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낙일, 그리고 여명 (6)
소에키의 입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흘러나왔다.
“와타다 오리시로가 배신했습니다! 하야시 쿠사로는 살해당했고, 마을은 히비야 료케이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라 말 고삐를 놓칠 뻔했다.
반대파가 사고를 칠 거라고 예상해서 뒤를 부탁해놨는데, 그 둘 중의 하나가 배신하다니.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설마 했지만 실제로 저들이 들고일어날 줄이야. 그보다도 와타다가 동업자를 죽이고 배신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나는 이치로를 돌아보았다.
이만한 일이 벌어지려면 뚜렷한 징후가 있었을 터. 아무 조짐도 없었을 리 만무했다.
이가닌자는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주군, 면목 없습니다.”
“정말 아무런 징후가 없었나? 적어도 삼인중과 연계하는 건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내 질문에 이치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히비야 료케이와 와타다 오리시로의 독단이었습니다. 교토에서는 여전히 군대가 집결하고 있을 뿐, 다른 징후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쪽의 첩보망은 지금 교토와 다른 다이묘들의 움직임에 집중한 상태. 사카이에서는 주요 요인의 경호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반대파라고 해도 상인들끼리는 서로 거래하던 게 있어서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주변의 지원이 없다면 아직 시간은 있었다.
“적기는 내렸나?”
“그렇,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치로에게 이야기해둔 것이 있었다. 내가 사카이를 비웠을 때 변고가 생기면, 마을 한구석에 걸린 붉은 깃발을 내리라고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준 적은 없지만, 지시는 충실하게 이행한 것 같았다.
나는 마츠나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츠나가 공. 유감스럽지만, 서둘러야겠습니다.”
“설마 공성전이라도 벌일 참인가?”
히사히데는 자신이 들은 게 맞냐는 듯 되물었다.
그 반응은 당연했다. 해자를 낀 성을 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 고작 이천 가량의 군대로 네 배가 넘는 수비군을 상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삼인중이 사태를 파악하고 내려오기 전에는 사카이에 도착해야 합니다. 마을 앞으로 가면 지원군이 있을 겁니다.”
“지원군이라······. 속는 셈 치고 믿어보도록 하지.”
승전의 기쁨은 이제 유통기간이 끝났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빠르게 행군해야 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일부 병력을 접근시켜보았지만, 사격으로 답을 받았다.
“지원군은 어디에 있나? 적어도 포위를 하려면 일만은 더 있어야겠는데.”
“포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북문에 진을 치고 기다리죠. 아와지시마에서 구원군이 올 겁니다.”
이번에는 마츠나가에게 약간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음, 수군이군. 하지만 어떻게?”
회군하는 동안, 그 어디에도 전령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의심을 품을 만했다.
“이치로가 마을을 탈출하면서 신호를 보내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치로가 내렸던 깃발은 일종의 신호였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아와지시마를 넘겨받으면서, 가장 먼저 고니시 수군의 거점을 그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별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초계 중에 신호를 발견하면 곧장 예정된 군사 행동을 실행에 옮기도록 미리 정했다.
적색 외에도 황색과 녹색의 세 종류가 올라가 있었는데, 색깔별로 의미가 전부 달랐다.
물론 어지간한 경우라면 전령을 띄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할 상황을 대비한 신호였다.
황색은 포위 및 차단, 녹색은 지원 요청이었다. 그리고 적색이 내려져 있으면 아와지의 함대는 마을을 적으로 간주하고 상륙하라고 해놓은 상태였다.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소?”
히사히데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좀 더 든든하게 대비해두었겠지요. 마을에서 일어난 반란은 제게도 뼈아픈 일입니다.”
“그렇구려.”
바닷가에 척후를 보내놓고, 우리는 북문 밖에 숙영지를 꾸렸다. 굳이 병력을 나누어서 포위하는 대신, 한 곳에 집결시켜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다음날, 멀리서 은은한 포성이 들렸다.
“수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오?”
