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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41화 (41/225)

41화 낙일, 그리고 여명 (4)

“생각보다 준비가 빠르구려.”

군대를 움직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병력이 움직이려면 그들이 소모할 보급품의 운반까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 그런 점에서 내가 이끄는 부대는 신속 그 자체였다.

“병력의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게 군비 아니겠습니까. 그 점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저를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내 자신감에는 근거가 충분했다.

아군은 도묘지(道明寺도명사)라는 절까지 행군했다. 그리고 조금 더 전진해서, 야마토(大和대화, 오늘날의 나라현)와 카와치(河內하내, 오늘날의 오사카 동부)의 경계까지 나아갔다. 이곳의 지명부터가 카와치고쿠부(河內國分하내국분)라 했다.

“신속하게 움직인 덕에 조금 더 시간을 벌었소이다. 목책으로 벽을 쌓는 게 어떻겠소?”

마츠나가의 주장은 타당했다. 하지만 적은 이쪽 외에도 셋츠에서 대군이 내려올 터였다. 방어가 든든하다는 걸 확인한 츠츠이 준케이가 시간을 끌면, 그만큼 우리가 불리할 것 같았다.

“만약 적이 계곡을 나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내 질문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미요시의 숙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보실 수도 있소. 하지만 준케이는 나름대로 야심이 있는 인물이오. 공을 세워서 야마토를 자신의 영지로 얻어낼 생각이겠지. 숫자도 두 배가 넘어가니 곧장 달려들 거라 생각하오.”

“그렇군요.”

계곡의 입구는 적을 맞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길도 좁았고, 강가에는 전장을 지켜보기에 적절한 언덕도 하나 존재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틀이 지나자,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전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놓친 것이 없는지 작전의 세부 내용을 가다듬었다.

마츠나가는 한 가지 부분에 우려를 표했다.

“헌데 말이오. 고니시 공 휘하의 병력은 모두 철포만 들었던데, 돌격에 취약할 듯하외다.

그가 내 병력을 두고 내린 평가였다. 행군하는 동안 자세히 살펴본 것 같았다.

원시적 총기는 속사도 불가능하거니와 장전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적이 그 틈새를 노리면 철포는 무용지물이었다.

비록 기병대가 달려들 우려는 없다지만, 한번 쏘고 나면 발생하는 몇 분간의 공백은 전장에서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첫 실전이라는 것만 빼면, 근접에 대한 대책은 충분할 겁니다.”

“이것저것 감추는 게 많구려.”

동서는 섭섭하다는 투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그를 신뢰하느냐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가 얼마나 새로운 전술을 이해하느냐의 영역이었기에, 직접 보여주는 편이 나을 듯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직접 보시지요. 결코 마츠나가 공에게 부담을 떠안길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 부대가 뒤를 받치겠소.”

언뜻 들으면 믿을 수 없는 부대를 총알받이로 내세우겠다는 것처럼 들릴 말이었다. 하지만 마츠나가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적이 접근해오면 바로 후퇴하시오.”

고니시 군이 일격을 가하고 이탈하면, 장전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의미였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내 휘하의 부대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상당한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이다.

나로서는 그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마츠나가의 부대가 진짜로 싸우게 될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였다.

*       *       *

츠츠이 준케이(筒井順慶통정순경)는 미요시 나가야스(三好長逸삼호장일)에게 야마토의 지배권을 약속받았다.

조건은 단 하나,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생사와 관계없이 끌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자가 살아있어서야 나도 곤란하지.”

당하는 입장에서 본 마츠나가는 지독한 자였다. 비슷한 수의 병력으로 이긴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고, 삼인중과 손을 잡은 뒤에야 겨우 맞상대가 가능했다.

그가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척후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성주님, 계곡 너머 출구에 마츠나가의 군대가 막아서고 있습니다.”

“몇이나 되어 보이더냐?”

“족히 이천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보고를 들은 준케이는 행군을 정지시켰다.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사카이 쪽으로 도주했을 때, 그의 병력은 일천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은 숫자가 불어난 상태. 자세한 경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 이천이나 되었더냐?”

