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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48화 (48/225)

48화 불화의 씨앗 (1)

“고니시 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칩거를 마친 소에키는 마을을 떠나겠다고 했다.

와타다 오리시로와는 달리, 그는 내게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인 거리는 무척이나 멀어진 듯했다.

“끝내 믿음을 드리지 못했군요.”

“그런 게 아닙니다.”

승려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소승이 마음만 급했습니다. 눈이 어두운 탓에, 고니시 님의 선견지명을 헤아리지 못한 게지요.”

그는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서 싸움을 직접 목격했노라 했다.

같은 경비대라도, 내 직속과 다른 상인들이 조직한 부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소에키는 그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고 밝혔다.

“의기만 앞서서 현실을 돌아보지 못했고, 고니시 님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는 잠시 천하를 돌아보며 수양을 쌓을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마을에 남아서 더 도와주십시오.”

내 만류를 들은 승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번뇌와 불신이 쌓였으니, 가까이 있기보다는 먼발치에서 머리를 식히고 싶습니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내가 알던 그 소에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으셨다면 어쩔 수 없군요. 어디로 가시려는지나 알려 주십시오.”

“딱히 정해 놓은 바는 없지만, 일향종에 귀의하여 그들을 따라다닐 생각입니다.”

역시 그동안 교류했던 일향종이 그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듯했다. 잇코잇키(일향종의 난)에 투신할 생각으로 떠날 결심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를 붙잡는 대신, 선선히 보내 주기로 했다.

“종종 서신이나 주십시오.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지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동지들 중 또 한 사람이 마을을 떠났다.

*       *       *

총칼로 싸우는 전쟁은 끝이 났지만, 책상 앞에서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전쟁을 치른 기간은 고작 두 달인데, 소모한 액수는 제가 벌어들이는 한 해 수입을 훌쩍 넘어갔군요.”

“원래 싸움이란 돈으로 하는 법이라 했습니다.”

전쟁이 남긴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막대한 전비와 맞바꾼 결과였다.

내가 수입과 지출을 결산하며 푸념하자, 이마이 소큐가 위로의 말을 꺼냈다.

망가진 화기는 녹여서 다시 사용하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화약이었다.

이 소모품은 매우 비쌌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그 비싼 걸 물쓰듯 써야 했다.

게다가 신형 철포는 화약 외에도 부싯돌까지 소모하는 물건이었다. 석영이 지표면에 풍부하다지만, 정작 구하기는 어렵기만 했다.

결국 군비의 대부분은 수입산 재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배신자들의 가산을 몰수한 것까지 계산하면, 감당하지 못할 지출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모든 금전출납을 전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돈은 쓴 만큼 벌면 됩니다. 하지만 얼마나 쓰고 버는지 파악하는 작업은 지루하고도 피곤하군요.”

집무실에는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어쩔 수 없지요.”

사환들은 물론이고, 마츠나가와 휘하의 장수들, 그리고 이가닌자까지 동원한 상태였다.

그렇게 최대한의 인력을 동원해도 서류의 양은 줄지 않았다. 세야 할 숫자는 많았고, 읽어야 할 글씨는 넘쳐났다.

게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감이 들어왔다.

내 영지로 편입된 아와지의 관리도 시급했고, 유랑민의 수용도 미뤄둘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 짬을 내서 전비를 결산하고 나면, 마을 사무와 영지 관리가 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치 서류를 치우면 또 그만큼의 일감이 들어왔다.

마침내 참다 못한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들고 있던 종이를 내던지며 말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소. 대관을 더 고용해야 하오이다.”

“하지만 글자를 아는 사람은 드문 편이오. 어디서 불러온단 말이오이까?”

이마이 소큐의 말이 곧 현실이었다.

예전 같으면 상인들을 불러다가 대관으로 임명하는 게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사카이의 쿠보도 임기를 종신으로 정했지만, 선출직으로 바뀐 상황. 사카이의 거상들은 굳이 출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인원으로 감당할 수도 없는 노릇.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다.

“아!”

옛 일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성당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일할 사람을 찾으러 갑니다. 얼른 다녀오지요.”

“소장이 모시겠습니다!”

시마 사콘이 잽싸게 나섰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야규 무네요시도 뒤늦게 따라오려 했지만, 그들은 집무실에 남아야 했다.

학교를 세운 지도 4년이 지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업을 마친 인력이 배출될 시기였다.

정작 내가 바빠서 루이스 신부를 거의 만나지는 않았지만, 학교야 어디 가겠는가. 나는 약간의 민망함을 무릅쓰고 사제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잖아도 찾아뵈려 했습니다. 이번에 졸업할 학생들의 일자리가 필요한지라······.”

다행히 알맞게 찾아온 것 같았다.

애초에 학교를 설립할 때, 내가 최대한 많은 학생을 받으라고 요구했었다. 그래놓고 정작 나는 학교의 운영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몇몇 상인들이 졸업생들을 고용했지만, 배운 사람을 찾는 이들은 드물더군요.”

“하하하······. 제가 벌인 일이니, 수습도 제가 하는 게 맞겠지요.”

사카이의 상인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았다. 루이스 신부는 우선 그들에게 학생들을 소개시켜주고 있었다고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남 좋은 일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부 제가 데려가도록 하지요. 아니, 지금 배우는 학생들도 수준만 맞는다면 견습으로 채용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았을 터인데······.”

사제는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지 못할까 우려했다.

“지금 읽고 쓸 줄 아는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그럽니다. 급한 시기만 넘기면, 그들이 모든 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지요.”

