말씀하신 대로 석영을 캐 보았는데, 그 가운데에 금과 은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금은이?”
나는 그들의 말에 모르는 척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탐광자들을 데려온 명목은 어디까지나 석영 광산. 그간 수석식 철포를 제작하면서 막대한 물량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 비싼 소모품을 각 철포마다 하나씩 달아 주어야 했기에, 석영의 수급이 절실했다.
다행히 사도 섬의 석영은 그럭저럭 알려진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탐광자들을 데려왔을 때, 누구도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탐광자들에게 상을 내렸다.
“아주 잘해 주었다. 이 섬에 제련소를 지을 것인즉, 그대들에게 일을 맡기겠다.”
사도 섬의 금과 은은 아주 유명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패권이 확립된 17세기 벽두에 발견된 이 광산은, 에도 막부의 중요한 자금줄이었다.
쇼군을 구워삶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다이묘들의 견제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안전하게 써먹자면, 쓰시마를 중간 거점으로 삼아서 완성품만 가져오는 편이 나았다.
제련소를 짓자면, 제법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당장 할 일은 에치젠을 비롯한 동북면의 해안가를 견제하는 일이었다.
“정탐선이 돌아왔습니다.”
이 섬을 장악한 직후, 함대의 일부 선박을 빼내 주변을 돌아보고 오게 했다. 다행히 우에스기 수군은 경계만 할 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에스기 수군의 거점은 어디인가?”
“모두 두 곳인 듯했습니다. 우선 확실한 장소는 이 섬으로 들어오면서 지나쳤던 나오에츠(直江津직강진)이었고, 이 섬의 바로 맞은편인 니가타(新潟신석)라는 항구에도 적지 않은 군선이 보였습니다.”
나오에츠라면, 우에스기 가문의 거성인 카스가 산성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항구였다. 그리고 니가타는 그 영지의 최북단 항구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 배치에 변화가 있지는 않았나?”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가까운 니가타의 군선을 부수지.”
적이 전력을 결집하지 않고 있다면, 각개격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쿄타로가 반대했다.
“곧 있으면 장마입니다. 아마 적도 그걸 알고 배치를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지도를 살펴보았다. 니가타까지는 편도로 약 이틀거리였다.
넉넉잡아 왕복 엿새쯤 걸린다고 잡는다면,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그래. 모험을 할 필요는 없겠지. 우선 장마를 넘기고 봐야겠군.”
* * *
장마가 끝나기까지는 약 한 달 하고도 반이 더 지나야 했다. 그러고도 함대를 띄울 수는 없었다. 눅눅해진 화약을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에스기 수군이 먼저 움직였다.
“적의 군선이 나오에츠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사도 섬 남쪽의 감시대에서 전한 정보였다. 니가타에 있던 군선들이 정박한 항구를 떠났다고 했다.
“아무래도 먼저 움직이려나 본데······.”
기나이에 저들의 세작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내가 무슨 의도로 함대를 이끌고 나왔는지 정도는 전해 들었을 터였다.
“규모는 얼마나 되었나?”
“소조선이 약 서른여 척이었고, 관선이 십여 척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에츠에도 그 비슷한 숫자가 있었다는 게 마지막 정보였다. 합치면 약 80여 척의 대규모 함대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아직 준비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출항해 요격하는 건 무리였다.
“군량은 얼마나 남았나?”
“약 한 달치가 남았습니다.”
사도 섬의 석고는 약 오천 석. 쓰시마보다도 훨씬 적은 규모의 섬이었다. 그들에게 병사 오천, 노잡이 오천, 합쳐서 일만가량의 병참을 기대하긴 곤란했다.
덕분에 우리는 착실하게 군량을 까먹고 있는 상태였다.
“당장은 약탈에 기대할 수는 없겠지. 일단 화약을 바짝 말리고 싸울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이틀 뒤 출항한다.”
장마는 언제나 나의 가장 큰 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엔 적이 그걸 이용하려 하지 않았고, 덕분에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나오에츠를 강습합니까?”
“상륙은 무리겠고, 군선을 부수는 일에만 집중하지.”
모든 준비가 끝나고, 사도 섬을 텅 비워둔 채, 함대가 통째로 남쪽을 향했다.
약 하루쯤 지나자, 우에스기 수군과 마주쳤다. 그들도 역시 결전을 염두에 두고 나온 듯했다.
어떻게 할지 묻는 쿄타로에게 간단하게 답을 주었다.
“싸우러 나왔으니, 싸운다. 다른 선택이 있겠나?”
이쪽은 오십 척의 대형 관선, 저쪽은 크고 작은 배를 모두 합쳐서 팔십 척. 숫자로만 놓고 보면 우에스기 수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이쪽은 체급이 컸고, 굳이 작은 선박의 보조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쪽은 화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판옥선만큼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없었지만, 상대는 아예 화기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대철포 정도가 한계일 터. 그리고 내 휘하의 수군은 그런 상대와 싸우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천오백 보 거리까지 다가왔습니다!”
“조란환을 미리 준비하고, 명을 기다려라.”
내가 일일이 지시할 필요도 없이, 쿄타로과 알아서 병사들을 움직였다. 그간 항로를 경비하면서, 숱한 해적들과 싸워온 경험이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적선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능숙하게 방패 뒤로 숨었다. 그리고 이쪽은 힘을 빼는 대신, 느긋하게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우에스기 수군은 숫자를 앞세워 이쪽을 에워싸려는 진형을 짜고 있었다. 가벼운 소조선은 우리 함대를 지나가며 뒤를 차단하려는 태세를 취했고, 적측의 관선은 정면으로 접근해 왔다.