“아무리 낮게 잡아도, 천오백은 넘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준케이가 생각하기에도 척후가 잘못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보고를 올린 정찰병에게 앞장서라고 지시했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안내하도록.”

츠츠이 성의 성주는 계곡 안으로 들어가 입구가 보이는 고지대로 안내받았다. 과연 척후가 말한 대로였다.

역오각형의 담쟁이잎이 그려진 깃발. 마츠나가의 상징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벌고 싶은가 보군.”

상대의 배치는 계곡의 입구를 물샐 틈 없이 틀어막은 형상과도 같았다. 하지만 규모를 보았을 때, 다른 기책은 없는 듯했다. 우직하게 막아선 모양새는 가여워 보일 정도였다.

그가 보기에 흥미로운 점도 하나 있었다. 적은 목책에 의지하는 대신, 그 앞으로 나와서 야전을 준비하는 듯했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그런데 저건 또 무어란 말인가?”

그런데 마츠나가의 군세 앞에 다른 깃발도 있었다. 파도 위에 그려진 배. 처음 보는 가몬(家紋가문, 집단을 상징하는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마츠나가와 같이 있는 걸 보면, 그자의 새로운 지원군인 듯했다.

“대체 어떤 무지몽매한 자가······.”

혀를 차던 츠츠이 준케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런가. 사카이에서 지원이라도 받은 모양이군. 앞세운 걸 보아하니, 방패로라도 쓰려는 것인가.”

전장에서는 정예의 소모를 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점에서 상대 측의 배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직속 부대를 아껴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알량한 수를 썼군.”

만약 사카이의 군대만 있었다면, 오히려 의심스러웠을 터. 어디에서 마츠나가가 기습을 벌일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그의 지략도 다한 듯했다.

사기는 충분했다.

아무리 역공을 받는다 해도, 숫자의 압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오늘 중으로 돌파가 가능할 듯싶었다.

본대로 돌아온 준케이는 부하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본대를 둘로 나눈다. 적의 일제사격이 끝나면 1진이 돌격하고, 뒤이어 곧바로 2진도 적진을 친다.”

전군이 무질서하게 달려가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었다. 그보다는 길목의 폭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을 교대로 투입하는 것이 현명했다.

“사콘(左近좌근).”

“예, 주군!”

호명받은 장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파란 전포를 입은 그는 이립도 되지 않아,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결코 경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백도 남달랐고,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무예를 자랑했다.

츠츠이 성주는 자신의 휘하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앞세울 생각이었다.

“선봉에 서도록. 사콘이라면 마츠나가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은 없겠지.”

“반드시 적장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사콘은 그의 �칸나(百官名백관명, 별칭), 원래 이름은 시마 카츠타케(島勝猛도승맹)라는 자였다.

“철포병을 전부 몰아주겠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목을 가져와라.”

*       *       *

츠츠이 군의 선봉은 적을 노려보았다. 눈앞에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있었다.

시마 카츠타케는 원래 하타케야마 가문을 섬기던 장수였다. 그러다가 미요시 가문에 의해 패퇴하고, 낭인으로 떠돌다 츠츠이 가문에 투신했다.

무사로서 적장에게 악감정은 없었지만, 한번 더 솜씨를 겨루고 싶었다.

“철포병은 앞으로!”

그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이 전진함에 따라 양측의 거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적진을 백오십 보 앞에 두고, 츠츠이 군의 철포대가 먼저 불을 뿜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측에서도 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됐다, 전군 돌격하라!”

마츠나가 군의 절반 정도는 아직 사격하지 않았지만, 그래봐야 고작 오백에 불과했다. 그 정도는 손실을 감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렇게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야 화승에 불을 붙이기도 어려울 터. 사콘이 보기에 그들은 철포를 들 자격조차 없어 보였다.

“이 싸움, 이겼다. 전군 돌격하라!”

1진의 대장은 스스로 칼을 빼들고 직접 선두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츠츠이 군의 제1진이 뒤따랐다.

적진에서 다시 약간의 철포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콘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기 위해 선창을 외쳤다.

