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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53화 (53/225)

53화 우에스기 포위망 (1)

“지금쯤 우에스기 군은 시나노의 호족들까지 합세하여 칠만을 넘겼을 것이옵니다.”

쇼군의 알현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주인인 아시카가 요시아키, 그리고 그 측근인 미요시 요시츠구, 나, 마지막으로 오다 노부나가까지 해서 모두 넷이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이 아는 바를 밝혔다.

“칠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다. 아마 이 소식을 가져온 오다 노부나가조차도 경악했을 터였고, 지금도 긴장한 모습으로 그 추측을 입증하는 중이었다.

여태껏 그런 규모의 군세는 모인 적이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기나이 전부를 석권해도 끌어내기 힘든 숫자였다.

“우에스기 겐신은 쇼군을 옹위하겠다는 명분으로 동북면의 세력을 모두 규합한 듯하옵니다. 하지만 겐신과 신겐이 공멸한 뒤에도, 그 군세는 여전히 흩어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흐음······.”

이미 쇼군이 중재의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장 정보를 많이 쥐고 있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카게카츠가 직접 나선 상황입니까?”

“그건 아닌 듯하오. 우에스기 노리마사와 카게카츠 모두 진중에 유폐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소. 실제로 외부에 목격된 바가 없으니, 제법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인듯 했소이다. 아마 동북면에서 온 누군가가 손을 쓴 모양이오.”

역시 카게카츠가 그 많은 무사를 규합했을 리는 없었다. 아마 우에스기가 포섭한 자들 중에서 야심가가 나타난 듯했다.

“일단 다케다 가문을 구하는 게 급선무라 여겨지옵니다.”

시나노가 모두 넘어가고 나면, 다음은 당연히 오와리가 될 터였다. 요시아키가 뭔가를 말하려는데, 밖에서 전령이 뛰어 들어왔다.

“우에스기 군이 호조 가문을 침공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직 카이의 다케다가 버티고 있는 데다, 우에스기는 호조와 동맹 중이 아니었나!”

모두들 어리둥절한 가운데, 오다 노부나가가 전령을 추궁했다.

“호조 가문의 당주가 서찰을 보내왔습니다. 우에스기 군에서 이만이 갈라져 무사시(武蔵무장, 오늘날의 사이타마 현과 도쿄 도 일부)국의 경계를 넘었답니다!”

“그들은 상락을 명분으로 내걸더니 뜬금없이 동쪽으로 갔단 말인가?”

요시아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군대는 일관성이 있어야 강한 힘을 얻는 법인데, 지금 저들은 중구난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강 알 것도 같았다.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격식 차릴 것 없네. 편히 말하게.”

“지금 저들은 상락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상은 땅을 탐하는 도적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옵니다.”

이미 비젠의 우키타 나오이에와 북큐슈의 오토모 소린이 그러했고, 아사쿠라가 미노를 침공한 바 있었다. 저들의 움직임 역시 같은 맥락일 터였다.

지금까지는 낮은 소출 때문에 군을 일으켜 원정하기가 어려웠겠지만, 내가 감자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저들은 서로의 땅을 탐하기보다는 따뜻한 남쪽에 판돈을 걸려 했을 것이고, 겐신은 가장 가까운 자신이 당하기 전에 역으로 끌어들였을 거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가 다케다 신겐과 같이 죽어버리면서, 동북면 무사들의 욕망은 고삐를 잃었다. 결국 동북면도 여러 다이묘가 한데 모였다는 차이가 있을망정, 따서 갚아버릴 생각으로 군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명분 없는 도적 떼라면 의당 모든 무사들이 나서서 토벌해야 할 것이옵니다.”

내 말을 들은 쇼군이 무릎을 쳤다.

“그 말이 옳도다! 도적들을 끌어들인 우에스기 가문에게 간토 간레이를 세습할 자격이 있겠는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훌륭하게 내 말을 받았다. 저들은 상락해서 천하의 질서를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미 방향을 바꾼 시점에서부터 도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책임은 당연히 우에스기 겐신에게 있을 터였다.