학익선이라고 하기에는 둔탁하고, 대충 세 패로 나누어 포위하려는 형국이었다. 그저 그런 포위섬멸진이라고나 할까.
“선수를 돌리겠습니다.”
쿄타로는 포위를 우선 풀려고 했다. 대단히 상식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이런 대규모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그를 말렸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전력은 이쪽이 앞서고 있어. 굳이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적선을 보게 했다.
“얼마나 차이가 나지?”
내가 물어본 건, 숫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각 함선의 체고가 얼마나 차이 나는가를 주목하라고 했다.
“이쪽이 훨씬 높습니다.”
같은 관선이라고 해도, 차이는 상당했다. 저쪽은 약 삼백 석에서 오백 석 내외. 반면, 이쪽은 가장 작은 게 오백 석이었고, 크면 일천 석이었다. 아군의 대선은 말이 관선이었지, 사실상 원 역사의 안택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들에게는 화포가 없어. 설령 있다고 해도, 저 크기로는 쏘다가 전복되지 않겠나? 그렇다면 결국 단병접전을 걸겠지.”
그리고 역시 이쪽의 갑판이 높기 때문에, 기어 올라오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게 뻔했다.
“우선 화포로 기선을 제압하고, 저 초라한 적선을 들이받아 가라앉힌다. 그리고 잔당을 소탕하면 전투는 끝이지.”
“잠깐, 또 들이받는다고? 배가 금방 망가진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옆에서 내 구상을 듣던 스즈키가 반발했다. 그는 예전에 쓰시마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면, 아무도 내구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쿄타로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한 다음, 스즈키에게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스즈키 님, 이 배는 기존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선박보다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러 차례 충돌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공구를 좋은 걸로 쓰면서, 목재도 삼나무보다 훨씬 단단한 참나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못 역시 마찬가지. 쇠못 대신 나무못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휘하의 수군이 타는 배는 일본 내 어느 선박보다도 훨씬 우월한 내구도를 자랑했다.
“참나무······. 단단하지.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래도 영 불안한걸.”
“일단 봐 둬.”
적의 좌우 양익은 서서히 벌어지다가, 약 오백 보 거리에서 서서히 접근했다. 그리고 관선으로 구성된 본대는 지금 약 일백 보, 아군 함대와 거의 마주한 상태였다.
그리고 오십 보까지 가까워졌을 때, 아군의 화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선의 갑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게다가 일부는 선실을 관통했는지, 노 몇 개도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속도를 유지하고, 충돌에 대비하라!”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배가 흔들렸다. 스즈키는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급히 선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탄 배와 부딪힌 적선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다른 배들도 비슷하게 싸우고 있었다. 오십 척의 대선이 일제히 충돌하면서, 살아남은 적선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드는 게 보였다.
“기어오르는 적병을 주의하라!”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쿄타로가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움직이게 했다. 덕분에 나는 특등석에서 해전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적의 좌익과 우익이 약 일백 보까지 접근했습니다!”
“화포의 장전은?”
“거의 끝나 갑니다!”
화포를 맡은 병사들이 세척을 마치고, 화약을 부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적은 단병접전만 생각하고 약간의 시간차는 감수한 듯했지만, 그게 그들의 패인이 되었다.
“사격은 각 함의 판단에 맡긴다. 가까운 선박을 노리라고 해라.”
하지만 화포가 다시 불을 뿜는 일은 없었다.
“적선이 멀어집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어떤 참극이 벌어졌는지 자세하게 확인한 모양이었다. 적의 별동대는 모두 경쾌한 소조선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방향을 틀어 달아나는 게 가능했다.
정말 싱거운 전투였다.
“확실히 참나무가 단단하긴 단단하네.”
선실로 내려가 배의 상태를 보고 돌아온 스즈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충돌은 피하고 싶긴 한데, 배는 고칠 수 있어도 병사들을 조련하는 건 꽤 까다롭잖아?”
나는 장전해 놓은 권총에서 화약을 빼며 말을 이었다.
“같은 일천 명이라고 해도, 상대의 숫자에 따라서 손실이 달라지니까. 가급적이면 줄여 놓고 보는 거지.”
굳이 충돌을 강행해서 숫자를 줄이고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밑바닥이 납작하지 않은 선박은 파도가 흔들면 흔드는대로 요동이 심해, 화포를 쓰기에 적절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평저선 구조인 회선을 끌고 올 수 있었다면, 장거리 포격으로 느긋하게 때려 부쉈을 것이다.
하지만 요동치는 갑판에서는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화약은 매우 비쌌다. 아무리 인명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 지출을 유지하기는 곤란했다.
결국 고니시 수군의 핵심 전법은, 포격 - 충돌 - 철포 근접사격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정해지는 중이었다.
내 말을 들은 스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사이카슈가 해전의 변화에 적응하는 동안, 병사들은 전장을 수습했다. 허우적거리는 우에스기 군의 병사들을 건져 포로로 잡고, 쓸 만한 전리품도 챙기고 있었다.
“정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나나오로 향합니까?”
“그래야지. 배고픈 채로 싸울 수는 없으니 말이야.”
사도 섬의 금은은 어디 가지 않으니, 비워 놓아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에치고를 비롯한 동북면의 바닷가를 견제하는 건 병량을 채운 뒤에 해도 충분할 터였다.
노토(能登능등, 오늘날의 노토 반도)국의 하타케야마 가문은 선선히 병량과 화약을 내주었다. 물론 대금은 나중에 치를 예정이었고, 쇼군이 보증을 선 상태였다.
그 물자들은 고스란히 사도 섬에 차곡차곡 비축되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뒤, 내 함대는 본격적인 통상 파괴 작전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