“반자이!”

- 반자이!

그들의 함성은 폭발음과 쓰러지는 사람들의 비명을 감추기에 충분했다.

*       *       *

보통 대규모 전투라고 하면 만 단위는 넘겨야 한다 싶었는데, 오늘부터 그 생각은 뜯어고치기로 했다. 수천의 병력이 달려드는 기세도 결코 경시할 만한 것은 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적을 상대로 도망칠 수는 없는 일. 첫 실전에서 병사들이 연습한 대로 움직여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사격 준비!”

오백의 병사들이 지시에 따라 총기를 앞으로 겨누었다. 그들은 모두 회전식 약실이 달린 철포로 무장했다.

스즈키가 이끌고 온 철포 기술자들은 신무기 제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모든 철포에 부싯돌 부착이 가능했다.

게다가 회전식 약실, 이제는 삼혈포라 부르는 물건은 다소 기준을 낮춰서 양산할 수 있었다. 비록 초기 구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욕심을 덜 부린 결과는 제법 괜찮았다.

약실에 구멍 여섯 개를 그대로 파기에는 내구성이 너무 약했다. 그래서 크기를 키우고, 구멍의 숫자를 줄였더니 그럭저럭 쓸만한 총이 되었다.

탄창을 교체하는 후미장전식이 된 덕에, 장전 속도 자체가 빨라지는 효과도 덤으로 따라왔다.

이 무기가 전력의 가장 큰 핵심이었다.

타당!

나머지 병사들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잠시 기다리게 했다. 그들은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사격할 예정이었다.

양측의 최초 사격은 서로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적은 좀 더 접근하면서 철포를 쏘는 대신, 전군이 일제히 돌격해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스즈키가 중얼거렸다.

“무지막지한데. 그래 봐야 의미는 없지.”

적이 육십 보 거리로 들어오자, 아군의 병사들도 각자 무기를 적에게 겨누었다. 화승은 이제 불필요했다. 전통적인 중간 절차가 생략된 상태로 철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군 진영에서는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불꽃의 숫자만큼 적병이 쓰러졌다.

이제 달려드는 숫자는 이천 가량 되었던 적은 이제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근접전을 벌일 수단이 없는 철포병에게는 위협적일 터. 뒤에서 마츠나가가 빠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스즈키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후퇴할까?”

“아니. 나팔총 준비시키고, 나머지는 전부 착검.”

내 지시대로 아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도 마츠나가의 조언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소 손실이 생겨도,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병사들도.

그래서 일부러 뒤에서 들리는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전선을 지켰다.

- 착검!

원래는 총구를 비워둔 채로 단검을 끼울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재질이 약해서 철포가 쉽게 부러졌다.

불가피하게 총구에 알맞게 제작된 총검을 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꼴깍.

옆의 한 이름 모를 병사의 침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손에서도 핏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긴장을 억누르고 적을 응시했다.

“총검을 세우고 자리를 지켜라!”

“적은 지쳤다. 모두 옆 사람과 대오를 유지하라!”

나 역시도 적당한 길이의 창을 집어 들고 전열에 섰다. 대장이란 자가 뒤에 숨어있어서야 곤란했다.

전장을 경험하기에는 여기야말로 최고의 자리였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랐지만, 이미 천하 쟁패에 뛰어든 몸이 그깟 날붙이를 두려워해서야 되겠는가.

다행히 병사들도 도망치기는커녕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명령을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들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공포와 신뢰가 뒤섞인 눈빛. 그들은 맨 앞 줄에 선 내 모습을 주목했다.

이십 보. 이제는 서로 표정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이 가까이 다가왔다.

저들은 아군이 후퇴하거나 도주할 거라고 예상한 것 같았다. 대오를 지키며 날을 세우자 오히려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적이 열 보 이내로 들어왔을 때, 뒤에서 스즈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팔총 사격!”

귓가에서 터지는 폭음은 매우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 효과는 감수할 만했다. 다시 적이 우수수 쓰러지고, 남은 자들은 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도 전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부상자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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