프로이스 신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졸업생들을 모아서 내 집무실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고, 다음 날 상당히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자네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모두 합쳐서 여든 명이었다. 그중에서 서른은 졸업생이고, 나머지는 아직 학생이라고 했다. 원래 졸업생도 쉰 명이었지만, 오지 않은 스무 명은 이미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기에 앞서 궁금한 걸 질문했다.

“그래, 일자리를 찾은 자들은 얼마나 받는다고 하던가?”

“한 달에 은 1문씩 받는다고 했습니다.”

처음 직조 공장의 노임이 거의 표준으로 정착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나는 약간 더 높은 임금을 제시했다.

“여기서는 은 2문씩 주겠네.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주고, 혹시 여기로 오고 싶다는 자들이 있으면 데려오게나.”

나는 노동조건과 급여를 확정지은 뒤, 에고슈 회관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여기 새 일꾼들이 왔소이다! 이제 하던 일을 인수인계하도록 하시오.”

업무에 찌들어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을 빛냈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그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문을 닫았다.

“어딜 가려고 하는가? 어서들 앉게.”

*       *       *

다시 내 집무실은 평화를 되찾았다.

장수들, 그리고 닌자들은 모두 제 업무로 복귀했고, 나는 느긋하게 쉴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세상은 잠깐의 여유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미곡상 중 하나가 나를 찾아와 마을의 변화를 보고했다.

“곡물의 가격이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지방은 몰라도, 기나이 지방에서만큼은 많은 이들이 사카이로 몰려오고 있었다. 사카이를 둘러싼 세 쿠니는 물론이고, 교토를 떠난 이들도 상당하다고 했다.

게다가 한바탕 전쟁을 치렀으니, 각지의 무사들이 손해를 벌충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농지를 버리고 도망치는 자들도 늘었을 터. 그 수치는 나날이 늘어나는 유랑민의 숫자로 드러났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모자라게 되었으니, 곡가가 치솟는 것도 당연한 일. 도시의 책임자로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원인 한 가지가 추가로 나타났다.

“오와리의 상인들이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우리의 상품을 사지도 않고, 쌀도 내놓지 않겠답니다.”

오와리(尾張미장)는 이 시대의 주요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인근의 미노(美濃미농)과 합쳐서 노비(濃尾농미) 평야라고 불렸고, 사카이 역시 여기에서 상당한 양의 미곡을 사들이는 상황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다고 합니까?”

내 질문을 들은 미곡상이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이, 오와리의 다이묘가 내린 명령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직접 지시한 내용이라면, 그 의미는 명백했다. 그는 나를 견제할 생각을 드러냈다.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쇼군의 중재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정통성을 보충하기 위해서 막부의 권위를 빌리고 있는 상황. 막부가 중재에 나선다면 그는 다시 거래를 재개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쇼군에게 빚을 하나 지는 셈이 된다. 그런 방법을 먼저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마을에서 파는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손해가 나는 부분은 제가 메워드리겠습니다. 다만,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나는 미곡상에게 당근과 채찍을 모두 보여 주었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내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기나이를 제외하면 오와리가 가장 가까운 식량 수급처이기는 해도, 아직 거래처는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어디서 식량을 구해 온다······? 필리핀으로 배라도 띄워야 하나?”

일본인이 초식동물이라는 건 헛소리였지만, 초식동물도 곡식을 사료로 먹여야 힘을 쓰는 법. 사람도 마찬가지다.

쌀과 콩의 수급은 중요한 문제였다.

“잠깐······. 사료?”

식량의 생산을 늘릴 방법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사료로 시작했다가 구황작물로 인정받은 식물. 아직 유럽에조차 전래될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 원산지는 이미 상인들이 오가고 있을 터였다.

*       *       *

“남만 상인들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루이스 프로이스를 찾아가 포르투갈 상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달라고 청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무슨 일로······?”

“신대륙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제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감자는 마키아벨리의 책과는 사정이 달랐다.

그렇잖아도 당시의 일로 루이스 신부가 한동안 나를 귀신 취급하다시피 했으니, 아직 유럽에도 제대로 전래되지 않았을 식물을 가져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상인들에게 적당히 조건을 설명하고 이익으로 수배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다른 지역의 지배자들도 종종 해외의 문물에 관심을 보였기에, 루이스 신부는 내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성당에 모여든 상인들 앞에서 요구조건을 말했다.

“맛은 없어도 되고, 가축 사료라도 좋다. 하지만 날씨나 토질에 상관없이 잘 자라야 한다. 그런 작물의 씨앗을 가져와 주길 바란다.”

남만인들은 영 신통찮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멀리 신대륙까지 돌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다. 일본과 명, 필리핀만 왕복해도 돈이 생기는데, 굳이 유럽 너머 아메리카까지 다녀오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그들에게 대가를 제시했다.

“만약 만족스러운 식물을 가져온다면 보상은 섭섭잖게 지급하겠다. 한 해, 아니. 두 해 동안 도자기 거래 물량의 절반을 몰아주지.”

내 말을 듣자, 그들은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꾸었다.

“그게 정말이오?”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이민족에게 제한적인 교역을 허용했다. 그건 일본만이 아니라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다.

명의 도자기는 유럽에 내다 팔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남만 상인들에게 허용된 물량은 그 욕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조선의 도자기를 들여오면서 공급량이 늘었지만, 여전히 수요는 훨씬 많았다.

“대량으로 가져올 필요는 없고, 심어서 자랄 수 있는 씨앗이나 모종이면 충분하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모두 마을을 떠났다.

신대륙에 다녀오고 조건에 맞는 식물을 찾는 데 걸릴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제시한 미끼는 아주 먹음직스러울 터였다.

이듬해 봄, 한 남만인이 나를 찾아와 가져온 식물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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