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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39화 (39/225)

39화 낙일, 그리고 여명 (2)

소에키는 온 천하가 사카이처럼 되기를 원했다. 무사의 지배 대신, 평민들이 자치를 행하는 정치를 꿈꾸고 있었다.

내가 동지들을 끌어모으며 한 짓이 있으니, 그게 뭐가 이상한가 싶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소에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다이토쿠지 출신의 승려였는데, 그곳은 천태종의 분파인 임제종의 총본산이다. 다시 말해서, 소에키 또한 임제종의 승려였다.

하지만 조선에 다녀온 이후, 소에키는 임제종과 사이가 매우 나빴던 일향종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해서 소에키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다음과 같았다.

- 무사는 천하에 기여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나나 다른 동지들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이치로에게 뒷조사를 맡긴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에키가 만나고 다녔던 자들은 카가(加賀가하, 혼슈 중북부 해안가 지역)에서 쫓겨난 일향종 무리였기 때문이다.

일향종은 잇코잇키(一向一揆일향일규), 그러니까 일종의 민란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 지역을 다스리던 무사를 쫓아내고, 일향종의 정토로 선언하는 반란은 센고쿠 시대의 혼란을 더했다.

카가는 석고 백만 석짜리 세입으로 유명해지지만, 그건 에도시대의 일. 지금은 다른 걸로 악명이 더 높은 지역이었다.

일향종은 원래 카가 국의 다이묘였던 자를 몰아냈다. 그리고 그 가문의 방계 중 하나를 허수아비로 세웠다. 그 결과 얻은 별명이 바로 ‘백성이 다스리는 나라(百姓の持ちたる国)’였다.

그들이 정말로 민주주의에 입각한 성과를 올렸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 별명이 다이묘가 쫓겨나고 중앙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 상황, 그 혼란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었다.

21세기의 기억이 있는 나조차도 당장 선결조건을 갖추기 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을, 그런 것조차 없는 자들이 어떻게 이루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다이묘를 실제로 쫓아낸 바 있었고, 소에키는 그러한 점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역시 이치로가 추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금 소에키와 행동을 같이 하고 있는 와타다 오리시로 또한 그쪽에 경도된 모양이었다.

이들은 내가 자신들의 기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직 사카이의 발전과 수군의 양성, 그리고 상권 형성에만 힘쓸 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일국의 다이묘가 되었다고 하니, 소에키는 내게 배신감이라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방적인 기대에 끌려다닐 수 없었다.

“저야말로 여쭙고 싶군요. 왜 그리 마음을 급하게 쓰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사카이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닛코루로의 저서를 들여오신 분께서, 어찌 초심을 배신하시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제는 다이묘까지 되셨다니요.”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이름을 음차한 ‘닛코루로’로 통했다.

내가 그 사람의 책을 들여왔을 때,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은 소에키의 사형인 이마이 소큐였다. 이 무기상인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납득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이마이 소큐가 가장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그래서 나는 그가 가장 급진주의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노회한 무기상인이 완급의 조절을 이해했을 때,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정작 계획이 본궤도에 오르려 할 때, 급진과격파가 생겨날 줄이야.

“세상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지츠고라는 일향종 승려와 자주 만나셨으니, 카가의 일향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실 것이 아닙니까?”

지츠고(実悟지오). 그는 혼간지의 방계였고, 카가 일향종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걸 어찌······. 그렇군요.”

소에키는 내가 지츠고를 안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보호망이라는 건 감시망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법. 그도 이가류가 내 밑에 들어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금방 침착을 되찾았다.

나는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카가 일향종은 그 세력이 매우 컸다. 관심을 갖고 조사해 본 결과, 그들은 물경 삼십만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결국 인근 아사쿠라 가문이 동원한 일만의 정병에 패퇴하고 말았다. 결국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부디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강한 어조로 토로하는 내 말에 두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그들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요시히메가 질문을 던졌다.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어떤 의미로는 감회가 남달랐다. 아홉 살에 눈을 뜨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가 죽을 뻔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일국의 다이묘가 되었다.

내 말을 들으니, 요시히메도 예전 일이 생각나는 듯했다.

“4년 전, 이맘때였나요.”

그녀의 말을 듣고, 가만히 날짜를 헤아렸다. 그때라면 막 시토를 만들고, 야마시로파와 셋츠파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했던 시기였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자신의 아버지 앞에 섰던 상황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저보다 작은 꼬맹이가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살길을 찾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거? 사실 나도 감시가 붙어 있을 줄은 몰랐지.”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는 길을 갔던 게 오히려 많은 시간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었다.

처음 비젠 국의 데다이에게 양자로 갈 수 있었던 기회, 그리고 쇼군의 가신 자리. 만약 이 두 차례의 갈림길에서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형은 무소식이었다. 지금쯤이면 그도 겐푸쿠(元服원복, 성인식)을 치르고, 제대로 된 이름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 외의 어떤 소식이든 특별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쇼군은 끝내 미요시 요시츠구에게 참살당했다.

