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낙일, 그리고 여명 (3)
미요시 삼인중의 일원인 미요시 나가야스(三好長逸삼호장일)는 군대를 이끌고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영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어린 당주를 꼬드겨 쇼군을 살해할 때까지만 해도, 미요시 나가야스는 스스로가 천하를 쥐었다고 생각했다.
만만찮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제거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요시츠구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미요시 가문의 당주가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 이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가신들을 끌어들이고, 삼인중이라 칭하며 지위를 굳히던 차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자가 장애물로 나타났다.
마츠나가 히사히데. 그는 얌전히 가문의 번견 노릇이나 하면 족할 것을, 당주에 대한 충성이랍시고 자신의 행보에 훼방을 놓았다.
교토에서 고립된 처지였던 어린 당주는 몸을 빼내어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몸을 의탁했다. 나가야스로서는 손에 쥐고 있던 으뜸패가 도망가버린 꼴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즉시, 그는 군대를 이끌고 야마토로 추격해 내려왔다.
숫자만 놓고 보면, 나가야스의 병력이 우세했다. 그러나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숫자의 열세를 자신의 역량으로 메꿀 수 있는 장수였다.
이날도 나가야스의 진영은 마츠나가 군의 습격으로 손실을 보았다.
“에잇! 숫자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번번이 패퇴한단 말인가!”
분통을 터트리는 나가야스를 츠츠이 준케이가 달랬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어쨌거나 마츠나가는 이제 더는 기댈 곳이 없지 않소이까.”
원래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주군의 명을 받아 야마토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츠츠이 준케이는 그의 토벌대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요시츠구가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합류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삼인중은 어떻게든 당주를 손에 움켜쥐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츠츠이를 끌어들여 마츠나가를 토벌하려 했기 때문이다.
험악한 군막 내부로 척후가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군대를 둘로 나누어 후퇴하는 중입니다.”
나가야스로서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갈 곳이 없는데, 대체 어디로 가려 한단 말인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더냐?”
“본대로 보이는 삼천의 병력은 동쪽을 향해 움직였고, 나머지 일천은 남하하는 듯했습니다.”
삼인중의 필두는 잠시 고민했다. 어린 당주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추격할 때인 것 같았다.
그때 전령이 소식을 전했다.
“휴가(종4위하 日向守일향수 휴가노카미, 미요시 나가야스) 님, 사카이의 오도시요리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두고 가라. 전황이 급하니, 나중에 보도록 하겠다.”
사카이는 중요한 세입원이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눈앞의 요시츠구를 붙잡는 게 더 급했다.
“내가 본대를 추격할 테니, 츠츠이 공께서는 남하하는 무리를 붙잡아 주시오.”
그러나 추격은 실패로 끝났다. 미요시 나가야스가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의도를 깨달은 건,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사카이로부터 온 서신을 읽었을 때였다.
* * *
교토로부터 선전포고가 날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삼인중의 대응이 알려지자, 에고슈의 상인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설마······.”
“고니시 유키나가가 우리를 속였소!”
사카이의 거상들 중에서 내막을 모르는 상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인중과 끈이 닿은 자들은 그 기세를 타고 나를 몰아붙이려 했다.
“오도시요리 대리가 알량한 재주만 믿고 이 마을을 위기로 몰아넣은 거요!”
한참 회관이 소란스러운 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제는 동서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꽤나 시끄럽군.”
마츠나가의 등장으로 장내가 고요해졌다.
비록 이 마을의 그의 영지는 아니었으나, 오랜 세월 칼밥을 먹은 자의 기세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는 에고슈의 대표로서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서신은 잘 받았소. 사쿄타이후(미요시 요시츠구)께서는 곧장 이세로 빠져나가셨을 거요.”
그는 내게 반공대를 취했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설마 정말로······.”
“고니시 님이 슈리다이부의 사위라는 말이 참이었던가.”
에고슈의 거상들의 태도가 살짝 누그러졌다. 하지만 군무를 그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오늘의 회의를 그 자리에서 파했다.
“급한 일이 없다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곧장 고니시 저택으로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이끌었다. 그러는 동안 이치로가 따라붙어서 내게 쪽지 하나를 전했다.
- 미요시 삼인중, 교토에서 병력을 집결. 약 일만이천.
- 야마토에서 오천이 추가로 원정을 준비 중.
명백히 미요시의 가신들이 원정을 준비한다는 증거였다. 그 정보를 머릿속에 잘 갈무리한 다음,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의논을 시작했다.
먼저 그가 입을 열었다.
“사쿄타이후께서는 고니시 공의 중재를 긍정하셨소. 하지만 삼인중 녀석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오. 셋츠의 미시마(三島삼도, 오늘날의 오사카부 미시마군)에 군대를 집결시키는 한편, 야마토의 츠츠이 준케이를 선봉으로 세웠소.”
미요시 가문의 숙장이 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삼인중은 당장 끌어올 수 있는 최대한을 동원한 듯했다.
“츠츠이 준케이는 오천의 군세를 이끌고 자신의 영지에서 진격해올 것이오. 그리고 짐작건데, 셋츠에서도 일만 정도는 모일 터. 삼인중은 넉넉잡아 이만 정도를 이끌고 올 것 같소.”
이치로의 첩보와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선봉은 언제쯤 도착하겠습니까?”
“츠츠이 준케이도 원정을 준비하려면 시일이 걸릴 테니, 한 닷새 뒤면 사카이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소이다.”