대대로 간토 간레이를 차지한 가문에게서 그 역직을 박탈한다면, 그 또한 지금의 쇼군이 원하는 일이 될 터였다. 그리고 아마 차기 간토 간레이는 오다 노부나가가 될 것 같았다.

“내일 조정에서 이 일을 공론화하고, 조적 토벌의 칙명을 받아낼 것이네. 그리고 간토 간레이는 막부의 역직. 이 몸이 원하는 사람이 간토 간레이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쇼군의 눈은 명백히 오다 노부나가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오다 노부나가는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지난번에는 내가 쿠보직을 받았으니, 이번에 오다 노부나가를 간토 간레이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 몸은 그대를 믿네.”

“쇼군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그 자리에서 우에스기와 동북면 무사들을 토벌하는 일이 결정되었다. 관동의 일은 내가 손을 쓰기가 어렵고, 쓴다 해도 얻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어떻게든 비상할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 아사쿠라 가문과 호조 가문, 도쿠가와에 다케다까지 쟁쟁한 세력들이 모두 가세하겠지만, 이번 전쟁의 주인공은 그가 될 터였다.

“쿠보, 철포와 화약을 좀 구할 수 있겠소이까?”

갑자기 오다 노부나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영지에는 교역 금지를 걸어놓고, 지금 쇼군 앞에서 내게 자신이 원하는 걸 팔라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철포 오천 자루가 필요하오. 값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소.”

공짜로 가져가겠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내가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일전에 내린 방곡령은 효력을 잃다시피 한 상황. 보나 마나 넘쳐나는 쌀로 대금을 치르려는 게 뻔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금 쇼군과 미요시 요시츠구는 사카이의 보호막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처세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어려웠다.

“말씀하신 수량만큼 기요스 성으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오오, 감사드리외다.”

오다 노부나가의 공치사를 받으며, 나는 쇼군에게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소인이 오다 공을 돕고자 하온데, 그러기 위해서 부탁을 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말하게.”

“에치고 앞바다에 섬 하나가 있어, 사도국이라 하는 줄로 아옵니다. 그 섬의 슈고다이(守護代수호대)로 임명해주신다면, 소인이 조적의 후방을 교란할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마침 내가 적절히 얻어낼 게 하나 있었다. 사도가시마의 권리. 금은의 산출로 유명한 섬을 정당하게 차지할 좋은 기회였다.

아직은 사도가시마의 광산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쇼군에게는 지금 내 제안이 순수한 선의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슬쩍 요시아키의 눈치를 보자, 역시 감동하고 있는 듯했다.

“참으로 갸륵한 일이로다! 이 난세에 오다 공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나서서 조적 토벌에 가세하겠다니······. 좋다. 내일 조적 토벌을 거론하면서, 사도노카미 수여도 같이 아뢰겠다.”

나머지 사람들은 의아한 기색이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       *       *

“그런 이유로, 당분간 사카이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혼마 가문이 사도가시마의 주인이겠지만, 그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에스기와 한패로 엮여서 조적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조선에 다녀오는 것보다 훨씬 멀고 험한 길이 될 터였다. 족히 일 년은 넘게 걸릴 게 뻔했고, 전황에 따라서는 그 몇 배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쇼군이 쿠보직을 내렸다지만, 너무 밑지는 일이 아닌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구형 철포도 여기서나 구형이지, 상당히 얻기 힘든 물건이라고.”

전직 무기상인과 사이카슈가 한마디씩 했다.

이미 철포와 화약의 판매를 약속했는데, 굳이 더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마츠나가 히사히데도 거들었다.

“방위는 그리 어려울 게 없겠소만······. 나 역시 영문을 모르겠소.”