“그럴 겁니다.”
* * *
쿄타로는 신호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해역을 순찰하던 함선들을 집결시켰다.
전체 일만의 수군, 백오십 척의 함대 중에서 절반은 항로 유지를 계속하게 했고, 나머지 함대로 사카이에 접근했다.
과연 사카이에서는 고니시 가문의 깃발이 내려져 있었다. 방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쿄타로는 척후선을 내보냈다.
“항구에는 상인들이 오갔을 뿐,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희를 보고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더군요.”
“흠, 그냥 들이칠 걸 그랬군. 어쩔 수 없지. 전 함대, 상륙을 개시한다.”
고니시 수군이 항만에 들어섰을 때는, 조금이나마 저항이 있었다. 선단의 접근을 알아차린 적이 약간의 병력을 배치했던 것이다.
“화포로 적을 제압하고, 빈 자리에 배를 대도록.”
쿄타로의 지시대로 함대 중 일부가 항구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포탄이 날아갈 때마다 감시탑이며, 급조한 목책이 부서져 나갔다.
마침내 항만에서 수비군의 그림자가 전부 사라졌을 때, 고니시 함대는 상륙을 시작했다.
일부 남만 상인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자신들에게 해롭지 않다는 걸 알자, 조용히 자신들의 숙소에 틀어박히는 태도를 보였다.
쿄타로도 육지에 오르자, 이가닌자 하나가 다가가 그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했다.
“주인님의 군대는 북문 바깥에 있소.”
“그런가. 그렇다면 마을 전부를 장악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상륙한 고니시 수군은 약 오천 가량이었다. 그리고 주인의 직속 병력을 제외한 모든 경비대는 사실상 적이라 간주해야 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실전을 치르지 않았다는 건, 쿄타로 역시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적은 이쪽보다 조금 더 많을 터. 머릿수에서 밀리는 상황에, 마을 전부를 제압하는 일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러던 차에 집중할 대상을 확인한 것이다.
“북문으로 간다!”
마을 내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반란군은 황급히 항구 일대를 차단했다. 그러나 그들의 무장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거상들이 자신의 돈을 들여서 무장시킨 만큼, 저마다 수준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느 부대는 철포로 무장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죽창을 들고 있었다. 제대로 된 무구를 갖춘 자들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고니시 군은 모두 철포와 총검으로 무장한 상태였기에, 양쪽이 충돌한 결과는 뻔했다.
타당! 탕!
“윽······.”
“항복, 항복이오!”
대부분의 적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전의를 상실했다.
곳곳에 은엄폐할 장소가 널렸기 때문에, 쿄타로는 가장 까다로운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고니시 수군은 이러한 환경에 최적인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적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에 일단 나팔총을 들이밀면, 어김없이 저항하던 자들이 쓰러져 나갔다.
반란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시도하다 그대로 분쇄되었다. 그러나 전진을 거듭할수록 까다로운 상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와타다가 이끄는 부대는 고니시 군과 비견할만한 전투력을 보였다.
그들에게 삼혈포나 나팔총은 없었지만, 무장도 충실했고 나름대로 훈련을 받은 편이었다.
쿄타로의 부장 중 하나가 전황을 보고했다.
“저항이 거셉니다.”
적은 에고슈 회관을 중심으로 농성을 하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쿄타로가 생각하기에, 작전목표는 그들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성문 바깥의 주인을 맞이하는 게 우선이어야 했다.
“여기는 너희들이 포위를 유지하도록. 무리해서 치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나는 북문으로 가서 주인님을 맞이하겠다.”
쿄타로는 길을 약간 돌아서 북문으로 병력을 이끌고 갔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 * *
성의 내부에서 조금씩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수군이 마을을 장악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닫힌 성문이 활짝 열렸다.
“반항하는 자들은 대부분 제압했습니다. 하지만 에고슈 회관에서 적이 농성하고 있었습니다.”
