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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51화 (51/225)

51화 불화의 씨앗 (4)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우에스기는 북으로 갔다고 하지 않았나?”

우에스기 겐신이 군을 일으켜 동북면으로 향했다는 것이 석 달 전의 이야기였다.

“테루토라(輝虎휘호), 아니 겐신이 아시나(蘆名노명)와 다테(伊達이달)를 복속시키고 곧바로 남하했습니다. 우에스기와 다케다가 결전을 벌인 전장에서 그 두 가문의 깃발이 보였다고 합니다.”

“양측의 규모는?”

“우에스기 군이 삼만인데, 다케다 신겐은 칠천을 이끌고 그에 맞섰다고 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하나하나 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이치로를 내 집무실로 보내놓고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관동의 정세가 급변하는 판에 관서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군이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모리 공께서는 협력을 이야기하셨소만, 말만으로 믿을 수 있는 세상은 아니잖소이까?”

나는 테루모토에게 신뢰의 증거를 달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상대는 그 또한 미리 준비해온 모양이었다.

“여기 숙부 중에 모토아키(元秋원추)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을 인질로 남겨놓겠습니다.”

일행 중의 하나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테루모토는 자신의 숙부라고 했지만, 나이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 것 같았다.

“흐음, 숙부라······.”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테루모토를 보았다. 그러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대신 입을 열었다.

“제 서동생입니다. 형제 중 다섯째지요.”

반공대를 취하던 그가 온전히 공대로 어조를 바꾸었다. 이왕 내가 모리 가문과 협력하기로 한 이상, 주군의 동맹으로 예우하는 모양새였다.

모리 모토나리는 적서의 구분을 엄격하게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형제들 사이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고 하니, 인질로서의 가치도 그리 낮지 않은 듯했다.

“좋습니다. 미력하나마 모리 공을 힘껏 도와드리지요.”

*       *       *

자리를 마무리한 뒤, 나는 돌아가려는 무장들을 집무실로 불렀다.

이미 이치로는 모든 첩보를 종합해서 설명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약 한 달 전, 우에스기 겐신이 삼만 이상의 군세를 이끌고 시나노(信濃신농, 오늘날의 나가노 현)를 침공했습니다.”

“삼만 이상?”

스즈키 시게히데가 무심코 반문했다. 사이카슈로서 숱한 전장을 경험했겠지만,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숫자일 터였다.

보통 다이묘 간의 전쟁에서 일만 이상을 동원해도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몇 배나 되는 병력이라고 하는 게 나로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건 스즈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모두가 우에스기 군의 규모에 의아해하자, 이치로가 설명을 덧붙였다.

“확인된 것만 삼만입니다. 휘하에서 동북면의 다른 가문들의 깃발도 확인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군세를 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문이라니?”

마츠나가 히사히데도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일 터. 나는 모든 질문을 중단시키고 마저 설명하도록 했다.

“자자, 지금은 설명을 계속 들어봅시다. 에치고의 용과 카이의 호랑이가 서로 싸우다 죽을 정도면 상황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듣고 모두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형 사건이기는 해도, 머나먼 관동의 일. 다른 참석자들도 일의 경중을 깨닫고 모두 입을 닫았다.

이치로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다케다 신겐은 휘하 무사들을 재소집하는 한편, 자신의 직할부대를 이끌고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숫자에 밀려 가와나카지마를 포기하고 시나노의 산지로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도상에서 북시나노에 전개된 깃발을 움직였다. 그에 따라 변화된 상황이 시각적으로 표시되었다.

보통 신겐과 겐신의 전투는 에치고(越後월후, 오늘날의 니가타 현)와 시나노의 접경지대에서 발생했다. 산과 강이 복잡하게 얽혀 서로 오갈 수 있는 길목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가와나카지마에서만 다섯 번이나 싸웠던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지형이 방어에 유리하다고 해도, 몇 배나 되는 적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았다.

“결전이 벌어진 장소는 이곳, 스와 호수의 북안. 거기에서 다케다 신겐은 배수진을 치고 우에스기 군을 끌어들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휘부를 특정한 다케다 신겐은 친위대를 이끌고 일점돌파로 적장의 목을 취한 뒤, 난전에서 사망했다는 게 이치로가 가져온 최신 정보였다.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어째서 다케다 신겐이 휘하 세력의 결집을 기다리지 않고 결전을 벌였는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전략적 목표도 달성한 상태에서 죽어버렸다는 것 역시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다들 말이 없이 지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원래 우에스기 테루토라, 아니 출가해서 이제는 겐신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자는 간토 간레이를 직함에 집착하는 편이었지. 그런데 어째서 그 군세로 호조 가문을 공격하는 대신 시나노로 출병한 것인가?”

그는 미요시 가문의 중신이던 시절부터 군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천하의 정세에도 밝은 편이었다. 아마도 예전의 당주는 그를 의논 대상으로 삼았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그의 분석은 나름대로 예리했다.

“그건 제가 설명하지요.”

나는 입을 열려던 이치로를 손짓으로 조용히 시키고 직접 이야기해주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지금 호조 가문과 동맹 중입니다. 아마도 다케다 신겐이 이마가와를 멸하면서 스루가를 얻은 게 원인이겠지요.”

다케다 신겐의 숙원은 남쪽의 바닷가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이룬 시점에서, 주변 세력의 견제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만했다.

물론 이 시기에 마츠나가는 전국 다이묘가 아닌, 사카이의 군 봉행으로서 일하고 있었기에 모를 법한 이야기였다.