“가끔 선의를 베풀다 보면, 또 돌아오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내게 그들에게 내세운 이유는 쿠보직의 무게였다. 물론 사도가 섬의 가치는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기에 둘러댄 명분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나는 수군 지휘관인 쿄타로에게 현황을 확인했다.

“북쪽 바다는 매우 파도가 높다. 아마 쓰시마로 가는 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터. 동원할 수 있는 관선이 얼마나 되나?”

“네, 주인님. 전체 이백 척의 대선 중에서 관선이 일백입니다. 그리고 이세와 쓰시마의 항로를 지킬 만큼을 제외하면 오십 척을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쿄타로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우에스기 겐신의 수군도 나름대로 명성이 있는 편에 속했다. 한번은 뱃길로 상락에 성공했다고 하니, 결코 경시할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단연 내 휘하의 수군이 앞설 터였다.

의외로 소나무보다 더 좋은 참나무가 풍부해서, 기대했던 이상의 함선을 건조할 수 있었다. 이건 조선의 철을 공구로 사용할 수 있는 고니시 수군만이 가능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당분간 수비는 회선(回船)으로 보충하고, 충돌은 가급적 피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관선을 좀 더 건조하는 게 좋겠군.”

지금 위협이 될 만한 해상 세력은 서쪽의 모리 수군과 동쪽의 구마노 수군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리는 협력을 약속했다.

구마노 수군도 마찬가지. 오다 노부나가와 연이 있는 그들이 지금 이쪽을 해칠 가능성은 없었다.

언제고 사도 섬을 차지해야 했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이득을 얻어내려 했지만, 덕분에 나 역시 마음 놓고 원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각 함선마다 최대 인원을 승선시켜라. 모리 가문과 하타케야마 가문에게 항로 상의 보급을 약속받았다.”

처음 조선에 다녀올 적에는, 상품을 실어야 했기 때문에 병력을 최소한으로 태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아시카가 가문의 방계인 하타케야마는 남쪽에도 있었지만, 호쿠리쿠 지방의 노토 반도에도 존재했다. 이번에 쇼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만큼, 그쪽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       *       *

“전방에 한 척의 소조선이 보입니다. 조릿대와 참새 문양 깃발, 우에스기 수군입니다!”

노토 반도에서 사도 섬으로 가려면, 에치고 앞바다를 지나야 했다. 당연히 우에스기 수군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주한 배는 아마도 초계나 검문 목적으로 나온 듯했다. 가까이 오다가 갑자기 돌아서는 걸 봐선, 내 함대가 에치고에 상륙하려고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굳이 쫓아가서 싸울 필요는 없다. 내버려 두고 사도 섬으로 향한다.”

다행히 사도 섬에 닿도록 우에스기 수군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숫자로는 저쪽이 조금 더 앞서겠지만, 함급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터. 이쪽은 전부 오백 석 이상, 큰 건 천 석에 달하는 선박이었으니, 싸우기보다는 관망을 선택한 듯했다.

그리고 사도 섬. 이곳의 주인인 혼마 야스카타는 허망할 정도로 쉽게 사로잡혔다.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없소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그는 비굴하게 애원했다. 그동안 이 섬을 공격해온 자가 없어서 느긋하게 지내온 것처럼 보였다.

“에치고의 우에스기는 이미 조적으로 선포되었다. 군을 일으켜 토벌에 나서지 않음 또한 중죄인즉, 사도노카미직을 박탈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섬의 병력은 전부 합쳐봐야 백여 명에 불과했다. 덕분에 접수하기는 쉬웠다. 혼마 가문이 반발하기에 섬은 너무 좁았고, 내가 이끌고 온 병력은 그 수십 배였다.

섬의 저택에 걸린 깃발을 바꾼 뒤, 쿄타로가 다음 순서를 질문했다.

“주인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민들을 모두 억류하고 출도를 금하라. 그리고 탐광자들에게 섬을 조사하라고 이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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