처음 가신 자리를 제안받았을 당시에는 그 휘하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역시 사카이에 남기를 잘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구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천하를 안정시키려는 큰 뜻은, 선대 쇼군들의 무능함에 비하면 인정해 줄 만했다. 그러나 검호쇼군이 선택한 길은 수백 년 전에나 먹힐 만한 해법이었다.

지금은 철포를 사용하는 시대. 일신의 무력으로 위엄을 높이는 방법은 한계가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막부의 주인은 그걸 몰랐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니, 요시히메가 입을 열어서 나를 일깨웠다.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서방님을 더 높게 보셨죠. 가장 무서운 부류의 사람이라고요.”

“내가?”

“네. 일개 평민에 불과하지만, 신의를 지키면서 실리까지 가져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어요.”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미요시 나가요시가 나를 높게 평가했다니. 아니, 그러니까 일족으로 입적시키기도 했겠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리면 지금도 약간 민망했다. 그 감정을 살짝 감추면서 요시히메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당신의 행방을 내게 맡겼던 걸까?”

“네. 적어도 약속은 지킬 거라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그렇네요.”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신의를 지키면서 실리까지 가져갔다는 평가. 얼굴에 금칠을 받는 기분이었지만 기분 좋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에 떠오른 웃음을 본 요시히메는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에이로쿠의 변(永禄の変영록의 변, 요시츠구의 쇼군 살해)가 일어났을 때, 그걸 명분삼아서 요시츠구를 토벌할 기회라고 여겼어요. 서방님께서 그 뒤까지 보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그 이후로도 우리는 옛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요시히메가 졸리다며, 먼저 들어갔다.

문득 아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소에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가닌자를 시켜 암살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       *       *

다음 날, 나는 에고슈에 오도시요리의 명의로 양측을 중재하겠다는 안건을 올렸다.

“작금의 혼란은 상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카이의 오도시요리로서, 양측을 중재하려 합니다.”

그 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수순은 그리 순조롭지가 않았다.

중재가 수월해지려면, 그만큼의 힘이 필요한 법. 나는 사카이의 경비대를 동원할 생각이었다.

공허한 말보다는 실질적인 균형추 노릇을 할 수 있어야 설득력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방침에 반발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었다.

총대를 멘 자는 히비야 료케이(日比屋了珪일비옥요규)라는 자였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이름높았는데, 미요시 삼인중과도 끈이 닿아 있었다.

예전에는 셋츠파로서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 반대파에 속한 상태. 그의 반발은 이상할 게 없었다.

“경비대를 동원할 정도까진 아니라 봅니다. 전쟁 중이라 해도, 길이 막히지만 않으면 그만이 아닙니까?”

어느쪽이 이기든 모두 미요시 가문이다. 그러니 상행에 방해가 되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명목은 그러했다.

그러나 가신들이 주군에게 하극상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없던 걸로 무마되고 요시츠구가 복귀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결국은 미요시 삼인중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장사에만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힘으로 찍어누르기도 곤란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초창기에는 나와 이마이 소큐가 주축으로 경비대를 구성했기에, 온전히 그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에고슈 산하로 소속을 옮긴 상태였다.

지금의 경비대는 에고슈에 참가한 거상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인력 일부를 차출하거나, 돈을 납부하여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경비대를 움직이려면, 오도시요리나 그 대리라 할지라도, 에고슈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고니시 군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병력은 도합 삼천. 이마이 소큐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협력을 구한다고 해도 겨우 전체 규모의 반에 불과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당파에 속하는 이들이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상황이 까다롭게 변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겠소이다. 경비대만으로 사카이의 자치를 유지할 수 있다 보시오? 아니면 어느 다이묘가 순수한 의도로 이 마을을 지켜주겠소이까?”

이마이 소큐가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대다수의 상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차라리 경비대의 규모를 늘리면 늘렸지, 어느 한 편에 가세하고 싶진 않구려. 고니시 님께서는 사쿄타이후(미요시 요시츠구)와 삼인중을 중재하시겠다 하셨지만, 실상은 독자 세력을 꾸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소.”

히비야는 제법 예리하게 현실을 지적했다. 아니, 삼인중의 편이었기에 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럴싸한 족보만 갖춰졌다면 하극상이 일반적인 시대가 아니던가.

전 당주의 인척이라는 건, 제법 그럴듯한 명분이기도 했다.

결국 에고슈의 거상들을 설득하는 일은 실패로 끝났다.

경비대는 에초에 출발부터가 에고슈의 공금을 투입한 부대였으니, 반발을 억지로 누를 순 없었다.

“하, 좋습니다. 하지만 고니시 군을 움직이는 덴 이견이 없으시겠지요?”

내 말을 듣자, 히비야는 굳은 안색을 풀고 반색하며 찬성했다.

“그들은 고니시 님의 돈으로 움직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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