쿄타로가 내게 보고를 올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저항하고 있다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적이 자중지란을 일으켜 서로 싸우다가 항복했습니다.”
주동자들은 꽁꽁 묶여서 끌려 나온 상태였다. 히비야 료케이를 비롯한 반대파들, 그리고 와타다 오리시로.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가 배신한 이유는 알아야 했다.
나는 포박된 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아는 걸 모두 말하겠소. 부디 살려 주시오!”
“주동자는 히비야와 와타다였소! 우리는 조용히 있으려 했단 말이오이다!”
히비야 료케이는 그래도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 외 나머지들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들이 하는 말 중에서도 신경 쓰이는 대목은 있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잔챙이에 불과할 터였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사람이 누구일지는 분명했다.
“와타다 오리시로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모두 끌고 가서 잘 가둬두도록. 그리고 나는 이자와 할 말이 있으니 모두 나가라.”
내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제 이 자리에는 나와 와타다 오리시로, 그리고 내막을 알 만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이마이 소큐, 소에키. 이 둘이 이 자리의 공증인이라고 할 만했다.
소에키도 그에게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조용히 기다렸다. 내가 먼저 대화를 하라는 의미였다.
“와타다 오리시로. 어째서 배신한 거지? 그리고 하야시 쿠사로는 어찌 된 건가?”
동지들 중에서 나와 이마이 소큐가 가장 돈독한 사이였듯, 와타다 오리시로와 하야시 쿠사로도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의 사태가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하야시 쿠사로는 너무 물러서 어쩔 수 없었소. 그가 나와 뜻을 같이했다면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지.”
와타다도 자신의 친구를 살해한 건 후회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며 분노한 얼굴을 드러냈다.
“고니시, 그대야말로 우리를 배신했소!”
“내가?”
“이제는 그대도 미요시 일족이 아닌가. 변절자와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요시히메의 존재를 공표하면서, 아와지시마의 다이묘를 선언한 것이 그에게는 대의를 저버린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흠······.”
나는 마른 세수를 했다.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에키를 돌아보았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혹시 선사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셨습니까?”
“저 역시 고니시 님의 행보는 걱정스러웠습니다마는······. 와타다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염불만 되뇌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와타다를 내려다 보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히비야와 손을 잡은 것인가? 미요시 삼인중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그대가 원하는 걸 주지 않았을 것이거늘.”
“배신자의 처단이 급선무라 여겼을 뿐이다. 그리고 히비야도 별것 아니더군.”
“그렇다면 저들은 얼마나 알고 있나?”
혹여라도 와타다가 그간 있었던 일을 모반자들에게 공유했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질문을 들은 배신자는 실소했다.
“저 배금주의자들은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지. 그저 먹이를 풍족하게 먹여주는 자를 따를 뿐이었어.”
그도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정도는 구분한 것 같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목을 날리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와타다를 꾸짖었다.
“내가 보기엔 그대야말로 배신자요. 설령 내게 불안함을 느끼더라도, 적어도 하야시 님은 죽이지 말았어야지!”
어지간해선 와타다를 그대로 살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해서 멋대로 죽인다면, 다른 이들에게라고 다르게 행동하겠는가.
평민들을 제멋대로 휘두르던 무사들이나, 제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동지며 친구를 죽이던 이자나, 내가 보기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추궁을 듣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는지,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와타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요.”
“그 무슨······?”
“나는 끝까지 고니시로 남을 거라는 이야기요. 그거면 충분하오이까?”
와타다 오리시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어도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은 해소한 듯했다.
밖으로 나오며 동지들을 둘러보니, 소에키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와타다를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성급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일부러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서로의 오해로 빚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와타다를 살려주기는 곤란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참극이 벌어진 뒤였다.
그 점을 소에키도 납득했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처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배신자들은 모두 장대 위에 매달렸고, 마을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미요시 삼인중의 군대를 막기에는 오히려 나은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 뒤, 첩보가 날아왔다.
“소이(宗渭종위)가 이만의 군세를 이끌고 남하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