그 정도면 태세를 갖추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일이었다. 나는 마츠나가에게 질문했다.
“마츠나가 공의 군세는 얼마나 됩니까?”
“일천이오.”
그는 상당히 서둘러 온 모양이었다. 아마도 나머지 병력은 요시츠구에게 전부 넘긴 듯했다.
“제 휘하에는 일천의 철포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쓸 수 있는 병력은 도합 이천이겠군요.”
“마을의 성곽이 크고, 지키는 숫자도 제법 되는 것 같았소만.”
과연 삶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낸 장수다운 눈썰미였다. 하지만 그가 본 숫자를 그대로 동원하기는 곤란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제가 직속으로 부릴 수 있는 병력이 아닙니다. 당장 끌고 나갈 수 있는 건 말씀드린 일천이 전부지요.”
“아까 들어오면서 보아하니, 상당히 시끄러운 자들이 많더구려. 그들을 내버려 둬봐야 고니시 공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소이다.”
그렇게 운을 뗀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제안했다.
“고니시 공이 원한다면, 사카이를 그대로 움켜쥐게 해 드리겠소.”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버린다면, 이 마을의 중요한 기능 하나가 그대로 사라지게 될 터.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것만은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앞으로 누가 여기에서 장사를 하려 하겠습니까. 저를 도와주시려는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어쨌거나 세입은 중요했다. 언젠가는 저들을 휘어잡아야겠지만, 그보다는 미요시 삼인중을 격퇴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한편으로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선선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방금 이치로에게 첩보를 받았다고는 해도, 그들과 직접 맞서 싸운 장수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적은 어디로 오겠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미요시 가문의 숙장은 의문을 표했다.
“요격하실 생각이시오?”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적군을 줄여야겠기에.”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아와지시마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카이를 잃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될 터. 그가 보기에도 요격이 최선의 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숫자의 열세는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다시 말하지만, 츠츠이의 군세는 오천이오. 내가 이끌고 온 병력을 합친다 해도, 고작해야 이천에 불과한데 달리 계책이 있는지 궁금하구려.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최대한 타격을 입히고 돌아오려 합니다. 셋츠에서도 대군이 내려오고 있다 하셨으니, 빠르게 결판을 낼 생각입니다.”
내 말을 들은 마츠나가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중간에 기습을 할 만한 장소는 없소. 하지만 조금이나마 유리한 장소는 있지.”
그는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야마토의 군세는 삼인중(미요시 삼인중)과 손잡은 츠츠이 준케이(筒井順慶통정순경)라는 자가 이끌고 올 것이외다. 아마도 야마토가와를 따라 계곡을 통과할 듯하오.”
마츠나가가 가리킨 지점은 계곡의 입구였다. 적은 수로 유리한 싸움을 끌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 같았다.
“이곳과 츠츠이 성의 정확히 중간 지점이 되겠군요. 서둘러야겠는데, 마츠나가 공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와 그의 군대는 야마토에서부터 강행군을 해야 했을 터였다. 지금쯤은 휴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소. 고니시 공의 군대야말로 시일이 필요할 듯 싶소만······.”
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이끌고 온 병력이 지쳤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되려 내가 동원할 군대의 준비를 걱정했다.
“제 휘하의 부대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한 마디로 그 걱정을 일축했다. 하지만 마츠나가는 내 자신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흠, 요격전이라면 고니시 공도 원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요.”
“잘 알고 있습니다. 열흘 정도는 당장 출격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장수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논은 끝났다. 나와 스즈키, 그리고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선봉을 요격한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카이에 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결정이었다.
출전할 사람들이 결정되자, 나는 나머지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하야시 님, 그리고 와타다 님. 두 분께서 이 마을의 무게를 잡아주셔야 합니다.”
그들도 매우 중요했다. 가장 핵심은 에고슈를 맡으실 아버지나 이마이 소큐보다도, 직조 공장을 경영하는 두 사람이었다.
사카이의 경비대는 에고슈의 거상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차출한 인력 내지는 고용한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양한 공장이 들어서 있었지만, 여전히 직조공장의 규모야말로 부동의 1위. 그렇기에 내가 경비대 전체에 온전히 지휘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워도, 등 뒤를 맡길 수는 있었다.
하야시와 와타다만 멀쩡하다면, 나머지 반대파를 견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천의 군세로 선봉을 꺾고 돌아온다면, 여론을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사카이는 안전할 겁니다.”
“맡겨 주십시오.”
와타다는 안색이 어두웠지만, 하야시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뒤를 맡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스즈키는 오랜만에 전장에 나서기 때문인지 다소 들뜬 것처럼 보였다.
“기대해도 좋아. 마침 성과를 보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됐어!”
그는 이제 사이카 마고이치(사이카슈의 우두머리)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조선에서 돌아온 뒤, 스즈키는 기어이 내 권총을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했다.
처음에는 이마이 소큐를 내세웠다. 하지만 끝내 내가 고안했던 물건이라는 알게 되자, 아예 이쪽으로 투신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부친과의 의절은 덤이었다.
사이카슈에는 스즈키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았다. 그들 중에는 철포 기술자들도 많았고, 덕분에 신무기 제작이 훨씬 수월해졌다.
“신무기라······. 어느 정도이기에 부친과 의절할 정도인지 궁금하구려.”
전말을 듣고 난 뒤의 히사히데가 보인 반응이었다. 나는 거기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보시면 압니다.”
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본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