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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46화 (46/225)

46화 낙일, 그리고 여명 (9)

“대체 무슨 꿍꿍이겠습니까?”

망루에서 지켜본 삼인중의 군대는 전혀 공격을 가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도 우리처럼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 같았다.

내 질문을 받은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금방 답을 도출해냈다.

“저들은 아군의 화포를 두려워하는 것 같소이다. 조만간 장마철이기도 하고, 태풍이 올 시기요. 저들은 비를 기다리는 모양이구려.”

비가 오면 군대를 움직이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하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상대적으로 화기의 비중이 적은 쪽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기름 먹인 천막과 종이를 준비해야겠군요.”

내가 언급한 것들은 하나같이 비싼 물건들이었지만, 준비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 4월, 사미다레(五月雨오월우)를 대비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 남은 상태였다.

적에게는 수군이 없었고, 나는 대규모의 함대를 운용했기에 보급은 넉넉했다. 거기에 몇 가지 종류의 물자를 더하는 것 정도는 손쉬운 일이었다.

한 달 뒤, 역시 적의 움직임은 예상대로였다.

대치하는 동안 가끔 봄비가 내릴 때도 있었지만, 적은 여전히 포위망을 유지하기만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 처음 보는 두꺼운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하자, 적진에서도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걸로 상대의 의도는 명백해졌다.

망루에서 적을 살피고 있던 스즈키 시게히데가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마츠나가 공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도 손 놓은 건 아니니, 막아낼 수 있을 걸세.”

적이 비를 기다리는 동안, 이쪽도 각종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성곽 위에 지붕을 올리고,

화약을 기름종이에 포장하여 옻칠된 상자에 보관하고,

병사들에게 총검술을 연습시켰다.

여전히 근접전에서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허망하게 죽지는 않을 정도로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사카이 공방전의 승패를 결정할 마지막 일전이 다가왔다.

이번 공세만 막아낸다면, 미요시 삼인중은 중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 오다 노부나가가 협정을 파기한 미노(美濃미농, 오늘날의 기후 현 남부)국의 사이토 요시타츠(斎藤義龍재등의용)를 토벌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가닌자의 첩보에 의하면, 오다 노부나가가 조만간 상락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미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후계자인 요시아키를 받아들였다.

미노 국부터가 오와리에서 상략하기 위한 길목 중 하나. 그가 노리는 건 뻔했다. 시일을 끌수록 삼인중은 사카이에 대군을 묶어두기 곤란한 처지가 될 터였다.

“적이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적군은 진흙탕과 해자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첫 전투보다 느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쪽의 사정은 그보다 훨씬 열악해졌다.

“불발이 늘어난 듯싶구려.”

“역시 날씨는 어쩔 수 없지요.”

마츠나가가 지적한 대로, 화약의 폭발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습기는 화기의 적, 게다가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투사 무기의 위력이며 명중률도 감소한 것처럼 보였다.

“화포는 모두 조란환을 장전하라!”

“착검!”

적당한 위치에 지붕을 씌운 만큼, 화포는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들고 있는 철포에 상당한 제약이 걸렸다.

불가피하게 근접전을 준비해야 했다. 비록 이쪽은 성과 해자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가장 불리한 전법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적은 성 뒤에서 철포나 쏘는 겁쟁이들이다! 가까이 붙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승리다. 돌격!”

“와아아!!!”

삼인중의 군대는 기세좋게 성벽을 올라왔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강하게 맞서는 아군의 기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혀 약골이 아니잖······. 끄억!”

다행이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전세는 팽팽했다.

“마츠나가 공, 지금 나서주셔야겠습니다.”

“준비하고 있었소이다!”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직속 부대를 투입했다. 그들은 기대했던 대로, 훌륭한 소방수 노릇을 해주었다.

성벽 위에 올라왔던 삼인중의 군대는 도로 밀려났다. 이제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적진에서 한 무리가 일점돌파로 아군을 돌파해버렸다. 그들은 총검으로 맞서는 아군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선두에서 한 무사가 칼을 빼 들고 곧장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고니시!!”

다섯 개의 원, 그 안의 역오각형이 그려진 매화 깃발. 츠츠이 가문의 상징이었다.

“나, 츠츠이 준케이. 네놈을 죽여 고쿠부(國分국분)에서의 수모를 풀겠다!