내게 답을 들은 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삼만 이상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이번에는 스즈키가 이치로에게 물어보았다. 아까 못다 한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동북면으로 출병하여 그 일대의 세력을 휘하로 들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아시나 가문과 다테 가문의 깃발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다이묘가 가세했을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동안 우에스기의 군세는 삼만을 넘겼던 적이 없었다. 아마도 겐신 역시 감자를 이용해 병력을 바짝 늘린 다음, 동북면의 세력을 모조리 흡수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이치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두 다이묘가 사망한 뒤에는 누가 그 자리를 이었지?”

“우에스기 측은 겐신의 외조카이자 양자인 카게카츠(景勝경승)를 옹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케다 신겐의 지위는 그 아들인 카츠요리(勝頼승뢰)가 승계했습니다.”

이치로가 덧붙이기를, 아직 우에스기 가문이 회군했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케다는 몰라도 우에스기 측의 결속력은 제법 단단한 것처럼 보였다.

“혹시 그들의 후계자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가 있나?”

“없습니다.”

잠시 인명록을 뒤적이던 이치로가 단언했다.

“아시다시피 겐신은 양자가 카게카츠 하나뿐이었고, 신겐 역시 건강한 적자는 카츠요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역시 먼 곳의 일이라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보가 더 필요해. 사람이든 자금이든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 최대한으로 알아보도록.”

이치로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쇼군의 사자가 찾아왔다. 아직 모리 가문의 손님들이 떠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쇼군께서 쿠보(公方공방, 고니시 유키나가)를 찾으십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나?”

사자로 온 무사는 자신은 말을 전할 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어제 입수한 정보가 있으니, 역시 우에스기와 다케다의 충돌 때문인 것 같다고 짐작은 가능했다.

“아무래도 교토까지 동행해야 할 모양이외다.”

내 말에 모리 테루모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쇼군께서 호출하셨소. 덕분에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구려.”

일부러 막부의 주인이 불렀다는 걸 강조했다. 비록 협력을 이야기했다고는 해도, 그 역시 다이묘 중 하나. 그냥 막부의 주인과 가깝다는 것만 슬쩍 내비쳤다.

사카이에서 교토까지는 길면 사흘 정도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모리 일행이나 나나 모두 빠르게 움직였기에 이틀 만에 도착했다.

*       *       *

모리 가문은 교토에 따로 저택을 두고 있었고, 나는 요시츠구의 집에 머물렀다.

미요시 가문의 당주는 이미 쇼군의 측근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덕분에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쇼군께서 동쪽의 일로 근심이 많으시네.”

“저도 풍문은 들었습니다. 겐신과 신겐이 서로 싸우다 죽었다고 하던데······.”

요시츠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금 카게카츠가 자기 부친의 지위를 잇게 해달라고 사자를 보냈네. 하지만 쇼군께서는 군대부터 물리라고 명을 내리셨지.”

그리고 이후의 향방을 논하기 위해 나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지금 막부의 주인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나와 오다 노부나가를 자신의 양 날개로 여기고 있었다.

다케다 가문은 오와리의 다이묘와 동맹 관계. 다케다 카츠요리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중재를 부탁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는 다시 자신의 정통성을 후원해주는 쇼군에게 이야기를 전했다는 모양이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아사쿠라 가문이 미노국을 쳐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남의 일까지 신경을 쓸 줄이야.

“오다 공은 아사쿠라 가문의 침공을 막는 중이 아니었습니까?”

“이미 양쪽 모두 쇼군의 명으로 군대를 물렸네. 오와리의 다이묘도 지금 교토에 들어와 있는 상태지. 아마 내일쯤 만날 수 있을 걸세.”

역시 예상대로였다.

아사쿠라 가문도 우키타 나오이에의 전철을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쇼군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쇼군이 도움을 청할 때는 외면했지만, 지금 내린 명령에는 순순히 따른 모양새였다.

지난번 사카이에서 만났을 때, 쇼군은 오다 노부나가를 상당히 많이 언급했었다.

당시 오와리의 다이묘는 군웅 중에서 유일하게 군을 일으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려 했던 자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의 쇼군은 머리가 제법 돌아가긴 해도, 사람 보는 눈은 없는 모양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움직였다는 걸 확인한 뒤, 나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사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케다 가문이야 침공을 받는 중이니 그렇다 쳐도, 어떻게 우에스기는 와해되지 않고 군세를 유지하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동북면의 세력을 규합한 겐신은 죽었다. 다른 군소 영주들은 몰라도, 다테나 아시나 정도 되는 대가문이 여전히 그 휘하에 남아 있다는 게 이상했다.

“듣기로는 전임 간토 간레이가 나섰다는 모양인데, 듣고 보니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요시츠구도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요시츠구는 이미 니조(二条이조)성에 들어가 있었고, 나는 그의 저택에서 쇼군의 호출을 기다렸다.

해가 중천을 막 지났을 무렵, 쇼군이 사람을 보내왔다.

심부름꾼의 인도를 따라서 니조성에 들어가다가 건장한 무사와 마주쳤다.

어제 전해 들은 이야기, 그리고 오각형의 모과꽃이 그려진 상대의 복식을 보고 그가 오다 노부나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영웅이다 싶은 기세로 온몸을 두른 자였다.

위압감의 무게만 놓고 보면, 예전에 미요시 나가요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처럼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오다 공. 사카이 쿠보를 맡은 고니시 유키나가라 합니다.”

“오오, 공이 그 유명한 고니시 유키나가 님이셨구려. 만나서 반갑소.”

상대의 목소리에는 친근감이 듬뿍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쪽을 바라보는 눈매는 예리하기만 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보이고 있을까.

비록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서로를 인식한지는 오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깃발 아래에 있는 이상, 서로에 대한 경계심은 잠시 숨겨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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