주변에 도와줄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적을 몰아내느라, 이쪽을 돌아볼 정도로 여유롭지 못했다.

적장은 내가 있는 망루로 뛰어들어왔다.

깡!

츠츠이의 칼을 손에 들고 있던 철포로 겨우 막아냈다.

“제법이구나. 그렇다면 이것도 막아봐라!”

적장은 맹렬한 기세로 카타나를 휘둘러댔다. 내가 들고 있던 철포의 몸통에 금이 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츠츠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악에 받쳐 돌진해오느라 지친 듯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지친 그를 압도할 정도로 근접전을 익힌 몸은 아니었다.

마침내 그도 체력이 바닥났는지, 뒤로 물러서서 숨을 골랐다. 우리는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이대로 그가 힘을 회복하고 달려든다면, 나는 그 최후의 발악을 막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품속의 권총을 움켜잡았다. 삼혈포는 명백히 실패작이었지만, 이 시제품 권총은 여전히 쓸만했다. 제식 무기로 채용할 수는 없겠지만.

츠츠이 준케이와 나의 거리는 약 열 보. 아무리 권총이라 해도, 위력은 충분히 나올 터였다.

적장도 이제 체력을 회복한 듯, 다시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탕!

한 손으로 쏴야 했기에, 재차 사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발의 탄은 충분한 빈틈을 만들어냈다.

“헛······.”

달려오던 적장이 총탄에 맞고 휘청거렸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빠악!

권총을 내팽개치고 양손으로 개머리판을 휘둘러 가격했다. 츠츠이 준케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적장을 쓰러뜨렸다!”

*       *       *

최후의 결전도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쪽은 죽은 병사가 약 일천, 그리고 전체의 반 이상이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적의 피해는 더욱 큰 듯했다.

당장 성중에 남은 시신만 일천에 포로의 숫자도 이천을 넘어갔다. 곧바로 전장에 나올 수 없는 중상자들의 숫자도 상당할 터였다.

병사들이 난장판이 되었던 성내를 수습하는 걸 감독하는 중에, 적진에서 사자가 왔다.

“시모츠케노카미(종5위하 下野守하야수, 미요시 소이)께서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셨소.”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종의 휴전을 제의한 만큼, 저쪽의 기세가 누그러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공세를 취하는 대신 손실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나는 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표했다.

“좋네. 여기 남겨졌던 시체는 성문 밖에 모아둘 것이니, 가져가라 전하게.”

양측은 암묵적인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 죽은 이들을 위한 장례가 치러졌고, 부상자는 치료를 받았다.

비가 그치고 잠깐 해가 비추자, 검은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역시 시신을 화장하기 위함인 것처럼 보였다.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스즈키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 사자를 보내 보는 게 어떨까?”

“글쎄······? 여전히 싸울 기세인 것 같은데.”

과연 순순히 중재에 응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이 가시화되었을 때에나 손을 내밀 거로 생각했다.

아직 닌자들이 가져온 소식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스즈키의 말을 거들었다.

“체면 때문에 먼저 제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소. 적당히 추켜세워주면 선선히 응할지도 모를 일이오.”

어쨌거나 나보다는 무사들의 생리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의 조언이었다. 그 말에 따라 병사 하나에게 서신을 들려 보냈다.

의외로 긍정의 답이 되돌아왔다.

삼인중은 이쪽의 대표를 내가 아니라 미요시 요시츠구라고 간주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건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동쪽으로 도망간 요시츠구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통행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후 몇 번 더 사자가 오간 끝에, 협상 장소는 사카이로 정해졌다.

*       *       *

대포에서 날아간 쇳덩이가 굳게 닫힌 성문을 박살 냈다. 그리고 모과꽃 깃발을 들고 있던 병사들이 내부로 진입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승리를 확신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원래 그는 사카이에서 대량의 철포를 매입하려 했다. 그러나 수급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자이 가문의 도움을 얻어 히노의 철포는 얻을 수 있었지만, 원래의 예정에 비하면 임시방편 수준에 불과했다.

정교한 화기를 얻을 수단이 매우 한정된 상태에서, 또 원숭이가 잔재주를 부렸다.

- 차라리 단순하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히데요시가 내민 것은 절구통 모양의 무언가였다.

- 이걸 뭐에 쓰라는 말이냐?

- 먼 거리에서 성문을 부술 수는 있을 겁니다. 단순하니까 튼튼하기도 하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이 절구통 모양의 화기를 나라를 무너트릴 무기라 하며 쿠니쿠즈시(国崩し국붕시)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하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조치일 뿐, 마음 한 편에 미심쩍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나바 산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그 유용성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성은 공성탑을 쓰기도 힘든 산중에 높은 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다소 명중률은 떨어졌지만, 기동성이 나쁘지 않아 험지에서 산성을 공략하기에는 쓸만한 무기였다.

이 단순한 통 모양의 놋쇠 덩어리와 약간의 화약, 그리고 쇠구슬이면 골치아프게 다른 공성무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성문이 뚫리는데 나머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비군이 저항하겠지만, 그걸 정리하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이제 미노를 손에 넣으면, 다음은 롯카쿠. 그리고 교토에서 쇼군을 끼고 천하를 호령한다. 그가 품은 계획의 첫 단계가 막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비보가 날아들었다.

“가즈사(가즈사노스케, 오다 노부나가) 님. 쇼군께서 교토로 돌아가시겠다고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명분 면에서 다른 다이묘들에 비해 상당히 열세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완해줄 수 있는 자가 바로 정통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였다.

비록 지금의 자리는 인정받았지만,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상대는 엄연히 아시카가 막부의 정통을 잇는 쇼군. 힘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는 편이 나았다.

“그런가. 잘된 일이로군. 배웅이라도 해야겠으니,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전하라.”

사자가 떠난 뒤, 오와리의 다이묘는 언짢은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일이 참 재미있게 되었군.”

외적인 의미와 어조가 상반된 말이었다.

점령지의 수습은 부하들에게 넘기고, 오다는 곧장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찾아갔다.

“교토로의 복귀를 축하드리옵니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 몸은 평생 천하를 떠돌다가 오늘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교토의 상황이 정리되거든 자네도 부름세. 이 몸을 많이 도와줘야겠어.”

쇼군을 배웅한 뒤, 노부나가는 휘하의 닌자인 한조를 불러들였다.

“기나이의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샅샅이 조사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닌자에게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이름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마이 소큐가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같이 접했다.

“그 강성한 미요시 삼인중의 군대가 고작 이런 성도 넘지 못했다고? 혹시 잘못된 정보가 아닌가?”

“소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려온 것입니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직속 닌자는 그릇된 정보를 가져온 적이 없었다.

한조가 그려온 사카이 마을의 성곽은 초라하게 보였다. 성벽의 높이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이 정도의 해자는 어지간한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것이었다.

이런 성에서 일만의 급조된 병력이 그 배가 넘는 정예군을 이겼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만약 자신에게 이걸 공략하라고 한다면, 동수의 병력으로도 넘을 자신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니시 군은 대부분이 철포로 무장했다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납득할 만한 이야기가 하나 나왔다. 일만의 병력이 모두 철포를 들었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지. 그보다도 이마이 소큐가······. 기어이 나를 버린 모양이군.”

예전에 세이슈지(政秀寺정수사)에서 서신을 받았을 때만 해도, 오와리의 다이묘는 그 내용이 진짜일 것이라고 약간이나마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소식이 없다는 건,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이마이 소큐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자를 섬기고 있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목면의 물량이 늘었는데, 그 중심에 고니시 유키나가와 이마이 소큐가 관여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뭐라?”

백성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이 값싸게 들어온다는 건, 일국의 주인으로서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물밑에 숨어 있던 경쟁자가 주도한 것이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철포와 그 소모품인 화약은 무척이나 비싼 물건.

고니시 유키나가가 최근 다이묘의 지위를 얻었다고는 해도, 그 정도 규모의 영지에서 감당할 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돈줄은 따로 있을 터. 노부나가가 보기에는 목면이 그중 하나였다.

“혹시 다른 상품에도 그들의 입김이 닿지는 않았는지 상세히 파악하라.”

오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 천수각 꼭대기의 노대로 나갔다.

그는 갑갑한 속을 이기지 못했다. 또 하나의 경쟁자가 나타나 자신의 길에 훼방을 놓은 것이 너무나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고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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